정부, 판매 부진에 “보조금 늘리겠다”
충전시설 부족하고 값도 여전히 비싸
올해 전기차 판매 증가율 10%로 저조
배정된 보조금도 쓰지 못해 남아 돌아
“신기술·생산 효율화로 가격 더 낮춰야”
국내 전기자동차 판매가 저조하자 정부가 보조금 확대 카드를 꺼내 들었다. 보조금을 받는 대상 차종은 그대로 유지하되 한시적으로 대당 지원 금액을 늘리겠다는 것이다. 세계 시장에서 한국 전기차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서도 국내 판매를 늘릴 필요는 있다. 그러나 정부 보조금 확대는 임시방편일 뿐이고 신기술 개발과 생산 효율화 등을 통해 가격을 더 낮춰야 경쟁력을 높일 수 있다.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 20일 노량진 수산물 시장을 방문했을 때 “최근 전기차가 전 세계적으로 경쟁이 치열하고 수요가 상대적으로 많이 저조하다”며 “보조금 지원 대상을 확대하고 보조금 인센티브 제도를 강화하는 방안을 찾고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환경부 등 관계부처와 협의를 거쳐 다음 주 발표하도록 할 것”이라고 밝혔다.
국내 전기차 판매 증가율은 현저하게 둔화하고 있다. 한국자동차모빌리티산업협회에 따르면 올해 1~7월 신규 등록된 전기차는 9310대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0.1% 증가하는 데 그쳤다. 2021년과 지난해는 전년 대비 증가율이 각각 89%와 78%에 달했다.
판매가 부진하다 보니 전기차에 배정된 보조금이 남아돌 정도다. 한국환경공단 무공해차 통합누리집에 따르면 서울시는 올해 들어 9월 22일까지 전기 승용차 보조금 지급률이 39%에 불과하다. 총 1만3688대에 보조금을 지급하기로 돼 있는데 실제 출고된 차는 5390대에 그쳤다. 인천은 보조금 지급률이 31%, 대전은 21%로 서울보다 낮았다. 연말이 다가오면 보조금이 소진되던 과거와는 확연하게 다른 모양새다.
전기차 판매 증가율 둔화는 세계적인 추세다. 시장 조사 업체인 마크라인즈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세계 시장에서 판매된 전기차는 총 434만2487대로 지난해 동기 대비 41.0% 증가했다. 절대 판매 대수는 늘었으나 증가율은 예년에 비해 크게 떨어졌다. 2021년 전기차 판매 증가율은 115.5%에 달했고 지난해 61.2%였다. 올해는 50% 밑으로 떨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전기차 판매가 저조한 이유는 고금리와 경기 침체로 수요가 감소한 데다 각국이 보조금을 줄이고 있기 때문이다. 올해 전기차 보조금을 폐지한 중국은 판매 증가율이 20~30%대로 떨어졌다. 한국을 포함해 많은 국가가 보조금 액수를 줄이거나 기존 혜택을 축소하고 있다.
판매가 줄자 테슬라 등 글로벌 전기차 업체들은 가격 인하로 대응하고 있다. 테슬라는 미국과 중국 등 주요 시장에서 인기 차종인 모델S와 모델X 가격을 내렸다. 폭스바겐과 포드 등도 가격 인하에 동참하고 있다. 비야디를 비롯한 중국 전기차 업체들도 할인 폭을 확대하는 등 가격 전쟁에 속속 뛰어들고 있다.
이에 따라 세계 전기차 시장의 성격도 바뀌고 있다. 지금까지는 1회 충전으로 갈 수 있는 주행거리 등 성능이 중요했다면 앞으로 가격이 판매 실적을 좌우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런 징후는 이미 나타나고 있다. 테슬라는 가격 인하 효과로 8월 중국 판매 실적이 전달 대비 30% 이상 증가했다.
이는 가격이 저렴한 LFP(리튬인산철) 배터리 수요 증가로 이어지고 있다. 그동안 LFP 배터리는 중국 전기차에 주로 탑재됐다. 한국 자동차 업체들이 주로 사용하는 NCM(니켈·코발트·망간) 배터리에 비해 성능은 떨어지지만 전기차 가격을 낮출 수 있어 업계가 주목하고 있다. 기술 발전 양상에 따라 NCM 배터리를 밀어내고 대세가 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세계 전기차 시장의 흐름을 보면 한국에 불리한 방향으로 가고 있다. 현대차·기아는 대형화·고급화를 추구하며 고부가가치 모델 판매에 주력했다. 이는 실적 개선으로 이어졌다. 하지만 전기차 가격경쟁이 치열해지며 양상이 바뀌고 있다. SNE리서치에 따르면 1~7월 테슬라와 중국 전기차 업체들은 판매 증가율이 60% 이상이었으나 현대차·기아는 7.7%에 불과했다.
미국과 프랑스 등 주요국이 자국에서 생산된 전기차에 더 많은 보조금을 주는 정책을 펼치고 있는 것도 부담이다. 장기적으로는 현지 생산을 늘리는 방식으로 대응할 수 있지만 단기간에 대처할 수단은 별로 없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 전기차가 경쟁력을 높이려면 정부 보조금만으로는 역부족이다. 자동차 업체 스스로 생산 효율과 신기술 개발 등을 통해 가격을 더 내릴 수 있어야 한다. 정부와 지방자치단체들도 급속 충전기 등 기반시설을 빨리 확대해 전기차 이용의 불편을 덜어줘야 한다.
관련기사
개의 댓글
댓글 정렬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