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 경쟁력에 달려 있는 자동차 산업의 미래
자동차산업이 패러다임의 전환을 겪고 있다. 심화되는 기후위기와 디지털 기술의 발전이 결합한 산물이다. 『노동의 종말』을 쓴 제레미 리프킨은 이를 그린-디지털 혁명(green-digital revolution)이라고 부른다.
자동차산업의 패러다임 전환은 크게 두 단계로 이뤄진다. 전기차 전환과 탄소중립 실현이 그것이다. 먼저 휘발유나 경유 등 화석연료를 사용하는 내연기관차가 전기차로 바뀌는 속도는 예상을 뛰어넘을 정도로 빠르다. 지난 2022년 글로벌 전기차 판매량은 2021년에 비해 67.9%가 증가한 800만대에 이르렀다. 완성차 전체 판매량의 10%에 육박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전기차는 배터리만 장착하는 것이 아니라 무선 업데이트 기술이 적용되고 자율주행차량이 고도화되는가 하면 커넥티드카 운영체제가 장착되는 등 소프트웨어 중심차량(SDV)으로 진화한다.
전기차 전환에서 탄소중립 실현으로
자동차산업의 패러다임 전환과 관련하여 사회과학 연구도, 정부의 정책도, 심지어 노동조합의 대응도 전기차에 초점을 맞췄다. 하지만 전기차 전환은 패러다임 전환의 출발점이자 일부일 뿐이다. 자동차산업은 보다 근본적이고 폭넓은 전환을 마주하고 있다. 탄소중립을 실현하는 일이 그것이다.
기후위기가 심화되면서 소비자와 투자자의 요구도 친환경으로 바뀌고 있다. 파리협약(2015)에 따라 온실가스 배출이나 연비에 대한 규제도 강화되고 있다. 글로벌 통상질서도 클린에너지 중심으로 재편되고 있다. 탄소국경조정세(CBAM)와 같은 국가차원의 규제 못지않게 RE100이나 ESG와 같은 민간차원의 규제도 강화되는 추세다. 최근 미국의 IRA법에서 보듯 친환경 흐름은 녹색 보호주의와 결합하면서 생산과 판매시장까지 급변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이러한 흐름을 선도하는 것은 두말할 나위도 없이 현대차그룹이다. 배터리를 장착한 소프트웨어 중심 전기차를 선도한 것도 현대차그룹이지만 탄소중립의 실현에 불을 붙인 것도 현대차그룹이다. 기후위기 해결, 탄소중립을 향한 현대차의 노력은 RE100 가입으로 대표된다. 기아차는 2040년, 현대차는 2045년을 목표연도로 삼아 재생에너지 100%를 선언했다.
자동차산업에서 RE100이 갖는 의미를 살펴보면 그것이 얼마나 엄청난 도전인가를 알 수 있다. RE100(Renewable Energy 100)이란 기업활동에 필요한 전력의 100%를 태양광, 풍력 등의 재생에너지를 이용해 생산된 전력으로 사용하겠다는 글로벌 캠페인이다.
현대차는 자동차의 가치사슬 전반에 걸쳐 탄소중립을 달성하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다. 탄소배출을 줄이려면 사업장에서 직접 사용하는 에너지(가령 도장공장의 LNG 등)와 기업이 구매하여 생산과정 등에 사용하는 외부전력도 재생에너지로 바뀌어야 한다. 재생에너지로 생산된 전력을 이용할 수 없으면 사용한 전력만큼 REC(Renewable Energy Certificate, 재생에너지 공급인증서)를 구매해야 한다. RE100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탄소중립으로 가려면 자동차 생산에 들어가는 원자재나 부품도 생산과정에서 온실가스를 배출하지 않아야 한다. 나아가 판매된 자동차가 운행과정에서 탄소를 배출하지 않아야 하며 폐기된 자동차의 배터리는 재활용하는 등 차량 판매 이후에도 넷제로를 향한 노력은 이어진다. 즉 원료의 취득에서 생산, 운행, 폐기 및 재활용에 이르는 차량의 전 생애주기(Life Cycle Assessment)에 걸쳐 에너지원으로 재생에너지나 재생에너지로 생산된 수소를 사용해야 한다.
현대차가 2022년에 배출한 온실가스의 양은 약 1억 8백 톤에 이른다. 현대차가 RE100에 가입하고서도 전년대비 400만 톤 늘어났다. 심지어 공장 내 배출량도 17만 톤가량 늘었다(지역기반 기준). 1억 8백 톤 가운데는 소재 및 부품의 제조와 차량운행에서 발생하는 온실가스가 97.8%를 차지한다. 회사가 직접 배출하는 온실가스와 자동차를 생산하는 과정에서 외부전기가 배출하는 온실가스는 합쳐서 238만 톤으로 전체배출량의 2.2%에 지나지 않는다(현대자동차지속가능성보고서 2023). RE100을 달성한다는 것은 회사 내부는 물론 회사 바깥에서 배출되는 온실가스까지 현대차가 책임진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기후경쟁력에 달려 있는 자동차산업의 미래
현대차그룹은 잘 나가는 중이다. 지난해에는 전세계 시장에서 700만 대 가까이 판매해 세계 3위의 자동차업체로 도약했다(전기차 판매량은 37만 대로 7위에 그쳤다). 올 상반기의 성적은 더 좋다. 하지만 미래의 영역은 불확실성으로 가득 찬 미지의 영역이다. 불확실하다는 사실만이 확실하다.
현대차의 친환경 여정에 걸림돌도 적지 않다. 우선 눈에 띄는 것은 재생에너지의 공급이 충분하지 않다는 사실이다. 문재인 정부가 에너지전환을 늘쩡거린 데다 윤석열 정부에서는 핵발전에 전념하느라 재생에너지를 의붓자식처럼 취급하고 있는 탓이다. 이는 RE100의 달성을 위협하고 장기적으로는 에너지 경쟁력의 저하로 이어질 것이다. 국내에서 재생에너지를 조달할 수 없어 해외로 생산기지를 옮기는 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다.
실제로 현대차가 회사 내에서 사용한 재생에너지는 28만 MWh로 전체사용량의 3.7%에 불과하다(2022년). 이에 반해 현대차 인도생산법인에서는 공장에서 사용하는 전기에너지의 42.1%를 재생에너지로 조달하고 있으며 체코생산법인에서는 2022년, 100% 재생에너지로 전환했다.
소재나 부품산업에서의 탈탄소도 중요하다. 대표적인 소재인 철강과 이차전지의 탈탄소화도 불투명하지만 일반 부품업체의 탄소중립 노력은 친환경차 산업의 생태계를 위협할 정도다. 최근 볼보나 BMW 등이 탄소중립 노력(RE100 실현)이 불투명하다는 이유로 한국 부품의 수입을 철회했다는 뉴스까지 들리는 상황이다. 현대차도 같은 상황에 직면할 수 있다. 국내 부품산업에서 탈탄소 생태계가 조성되지 않으면 공급망은 외부로 향할 것이다.
수출환경의 변화도 심상찮다. 미국은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에서 한국의 전기차를 보조급 지급 대상에서 제외했다. 자동차 연비 규제도 강화하고 있다. 2035년 내연기관차 퇴출을 선언한 유럽(EU) 역시 자동차 배출가스 규제를 지속적으로 강화하고 있다. 자동차에 대해서도 탄소국경조정세가 적용될 여지가 남아 있는 데다 전기차나 배터리, 반도체 원료가 EU의 핵심원자재법(CMA)에 포함되어 보호주의의 대상이 될 우려도 존재한다.
사실 현대차의 친환경 노력에 대한 국제적인 평가도 그리 호의적이지 않다. 가령 그린피스는 ‘2022년 글로벌 10대 자동차회사 친환경 평가’에서 현대차를 5위에 자리매김하고 있다. 현대차가 내연기관차의 단계적 폐지 시점을 밝히지 않았다는 점과 함께 측정가능한 탄소중립 로드맵이나 구체적인 추진전략을 발표하고 있지는 않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RE100을 선언하고서도 탄소배출량이 늘어나는 것도 문제지만 탄소중립 목표연도로 2045년을 제시한 것은 너무 늦다는 지적도 없지 않다.
한편 국제청정교통위원회(ICCT)는 최근 글로벌 자동차업체의 전기차 전환을 평가하면서 현대차를 20개 사 가운데 13위에 자리매김하고 있다. 전략적 비전이 후진그룹에 속한다는 것이다. 현대차의 경우 기술성과는 뛰어나지만 친환경차의 판매목표와 매출액 대비 친환경차 투자비율이 낮다는 점을 그 이유로 들고 있다.
기후위기의 시대에서 미래 자동차산업의 생존은 탄소중립의 성과, 즉 기후경쟁력에 달려 있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현대차는 전세계 전기차 시장을 선도하는 퍼스트무버(first mover)가 돼야 한다.”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의 말이다. 하지만 기후위기 대응에 관한 한 현대차는 추격자(fast follower)에 지나지 않는다. 전기차 전환은 기후위기 대응의 일환이다. 기후위기 대응에서 퍼스트무버가 되지 못하면서 전기차에서만 퍼스트무버가 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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