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리번, 북‧러 '위험한 거래'에 중국 중재역 요청

미국, 동맹국 결속 '대중 봉쇄'…중국 "냉전 사고"

"충돌 원치 않는다" vs "중국 발전 저지 못해"

바이든-시진핑도 안정적 미‧중 관계 필요 시점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가운데 오른쪽)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가운데 왼쪽)이 13일(현지시간) 러시아 아무르주 보스토치니 우주기지를 둘러보고 있다. 러시아 현지 매체들은 북러 정상회담이 임박했다는 소식을 전하고 있다. 2023.09.13. 연합뉴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가운데 오른쪽)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가운데 왼쪽)이 13일(현지시간) 러시아 아무르주 보스토치니 우주기지를 둘러보고 있다. 러시아 현지 매체들은 북러 정상회담이 임박했다는 소식을 전하고 있다. 2023.09.13. 연합뉴스

미국과 중국이 지중해 섬나라인 몰타에서 고위급 회동을 했다.

회동 당사자는 제이크 설리번 미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과 왕이 중국 공산당 외사판공실 주임 겸 외교부장이다. 16~17일 주말을 이용해 만난 두 사람은 무려 12시간 대화를 진행했다.

이번 회동은 설리번-왕이 대화 채널의 위상은 물론이고, 그 시점 및 전격성, 몰타라는 장소의 상징성 등을 감안하면 양국이 여느 때와는 다른 진지한 태도로 임했음을 느끼게 해준다.

먼저 설리번과 왕이는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과 공산당 외사판공실 주임으로 각각 조 바이든 대통령과 시진핑 국가주석의 의중을 가장 잘 아는 최고위 외교‧안보 참모들이다. 그런 만큼 이번에 미‧중 두 정상에게서 직접 '구체적 미션'을 받고 만났다고 봐야 한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가운데)이 10일(현지시간) 인도 뉴델리에서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를 마치고 전용기 에어포스원에 탑승하기 위해 걸어가고 있다. 바이든 대통령은 베트남 권력 서열 1위인 응우옌 푸 쫑 공산당 서기장의 초청으로 이날부터 이틀간 베트남을 국빈 방문한다. 2023.09.10. AFP 연합뉴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가운데)이 10일(현지시간) 인도 뉴델리에서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를 마치고 전용기 에어포스원에 탑승하기 위해 걸어가고 있다. 바이든 대통령은 베트남 권력 서열 1위인 응우옌 푸 쫑 공산당 서기장의 초청으로 이날부터 이틀간 베트남을 국빈 방문한다. 2023.09.10. AFP 연합뉴스

바이든, 동맹국 결속 '대중 봉쇄'…중국 "냉전 사고"

다 알다시피 현재 미‧중 관계는 대결이냐 협력을 통한 경쟁이냐의 기로에 서 있다.

민주주의와 권위주의의 대결'이란 기치를 내건 바이든 행정부는 지난 6개월 중국을 경제적, 군사적으로 봉쇄하고자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동맹국 결속 작업에 매진해왔다. 중국은 이를 "냉전적 사고"라고 거세게 반발하면서 역내에서의 '신냉전'의 출현을 경고해왔다.

미국의 대중 봉쇄 전략은 동북아에선 8·18 캠프 데이비드 정상회의를 통해 군사동맹 수준의 '한·미·일 안보협력체 창설'로 현실화했고, 그 결과 북‧중‧러 북방 3자 연대를 부추기고 있다.

이달 들어선 바이든의 인도 방문과 쿼드(미·일·인도·호주 4자 안보협의체) 강화, 뉴델리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에서 중국의 '일대일로'에 맞선 인도-중동-유럽 간 에너지 수송로와 디지털망을 잇는 '경제회랑' 구상 발표, 바이든의 베트남 국빈 방문과 '포괄적 전략적 동반자 관계' 격상 등을 통해 중국의 영향력이 큰 아세안(동남아국가연합) 공략에 시동을 걸었다.

이에 대해 바이든은 지난 10일 하노이 기자회견에서 "중국 봉쇄에 관한 게 아니고 인도‧태평양에 안정적 기지 확보에 관한 것"이라며 "나는 중국 봉쇄를 원치 않는다"고 주장했다.

G20 정상회의에 시진핑이 이례적으로 불참한 배경으로 중국의 심각한 경제 상황 등을 지목하는 시각도 있지만, 대중 봉쇄로 일관하는 바이든과의 대좌를 꺼렸을 거란 관측도 있다. 기본적으로 중국은 미국이 말과 행동이 다르다고 보고 그 '진정성'을 의심하고 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16일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에 위치한 대평양함대 사령부를 방문했다. ​​​​​​​ 2023 09. 16 [AFP=연합뉴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16일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에 위치한 대평양함대 사령부를 방문했다.  2023 09. 16 [AFP=연합뉴스]

설리번, 북‧러 '위험한 거래'에 중국 중재역 요청

이처럼 냉랭한 기류가 다시 양국을 감싸는 와중에 설리번-왕이의 회동이 이뤄진 것이다. 특히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러시아 방문(9월 8일~18일)과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과의 정상회담(9월 13일)을 계기로 두 나라 간 위성 기술과 재래식 무기의 '위험한 거래'가 현실화할 가능성이 커지면서 몸이 단 미국엔 중국의 협조와 책임 있는 역할이 뭣보다 필요한 시점이었다.

때마침 왕 부장이 제18차 중‧러 전략안보협의 회의 참석차 18~21일 모스크바를 찾는 만큼 설리번은 주말에라도 왕 부장을 만나 북‧러 간 '위험한 거래'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대북 결의와 다수의 국제 제재 위반임을 경고하면서 러시아를 설득해 달라고 당부했을 것으로 보인다.

중국 외교부는 두 사람이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정세와 우크라이나, 한반도 등 국제‧지역 문제에 관해서도 논의했다"고 말해 이런 관측을 뒷받침했다.

회동 목적에 대해 미 백악관은 "(중국과) 열린 소통 라인을 유지하고 관계를 책임 있게 관리하려는 지속적인 노력의 일환"이라고 설명했지만, 중국 외교부는 별다른 언급 없이 회담 내용만을 소개했다. 미국 측의 '요청'으로 이뤄진 회동임을 짐작하게 하는 대목이다.

 

18일(현지시간) 러시아 모스크바의 외무부 리셉션 하우스에서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왼쪽에서 두번째)과 왕이 중국 외교부장(오른쪽에서 세번째)이 회담하고 있다. 2023.9.19. 연합뉴스
18일(현지시간) 러시아 모스크바의 외무부 리셉션 하우스에서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왼쪽에서 두번째)과 왕이 중국 외교부장(오른쪽에서 세번째)이 회담하고 있다. 2023.9.19. 연합뉴스

​​​​​​​바이든-시진핑도 안정적 미‧중 관계 필요 시점

재선에 도전한 바이든으로선 대중 포위망 구축도 일단 마무리한 만큼 북‧러 밀착 등으로 우크라이나전쟁의 장기화가 우려되는 상황에서 그동안 강 대 강으로 맞서왔던 중국과의 갈등을 '관리'하는 쪽으로 방향을 전환하려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시진핑 입장에서도 심각한 경제 상황 등 국내 현안 해결에 집중하기 위해 당분간 대미 관계의 안정적 관리가 필요한 시점이다.

설리번과 왕이는 5월에도 오스트리아 빈에서 만나 대화 재개의 물꼬를 텄던 적이 있다. 당시는 양국이 지난 2월 '중국 정찰풍선'(중국은 '과학연구용 비행선' 주장)의 미 영공 침범 사건으로 갈등을 빚으며 고위급 대화가 단절된 때였다. 작년 11월 발리 바이든-시진핑 회담의 후속 조치로 계획했던 토니 블링컨 국무장관의 방중도 출발 직전 무기한 연기됐을 정도였다.

그러나 빈 회동이 고위급 대화 채널 복원의 계기가 됐다. 6월에 블링컨을 시작으로 해서 재닛 옐런 재무장관, 지나 러몬도 상무장관 등 미 정부 고위 당국자들이 잇따라 중국을 찾았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설리번-왕이 회동을 계기로 양국의 고위급 협의가 다시 가동하고 오는 11월 샌프란시스코 APEC(아시아‧태평영 경제협력체) 정상회의에 중국의 시 주석이 참가해 바이든 대통령과의 정상회담도 성사되지 않겠느냐는 '기대 섞인' 관측도 나오고 있다.

 

붉은 선 안쪽이 오키나와 열도. 규슈에서 대만까지 길게 섬들이 늘어서 있다. 일본영토면적의 0.6%인 오키나와 본섬에 주일 미군기지의 75%가 집중돼 있다.
붉은 선 안쪽이 오키나와 열도. 규슈에서 대만까지 길게 섬들이 늘어서 있다. 일본영토면적의 0.6%인 오키나와 본섬에 주일 미군기지의 75%가 집중돼 있다.

​​​​​​​"충돌 원치 않는다" vs "중국 발전 저지 못해"

그러나 미‧중 관계와 대만 문제에 대한 양국의 인식은 여전히 상당한 차이를 드러냈다.

설리번은 미‧중이 경쟁 관계이지만 미국은 중국과의 충돌을 추구하지 않는다고 말했으나 왕이는 미국이 중국의 발전을 '저지'하고 있다는 불만을 원색적으로 표출했다. 왕이는 "중국의 발전은 강대한 내생적 동력을 갖고 있으며 필연적인 역사 논리를 따르는 만큼 저지할 수 없다"며 "중국 인민의 정당한 발전 권리를 박탈하는 것을 용납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첨단 반도체 등 과학기술 분야에서 중국을 견제하는 미국의 디리스킹(위험제거) 작업을 겨냥한 것으로 보인다.

이와 관련해 바이든은 하노이 기자회견에서 "중국에 상처를 주려는 건 아니다"라면서도 "더 많은 핵무기를 만들거나 지역 내 긍정적 발전에 반하는 국방 활동 관련 능력을 향상시키는 물질을 판매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해 디리스킹을 밀어붙이겠다는 뜻을 숨기지 않았다.

대만 문제를 두고도 기존 입장을 재확인했다. 양국의 발표를 종합하면, 왕이는 "대만 문제는 중‧미 관계에서 넘어서는 안 되는 첫 번째 레드라인"이라며 '하나의 중국' 등을 명시한 미‧중 3대 공동성명과 대만독립을 지지하지 않는다는 공약의 준수를 촉구했다. 반면 설리번은 대만해협 현상 유지와 양안의 평화와 안정 유지에 집중하고 있다면서 맞섰다.

 

제이크 설리번 미국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과 왕이 중국 공산당 외사판공실 주임 겸 외교부장이 18일 지중해 섬나라 몰타에서 회동하고 있다. 2023 09. 18. [신화=연합뉴스]
제이크 설리번 미국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과 왕이 중국 공산당 외사판공실 주임 겸 외교부장이 18일 지중해 섬나라 몰타에서 회동하고 있다. 2023 09. 18. [신화=연합뉴스]

'냉전종식 선언' 몰타 회동…미‧중 '신냉전'은 막자?

회담 장소로 '중립국'인 몰타'를 택한 것도 매우 상징적이다. 지중해 섬나라인 몰타는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기 직전인 1989년 12월 당시 조지 H.W 부시 미국 대통령과 미하일 고르바초프 소련 공산당 서기장이 만나 '냉전 종식 선언'을 했던 역사적인 장소이기 때문이다.

지정학적으로 몰타는 동서와 남북이 교차하는 지중해 중앙에 자리잡은 탓에 긴 세월 동안 외세의 지배를 받았다가, 미‧소 대결이 한창이던 1980년 중립을 선언한 나라다.

냉전 종식 선언을 한 역사적 장소라는 상징성을 고려하면 몰타를 회동 장소로 택한 것은 대만과 남중국해, 디리스킹 문제 등을 놓고 평행선을 달리지만 적어도 양국 모두 전략 경쟁이 '신냉전'으로 비화해선 안 된다는 원칙엔 공감한 게 아닌가 하는 풀이도 가능하다.

몰타 회동에 대해 백악관은 "솔직하고 실질적이며 건설적인 협의였다"고 했고, 중국 외교부도 "솔직하고 실질적이며 건설적인 전략적 소통이었다"고 말했다. 이번 회동이 미‧중 관계 재정립의 주요한 전기로 작용할지는 좀더 지켜봐야 할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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