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과 북 모두 '비싼 대가'…윤 정부는 퍼붓기만
분단국으로 교전 당사국 편들기 자제 불문율 깨져
한·미·일, 무기 거래·군사협력 금지 의무 준수 촉구
남·북 "힘에 의한 평화"…연일 무력 시위에 분주
"생즉사 사즉생(生卽死 死卽生)의 정신으로 우리가 강력히 연대해 함께 싸워나간다면 분명 우리의 자유와 민주주의를 지켜낼 수 있을 것이다."(윤석열 대통령)
"러시아는 패권 세력에 맞서 주권과 안보를 수호하기 위한 성스러운 싸움에 나섰다. 제국주의에 맞서 싸우고 주권 국가를 건설하는 데 늘 함께 하겠다."(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앞의 건 윤 대통령이 두 달 전인 7월 15일 우크라이나를 전격 방문해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하고 진행한 공동 언론발표 자리에서 했던 말이다.
여기서 윤 대통령은 "러시아의 불법 침략으로 인해 무고하게 희생된 우크라이나 시민들과 자유를 수호하기 위해 목숨 바친 우크라이나의 젊은이들, 그리고 유가족들에게 깊은 애도를 표한다"고 말하고 "70여 년 전의 대한민국을 떠올리게 한다"고 한국전쟁도 거론했다.
뒤의 건 김 국무위원장이 이틀 전인 13일 러시아 아무르주 보스토치니 우주기지에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시작하는 모두발언에서 한 말이다. 이어 김 위원장은 "우리는 항상 푸틴 대통령과 러시아 지도부의 결정을 전폭적으로 지지해왔다"고도 했다.
윤 대통령은 우크라이나와 '강력히 연대'해 함께 러시아와 싸우겠다는 다짐한 데 반해, 김 위원장은 러시아 편에 서서 우크라이나와 미국 등 '제국주의'와 싸우겠다고 천명한 것이다.
남과 북, 우크라이나서 '또 하나의 전쟁'
문제는 남과 북 두 정상이 말로만 그칠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윤 대통령이 작년 5월 취임한 이후 지금까지 우크라이나에 구호품에서 군수 물자, 지뢰 제거 장비와 긴급 후송 차량 등 비살상 군사 장비를 지원했으며, 전쟁 대비 비축용 포탄 50만 발도 우회 수출의 형태로 넘겼다. 또한 2025년 이후까지 최소 25.5억 달러(약 3조4000억 원) 규모의 초특혜 재정 지원도 약속했다.
마지막 남은 살상 무기 제공도 저울질하고 있다. '자유의 전사'를 자처하며 '남의 나라 전쟁'에 점점 더 발을 깊숙이 담그는 셈이다.
김 위원장도 '남의 나라 전쟁'에 본격적으로 개입하기 시작했다. 4년 5개월 만에 열린 푸틴 대통령과의 13일 정상회담이 그 신호탄이다.
두 나라가 정상회담에서의 구체적인 논의와 합의 내용은 공개하지 않았지만, 러시아는 북한에 첨단 위성 기술 개발을 돕고, 북한은 우크라 전에 쓸 포탄 등 재래식 무기를 러시아에 주는 쪽으로 의견을 모았을 공산이 크다.
남과 북이 직접 전투를 벌이는 우크라와 러시아의 후방에서 '또 하나의 전쟁'을 벌이는 형국이다.
분단국으로 교전 당사국 편들기 자제 불문율 깨져
그래도 여태까진 정전 상태의 분단국 정부로서 남과 북 모두 교전 당사국 중 어느 한 편을 드는 행동은 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번에 남북 모두 '불문율'을 깼다고 하겠다.
정전 70년이 지나서도 여전히 지구상의 유일한 '냉전의 섬'인 분단된 한반도에서 남과 북이 8000만 주민 모두에 평화와 번영을 위한 평화 체제 만들고 그 평화의 기운을 교전 중인 러·우 양국에 보내 종전을 설득하기는커녕 오히려 전쟁에 기름을 붓는 모양새다.
당연히 그 대가가 뒤따른다. 납득하기 힘든 윤 정부의 막대한 우크라 지원은 1990년 구소련과의 수교 이후 매우 우호적이었던 한·러 관계의 파탄과 새로운 북·러 밀착 시대를 초래하게 됐다.
상당한 시일이 필요하겠지만 러시아의 우주 기술 전수는 북한의 정찰위성 확보에 기여해 북한의 핵·미사일 무력 완성을 앞당길 가능성이 크다. 북한의 위협은 그만큼 커진다.
러시아에 포탄 및 재래식 무기 제공을 행동으로 옮긴다면 북한에도 대가가 따른다.
북한과의 무기 거래와 군사협력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 대북 결의와 국제 제재 조치에서 금지하고 있어 북한과 러시아가 이를 무시한다면 더 혹독한 제재가 기다리고 있다.
남과 북 모두 '비싼 대가'…윤 정부는 퍼붓기만
이와 관련, 14일 조태용 국가안보실장과 제이크 설리번 국가안보보좌관, 아키바 다케오 국가안전보장국장 등 한·미·일 안보실장은 전화 통화를 갖고 북·러 양국에 무기 거래와 군사협력 금지 의무 준수를 촉구하고 위반시 "분명한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러나 북·러 두 나라 모두 이미 강도 높은 제재를 받고 있어 추가 제재 경고가 먹힐지도 의문이다.
문제는 윤 대통령은 우크라에 퍼붓기만 할 뿐 얻는 게 거의 없다는 점이다. '자유의 전사'로서 대러 전선의 첨병 자리를 얻었을 뿐이다. 다 알다시피 우크라에 지원을 약속한 최소 25.5억 달러(약 3조4000억 원)의 초특혜 재정 지원 규모는 내년도 국가 연구개발(R&D) 예산 중 삭감액 '3조4000억 원'과 동일한 규모다.
그래도 북한 김 위원장은 얻는 게 있다. 좀더 두고봐야 하겠지만, 러시아의 위성 기술을 전수받을 수 있고, 식량·에너지·의약품 등 지원과 무역 활성화 등 경제협력의 혜택을 볼 가능성이 크다. 전체적으로 보면 김정은으로선 잃을 건 별도 없고, 얻을 게 많은 게임이다.
남·북 "힘에 의한 평화"… '호전적' 윤석열 김정은
한편, 한반도에서 남북 군사 대결 구도는 더욱 굳어지고 있다. 남과 북 모두 대화 재개에 일절 관심이 없고 '힘에 의한 평화'를 내세우며 서로 무력 시위를 벌이기에 바쁘다.
북한은 전승절(정전 기념일)인 7월 27일 김일성광장에서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화성-17형을 동원한 대규모 열병식을 진행한 데 이어, 정권 수립 기념일(9·9절) 75주년을 맞은 9일 0시부터 정규군이 아닌 남측 예비군 격인 '노농적위군'이 전면에 나선 심야 열병식을 개최했다.
이날 열병식엔 ICBM이나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등 전략무기 대신에 트럭과 트랙터, 오토바이 등 '생활·노동 장비'를 사용한 '기계화 종대'가 등장해 유사시 주민 전체 동원 의지를 드러냈다. 나흘 후인 13일엔 김정은-푸틴 정상회담 직전에 단거리 탄도미사일 두 발을 동해로 발사했다.
남한도 마찬가지다. 해군에 따르면 한국과 미국, 캐나다 해군은 14일 충남 태안 서해상에서 연합훈련을 실시했다. 15일 열린 제73주년 인천상륙작전 전승 행사에 미국 해군 강습상륙함 아메리카함, 캐나다 해군 호위함 밴쿠버함이 참가하는 것을 계기로 이뤄졌다.
이것만이 아니다. 윤 정부는 오는 26일 서울공항에서 한국형 3축 체계 핵심 전력인 고위력 미사일과 장거리 지대공유도무기(L-SAM)를 비롯한 68종 340여 대의 장비를 동원한 가운데 건군 75주년 기념 국군의날(10·1) 기념행사를 개최한다.
이어 서울 숭례문∼광화문 일대에서 10년 만에 대규모 군 장비가 동원된 시가행진 분열을 진행해 무력을 과시할 예정이다.
동북아에서 형체를 갖춰가는 한·미·일-북·중·러 사이의 '신냉전' 전선의 첨병을 맡게 된 남과 북이 '러·우 열전(熱戰)'에까지 개입함에 따라 남북 대립은 한층 격화될 것으로 우려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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