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최고재판소, 오키나와 민의 배반
헤노코 미군기지 건설 정부주장 추인
하토야마 정권 무너뜨린 미군과 자민당
한국이든 일본이든 탈미국 균형외교 불허
중국 ‘표준지도’ “남중국해는 우리 것”
4일 일본 최고재판소(대법원)는 오키나와 현 후텐마 미 해병대 항공기지 이전과 관련해, 현민들 절대 다수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공사 강행을 위해 일본 중앙정부 국토교통상이 내린 ‘시정 지시’에 대한 오키나와 현의 취소 청구소송을 기각했다. 이는 해병대 기지가 옮겨 갈 오키나와 섬 북동쪽 나고 시의 헤노코 해변 기지조성 공사를 최고재판소가 사실상 용인한 최초의 결정이다.
일본정부 견제해야 할 사법이 행정 편
이날 <아사히신문>은 사설 첫 문장을 이렇게 썼다.
“행정권을 견제하는 사법의 역할을 포기하고, 헌법에 명기된 지방자치의 본의를 경시한 채 정부 정책을 추인했다. 장래에 화근을 남긴 판결이다.”
오키나와 현 지역민들의 바람을 철저히 깔아뭉개고 편법을 동원한 본토 정부의 공사 강행계획에 허가장을 내 준 이번 최고재판소 결정 과정은, 일본 국내외의 거센 반대에도 후쿠시마 핵오염수 해양 투기를 강행한 자민당식 우익 전체주의 통치행태의 또 다른 측면이라고 할 수 있다. 그 뒤에는 미국이 있다. 오키나와에는 주일 미군 기지들이 집중돼 있다.
이로써 1990년대 중반부터 본격화된 오키나와 현민들의 미군 기지 반대운동, 그리고 8년 전에 시작된 현과 국가 간의 소송전은 새로운 고비를 맞게 됐다. 끝난 게 아니다.
중국 ‘표준지도’ “남중국해는 중국 것”
주일 미군과 일본 자민당 정부의 오키나와 미군기지들에 대한 집착은 최근 중국의 급속한 해군력 강화와 대만에 대한 ‘핵심적 이익’ 주장, 과도할 정도의 남중국해 ‘9단선’ 영해 주장과 밀접한 상관관계를 갖고 있다. 중국은 지난 달 말 2023년 판 ‘표준지도’를 공표했다. 거기에는 남중국해 거의 전 해역과 섬들이 중국 관할권임을 보여 주는 ‘9단선’이 그어져 있다. 주변국들은 당연히 이에 반발하고 있다. 일본과 한반도에서 필리핀에 이르는 미국 및 미일동맹 군사기지 확장 내지 강화는 중국의 해군력 강화 및 동남중국해 영역확장과 동전의 양면처럼 서로 얽혀 있다. 제주 강정항과 새만금 등의 새 공항 건설계획도 미중의 이지역 패권경쟁과 연결돼 있다.
오키나와 미 해병대 후텐마 기지
1995년에 오키나와 주둔 미 해병대 병사 3명이 현지 여중생을 집단 성폭행한 사건이 일어났다. 그 사건은 미군기지에 반발하던 오키나와 주민들의 반기지 정서에 불을 붙여 대규모 시위가 벌어지는 등 섬 전체가 미군기지 철수를 요구하며 들고 일어섰다.
주일 미군과 자민당 정부는 국면전환을 위해 섬 남서부의 기노완 시 한복판에 있는 후텐마 미 해병대 항공기지를 철수하겠다고 약속했다. 후텐마 기지는 인근 국제대학교에 훈련 중이던 미군 헬기가 추락한 적도 있는, ‘가장 위험한 기지’로 주민들의 철수 요구가 거셌던 곳이다. 비행장이 마치 인구 밀집한 시가지 한복판에 떠 있는 항공모함 갑판 같은 형국을 하고 있다.
일본영토 0.6%에 미군기지 75% 몰려
오키나와 섬은 일본국토 전체 면적의 0.6%에 지나지 않지만 주일 미군 기지의 75%가 쏠려 있는 곳이다. 하루 종일 미군 전투기와 수송기들이 굉음을 내며 날아 다닌다. 오키나와 주민들의 강한 반미군기지 정서나 반‘본토’ 정서가 여기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주민들은 미군기지 부담을 일본 본토도 나눠 져야 한다고 주장해 왔지만, 본토의 중앙정부는 보조금으로 반발을 달래며 꿈쩍도 하지 않았다. 미군기지의 오키나와 경제 기여도는 전체의 3%에도 미치지 못한다는 조사도 있지만, 중앙정부의 보조금에도 불구하고 오키나와는 일본 전체 현들 중에서 소득수준이 가장 낮은 현이다.
미군기지를 발전의 장애물로 여기는 오키나와 주민들은 기지 부담을 본토가 나눠 져야 한다며 기지 일부의 본토 이전이나 철수를 요구해 왔다. 본토와 중앙정부는 거기에 전혀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수백년간 독립 ‘류큐 왕국’으로 존속했던 오키나와는 19세기 후반에 일본에 복속되면서 오키나와 현이 됐다. 대만 조선과 함께 일본 제국주의 팽창에 희생당했다. 지금도 오키나와에는 오키나와 독립을 지향하는 정치조직이 활동하고 있다.
탈미국 균형외교 폈다가 쫓겨난 하토야마 총리
주일 미군과 자민당 정부는 후텐마 기지 이전을 약속했지만 그것을 오키나와 섬 바깥 일본 본토나 미국 본토 또는 미국령 괌이 아니라 같은 오키나와 섬 북동쪽 나고 시의 태평양쪽 해안지역인 헤노코로 옮기겠다고 발표했다. 오키나와 주민들이 다시 들고 일어섰지만 미군과 자민당 정부는 헤노코 이전을 강행했다.
2009년에 민주당이 집권하면서 그해 9월 하토야마 유키오 정부가 들어섰고, 하토야마 총리는 오자와 이치로 간사장과 함께 친미 일변도의 일본 외교를 한국 중국 북한 등 주변 아시아국들과의 관계도 중시하는 균형외교 쪽으로 방향을 틀면서 후텐마 기지의 오키나와 바깥으로의 이전을 추진했다.
그 때문에 하토야마 총리와 오자와 간사장은 취임 뒤 1년도 못 채우고 2010년 6월에 자리를 물러나야 했다. 사실상 쫓겨난 것이다. 당시 커트 캠벨 동아시아태평양담당 차관보 등 미국 안보전략가들이 민주당의 탈미국 균형외교 움직임에 분노해 자민당 본류 친미파와 손잡고 하토야마 등을 밀어냈다는 얘기들이 돌았다.
70% 이상이 반대하는 기지공사 강행
2019년에 헤노코 기지 건설을 위한 헤노코 앞바다 매립 여부를 두고 현민 투표가 실시됐고 유효 투표수의 70% 이상이 매립공사에 반대했다. 헤노코 앞바다는 산호와 희귀동물인 바다소 ‘듀공’ 등의 절멸위기종을 포함한 5300종이 넘는 생물의 서식처이기도 해서 미군기지 건설을 위한 매립공사로 그것을 파괴해서는 안 된다는 여론이 높다.
지난해 현 지사선거에서도 기지건설 공사 저지를 공약으로 내건 다마키 데니 지사가 재선됐다. 이처럼 현 민의가 어디에 있는지 거듭 확인됐음에도 미군과 자민당 정부는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국토교통성과 방위성 사법이 한패가 돼 오키나와 농락
자민당 정부가 해안 바다의 연약지반을 다지기 위해 7만개 이상의 콘크리트 말뚝을 박는 공사를 강행하기 위해 오키나와 현에 공사 설계변경 신청을 하자 오키나와 현은 승인하지 않았다. 그러자 국토교통상이 승인하라는 ‘시정 지시’를 내렸다. 오키나와 현은 이에 대해 다시 시정 지시 취소 소송을 냈고, 최고재판소가 4일 이를 기각하면서 자민당 정부 편을 들어줬다.
오키나와 현은 설계변경 신청을 받아들이지 않은 이유로 연약지반에 대한 조사가 부족하고 환경 파괴에 대한 고려가 결여돼 있으며, 공사의 장기화에 대한 우려 등을 들었다. 공유수면 매립법도 환경보전과 재난방지에 대한 배려를 중요한 요건으로 명기하고 있으나 최고재판소는 그런 점에 대해서는 아무런 언급도 없이 “행정청의 재결(행정심판 판단)은 관계 행정청을 구속한다”는 형식론만 강조하면서 오키나와 현의 문제제기를 문전박대하듯 물리쳤다.
앞서 오키나와 현이 설계변경을 불허했을 때 사업주체인 방위성 오키나와 방위국이 ‘사인(私人)’ 입장에서 불복해 이의신청을 했고 ‘한패’인 국토교통상이 심사관청의 자격으로 현의 불허 처분을 취소하는 판단을 내렸다. 그럼에도 현이 이를 수용하지 않자 국토교통상은 다시 시정지시를 내렸다.
이처럼 정부 내 부서끼리 한패가 돼 심사를 주거니 받거니 하는 꼴을 보고 다수의 행정법학자들이 “국가가 사인 행세”를 하면서 “권리구제제도를 남용”한다며 비판하는 성명서까지 냈다. 무슨 수를 써서든 공사를 강행한다는 결정을 이미 내려 놓은 상황에서 이런저런 절차는 어떻게 해도 좋은 형식요건에 지나지 않았다.
중국견제 위한 오키나와와 한국의 기지들
미군이 이처럼 오키나와 기지에 집착하는 가장 큰 이유는 중국 견제다. 중국이 주요 경쟁자로 떠오르면서 미국은 중국이 태평양 대해로 나가는 출구들을 막거나 감시하는 기지들을 더욱 강화하고 있다. 대만 인근의 요나구니 섬과 같은 일본 규슈 이남의 난세이 제도에 자위대 기지들이 새로 들어서고 그것은 미군과의 합동군사훈련 기지, 보급기지 역할을 하고 있다. 최근 대만에 가까운 필리핀 북서부 지역에도 미군의 임시기지들이 늘어나고 있다. 평택과 오산과 군산 미군기지, 그리고 제주 강정항과 제주 신공항, 새만큼 국제공항 신설계획 등도 미국 또는 미일동맹의 대중 견제전략과 밀접하게 연계돼 있다고 봐야 한다.
‘대국’행세하기는 중국도 마찬가지
21세기엔 어울리지 않는 중세적 개념에 가깝지만, 이른바 ‘대국’들의 이런 행보는 강압적이고 일방적이라는 점에서 중국도 다르지 않다. ‘대국’임을 자처하는 나라들이 행세하는 새로운 냉전이 시작되고 았다.
지난 달 28일 중국 자연자원부가 중국 국내용 통일규격 ‘표준지도’ 2023년도 판을 공표했다. 거기에는 남중국해 거의 모든 해역이 중국의 관할권으로 표시돼 있다. ‘9단선’이라 불리는 종래의 9개 선에, 이번에는 대만 동부 연안에 선이 하나 더 그어져 있다. 그 선들 안에 있는 바다와 섬들은 모두 ‘중국 것’이라는 표시다.
수백 킬로미터 저 너머에 있는 중국이 자국령으로 표기한 섬들 가까이에 있는 베트남, 필리핀, 말레이시아 등 주변국가들이 가만 있을 리 없다.
주변국들 중국 표준지도 거부
5일 <아사히> 보도에 따르면, 필리핀 외교부는 “지도를 거부한다”는 뜻을 표명했다. 필리핀 외교부는 중국의 관할권 주장을 인정하지 않은 2016년의 헤이그 중재재판소의 판결을 인용하며 “국제법상 근거없는 주장”이라 단정하면서 “판결과 국제법에 기초한 의무를 준수하기 바란다”고 했다. 필리핀은 최근 중국함정이 자국령 섬에 정박시킨 폐선으로 보급물자를 싣고 가는 자국 선박을 향해 레이저 빔을 쏘고 물대포로 위협하는 일들이 벌어지자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
베트남 외교부도 중국 지도 표기가 “우리나라의 영유권을 침해하고 유엔 해양법조약을 위반하는 것으로, 무효”라고 비판했다. 베트남의 대중 감정은 전부터 좋지 않아 7월에 할리우드 흥행 영화 ‘바비’에 중국이 그어 놓은 ‘9단선’이 등장하는 장면이 있다고 해서 그 영화 상영 자체를 금지했다.
말레이시아 외교부 역시 “중국의 일방적인 주장”이라 일축하면서 “지도는 말레이시아를 구속하지 못한다”며 ‘거부’의 뜻을 분명히 했다.
브루나이 외교부는 “영유권은 국제법에 의해서만 결정되는 것”이라는 성명을 냈다.
인도네시아 외교부 간부도 동남아국가연합(ASEAN) 정상회의를 앞둔 지난 3일 기자회견을 열고 “모든 나라는 국제법과 국제질서에 따르고 그것을 존중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대만은 말할 것도 없다.
인도 G20 정상회의에 시진핑 불참
남중국해의 영유권문제는, 분쟁을 예방하기 위해 아세안과 중국이 2002년에 “국제법 원칙에 따라 평화적으로 해결한다”고 한 ‘행동선언’(DOC)을 체결했으나, 실효성이 결여돼 중국은 암초를 매립해 인공섬들을 만들었다.
2017년에는 남중국해에서 각국의 활동을 규제하는 ‘행동규범’(COC)에 합의했다. 하지만 중국은 교섭 의사를 표명하면서도 교섭을 질질 끌며 현상변경을 기정사실화했다.
올해 7월의 아세안 외무장관회의에서는 COC 책정을 위한 지침을 마련하자고 명기하는데 그쳤다.
중국 표준지도는 남중국해뿐만 아니라 인도 동북부 아루나찰 프라데시 주 등도 중국의 영토로 표기하고 있어서 인도정부도 반발하고 있다.
인도 외교부 대변인은 8월 29일 “중국의 이른바 ‘표준지도’에 대해 외교 루트를 통해 강력하게 항의했다. 중국의 주장에는 근거가 없다. 우리는 거부한다. 중국쪽의 조치는 국경문제 해결을 복잡하게 만들 뿐이다”라는 성명을 발표했다.
인도에서는 오는 9일부터 중국을 포함한 주요 20개국가 및 지역(G20) 정상회의가 열린다. 이번 G20 회의에서는 미중 정상회담, 중일 정상회담 등이 성사될 가능성에 관심이 쏠렸으나, 후쿠시마 핵오염수 해양 투기에 대한 논의도 이뤄질지, 어떤 입장을 표명할지도 관심사다. 그러나 중국이 시진핑 주석이 가지 않고 리창 총리가 참석할 것이라고 밝혀, 시진핑 불참을 둘러싼 여러 관측들이 오히려 관심을 모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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