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념보다 실용'이라더니 이념제일주의로
참담하다 못해 처참한 용산 이념 드라이브
실체 모를 이념, 친일하면 안전지켜준다?
(본 기사는 음성으로 들을 수 있습니다.)
"외교는 실용주의, 실사구시, 현실주의에 입각해야 되는데 어떤 이념 편향적 죽창가를 부르다가 지금 여기까지 왔다. 이 정부(문재인 정부)가 정권 말기 어떻게든 수습해보려 하는데 이제는 잘 되지 않는 것 같다."(2021년 6월 29일 윤석열 대선 출마 선언 당시 질의응답 중)
대통령의 때 아닌 '이념' 발언에 그의 과거 발언들이 새삼 회자되고 있다. 이념이 아닌 실용주의, 실사구시에 입각해야 한다는 대통령의 과거 발언은 어느 면에서는 꽤나 그럴 듯하게 들린다. 그래서 마치 대통령이 최근에 꺼낸 이념 발언이 새로운 것이거나 갑자기 꺼낸 것처럼 착각을 불러일으키기까지 한다.
그의 대선 경선 당시 경쟁자였던 유승민 전 의원도 최근 라디오 인터뷰에서 대통령의 이념 발언에 대해 "국민 입장에서 지금 먹고 사는 게 제일 힘든데 대통령이 민생에 집중 안 하고 갑자기 이념 전쟁을 선포하듯이 했다(지난달 31일 MBC 라디오 '신장식의 뉴스 하이킥')"라고 평가하기도 했다.
하지만 대통령의 이념 발언은 유 전 의원 평가처럼 '갑자기 이념 전쟁을 선포한' 것은 아니다. 출마 선언부터 문재인 정권이 '이념 편향적 죽창가'를 불렀다고 비판한 대통령은 대선 유세 내내 '이념론'을 문재인 정부와 민주당, 이재명 후보 등을 비판하는 전가의 보도처럼 사용했다.
"우리가 자유민주주의라는 정신에 입각해 민주화 운동을 많은 분이 해올 때 거기 끼워가지고 좌익혁명이념 그리고 북한의 주사이론을 배워 민주화 운동 대열에 낑겨 마치 민주 투사인 것처럼 지금까지 끼리끼리 서로 도와가며 살아온 그 집단이 이번 문재인 정권 들어서서 국가와 국민을 약탈하고 있다."(2021년 12월 29일 경북 선거대책위원회 출범식에서)
"지금 이 민주당 정권 사람들이 경제를 성공하고 부동산 집값을 잘 잡았다면 그 자체가 비정상이다. 그럴 수가 없다. (…) 철 지난 이념에 사로잡히고 그 이념을 끼리끼리 공유하는 사람들끼리만 공직과 이권을 나누어먹기 때문이다."(2022년 2월 17일, 서울 송파구 석촌호수 인근 유세 중)
"민주당에도 괜찮은, 좋은 정치인들이 많이 있다. 왜 이렇게 망가졌는지 아시죠. (…) 소수의 낡은 이념에 사로잡혀서 상식에 반하는 엉뚱한 생각을 하는 사람이 당 밖에서, 당 안에서 조종하니까 상식 있고 훌륭한 정치인들이 기를 못 쓰게 돼서 그런 것 아니겠냐."(2022년 2월 18일 경북 상주시 풍물시장 유세 중)
"40년, 50년 전에 한물간 사회혁명 그 이념에 도취돼서 그 꿈에서 깨어나지 못한 사람들이 계속 세력을 이어가며 족보 팔이 해서 이권 세력을 구축하고 대한민국의 고위 공직과 이권을 다 나눠먹었다. 그래서 나라가 이렇게 됐다."(2022년 2월 18일 구미역 역세 중)
"분열과 적대의 정치를 뒤로하고 국민통합을 이루는 것이 오늘의 우리가 3·1정신을 올바로 기리는 자세다. 지난 5년간 민주당 정권은 국민을 끊임없이 편 갈라 통합 대신 분열의 길을 택했고, 오로지 정치이념의 기준에 따라 국정을 농단했다."(2022년 3월 1일 '제103주년 3·1절을 맞이하여' 특별성명)
"부패하고 무능하고, 국민을 우습게 알아서 선거 때가 되면 거짓말하고 사기공작하면 국민들이 넘어갈 것이라 생각하는 이런 오만한 정권 갈아치워야 되지 않겠나 (…) 철 지난 운동권 이념으로 나라를 좌지우지하는 일이 다시는 없어야 되지 않겠느냐."(2022년 3월 4일 대구 달서구 두류공원 유세 중)
"이런 철 지난 운동권 이념에 빠진 패거리 정치꾼들이 더는 국정을 맡기지 않도록 심판해야 한다."(2022년 3월 5일, 경북 영주시 태극당 앞 문화의 거리에서 유세 중)
특히 대통령의 이념 비판 발언은 그 내용과 장소 등을 고려하면 정권 심판론에 불을 붙이거나 지지 세력 결집이 필요한 유세 장소에서 일종의 열쇳말처럼 사용됐던 것으로 읽힌다. 마치 대통령이 비판할 세력에 대해 버릇처럼 '카르텔'로 규정하는 것과 비슷한 이치로 해석된다.
문재인 정부에서 서울중앙지검장으로, 검찰총장으로 승승장구하면서 누구보다 '철 지난 이념에 빠진' 정권에 '부역'했던, 그래서 태생부터 자기모순이자 자기부정이었던 그에게 이념은 일종의 '사상검증' 관문이자 필연처럼 읽히기도 한다. 일종의 선거 생존 전략이었을 것으로 보인다. 해방 뒤 친일파가 생존을 위해 반공의 기치를 들었던 것처럼.
'이념'의 망각 시간, 6개월
대통령의 과거 발언을 살펴보면 지금 하고 있는 이념 발언이 새로운 것도 아니고 그에게 오랫동안 정립돼 온 것처럼 보지만, 과연 그에게 진짜 '이념'이 있는 것인지에 대해서는 또다시 의문이 든다. 표준국어대사전은 이념에 대해 아래와 같이 정의하고 있다.
이념 理念
명사
1. 이상적인 것으로 여겨지는 생각이나 견해.
2. 철학 순수한 이성에 의하여 얻어지는 최고 개념. 플라톤에게서는 존재자의 원형을 이루는 영원불변한 실재(實在)를 뜻하고, 근세의 데카르트나 영국의 경험론에서는 인간의 주관적인 의식 내용, 곧 관념을 뜻하며, 독일의 관념론 특히 칸트 철학에서는 경험을 초월한 선험적 이데아 또는 순수 이성의 개념을 뜻한다.
그러나 대통령이 이념에 대해 취임 이후 정의한 발언들을 종합해보면 과연 이상적인 것으로 여겨지는 생각이나 견해가 있는지, 영원불변한 실재가 있는지,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드는 대목들이 여러 번 등장한다. 그는 취임 초인 지난해 7월 22일 장·차관 국정과제 워크숍에서 이렇게 말했다.
"지금 여러분께서도 다 아시다시피 우리 경제가 비상 상황이고 복합 위기에 직면해 있습니다. 기존에 해 오던 방식, 또 관성적인 대책으로 직면한 위기를 극복해 나가기 어렵습니다. 저 캐치프레이즈에서도 나오지만 새 정부에게 국민이 바라는 기대는 이념이 아니라 민생을 최우선으로 하고, 포퓰리즘적인 인기 영합 정책이 아니라 힘이 들어도 나라의 새로운 도약을 위한 기틀을 바로 세워 달라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정부의 의사결정도 이념이 아니라 실용과 과학 중심으로, 객관적 사실과 데이터에 기초해서 이뤄져야 하고 늘 국민과 소통해야 할 것입니다. 저 역시 민생 현안을 직접 챙기고, 또 현장 점검을 하고 있습니다만 여기 계신 장·차관님들, 처장, 청장님들께서도 늘 현장을 가까이 하고, 또 국민과 소통하고 언론에게도 충분히 설명해 주시기를 당부드립니다."
올해 1월 9일 보건복지부·고용노동부·여성가족부·식품의약품안전처·질병관리청 2023년 연두 업무보고에서는 이렇게 말했다.
"여러분이 다 아시는 얘기겠습니다만 정말 국민을 위한 이런 시스템이 되려고 하면 거기에 대해서 철저한 과학적 접근이 필요하고, 여기에 이념, 정치, 선거 이런 것들이 개재돼 가지고는 정말 국민을 복되게 하기 위한 그런 국가의 역할이 되기 어렵다 하는 점을 다시 한번 강조하고 싶습니다."
다음은 2월 7일 대전 과학기술·디지털 혁신기업인과의 대화에서 대통령 발언이다.
"제가 순방 때나 부처별 업무보고, 그리고 조금 전 국무회의에서도 글로벌 스탠더드를 강조했습니다. 이것은 바로 여러분 같은 혁신기업이 될 수 있도록 대한민국을 최고의 혁신 허브로 만들겠다는 것입니다. 정부가 국정을 이념이 아니라 과학에 맞추고, 또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춰서 세계 최고의 혁신 허브를 지향할 때 우리 기업들도 세계 기업들을 뛰어넘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념이 아니라 민생이 최우선'이고 '이념보다 실용과 과학 중심'이라는 그의 발언은 약 6개월 만에 '제일 중요한 것은 이념'이라는 말로 완전히 뒤집어진다. 지난달 28일 국민의힘 국회의원 연찬회 모두발언이다.
"국가에 정치적 지향점과 국가가 지향해야 될 가치는 또 어떠냐, 제일 중요한 것이 이념입니다. 철 지난 이념이 아니라 나라를 제대로 끌고 갈 수 있는 그런 철학이 바로 이념입니다. 저는 이것 굉장히 중요한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철 지난 엉터리 사기 이념에 우리가 매몰됐고, 또 거기에 대해서 우리가 우리 당은 이념보다는 실용이다 하는데 기본적으로 분명한 이런 철학과 방향성 없이 실용이 없습니다. 어느 방향으로 우리가 갈 것인지를 우리가 명확하게 방향 설정을 하고, 우리 현재 좌표가 어디인지를 분명히 인식해야 우리가 제대로 갈 수가 있습니다."
"아니 뭐 이번에 후쿠시마, 거기에 대해서 나오는 것 보십시오. 도대체가 과학이라고 하는 것을 1 더하기 1을 100이라고 그러는 사람들입니다. 이런 세력들하고 우리가 싸울 수밖에 없습니다. 협치, 협치 하는데, 제가 얼마 전에도 얘기했습니다만 새가 날아가는 방향은 딱 정해져 있어야 왼쪽 날개 오른쪽 날개가 힘을 합쳐 가지고 보수와 진보, 좌파와 우파 이렇게 힘을 합쳐 갖고 성장과 분배를 통해 가지고 발전해 나가는 것이지, 이것은 날아가는 방향에 대해서도 엉뚱한 생각을 하고, 우리는 앞으로 가려고 그러는데 뒤로 가겠다고 그러면 그거 안 됩니다."
아울러 자신의 이념과 배치되는 것에 대한 협력 혹은 타협 사이에 우왕좌왕하는 모습, 혼란도 엿보인다. 그는 왼쪽 날개와 오른쪽 날개가 힘을 합쳐야 한다고 했지만, 날아가는 방향은 정해졌다는 발언을 통해 자신의 정한 방향에 왼쪽 날개는 동력만 필요할 뿐이라는 인식을 확고히 한 것으로 읽힌다. 그러면서도 타협에 대한 미련은 남아 있다.
"우리가 타협이라는 것은 늘 해야 되는 것이죠, 정치 영역에서의 타협이라고 하는 것은. 그러나 더 근본적으로 통합과 타협이라고 하는 것은 어떤 가치, 어떤 기제를 가지고 우리가 할 것인지 그것부터가 우리 스스로 국가정체성에 대해서 성찰하고, 우리 당정에서만이라도 우리가 우리 국가를 어떻게 끌고 나갈 것인지에 대해서 확고한 그런 방향을 잡아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대통령 취임 후 그가 '이념'에 대해 보인 태도는 상당히 이율배반적이고 자기부정적이자, 자아분열적이기까지 하다. 상대의 이념은 '철 지난 이념'에서 '철 지난 엉터리 사기 이념'으로 발전하는 동안, 본인의 이념은 '이념보다 민생, 실용, 과학' 노선에서 '이념제일' 노선으로 말을 바꿨다. 그러나 '철 지난 엉터리 사기 이념'과 다른 본인의 이념에 대해 국민들에게 공유된 바가 없다.
국민들이 보편적으로 인식하는 그의 이념은 지난달 28일 연찬회 발언 뒤, 같은 주간에 이어진 두 차례의 발언에서 그 구체적인 내용이 일부 확인되지만, 민주주의 운동가, 인권 운동가, 진보주의 행동가를 공산전체주의 세력으로 내몰았던 지난 8·15 광복절 경축사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모습이다.
"한미일 3국 공동선언에서 대한민국의 자유민주주의 기반 통일을 언급하고 지지를 표명한 것 자체가 사상 처음입니다. 자유민주주의와 공산전체주의가 대결하는 이 분단의 현실에서 공산전체주의 세력, 그 맹종 세력과 기회주의적 추종 세력들은 허위 조작, 선전 선동으로 자유사회를 교란시키려는 심리전을 일삼고 있으며, 결코 멈추지 않을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공산 전체주의의 생존 방식입니다. 인접한 자유민주주의국가가 발전하면 사기적 이념에 입각한 공산전체주의가 존속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2023년 8월 29일 제21기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간부위원과의 통일대화 격려사)
다만 그의 70~80년대로 회귀한 듯한 이념 발언에서 과거 대통령과 차별화할 특이점이 있다면 '반일'이 선동이라는 인식이다. 즉 뒤집어 말하면 친일이 국익에 부합한다는 인식으로 치환되는 발언인데, 후쿠시마 핵 폐수 해양투기에 대해 '1 더하기 1을 100이라고 하는 사람들과 싸워야 한다'는 그의 평소 인식과 궤를 같이하는 것으로 해석된다.
"우리 외교부는 글로벌 중추 국가 대한민국의 새로운 60년을 준비하기 위해 우리의 역량을 결집해야 됩니다. 대한민국 외교의 이념과 가치 지향점을 분명히 하고, 이에 입각한 연구와 교육을 수행해 주시기 바랍니다. (…) 그러나 지금 우리의 자유는 끊임없이 위협받고 있습니다. 아직도 공산전체주의 세력과 그 기회주의적 추종 세력 그리고 반국가 세력은 반일 감정을 선동하고, 캠프 데이비드에서 도출된 한미일 협력체계가 대한민국과 국민을 위험에 빠뜨릴 것처럼 호도하고 있습니다."(2023년 9월 1일 국립외교원 60주년 기념식 축사)
대통령의 정신세계를 직접 볼 수 없기 때문에 그 실체가 의심되는 대통령의 이념에 대해서는 과거 발언들을 통해 일부 추론할 수밖에 있지만, 확실한 것은 그가 이율배반적이고 자기부정적인 이념에 힘을 싣고 있다는 점이다. 동아일보는 9월 3일자 기사<"용산 2기는 '이념'인 것 같다"…더 선명해진 尹 이념 드라이브>에서 "외치에서 한미일 3국 협력 제도화라는 결과물을 내놓은 윤 대통령이 국내 정치 현안을 두고 이념을 본격적으로 강조하면서 집권 2년 차 용산의 핵심 키워드가 '이념'이라는 평가도 나온다"고 했다.
다만 그 이념 '드라이브'의 결과는 참담하다 못해 처참한 지경으로 보인다. 후쿠시마 핵 폐수 해양투기와 강제동원 피해자 배상 문제에 대한 그간 정부 태도는 말할 것도 없다. 홍범도 장군은 며칠 사이 민족의 위대한 독립영웅이자 독립군 장군에서 공산주의자, 빨갱이로 전락했으며, 그의 후손인 육군사관생도를 양성한다는 학교에서는 그의 흉상을 공산주의자라는 이유로 철거하겠다고 밝혔다.
또 간토 학살 100년임에도 아무런 입장을 내놓지 않은 대통령은 일본에서 열린 간토 대지진 조선인 학살 추모식에 참석한 윤미향 의원에게 "자유민주주의 국체를 흔들고 파괴하려는 반국가행위에 대해 정치진영에 관계없이 모든 국민과 함께 단호하게 대응해야 한다"고 했고, 국민의힘은 국회 윤리특위에 윤 의원을 제소했다. 행사 실행위원회에 속한 수많은 단체 가운데 재일본조선인총련합회(총련)이 포함됐다는 게 그 이유다. 과거 간첩 조작 사건을 보는 듯한 기시감이 든다.
윤 의원은 5일 오전 <김어준의 겸손은 힘들다 뉴스공장>과의 인터뷰에서 "100개가 넘는 단체들이 각각 실행위원회를 조직해서 사업을 추진을 했다"며 "일본인과 재일동포들, 총련과 일본시민단체들, 일본 국회의원들 등등이 총망라해서 진행을 하고 있다"고 밝혔다. 대통령의 이념대로라면 추모식에 참가한 일본 동포와 유학생, 국회의원도 모두 자유민주주의 국체를 흔들고 파괴한 것인지 따질 필요가 있어 보인다.
추모식에 참석한 동포들은 윤 의원에게 "왜 혼자 왔느냐, 그것도 무소속 (의원)이…"라며 걱정과 아쉬움을 표했다고 한다. 한국 정부조차도 조선인 학살을 외면하는데 홀로 추모식에 다녀온 윤 의원을 칭찬하고 상을 주는 게 정치권이 할 일로 보인다. 그러나 지금 집권 여당은 윤 의원을 철지난 색깔론으로 빨갱이 몰이하는 데에만 전념하고 있다. 차라리 이럴 바에야 대통령이 입이 닳도록 비난한 전 정권의 '철 지난 엉터리 사기 이념'이 국민의 삶에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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