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산당 전력만 문제삼으며 역사 지우기

매카시즘 광풍 중심에는 윤석열 대통령

홍범도 철거 추진하며 백선엽 웹툰 게재

약산 김원봉. 2023.8.29. 조선의열단 100주년 기념사업 추진위원회.
약산 김원봉. 2023.8.29. 조선의열단 100주년 기념사업 추진위원회.

의열단 100년과 빨갱이의 추억

문재인 정부는 3·1운동 및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이었던 2019년, 항일비밀결사였던 의열단의 100주년을 함께 기리는 사업을 검토한 적이 있다. 이 사업은 국무총리실을 중심으로 검토됐다.

약산 김원봉이 이끈 의열단은 경찰서 및 수탈기관 폭파, 일제 고위 장교·경찰서장 저격, 일왕 궁성 폭탄 투척 등 일제에 항거한 역사가 뚜렷하다. 의열단은 해산 뒤에도 국군의 뿌리인 조선의용대, 한국광복군으로 명맥을 이어간다.

문재인 대통령은 그해 현충일 추념사에서 "광복군에는 무정부주의 세력 한국청년전지공작대에 이어 약산 김원봉 선생이 이끌던 조선의용대가 편입돼 마침내 민족의 독립운동역량을 집결했다"며 김원봉을 적극 조명하기도 했다.

그러나 극우 언론과 정치 세력은 김원봉의 뚜렷한 독립운동 공적에도 '공산주의자'로만 내몰면서 역사 왜곡을 했다. 당시 '논란'의 핵심은 김원봉이 북한에서 국가검열상으로 전쟁 중인 1952년 김일성으로부터 훈장을 받았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김원봉이 받은 훈장은 김일성에게 받은 것이 아닌 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인 김두봉으로부터 받은 '로력 훈장'으로 드러났다. 훈장을 추서 받은 이유도 전쟁 중 살상이 아닌 '보리 파종' 실적이 이유였다.

김원봉이 철저한 공산주의자였는지에는 더더욱 의문이 있다. 김원봉의 월북에 대해서는 여러가지 설이 있지만, 당시 극우세력의 '백색테러'가 만연한 상황이 그의 월북을 부추긴 면이 있었다는 분석이 있다.

특히 일제 강점기 고등계 형사였던 친일파 노덕술이 해방 이후 항일독립투사이자 의열단장이었던 김원봉의 따귀를 때린 사건은 상징적인 사건이다. 그가 월북할 만한 상황은 충분했던 것으로 보인다.

북한에서의 삶도 녹록지 않았다. 평양 주재 소련 대사 알렉산더 푸자노프는 1958년 김원봉이 "체포 직전에 남쪽으로 도주하고자 온갖 방법을 사용했다"고 기록했다. 김원봉이 김일성 세력의 탄압을 피해 월남을 시도한 것으로 추정된다.

그 뒤 김원봉의 행적은 알 수가 없다. 그의 묘지 역시 지금까지 남북한 어디에서도 찾지 못하고 있다. 북한 주체사상의 최고 이론가였던 황장엽이 월남해서 대전 현충원에 묻힌 것을 고려하면, 한국 사회의 김원봉에 대한 대우는 멸시에 가깝다.

독립운동 무대가 중국과 러시아 등지였고, 당시 시대 상황을 고려할 때 독립운동가들이 일정 부분 그들과 활동을 같이하거나 그들의 사상에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었지만, 이에 대한 고려는 전혀 없었다.

극우 세력은 역사적 맥락은 고려하지 않고 '공산당=빨갱이, 뿔난 악마'라는 구시대적이고 이분법적인 잣대로 독립 운동가들을 재단했고, 주류 언론은 이를 '논란'으로, '여야 공방'으로만 몰아갔다.

결국 의열단 100주년 사업은 정부 지원도 받지 못하고 독립운동가들 후손들의 개인 재산을 털어 치렀다. 2019년 11월 11일 서울시청 앞 광장에서 열린 의열단 100주년 기념식은 비까지 내려 초라하기 그지 없었다.

 

국방부가 육군사관학교 교내뿐 아니라 국방부 청사 앞에 설치된 고(故) 홍범도 장군 흉상에 대해서도 필요시 이전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힌 28일 서울 용산구 국방부 청사 앞에 설치된 고 홍범도 장군 흉상 모습. 2023.8.28. 연합뉴스
국방부가 육군사관학교 교내뿐 아니라 국방부 청사 앞에 설치된 고(故) 홍범도 장군 흉상에 대해서도 필요시 이전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힌 28일 서울 용산구 국방부 청사 앞에 설치된 고 홍범도 장군 흉상 모습. 2023.8.28. 연합뉴스

2023년에도 반복되는 빨갱이 몰이

김원봉과 의열단에 대한 역사 왜곡, 역사 부정, 역사 지우기 비극은 2023년 백주에 벌어지고 있는 홍범도 장군 흉상 철거와 음악가 정율성 역사공원 조성 사업 전면 철회 요구로 이어지고 있다.

2018년 정부가 홍범도, 김좌진, 지청천, 이범석 장군과 이회영 선생의 흉상을 육군사관학교에 세운 이유는 대한민국 국군의 뿌리가 신흥무관학교와 항일무장투쟁에 있다는 역사 바로 세우기의 일환이었다.

특히 홍범도 장군은 좌우를 막론하고 인정받은 항일무장투쟁사의 전설적인 인물이었다. 홍 장군이 1920년 6월 중국 왕청현 봉오동에서 일본군 1개 대대를 섬멸한 '봉오동 전투'는 당시까지 독립군이 이룩한 최대 승전이었다.

홍 장군은 같은 해 10월 대한독립군을 이끌고, 북로군정서 김좌진 장군 등과 함께 '청산리 전투'에 참가해 일본군을 대파했다. 그리고 이 전투를 승리로 이끈 근간이 바로 신흥무관학교 출신 독립투사들이었다.

그러나 윤석열 정부는 홍 장군의 부대가 독립군의 내분이었던 자유시 참변 이후 소련 공산당에 정식으로 입당한 전력이 있다는 점만을 문제 삼아 흉상 철거를 주장하고 있다. 편협하기 그지없는 시각이다.

홍 장군이 공산당에 가입한 것은 이역만리 타국에서 독립군 부대를 이끄는 지휘관으로서, 이념보다는 독립군 투쟁을 유리하게 이끌기 위한 측면으로 이해하는 게 역사학자들의 대체적인 시각이다.

국방부는 홍 장군이 자유시 참변 재판에서 소련편에 서서 재판위원으로 활동했다는 점도 문제삼고 있지만, 홍 장군이 독립군에 유리하도록 하기 위해 재판위원으로 활동했다는 사실이 밝혀지기도 했다.

홍 장군의 삶을 돌아봤을 때, 그를 단순히 '공산주의자'로 매도하는 것은 모독이다. 좌우 막론하고 역대 정부에서 홍 장군의 유해를 한국으로 모셔오기 위해 노력하고 훈장도 추서한 것 역시 그의 독립운동 공적이 누구보다 뚜렷하기 때문이다.

홍 장군이 처음 훈장을 받은 것은 1962년이다. 극우 세력이 신격화하고 있는 박정희 대통령은 홍 장군에게 건국훈장 2등급을 수여했다. 2021년에는 문 대통령이 최고등급인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에 추서했다.

문재인 정부가 2021년 장군의 유해를 카자흐스탄에서 모셔왔지만, 유해 국내 봉환 추진은 한국과 소련이 수교했던 1990년 노태우 대통령이 처음이었다. 좌우 없이 그의 공적을 기린 것이다.

 

정율성 기념사업 찬반 논란이 이어진 28일 오후 광주 남구 정율성로 인근에서 보수단체인 자유통일당 관계자들이 기념사업에 반대하는 집회를 하고 있다. 2023.8.28. 연합뉴스
정율성 기념사업 찬반 논란이 이어진 28일 오후 광주 남구 정율성로 인근에서 보수단체인 자유통일당 관계자들이 기념사업에 반대하는 집회를 하고 있다. 2023.8.28. 연합뉴스

박민식 국가보훈부 장관이 '장관직을 걸고라도 막겠다'고 한 정율성 역사공원 조성 사업 역시 홍 장군 사례와 크게 다르지 않다.

중국에서 '현대음악의 별'로 크게 추앙받는 정율성은 1933년 중국 난징으로 망명해 의열단이 세운 조선혁명간부학교 제2기생으로 최연소 졸업했다. 의열단원으로서 난징의 고루 전화국에서 일본군의 정보를 수집하는 비밀공작 활동을 했다.

또한 김원봉·김규식이 조직한 민족혁명당의 당무를 보는 한편, 신분 은폐를 겸해 상하이를 오가며 소련 레닌그라드음악원 출신 여교수 크리노와에게 성악, 작곡, 피아노, 바이올린 등을 배웠다.

음악에 천부적인 재능을 가졌던 정율성은 음악으로 항일 운동을 전개했다. 그가 작곡한 '팔로군 대합창' 8곡 중 '팔로군 행진곡'은 당시 팔로군(중일전쟁 당시 중국 공산당 군대)에서 애창됐으며, 1949년 중국인민해방군 군가로 채택돼 지금도 불린다.

또 그는 1941년 화북조선청년연합회, 화북조선혁명청년학교 등에 소속돼 항일투쟁을 전개하면서  '유격전가' '처녀 적녀성' '조선의용군 행진곡' 등 항일 운동 성격이 짙은 노래를 작곡해 명성을 얻었다.

중국 '혁명의 성가'로 불리는 옌안송도 그의 작품이다. 중일전쟁 발발 당시 전국 각지와 해외의 수많은 젊은이들이 이 노래를 듣고 중국 혁명의 성지로 불리는 옌안으로 몰려들었다고 한다.

비록 음악가로서 6·25전쟁 당시 전선 위문 활동을 했다고 하지만, 그의 항일음악가, 민족음악가로서의 행적은 뚜렷하다. 한족도 아닌 그가 중국에서 추앙받는 음악가가 됐다는 사실만으로도 주목할 만하다. 역대 정부도 마찬가지였다.

강기정 광주시장은 지난 28일 기자들과 만나 "(정율성 기념사업) 시작은 노태우 대통령 재임 시기인 1988년으로 서울올림픽 평화대회 추진위원회에서 정 선생의 부인인 정설송 여사를 초청해 한중우호의 상징으로 삼았던 일"이라고 했다.

강 시장에 따르면 김영삼 대통령 재임기인 1993년 문체부에서는 한중수교 1주년 기념으로 정율성 음악회를 열었으며 1996년 문체부 주관으로 정율성 작품 발표회도 열렸다. 국립국악원이 소장 자료 기증을 계기로 문체부 장관이 정설송 여사에게 감사패를 전달하기도 했다.

박근혜 대통령은 2015년 중국 전승절 기념식에 참석해 정율성 곡이 연주되는 퍼레이드를 참관했고, 문재인 정부 시절인 2021년에는 국립국악원 70주년을 기념해 정율성 미공개 소장품을 전시하는 특별전을 열기도 했다.

정율성의 6·25전쟁 당시 행적으로 공과 과에 이견이 있을 수 있지만, 역대 정부가 좌우 없이 정율성을 매개로 중국과 관계를 맺은 점은 정율성의 항일 독립운동 기여 등 공적에 대해서 평가할 만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기여는 무시한 채 오로지 공산당 활동 전력만 문제 삼아 '빨갱이' '공산당'으로 매도하고 하루 아침에 사업 철회를 시도하는 것은 중국을 사실상 적국으로 돌린 윤석열 정부의 매카시즘(반공주의) 광풍으로밖에 해석이 안 된다.

 

윤석열 대통령이 28일 인천에서 열린 2023 국민의힘 국회의원 연찬회 만찬에서 발언하고 있다. 2023.8.28. [공동취재] 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이 28일 인천에서 열린 2023 국민의힘 국회의원 연찬회 만찬에서 발언하고 있다. 2023.8.28. [공동취재] 연합뉴스

매카시즘 광풍의 핵심엔 윤석열

이러한 매카시즘 광풍, 반지성의 중심에 기인한 역사 지우기, 역사 부정의 중심에는 윤석열 대통령이 있다.

취임부터 지금까지 '자유'를 강조해 온 윤 대통령은 집권 2년차 들어 '공산전체주의'라는 사전에도 없는 새로운 개념을 들고나와 진보 진영 전체를 '패륜'으로 규정하고 있다.

이미 1991년 소련 붕괴 이후 그 의미가 없어진 '자유주의 대 공산주의' 체제 경쟁을 당면한 위협으로 상정하고 있는 듯한 윤 대통령은 낡은 '이념'이라는 잣대로 자신에게 비판적인 야당과 시민사회, 언론 등을 모두 적으로 돌리는데 부끄러움과 주저함이 없다. 오히려 그의 철 지난 '이념몰이'는 점점 과격해지는 모습이다.

윤 대통령은 지난 8·15 광복절 경축사에서 "공산전체주의를 맹종하며 조작선동으로 여론을 왜곡하고 사회를 교란하는 반국가세력들이 여전히 활개치고 있다"며 "공산전체주의 세력은 늘 민주주의 운동가, 인권 운동가, 진보주의 행동가로 위장하고 허위 선동과 야비하고 패륜적인 공작을 일삼아 왔다"고 했다.

그러면서 "우리는 결코 이러한 공산전체주의 세력, 그 맹종 세력, 추종 세력들에게 속거나 굴복해서는 안 된다"고 했다.

이념은 국정운영의 구심점까지 발전한 것으로 보인다. 윤 대통령은 지난 28일 국민의힘 연찬회에서 "국가의 정치적 지향점과 지향할 가치에서 중요한 게 이념"이라며 "철 지난 이념이 아니라 나라를 제대로 끌어갈 철학이 이념"이라고 했다. 이른바 '공산전체주의'와의 대결을 재차 강조한 것이다.

그는 "철 지난 엉터리 사기 이념에 우리가 매몰됐고, 또 거기에 대해서 우리가 '우리 당은 이념보다 실용이다' 하는데, 분명한 철학과 방향성 없이 실용이 없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념을 강조하는 것이 실용과 같다는 궤변적 인식에 닿아있는 것으로도 보인다.

공산전체주의 타령은 29일도 이어졌다. 윤 대통령은 이날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제21기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간부위원과의 통일대화'에서 "공산전체주의 세력, 그 맹종 세력과 기회주의적 추종 세력들은 허위 조작, 선전 선동으로 자유사회를 교란시키려는 심리전을 일삼고 있으며 결코 멈추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윤 대통령이 이달 쏟아낸 '공산전체주의' 관련 발언을 봤을 때,  한동안 매카시즘적 광풍과 그에 따른 역사 훼손, 역사 바꾸기 작업 계속 이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그 작업도 점점 노골적으로 드러나고 있다. 육군사관학교는 2018년 친일 문제로 홈페이지에서 내렸던 백선엽 만화(웹툰)를 지난 7월 25일 다시 게재했다. 보훈부가 백선엽 현충원 안장 기록에서 '친일반민족행위자' 문구를 삭제한 다음 날 이뤄진 일이다.

극우 정치 세력이 전쟁 영웅으로 추앙하는 백선엽은 조선인을 대량 학살한 만주군 간도특설대 출신이다. 윤석열 대통령 부인 김건희 씨는 지난 4월 워싱턴DC 한 호텔에서 열린 한미동맹 70주년 기념 오찬에서 백선엽의 장녀인 백남희 씨를 만나기도 했다.

군 안팎에서는 육사가 홍범도 장군 흉상 철거를 추진하고, 백선엽 흉상을 대신 세우려 한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육사는 웹툰 게재와 홍 장군 흉상 철거가 전혀 관련이 없다고 부인하지만, 웹툰 게재도 윤석열 정부의 역사 바꾸기 맥락에서 추진된 것으로 보인다.

이종섭 국방부 장관과 박민식 국가보훈부 장관, 박정환 육군참모총장 등 역사 바꾸기의 중심에 서 있는 인물들은 지난 7월 경북 칠곡군 다부동전적기념관에서 열린 백선엽 장군 동상 제막식에 참석한 바 있다.

당시 박민식 장관은 제막식에서 백선엽에 대한 공과 평가 없이 "자신을 던져 조국을 지켜낸 호국영웅인 백 장군의 대한 예우에 한치의 부족함이 없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했다.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관련기사

저작권자 © 세상을 바꾸는 시민언론 민들레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