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범도 흉상 철거' 브리핑에 날카로운 질문 화제
'국방부 수준 이 정도냐' '역사적 식견 어설퍼' 비판도
시민들, 기자들에 '고맙다, 기자답다' 칭찬·응원 쇄도
다른 기자들이 입 닫은 대통령에게도 질문해주길
시민들이 보통은 별 관심을 갖지 않을 정부 브리핑 장면 하나가 화제다. 지난 8월29일 국방부 정례브리핑에서 육군사관학교 홍범도 장군 흉상 철거 계획과 관련해 전날 국방부가 뿌린 입장문을 놓고 출입기자들이 국방부 대변인에게 질문·답변하는 장면이다. 이 장면이 담긴 동영상들이 유튜브에서 ‘대박’이 났다. MBC가 유튜브에 올린 동영상은 1일 오전 현재 360만이 훌쩍 넘는 조회수를 기록했다. 다른 매체가 찍어 올린 영상도 평소보다 수십배 많은 조회수가 나왔고, SNS에서도 공유돼 폭발적인 관심을 끌었다. 무슨 이유일까?
국방부 대변인 브리핑 내용이 흥미롭거나 놀라운 것이어서가 아니다. 기자들의 ‘보기드문’ 질문 공세 때문이다. 이날 국방부 출입기자들은 대변인의 설명에 대해 조목조목 반론을 제기하며 오류를 지적하고 나무라기까지 했다.
‘왜 보도자료에 (홍 장군의) ‘독립운동 업적은 업적대로 평가하되’라고 써놓고 독립운동 업적은 한 줄도 안썼나?’ ‘홍범도 장군이 활약했던 1920년대 레닌의 공산당이고 북한군을 사주해서 6.25 남침을 한 공산당은 스탈린의 공산당이다. 아주 다르다. 문재인 정부와 윤석열 정부 차이보다 더 크다. 그런데 그것을 같은 공산당이라고 보면 어떡하나?’ ‘김일성은 1912년 태어났다. 그런데 지금 1919년부터 1922년까지 (홍 장군이) 빨치산 자격으로 전투에 참가했다는 게 왜 문제가 되나?’
‘국방부 출입기자로서 우리 국방부 인문학적 소양이나 수준이 이 정도 밖에 안되나. 안타까왔다.’ ‘(국방부가) 이렇게 어설프게 역사적 식견도 없이…’, ‘역사 논쟁에 끼어드는 건 좋은데 이렇게 하는 것 아니다, 치열하게 하는 것이고 정확하게 하는 것이다.’
기자들의 ‘팩폭’(여러 팩트로 사실을 확인해 주는 일)에 국방부 대변인은 멋쩍게 웃거나 머뭇거리는 모습을 보였다. 변명거리를 찾다가 결국 잘못을 인정하기도 했다. 기자들의 질문이 점점 비판, 국방부 설명 바로잡기에서 결국 ‘훈계’로까지 번지자, 육사출신 대령급인 국방부 대변인의 얼굴은 난감한 표정으로 굳어졌다.
360만여 조회수를 기록한 MBC의 유튜브 동영상에는 댓글도 무려 3만7천여 개, ‘좋아요’는 9만6천여 개가 달렸다. 댓글의 상당수는 국방부의 역사왜곡과 엉터리 브리핑을 나무라는 글이었고, 또 상당수는 국방부 출입기자들을 칭찬하는 글이었다.
최근 국방부가 육사의 홍범도 장군 흉상 철거 문제로 국민들로부터 뭇매를 맞고 있어 이날 브리핑이 관심을 받은 면이 없지는 않다. 하지만 이 동영상이 화제가 된 것은 '역설적이게도' 질문하는 출입기자들 때문이었다. 그런데 기자가 질문을 한 것이 왜 화제가 되어야 하는가? 기자란 본래 질문하는 직업 아닌가?
그동안 기자들이 보여준 모습은 ‘질문하지 않는 기자’였던 것이다. 질문하고 기록하는 직업이 바로 기자이지만, 시민들에게는 그동안 ‘질문하지 않는 자들’이었다. 오바마 대통령이 ‘이번에는 한국 기자들에게 질문 기회를 주겠다’고 했지만 아무도 질문하지 않았던 장면을 시민들은 기억하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 앞에서 노트북도 수첩도 없이 ‘무장해제’된 채 손을 가지런히 모으고 아무 질문 하지 않았던 기자, 국정운영의 무한 책임자이자 최종 책임자인 윤석열 대통령의 말을 ‘받아쓰기’만 하는 기자, 숱한 비리 의혹을 받고 있는 대통령 부인 김건희씨와 셀카놀이 하는 기자를 기억하고 있다.
이 동영상에 많이 붙은 댓글은 ‘기자님, 고맙습니다, 멋지십니다, 존경합니다, 응원합니다, 기자다운 기자를 봤다’였다. 시민들은 국방부의 역사왜곡, 그 역사왜곡을 감추려는 부실한 논리와 근거에 따져묻고 항의하고 싶었는데, 이 일을 기자들이 대신 해준 것이다. 질문하는 직업인인 기자에게 ‘질문을 해줘서 고맙다’고 하니, 그것이 역설적인 것이다.
시민들은 일본이 앞으로 30여년간 쏟아낼 후쿠시마 핵 오염수가 불러올 결과가 너무나 두렵고 불안하다. ‘상저하저(上低下低)’로 침몰하고 있는 우리 경제도, 치솟는 물가와 줄어드는 소득으로 쪼그라드는 민생도 걱정이다. 미·일에 편중되고 중·러를 적대하는 외교도, 군사충돌만 부추기는 대북정책도 불안하기 짝이 없다. 특히 윤석열 정권이 무너뜨리고 있는 민주주의 시스템은 참담하기까지 하다. 그래서 이런 문제에 대해서도 국방부 출입기자들이 했던 것처럼 다른 기자들이 ‘팩폭’질문을 해주고 바로잡아주길 시민들은 고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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