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범도, 김좌진, 지청천, 이범석, 이회영 등 5명
지난해 국방부 국감서 국힘 신원식 의원 지적
“국방부가 보훈부에 독립기념관으로 이관 요청”
“국군의 시작, 독립군 아닌 백선엽으로 규정 시도”
경북 칠곡군에 백선엽 대형 동상 건립과 대조
육군사관학교 교내 충무관 현관 앞에 설치된 독립 영웅들의 흉상을 철거하거나 이전하는 계획이 추진되고 있어 거센 반발을 사고 있다. 이전 또는 철거 대상은 홍범도, 김좌진, 지청천, 이범석 장군과 신흥무관학교 설립자 이회영 선생의 흉상이다. 독립군 영웅들이 국군의 시작이라는 역사를 지우고 백선엽을 국군의 시작으로 규정하려는 시도라는 비판이 크다.
25일 익명을 요구한 육군사관학교 관계자는 시민언론 민들레와의 통화에서 “독립군·광복군 영웅의 흉상은 위치의 적절성, 국난극복의 역사가 특정 시기에 국한되는 문제 등에 대한 논란이 이어져 왔다”면서 “이에 독립군·광복군 영웅의 흉상을 다수 국민들이 공감할 수 있는 곳으로 이전하기 위해 최적의 장소를 검토 중이다”라고 말했다. 이어 “육사 교내에는 자유민주주의 수호 및 한미동맹의 가치와 의의를 체감할 수 있는 최적의 환경을 조성하는 데 중점을 두고 기념물 재정비 사업을 추진 중”이라면서 “흉상 이전이 독립군과 광복군의 역사를 국군의 뿌리에서 배제한다는 의미는 절대 아니다”고 말했다.
항일무장투쟁 기리기 위해 2018년 설치된 흉상
독립 영웅 5명의 흉상이 육사에 설치된 것은 2018년이다. 군 장병들이 실제 훈련에서 사용한 실탄의 탄피 300kg을 녹여서 제작했다. 당시 육사는 “총과 실탄을 제대로 지급받지 못했음에도 봉오동·청산리 대첩 등 만주벌판에서 일본군을 대파하며 조국독립의 불씨를 타오르게 한 선배 전우들의 정신을 기리기 위한 것”이라고 밝혔다.
흉상 표지석 상단에는 ‘우리는 한국 독립군 조국을 찾는 용사로다 나가! 나가! 압록강 건너 백두산 넘어가자’는 독립군의 ‘압록강 행진곡’ 가사가 새겨져 있다. 하단에는 ‘3·1운동 및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99주년을 맞이해 후배 장병들이 사용했던 탄피를 녹여 흉상을 만들어 세우다’라는 문구가 들어가 있다.
육사가 독립 영웅들의 흉상을 설치한 것은 군 역사의 뿌리를 항일무장투쟁에서 찾으려는 시도의 일환이었다. 당시 육사는 육사가 독립군·광복군에서 유래됐다는 취지의 특별학술대회를 개최하고 육사 홈페이지에서 백선엽 전 장군을 한국전쟁의 영웅으로 그린 웹툰을 삭제하기도 했다.
그런데 지난해 윤석열 정권 출범 이후 분위기가 변했다. 지난해 10월 국정감사 당시 합동참모본부 차장 출신인 신원식 의원은 국민의힘 원내대책회의에 참석해 육사학 교육과정 개편에 대해 비판했다. 신 의원은 “국방부 (국정) 감사에서 최근 국민을 충격에 빠뜨린 육사학 교과과정 개편, 국군의 정신적 뿌리를 훼손시킨, 잘못된 행위의 몸통이 문재인 대통령임이 드러났다”면서 “육사는 2019년 생도들부터 6·25 전쟁, 북한 이해, 군사전략 3과목을 필수과목에서 선택으로 바꾸는 바람에 70%의 생도들이 이 교육을 받지 못하고 졸업한다”고 말했다.
홍범도 장군의 흉상에 대한 문제 제기도 이날 발언에서 나왔다. 당시 신 의원은 “공산주의자 간첩 신영복을 존경하고 6·25 남침의 주역인 김원봉을 국군의 뿌리라고 하고, 공산주의자로서 물론 독립운동을 했지만, 자유시 참변과 레닌으로부터 소련 군복과 권총을 부여받은 홍범도 흉상을 육군사관학교에 걸으라고 했다”면서 “다시는 이런 국군통수권자가 이 땅에 나와서는 안 된다. 국방부에 정식으로 감사를 요청하고 당 안보문란TF에서 다룰 것인지 지도부에 건의드린다”라고 밝혔다. 이에 주호영 당시 원내대표도 “김원봉, 홍범도, 신영복 이런 것에 비춰 보면 과연 대한민국의 대통령이 맞고 대한민국을 보위할 생각이 있었느냐”면서 “저는 국가적 차원의 조사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면서 맞장구를 쳤다.
"육사, 기자회견 소식 듣고 오늘 철거 계획 유보했다"
신원식 의원이 육사에 설치된 홍범도 장군의 흉상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고 당시 여당 원내대표가 이에 호응하는 발언을 했다는 점은 육사의 이번 결정이 육사 자체적 결정이 아닐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준다.
당초 육사는 25일 흉상을 이전할 계획으로 알려졌으나 논란이 일자 일단 보류한 것으로 보인다. 육사 관계자는 “충무관 전체에 고대~현대의 국난극복 역사 전체를 학습할 수 있는 공간으로 조성하는 것을 검토 중”이라면서 “독립군, 광복군, 6·25 전쟁, 베트남 파병, 국지도발대응작전, 해외파병 등 모든 역사가 포함될 예정”이라고 밝혔다.
육사의 이같은 방침에 대해 흉상의 주인공인 5명의 독립 영웅 후손들은 25일 오전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독립 영웅들이 국군의 시작이라는 역사를 지우고 민족반역자 백선엽을 우리 국군의 시작으로 세우려는 이번 시도를 엄중히 규탄한다”고 밝혔다.
특히 이들은 육사의 이번 계획이 국방부의 지시에 의한 것이라고 밝혔다. 황원섭 신흥무관학교 기념사업회 공동대표는 “국방부가 육사에서 철거된 흉상을 독립기념관에서 보관할 수 있도록 국가보훈부로부터 협조받았다”면서 “그래서 독립기념관에서는 그곳에서 전시는 못 하고 수장고에 보관을 해줄 수 있다고 했다”고 말했다. 이어 “이 내용은 김순수 육사 교수부장과 한시준 독립기념관장에게 확인했다”면서 “육사에서는 오늘 (우리가) 기자회견을 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급히 결정해서 오늘 철거하려던 계획을 유보했다”고 밝혔다.
청산리대첩을 이끈 김좌진 장군의 손녀 김을동 전 의원은 “헌법 전문은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법통과 불의에 항거한 4·19 민주 이념을 계승한다고 되어 있다”면서 “청산리대첩을 이끌었던 북로군정서는 임시정부의 군대로 북로군정서를 창설한 김좌진이 당연히 대한민국 국군의 효시가 되어야 한다”라고 말했다. 이어 “이를 부정하고 철거한다는 것은 항일무장투쟁인 청산리대첩과 봉오동전투를 부정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종걸 "추측 사실로 드러나면 윤석열 정권은 매국노 정권"
우당이회영선생 기념사업회 회장이자 우당 이회영 선생의 손자인 이종걸 전 의원은 “최근 동해를 일본해로 바꾼 것을 수락한 행위는 동해에 우리 영토 독도가 있기 때문에 아주 위험한 수락을 한 것”이라면서 “오염수 방류를 허락해 국민의 건강과 안전을 포기한 윤석열 정권은 대통령 자격을 의심받게 한다”고 말했다. 이어 “일련의 추측과 오해가 사실로 드러나는 경우 윤석열 정권은 매국노 정권이라고 해석할 수밖에 없는 것”이라면서 “매국노는 폭력으로 누르려 하더라도 응징받을 수밖에 없다는 것을 분명히 하고 있다”고 말했다.
지청천 장군의 외손자이자 신흥무관학교 기념사업회 공동대표인 이준식 씨는 “친일 동상은 그대로 세우고 독립전쟁 영웅 흉상은 철거하고 이게 도대체 대한민국이 맞나”라면서 “독립운동가들이 목숨을 바쳐가면서 되찾으려고 했던 주권국가의 모습이 이런 것인가”라고 말했다. 이어 “정부는 대한민국 정부냐? 아니면 일본 정부의 총독부인가?”라면서 “일본 총독부가 아니라면 흉상 철거, 이전 시도는 당장 중단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홍범도 장군 기념사업회 이사장 우원식 의원은 “흉상은 우리 국군의 뿌리가 독립군이라는 사실을 분명하게 선언한 것”이라면서 “육사 생도들에게도 이 흉상은 가슴에 큰 자부심으로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식민지가 되었을 때 독립하려고 하는 의지가 있느냐를 판가름하는 기준은 총 들고 싸운 역사가 있냐는 것 아니냐”면서 “프랑스 레지스탕스보다 훨씬 크고 긴 역사를 가진 무장 독립투쟁의 역사를 육사 생도들에게 알리는 것이 얼마나 자랑스러운 일이냐”고 말했다.
1919년 3·1 운동이 일어나고 4월 11일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수립된 이후 임시정부는 1920년을 ‘독립전쟁 원년의 해’로 선포했다. 1920년은 신흥무관학교가 확대 개편되고 봉오동전투와 청산리대첩에서 승리하는 성과를 거둔 항일무장투쟁의 역사에 남을 한 해로 평가받는다. 2018년 육군사관학교에 이 시기에 활약한 독립 영웅 5명의 흉상을 세운 것은 대한민국 국군의 뿌리가 이러한 항일무장투쟁에 있다는 사실을 상기하려는 조치였다.
육군사관학교가 독립 영웅 5명의 흉상 철거 또는 이전을 검토하는 와중에 지난 7월 경북 칠곡군 다부동에는 백선엽의 거대한 동상이 세워졌다. 백선엽은 독립운동가들을 소탕하는 것을 주 업무로 했던 간도특설대 출신으로 ‘민족반역자’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최근 일부 보수세력이 6·25 전쟁에서의 전공을 바탕으로 미화 작업을 진행 중이다.
최근 보수적 행보 노골화하는 국가보훈부
한편 이번 흉상 철거가 국가보훈부가 진행 중인 일련의 보수적 행보의 일환 아니냐는 평가도 나온다.
국가보훈부는 지난 7월 2일 보도자료를 통해 “친북 논란이 있음에도 독립유공자로 포상돼 사회적 갈등을 야기한 부분에 대해 기준을 명확히 하겠다”며 “서훈의 영예성도 훼손되지 않도록 필요할 경우 기포상자에 대해서도 적절성을 검토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후 보훈부에서 여운형 선생과 홍범도 장군만 건국훈장을 두 번 받았다는 문제 제기가 나왔지만 서로 다른 공적을 바탕으로 추서된 것이어서 문제가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보훈부는 향후 기존에 서훈을 받은 사람까지 경력을 조사해 재검토하겠다는 방침이어서 정치적 논란을 야기할 것으로 보인다.
광주광역시가 추진하는 ‘정율성 역사공원 조성사업’에 대해서도 박민식 장관은 “북한의 애국열사능이라도 만들겠다는 것인가”라면서 철회를 요구했다. 주로 해방 이후 중국 국적을 취득한 뒤 활동을 문제 삼고 있다. 이에 강기정 광주광역시장은 “정율성 선생은 그 아버지와 5남매, 친가와 외가 모두 호남을 대표하는 독립운동을 한 집안”이라면서 “역사의 평가에 맡기자”라고 말했다.
25일 국회에서 기자회견에 나선 독립 영웅 후손들은 “국가보훈부로의 승격은 환영받을 일이지만 이후의 행보는 우려스럽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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