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1회 기자와 만난다더니… 두문불출 1년

기자회견 않고 '자화자찬'에 외신 인터뷰만

기자들 85% “윤, 언론소통 잘못하고 있다

언론 '공안 탄압'에 이어 '방송 장악'까지

윤석열 대통령이 27일 부산 중구 자갈치시장에서 장어를 손으로 잡으며 활짝 웃고 있다. 미국은 대통령포고령으로 한국전쟁에서 숨진 3만 6천여 명의 미군병사들을 추념하기 위해 백악관에 조기를 게양하는 날, 민간인을 포함해 수백만 명이 산화한 전쟁이 멈춘 날, 대한민국 대통령이 보여준 퍼포먼스다. 2023.7.28. 대통령실 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이 27일 부산 중구 자갈치시장에서 장어를 손으로 잡으며 활짝 웃고 있다. 미국은 대통령포고령으로 한국전쟁에서 숨진 3만 6천여 명의 미군병사들을 추념하기 위해 백악관에 조기를 게양하는 날, 민간인을 포함해 수백만 명이 산화한 전쟁이 멈춘 날, 대한민국 대통령이 보여준 퍼포먼스다. 2023.7.28. 대통령실 연합뉴스 

"대통령은 언론에 자주 나와서 기자들로부터 귀찮지만 자주 질문을 받아야 되고, 솔직하게 답을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 대통령에 취임하면 특별한 일이 없으면 주 1회 정도 기자들과 기탄없이 만나도록 하겠습니다."(지난해 2월 11일 한국기자협회 주최 방송 6개사 주관 대선후보 토론회)

"언론과의 소통이 궁극적으로 국민과의 소통이라고 생각을 하고 앞으로도 민심을 가장 정확히 읽는 언론 가까이에서 제언도 쓴소리도 잘 경청하겠습니다."(지난해 4월 6일 제66주년 신문의날 기념 행사)

윤석열 대통령이 대선 후보 시절과 당선인 신분 당시 밝힌 말들이다. 윤 대통령은 틈만 나면 언론과의 소통, 국민과의 소통을 강조해왔다. 국민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용산 대통령실로 집무실 이전을 강행한 이유 중 하나도 '국민과의 소통'이었다. 대통령실은 홈페이지에 용산 이전을 "소통하는 열린 대통령실을 구현하기 위한 것"이라고 소개하고 있다.

그러나 쓴소리도 경청하고, 주1회 정도 기자를 만나겠다던 윤 대통령은 지난해 8월 17일 취임 100일 기자회견 이후 1년 동안 대국민 기자회견을 전혀 열지 않고 있다. 대통령실 이전의 '상징'처럼 내세웠던 출근길 문답(일명 도어스테핑) 역시 지난해 11월 21일을 끝으로 중단됐다. 대통령실 비서관과 <MBC> 기자 간 설전이 벌어진 직후였다.

윤 대통령은 '불통' 행보는 계속 이어졌다. 신년 기자회견은 역대 대통령들도 거의 거르지 않았지만, 윤 대통령은 취임 첫해 신년 기자회견을 생략하고 <조선일보>와의 인터뷰로 대체했다. 취임 1년 기자회견도 열지 않았다. 신년 기자회견과 취임 1년 기자회견이 시기적으로 가까워 취임 1년 기자회견을 건너 뛰는 경우도 있지만, 둘 다 하지 않은 경우는 윤 대통령 이전에 이명박 전 대통령이 유일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2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 앞 야외 정원인 '파인그라스'에서 출입 기자단과 오찬 간담회를 하며 발언하고 있다. 2023.5.2 [대통령실 제공]. 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이 2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 앞 야외 정원인 '파인그라스'에서 출입 기자단과 오찬 간담회를 하며 발언하고 있다. 2023.5.2 [대통령실 제공]. 연합뉴스

취임 1년을 맞아 대통령실 출입 기자들과 오찬 간담회를 열었지만, 간담회에서 오간 질문들은 족벌 언론이나 기성 언론과 관계를 돈독히 하는 자리에서나 어울릴 법한 낯뜨거운 것들이었다.

-미국 가셔서 재미있는 얘기들 좀 전해 주십시오.

-아메리칸 파이를 어떻게 부르셨는지 들을 수 있을까요?

-스타덤이 그 전과 비교해서 생기신 것 같은지, 그다음에 스타덤을 실감하고 계시는지요?

-하버드대 갔을 때 질문이 날카롭지는 않으셨어요?

이러한 기자들의 질문은 국민들이 알고자하는 국정 현안을 위한 질문은 아닐 것이다. 윤 대통령의 간담회 발언 역시 국정 운영에 대한 철학이나 고민, 기자를 통해 국민들과 소통하고 있다는 긴장감 등은 전혀 찾아보기 어려웠다. 소통을 하고 있지만, 소통의 부재였다.

"기자실에만 있으면서 햇빛을 못 보면 비타민D가 부족해서 건강이 안 좋아집니다. 그런데 오늘 여러분, '파인그라스'라고 이름을 제가 붙였습니다. 여기에 소나무도 있고 잔디도 있길래, 근데 여기에서 여러분이 햇빛 쬐면서 김밥에 순대 이렇게 드시는 것을 보니까 여러분 아마 오늘 건강에 조금 더 좋아질 것입니다."

"용산 어린이정원 한번 보고 싶다고 기자분들이 그래서 만들어진 자리라면서요? 너무 많으면 대화하기도 어려우니까 조금씩 나눠 가지고 자리를 한번, 인원이 적어야 김치찌개도 끓이고 하지 않겠어요? 몇백 그릇을 끓이면 맛이 없잖아요. 여러분 고맙고, 햇볕 좀 많이 쐬십시오. 오늘 보기 좋습니다."

윤 대통령은 순방을 계기로 요미우리 신문, 로이터 통신, 워싱턴 포스트, NBC, 블룸버그 통신 등 현지 언론과 인터뷰를 하고 있지만 소통으로 볼 수는 없다. 정상회담 뒤 공동기자회견도 더러 있지만, 질문 수도 현저하게 적고 한국 기자의 경우 사전에 질문이 합의된 경우가 많다. 그렇다보니 국민들이 궁금해하는 민감한 현안에 대한 질문도 찾아보기 어렵다.

지난 4월 조 바이든 대통령과 한미 정상회담 이후 열린 기자회견에서 미국 측 기자가 "중국의 반도체 제조를 확장하는 것을 견제하는 원칙은 중국에 크게 의존하는 한국 기업들에게 피해를 주고 있다. 대선을 앞두고 국내 정치에 도움을 얻기 위해 핵심 동맹국에게 손해를 입히고 있는 것이냐"라는 질문을 해 오히려 한국 시민들로부터 찬사를 받기도 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18일 오전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로 출근, 기자들과 질의응답을 하고 있다. 2022.11.18. [대통령실통신사진기자단] 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이 18일 오전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로 출근, 기자들과 질의응답을 하고 있다. 2022.11.18. [대통령실통신사진기자단] 연합뉴스

불통만이 문제가 아니다. 편협한 언론관도 지적된다. <조선일보>와 단독으로 신년 인터뷰를 한 윤 대통령은 그에 앞서 지난해 11월 전용기에서 <채널A>와 <CBS>기자만 따로 불러 대화를 하면서 문제가 되기도 했다. 당시는 <MBC> 기자 전용기 탑승 불허로 파문이 일던 시기다. 당시 대통령실은 "평소 인연이 있는 기자를 만나서 현안 대화를 나눴을 뿐"이라고 해명했지만, 대통령의 불공정한 언론관의 일면이 드러나는 일화였다.

이렇다보니 윤 대통령의 대국민, 대언론 소통에 대한 평가도 매우 박하다. 기자협회보가 한국기자협회 창립 59주년을 맞아 마크로밀엠브레인에 의뢰해 기자 994명을 대상으로 지난달 27일부터 이달 7일까지 진행한 여론조사에서 '윤석열 정부의 대언론 소통을 어떻게 평가하느냐'는 질문에 85.1%가 '잘못하고 있다'고 답했고, 9.9%만이 '잘하고 있다'고 했다.

'땡윤뉴스' 부활하나…불통 넘어 언론 장악

윤 대통령이 시급하게 국민에게 대답해야 할 사안은 한두 가지가 아니다. △국제 망신으로 전락한 잼버리 사태 △부인 김건희 씨 일가 서울-양평 고속도로 종점 변경 특혜 의혹 △장모 최은순 씨의 구속에 대한 사과 여부 △집중호우 및 오송 지하차도 참사 △대통령실 개입 의혹이 불거진 고 채수근 상병 사망 사건 △후쿠시마 핵오염수 해양투기 용인 △강제동원 피해자 제3자 변제안 강행 △이태원 참사 유가족 사과 여부 △각종 민생문제 등 차고 넘친다.

그러나 언론이 처한 현실을 고려하면 이러한 현안들에 대한 대답은 더욱 듣기 어려워질 것으로 보인다. 윤석열 정권 1년 동안 언론 자유도는 심각하게 침해되는 양상이다. 기자협회보 여론조사에 따르면 '전임 문재인 정부와 비교해 윤석열 정부에서 취재·보도·편집 등 언론 활동이 자유롭다고 평가하십니까'라는 질문에 기자들의 63.2%가 '자유롭지 않다'고 응답했다. '자유롭다'는 응답은 25.8%였다. 국경없는기자회(RSF)가 지난 3일 발표한 올해 한국 언론자유지수 순위도 47위로, 작년보다 4단계 떨어졌다. 문재인 정부 5년간 41~43위와 비교하면 4~6단계 하락한 것이다.

이는 언론에 대한 노골적인 수사에서도 드러난다. <시민언론 민들레>는 정권에 반해 이태원 참사 희생자 명단을 공개했다는 이유로 4차례 압수수색 당했고, 청담동 술자리 의혹 등을 보도한 <시민언론 더탐사>는 수차례 압수수색을 당했다. 이 외에도 '날리면-바이든' 보도를 한 <MBC> 기자 압수수색,  천공 관저 개입 의혹을 보도한 <한국일보> <뉴스토마토> 기자 명예훼손 혐의 고발 등 정권 비판적인 언론이나 기자에 대한 공안 탄압이 곳곳에서 자행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언론은 위축될 수밖에 없다.

 

이동관 방송통신위원장 후보자가 1일 오전 청문회 준비 사무실이 마련된 경기도 과천시의 한 오피스텔 건물로 출근, 취재진 질문을 듣고 있다. 2023.8.1. 연합뉴스
이동관 방송통신위원장 후보자가 1일 오전 청문회 준비 사무실이 마련된 경기도 과천시의 한 오피스텔 건물로 출근, 취재진 질문을 듣고 있다. 2023.8.1. 연합뉴스

이제 윤석열 정부는 불통 행보, 두문불출, 공안탄압을 넘어 '땡윤뉴스 부활'로 상징되는 방송 장악 단계로 나아가고 있다. 방통위는 지난 14일 남영진 한국방송(KBS) 이사장의 해임 제청안과 정미정 교육방송(EBS) 이사의 해임안을 가결했다. 권태선 방송문화진흥회(MBC 대주주, 이하 방문진) 이사장 해임도 조만간 전망된다. 공영방송 이사회를 정부의 입맛에 맞는 인물들로 채우기 위한 시도가 본격적으로 이뤄지고 있는 것이다.

윤석열 정권의 방송 장악은 이명박 정권 당시 언론 장악 설계자이자 '언론탄압 선봉장'으로 평가되는 이동관 방송통신위원장 후보자를 신임 방통위원장에 앉힘으로써 '밑그림'이 완성될 것으로 보인다. 이명박 정권 시절, 언론을 '줄세우기' 하던 이 후보자가 방통위원장이 된다면 하게 될 일들은 자명해 보인다. 그는 후보자가 되자마자 정권 비판적인 언론에 대해 '공산당 신문·방송'이라고 겨냥해 파문을 일으켰다.

이러한 가운데, 윤 대통령의 최근 8·15 광복절 경축사는 여러모로 의미심장하다. 윤 대통령은 경축사에서 "공산전체주의 세력은 늘 민주주의 운동가, 인권 운동가, 진보주의 행동가로 위장하고 허위 선동과 야비하고 패륜적인 공작을 일삼아 왔다"며 "우리는 결코 이러한 공산전체주의 세력, 그 맹종 세력, 추종 세력들에게 속거나 굴복해서는 안 된다"고 했다. 

윤 대통령의 광복절 경축사는 국민과의 소통 부재 속에서 만들어진 시대착오적인 발상 자체도 문제지만, "공산전체주의 세력, 그 맹종 세력, 추종 세력들에게 속거나 굴복해서는 안 된다"는 대통령의 발언은 언론으로 한정해서 보자면, 정권 비판적인 언론사와 기자들에 대한 일종의 '경고장'으로도 읽힌다. 윤 대통령의 불통 행보와 언론 장악 행태는 당분간 멈추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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