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신위 8일 발표 예정했다가 10일로 연기

박광온 “전국 정당화 위해 대의원 유지 필요”

고민정 “대의원 폐지가 당 대표 흔드는 것”

그간 시기 논란 때문에 대의원제도 개편 못해

“당원 지지받는 사람이 지도자” 원리 실현해야

더불어민주당 김은경 혁신위원장이 3일 용산 대한노인회 중앙회에서 김호일 회장 면담 후 노인폄하 발언을 사과하고 있다. 2023.8.3. 연합뉴스
더불어민주당 김은경 혁신위원장이 3일 용산 대한노인회 중앙회에서 김호일 회장 면담 후 노인폄하 발언을 사과하고 있다. 2023.8.3. 연합뉴스

더불어민주당 혁신위원회(위원장 김은경)가 8일 대의원제도 개편 방안을 발표하기로 했다가 10일로 연기했다. 당내 의견 수렴 절차가 마무리되지 않았다는 이유였다. 현역 의원과 당직자 의견 수렴 과정에서 기존에 준비됐던 대의원 제도 개편의 세부 내용이 일부 수정되거나 추가 조율을 위해 발표 일정이 또다시 연기될 가능성도 있는 상황이다.

혁신위원회가 대의원제도 개편을 추진하는 것은 표의 등가성 때문이다. 더불어민주당 전당대회에서 당 대표 또는 최고위원을 선출할 때 권리당원 40%, 대의원 30%, 여론조사 25%, 일반당원 5%를 반영하게 되어 있다. 문제는 권리당원이 130만 명을 넘는 상황에서 40%를 반영하고 1만 6000명 선인 대의원을 30% 반영하면 대의원 1표가 권리당원 60표의 가치에 이르는 현상이 발생하게 된다는 점이다. 이 때문에 1인 1표라는 표의 등가성 원리를 고려해 대의원제도를 폐지하거나 유지하더라도 대의원의 표를 권리당원 1표와 동등하게 고정하자는 주장이 대두된 것이다.

보통 대의원은 지역구 현역 의원이나 지역위원장이 임명한다. 이렇게 되면 지역에서는 현역 의원이나 지역위원장의 영향력이 극대화될 수밖에 없다. 이는 계보 정치를 유지하는 동력이 되기도 한다. 현역 의원이나 지역위원장이 대의원 1표를 확보하면 권리당원 60표를 확보한 것과 동일한 효과를 낸다. 이 때문에 현역 의원과 지역 위원장만 계보원으로 포섭해 이를 통해 대의원들이 조직 투표를 하도록 하면 권리당원의 영향력을 뛰어넘어 당권을 확보할 수 있게 되어 있는 것이다. 결국 현역 의원, 지역위원장은 물론 계보 정치를 추구하는 정치인들에게는 대의원제가 곧 기득권으로 작동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그런데 대의원의 영향력을 축소하려는 혁신위의 움직임에 대해 당내 비명계를 중심으로 반발이 나오고 있다. 박광온 원내대표는 6일 ‘취임 100일 기자간담회’에서 대의원제도 폐지에 대해 분명한 반대 입장을 천명했다.

박 원내대표는 “대의원제도 문제는 역사성을 갖고 있는 사안이라서 한 면에서 보고 재단하고 결정하기에는 굉장히 복잡하고 어렵다”면서 “지역 편중 현상을 해소하자는 목표를 가지고 있는 정당이 전국정당 목표를 버릴 수는 없다”고 주장했다.

전통적으로 더불어민주당에는 호남과 수도권 당원이 많고 영남 지역 당원 수가 적었다. 대의원을 (당원 숫자와 관계없이) 지역별 인구비례로 할당함으로써 영남 지역의 의견도 골고루 수렴할 수 있도록 한다는 순기능이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영남 지역 당원들이 자발적으로 “우리의 목소리를 더 반영해 달라”고 요구할 때 의미가 있는 것이다. 임미애 경북도당 위원장, 서은숙 부산시당 위원장, 김우영 강원도당 위원장 등으로부터 취약 지역 목소리를 강화하기 위해 대의원제도를 유지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 적이 없다. 이런 상황에서 경기도 수원에 지역구를 두고 있는 의원이 영남 지역 당원들의 이해관계를 대변하겠다면서 나서는 것은 설득력이 떨어진다.

 

더불어민주당 박광온 원내대표가 6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더불어민주당 제4기 원내대표단 100일 기자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2023.8.6. 연합뉴스
더불어민주당 박광온 원내대표가 6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더불어민주당 제4기 원내대표단 100일 기자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2023.8.6. 연합뉴스

박 원내대표는 표의 등가성을 보완하기 위해 대의원 수 증원을 제안했다. 그는 “(대의원제도는) 권리당원 30만 명쯤 되던 시절에 (만들어진 제도인데) 이제는 100만이 거의 넘었기 때문에 권리당원 한 표와 대의원 한 표의 등가성이 과거에 비해 많이 약화됐다”면서 “대의원 수를 과거의 권리당원이 늘어난 것에 비례해 늘리면 그 문제는 간단히 해결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대의원과 권리당원 표의 상대적 가치가 60대 1에서 30대 1이 된다고 해서 표의 등가성 문제가 해소되지 않는다. 대의원제도의 기저에 있는 현역 의원과 지역위원장의 기득권 문제가 전혀 해소되지 않음은 물론이다.

고민정 더불어민주당 최고위원은 8일 KBS라디오 ‘최경영의 최강시사’에 출연해 “대표가 그만두는 상황을 가정하는 것이 아니라면 굳이 대의원제 폐지 문제를 지금 거론할 이유가 없다”고 밝혔다. 이어 “오히려 대표로서의 위치를 흔드는 것”이라면서 “당 대표가 조기에 내려오게 되면 전당대회가 열릴 수도 있으니 이를 준비해야 한다는 논리 구조가 작동하고 있는데, 그것을 가정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대의원제도 개편은 당 대표의 거취를 넘어서는 민주적 혁신의 일환이다. 대의원제도가 전당대회 투표의 민주적 대표성과 충돌하고 표의 등가성을 훼손한다는 모순이 있다면 대표의 거취와 관계없이 지금 바로 바꾸면 된다. 오히려 현시점에서 대의원제 개편을 반대하는 것이 고 최고위원과 가까운 계파가 전당대회를 대비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의구심이 생길 수 있다.

고 최고위원은 당 대표가 그만두는 것을 가정하고 싶은 마음이 없다고 했다. 그러나 비명계와 여권을 중심으로 흘러나오는 연말 비상대책위원회 구성설(비대위설) 등은 당 대표의 퇴진 상황을 가정하고 있다. 이 ‘비대위설’의 12월 이전 버전이 바로 ‘당권 교체 전당대회론’이 될 수 있다. 대표의 잔여 임기가 8개월 이내이면 비대위로 전환되고 8개월 이상이면 전당대회를 다시 해야 하기 때문이다.

만약 대의원의 영향력을 축소한 상태에서 전당대회를 치르면 권리당원 세력 분포상 비명계에 불리하다는 것이 중론이다. 이러한 상황적 고려가 대의원제도 개편 반대에 투영된 것은 아닌지 의심될 수 있다. 만약 이러한 고려가 없다면 지금 대의원제도를 손보는 것을 반대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혁신위원회는 현역 의원과 당직자를 중심으로 한 의견 수렴 작업을 완료한 뒤 오는 10일 혁신안을 발표할 예정이다. 혁신안을 발표하는 과정에서 김은경 혁신위원장의 가족사까지 소환되고 청년 간담회 발언이 ‘노인 폄훼’ 논란을 낳는 등 우여곡절이 있었다.

그동안 대의원제도 개편 논의가 있을 때마다 ‘시기’ 논란이 있었다. 왜 전당대회를 앞두고 개편하려고 하느냐, 꼭 지금 할 필요가 있느냐 등의 반발이었다. 이러한 논란 때문에 대의원제도 개편의 당위성을 인정받고도 지금까지 개편하지 못했다. 이제는 이러한 상황 논리, 시기 논란을 뛰어넘어 지금 바로 대의원제도 개편에 나서야 할 때이다. 당원의 지지를 받는 사람이 당의 지도자가 될 수 있다는 평범한 원리를 이제는 실현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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