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한 사유 없으면 전부 경선…단수 공천 배제

현역 하위 30% 감산 강화로 정치 신인에 유리

ARS 대신 당원이 직접 투표…조직 동원 무력화

고민정 “혁신안이 시스템 공천 무력화하고 있다”

당원들은 ‘전 당원 투표’ 요구...논란 격화 가능성

더불어민주당 혁신위원회가 10일 국회 당 대표실에서 혁신안을 발표하고 있다. 2023.8.10. 연합뉴스
더불어민주당 혁신위원회가 10일 국회 당 대표실에서 혁신안을 발표하고 있다. 2023.8.10. 연합뉴스

10일 더불어민주당 혁신위원회가 발표한 혁신안이 적용될 경우 정치 신인의 기회가 확대되면서 현역 의원과의 경쟁이 확대될 것으로 전망된다. 그러나 혁신안에 대한 당내 반발이 나오고 있어 실제 당헌, 당규 개정으로 이어지기까지 진통이 예상된다.

더불어민주당은 지난 5월 8일 제22대 국회의원선거 후보자 선출 규정 특별당규 제정안을 의결했다. 제정안 준비를 위한 공천TF에는 이개호 단장, 정태호 부단장, 맹성규, 문진석, 송옥주, 조승래, 고영인, 김영배, 이해식, 이소영 의원과 배재정 부산 사상구 지역위원장이 참여했다. 전원 현역 의원이나 지역위원장(배재정)으로 구성되면서 출범 때부터 현역 의원, 지역위원장의 기득권을 깨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왔다.

실제 특별당규 제정안은 지난 2000년 21대 총선 공천안과 유사한 기조를 유지했다. 도덕성 기준을 강화하고 청년 후보자가 공천심사 적합도 조사에서 2위 후보자보다 10%p 이상 우위에 있으면 단수 공천이 가능하도록 하는 내용이 포함됐으나 전체적으로 현역 의원과 지역위원장에 유리한 안이라는 평가가 많았다.

특별당규 16조 단수 선정 기준을 보면 해당 선거구의 후보자 추천신청자가 1명인 때, 후보자 심사 결과 1명을 제외한 나머지 후보자의 공직 후보자에게 예외없는 부적격 처리 사유가 발견된 때 단수 공천하게 되어 있다. 이에 더해 심사 점수에서 1위와 2위 격차가 30점 이상이거나 경선 전 사전 여론조사 성격의 공천적합도 조사에서 1위와 2위 격차가 20% 이상일 때도 단수 공천을 할 수 있도록 했다.

문제는 인지도에서 현저히 앞서는 현역의원을 대상으로 정치 신인이 공천적합도 조사에서 20% 이상 앞서기는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점이다. 반대로 현역 의원이 무명의 정치신인에게 20% 이상 앞설 가능성이 높다. 이번 혁신안에서는 공천적합도 조사, 공천심사 점수와 관련된 단수 공천 규정을 없앴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복수의 후보가 있을 경우 특별한 사유가 없다면 사실상 전원 경선을 실시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이에 더해 혁신안에서 현역의원 평가 하위 30%에 대한 공천심사 감점을 확대한 것도 정치 신인에게 더 유리하다. 혁신안에서는 현역 평가 하위 10%는 40% 감산, 하위 10~20%는 30% 감산, 하위 20~30%는 20% 감산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정치 신인이 현역 의원과 경선을 할 때 현역 의원이 하위 30%에 포함됐다면 최대 40% 감산이 가능하다. 만약 경선에서 신인이 100표를 얻고 현역 의원이 120표를 얻었더라도 현역 의원이 평가 하위 30%에 속해 있다면 감산을 통해 신인이 공천을 받을 수 있게 된다. 더불어민주당 지역구 의원 152명 가운데 하위 30%는 45명이 된다. 최대 45개 지역구에서 현역 의원에 도전하는 정치 신인이나 기타 후보자가 하위 30% 감산의 효과를 보게 된다.

혁신안에서는 선거 운동 과정에서 공정 경쟁 기회도 더 많이 부여했다. 가장 핵심적인 부분이 당원 명부였다. 현역 의원이나 지역위원장은 당원 명부를 열람하고 당원을 특정해 문자를 보내거나 선거 운동을 할 수 있지만 이에 도전하는 신인들은 당원이 누군지 모르는 상태에서 선거 운동을 해야 했다. 혁신안에서는 당원 명부가 민감한 개인정보라는 점에서 무차별적인 열람을 허용한 것은 아니지만 정치 신인과 현역 의원, 지역위원장 모두 당원 명부를 통해 문자메시지를 동일한 횟수만 발송할 수 있도록 했다. 정치 신인도 당원으로 타깃을 정해 문자를 발송할 수 있는 길이 열린 것이다.

 

'김은경 더불어민주당 혁신위원장 혁신안에 당원이 답한다' 기자회견이 11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소통관에서 열리고 있다. 2023.8.11. 연합뉴스
'김은경 더불어민주당 혁신위원장 혁신안에 당원이 답한다' 기자회견이 11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소통관에서 열리고 있다. 2023.8.11. 연합뉴스

후보자 합동연설회, 토론회 실시도 기존 특별당규에서 “개최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당의 온라인 플랫폼 또는 언론기관 등을 통해 공개하여야 한다”라고 규정되어 있었다. 혁신안에서는 이에 더해 후보자 합동연설회와 토론회를 몇 회 실시할 것인지 명시하도록 해 사실상 모든 후보자에게 참여 의무를 부여했다. 이에 더해 유튜브, 당 홈페이지 등 송출 경로도 명문화하도록 해 더 많은 당원들이 시청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혁신안에서 당내 경선 시 당원의 자발적 모바일(온라인) 투표를 제안한 것도 의미가 있다. 기존 당내 경선 시에는 당 차원에서 자동응답전화(ARS)로 당원에게 전화를 걸어 투표하게 되어 있다. 사실상 전화 여론조사와 마찬가지인데 당원이 바쁜 업무를 수행하거나 생업에 종사하고 있다면 전화를 놓칠 가능성이 상당하다. 정규 업무 시간 중에 온 전화라면 이러한 가능성이 더 커진다. 이에 더해 지역구에서 조직력이 강한 현역 의원이나 지역위원장은 지지자들에게 ARS 응답 대기를 시킬 수 있다. 조직화되지 않은 당원들이 업무 중 전화를 받지 못한 상태에서 현역 의원이나 지역위원장을 지지하는 당원들이 전화를 대기하고 있다면 신인에게 크게 불리한 상황이 된다. 혁신안에서는 당원들이 직접 모바일이나 온라인으로 투표하도록 해 이러한 가능성을 줄였다. 당원이 모바일이나 온라인으로 먼저 접속해 투표하지 않는 경우 보조적으로 ARS를 활용해 조사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것이다.

공천 혁신안에 대해 당내 반발도 나오고 있다. 이러한 비판에는 혁신 대상이 현역 의원과 지역 위원장의 기득권이 아니라 이재명 대표 체제 그 자체라는 인식이 기저에 깔려 있다. 이원욱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자신의 페이스북에 “혁신 대상은 당 안에서 가장 기득권을 많이 가진 사람이어야 한다”면서 “바로 당의 최고의 기득권자, 수혜자 이재명 대표”라고 밝혔다. 이어 “용퇴를 결단하시겠나? 당의 미래를 위해 과감히 나서주시겠나?”면서 “이재명 대표의 응답을 기다린다”고 밝혔다.

전해철 의원이 이사장을 맡고 있는 민주주의4.0연구원도 성명을 내고 “혁신위가 신뢰와 권위를 상실한 상태에서 발표한 혁신안을 민주당의 혁신안으로 받아들일 수는 없다”면서 “민주당이 다시 국민의 신뢰를 받기 위해서는, 도덕성을 회복하고 국민 눈높이에 맞게 제대로 혁신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밝혔다. 이어 “그간 혁신위 활동은 민주당 위기의 본질이 무엇인지 정면으로 마주하지 못했고, 혁신안도 위기 극복을 위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당을 갈등 상황으로 몰고 갔다”면서 “민주당이 정책으로 승부하고 미래를 준비하는 민주당으로 거듭나서 총선을 승리로 이끌기 위해 새로운 혁신 동력을 만들어야 한다”고 밝혔다.

민주주의4.0연구소의 이러한 주장에도 현재 민주당 위기의 본질이 이재명 대표 체제에 있다는 인식이 기저에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혁신위에 대한 비판을 제외하면 이재명 대표 체제에 그동안 어떤 문제가 있었는지에 대해서는 구체적 언급은 나타나 있지 않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왼쪽 두번째)와 고민정 최고위원(맨 오른쪽)이 11일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2023.8.11. 연합뉴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왼쪽 두번째)와 고민정 최고위원(맨 오른쪽)이 11일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2023.8.11. 연합뉴스

고민정 최고위원은 공천룰 변경에 대해 ‘시스템 공천’을 무시하는 처사라고 비판했다. 고 최고위원은 11일 최고위원회의 발언을 통해 “이해찬 전 대표는 공천 부작용을 방지하기 위해 총선 1년 전 공천 룰을 전 당원 투표로 확정하도록 특별당규에 규정했다”면서 “당헌 97조 4항 공직선거후보자에 대한 심사기준과 방법 등 후보자 추천에 필요한 규정과 절차는 해당 선거 1년 전까지 확정하고 공표해야 한다고 되어 있다”고 말했다. 이어 “혁신위는 민주당의 시스템 공천을 완전히 무시해버리는 발표를 한 셈이 됐다”면서 “어렵고 힘들어도 국회 내에서 절차를 거쳐 발의하고 상임위와 본회의를 거쳐 가며 법 개정을 하는 이유는 절차적 정당성 때문인데 입법 기관인 우리가 스스로 정한 법과 절차를 무시하는 행위는 없어야 한다”고 밝혔다.

고 최고위원의 이러한 주장이 설득력을 가지려면 지난 5월 통과된 22대 총선 공천 특별당규 통과 과정을 고찰해야 한다. 우선 특별당규 제정 작업을 주도한 공천TF가 현역 의원 중심으로 구성되면서 정치 신인의 목소리가 반영될 기회가 없었다. 특별당규 인준을 위한 투표 과정에서 당원들 사이에서는 “투표하는지도 몰랐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홍보가 부족했다.

이 때문에 22대 총선 공천 특별당규 개정을 위한 청원에 5만 명이 넘는 당원이 서명했고 이것이 이번 혁신안에도 일부 반영된 것이다.

물론 이번 혁신안이 당원 모임이나 총선 출마를 준비하는 신진 인사 그룹의 당초 요구안을 모두 만족시키는 것은 아니다. 이들이 요구했던 3선 이상 공천심사 50% 감산 및 험지 출마, 3인 이상 경선 시 결선투표 의무화 등의 내용은 혁신안에 반영되지 않았다.

이러한 한계에도 불구하고 풀뿌리 당원 모임과 신진 인사들을 중심으로 “‘김은경 혁신안’을 관철해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더민주전국혁신회의와 민주당전국대의원연합 등 당원, 정치신인 그룹은 11일 오전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혁신위의 공천 혁신안을 환영한다”라면서 “총선 공천 특별당규 재정 청원에 5만 3332명의 당원이 서명한 만큼 지도부에서 진취적인 결단을 내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혁신안 관철을 위해서는 최고위원회의, 중앙위원회 등 당 공식기구와 필요시 전 당원 투표 등을 거쳐야 한다. 오는 28~29일 열리는 의원 워크숍에서 혁신안 가부 여부를 두고 격론이 벌어질 전망이다. 다만 혁신안에서 거론된 공천 관련 규정과 대의원 제도 개편 등은 의원총회가 의결 주체가 될 수는 없다.

이에 따라 향후 혁신안 가부 여부를 어떻게 정할지 당내 논쟁이 가속화될 전망이다. 고민정 최고위원은 “룰을 수정하기 위해서는 당헌을 개정해야 하고 중앙위를 소집해야 하는 것으로 지도부조차 결정할 사항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민주당전국대의원연합(민대련) 서울 대표 이준용 씨는 “전 당원 투표를 통해 결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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