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 정부 겨냥 “이권 카르텔 깨부숴야 한다”

국민의힘도 “진상규명할 TF 발족할 것”

LH 전관 특혜와 부실 관리 근본 원인은

택지 개발 정보 독점과 막강한 권력 탓

비대한 조직 해체와 권한 분산이 해법

(본 기사는 음성으로 들을 수 있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이 1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2023.8.1. 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이 1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2023.8.1. 연합뉴스

인천 검단 신축 아파트 지하 주차장 붕괴 사고에서 야기된 한국토지주택공사(LH)의 부실 관리와 전관 특혜 문제가 엉뚱한 곳으로 향하고 있다. LH와 건설업계의 뿌리 깊은 구조적 문제와 관행을 윤석열 대통령과 국민의힘이 전 정권 탓으로 몰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윤 대통령은 지난 1일 국무회의에서 “아파트의 무량판 공법 지하 주차장은 모두 우리 정부 출범 전에 설계 오류, 부실시공, 부실 감리가 이뤄진 것”이라며 “국민 안전을 도외시한 이권 카르텔은 반드시 깨부숴야 한다”며 문재인 정부를 겨냥했다.

국민의힘도 대통령실과 보조를 맞추고 있다. 윤재옥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2일 국회에서 열린 ‘무량판 공법 부실시공’ 관련 긴급 기자간담회에서 “LH 전·현직 직원의 땅 투기가 일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아 아파트 철근 누락 사태까지 터진 걸 보면 문재인 정부의 주택 건설 사업 관리 정책에 심각한 결함이 있었음을 추정하지 않을 수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 “필요하다면 지난 정부의 국토교통부는 물론이고 대통령실의 정책 결정자에 대해서도 조사가 이뤄져야 한다”며 “정부의 감사, 수사와 별도로 진상규명 티에프(TF)를 발족해 아파트 부실시공 사태의 전모를 낱낱이 파헤칠 것”이라고 밝혔다. 국민의힘 강민국 수석대변인도 “총체적 부실이 모두 문재인 정권에서 일어났다”며 “김현미 전 국토부 장관, 변창흠 전 LH 사장, 이 모든 정책을 총괄했던 김수현 전 청와대 정책실장까지 누구 하나 예외 없이 이권 카르텔이 유지되는 데 도움을 준 이들은 반드시 가려내 처벌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하지만 이번 사태의 책임을 전 정권의 이권 카르텔로 몰아가는 것은 사실을 왜곡한 정치 공세일 뿐이다. 철근 누락 아파트의 근본 원인은 LH와 설계·건설업계의 태생적·구조적 문제 때문이다. LH의 전관 특혜와 개발정보 유출, 투기 의혹 등은 보수·진보 정권과 상관없이 반복됐다. 과거 1·2기 신도시와 세종시, 3기 신도시까지 LH 전·현직 직원이 연루된 비위·투기 사건은 끊이지 않았다.

2009년 10월 1일 LH(한국토지주택공사) 출범식에 참석했던 이명박 전 대통령(오른쪽 세번째).  청와대 제공
2009년 10월 1일 LH(한국토지주택공사) 출범식에 참석했던 이명박 전 대통령(오른쪽 세번째).  청와대 제공

LH는 이런 일이 터질 때마다 환골탈태를 다짐했으나 시간이 지나면서 흐지부지됐다. 이번에도 건설업계의 이권 카르텔 근절을 위한 고강도 개선안을 마련하겠다고 했다. 이한준 LH 사장은 2일 긴급회의를 주재하며 “전관 특혜 의혹이 더 이상 불거질 수 없도록 제도를 개선하고 국민이 수긍할 수 있도록 의혹을 소상히 밝힐 것”이라고 했다. 이를 위해 LH는 설계와 심사, 계약, 시공 등 전 과정에서 전관예우와 이권 개입을 감시하는 '반카르텔 공정건설 추진본부'를 설치하기로 했다. 하지만 제도를 바꾸고 새로운 조직을 만드는 것만으로 LH 전·현직 직원의 일탈과 도덕적 해이를 해결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LH는 이명박 정부 시절인 2009년 한국토지공사와 대한주택공사가 합병해 탄생했다. 그 결과 조직이 비대해졌고 택지와 신도시 개발정보와 권한이 LH에 집중됐다. 익명을 요구한 LH 전직 임원은 “소수 직원이 너무 많은 업무를 맡다 보니 개발 관련 정보가 쉽게 유출될 수밖에 없는 구조”라고 귀띔했다. 그는 “현직에 있을 때 다루는 정보가 많은만큼 퇴직 후 전관이 된 이후에도 활용도가 높아지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신도시나 역세권 개발 등 공공 주택 사업에 LH의 권한은 실로 막강하다. 토지소유권을 확보할 뿐 아니라 감정평가, 분양 신청과 배정, 분양가 책정 등 모든 과정에서 절대 권력을 갖는다. 특히 신도시 사업은 후보지 선정부터 보상, 일반 분양까지 거의 모든 과정을 담당한다. 그러다 보니 잊을만하면 정보 유출과 투기 의혹, 부실 관리 사건이 되풀이되는 것이다. 이한준 사장도 이 같은 문제를 실토했다. 그는 “대한주택공사 시절부터 약 60년이 된 조직이기 때문에 매년 많은 이들이 은퇴하고 이들이 갈 수 있는 곳이 건설사, 설계사, 감리 업체”라며 “검단 아파트 지하 주차장 사고 건에 대해 전관 특혜가 있다면 떨어진 업체는 전관이 없느냐 해서 봤더니 오히려 떨어진 업체에 전관들이 더 많았다”고 말했다.

한국토지주택공사(LH) 이한준 사장이 2일 오후 서울 강남구 LH 서울지역본부에서 열린 사장 주재 회의에서 최근 아파트 철근 누락 사태와 관련한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2023.8.2. 연합뉴스
한국토지주택공사(LH) 이한준 사장이 2일 오후 서울 강남구 LH 서울지역본부에서 열린 사장 주재 회의에서 최근 아파트 철근 누락 사태와 관련한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2023.8.2. 연합뉴스

건설업계의 이권 카르텔을 깨려면 전 정권에 책임을 전가할 게 아니라 이제라도 비대해진 LH를 해체하는 방안을 적극 검토할 필요가 있다. 민간에 넘길 수 있는 사업을 정리하고 개발 관련 정보가 집중되지 않도록 시스템을 바꿔야 한다. LH에 권한이 집중될 수밖에 없는 택지와 주택 관련 법률도 손봐야 한다. 전관 특혜를 근절하는 땜질 처방으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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