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익 포퓰리스트들의 권력 견제 대법원 죽이기
뇌물배임 재판 중인 네타냐후의 구명 꼼수
수십만 항의시위, 예비역장병과 현역관리도 가담
한국, 일본도 닮은 ‘네타냐후의 정치수법’
미국을 등에 업은 우익 포퓰리스트 베냐민 네타나후(74) 총리의 아집과 권력욕이 이스라엘을 분열과 내전상태로 몰아가고 있다. 매우 이례적인 사태다.
지난 24일 이스라엘 의회(크네세트)가 네타냐후 정권 ‘사법 개혁’안 중의 하나인 대법원의 권한을 축소시킨 법안을 야당 없이 통과시킨 다음날인 25일 65만명(주최자 추산)이 항의시위를 벌였다. 통과 날인 23일에도 35만명이 시위를 벌였고, 29일에도 20만 이상이 네타냐후 정권의 ‘사법 개혁’에 항의시위에 동참했다. 전국적으로 펼쳐지고 있는 이 항의시위는 지난해 11월 선거에서 리쿠드 당 등 우파연합이 이긴 뒤 12월에 리쿠드 당 당수 네타냐후가 정부를 구성하고 올해 1월에 사법개혁 계획을 발표한 뒤 계속되고 있다.
예비역 장병들과 안보관리들까지 시위 가담
시위자들은 ‘사법 개혁’으로 “이스라엘이 다른 나라가 돼 버릴 것”이라는 우려 속에 “민주주의를 위한 싸움, 끝까지 간다”를 외치고 있다. 사법 개혁 거부 시위에는 야이르 라피드, 나프탈리 베네트 등 전직 총리들을 비롯한 정치적 반대세력뿐만 아니라 1만여 명의 이스라엘 예비역 장병들과 현역 안보담당 고위관리들까지 가담하고 있다. 이런 이례적인 사태전개에 놀란 이스라엘군 참모총장이 지난 23일 “우리가 단결하지 않으면, 이 지역 국가로서 존속이 불가능하다”는 메시지를 전 군에 발신해야 했지만, 상황은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25일 텔레비전 <채널 13>이 발표한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법안이 통과되면 “해외 이주를 검토하겠다”는 응답이 28%, 사법 개혁으로 인한 혼란이 “내전”으로 발전할 것이라며 “두렵다”고 한 응답이 58%를 차지했다.
이런 상황은 경제에도 악영항을 끼치고 있다. <블룸버그 통신>은 지난 27일 “사법 개혁을 둘러싼 정치적 교착상태가 이스라엘의 경제성장에 타격을 가할 우려가 있다”는 신용평가회사 S&P의 보고를 인용, 보도했다.
네타냐후의 ‘사법개혁’은 대법원 죽이기
네타냐후 정부 ‘사법 개혁’의 핵심은 대법원의 정부 견제 권한을 박탈하는 것이다. 지금까지 이스라엘 대법원은 정부의 정책이나 인사에 대해 ‘합리성’이라는 기준으로 그것을 취소하게 만들 수 있는 권한이 있었다. 24일 야당이 표결을 보이콧하는 가운데 여당이 통과시킨 법안의 골자는 대법원의 그 권한을 없애버리는 것이다.
예컨대 대법원 판결을 의회가 의원 과반수의 결정으로 무효화시킬 수 있는 조항을 신설하고, 재판관을 뽑는 위원회 구성을 친정부 위원들이 다수를 차지하도록 제도를 바꾸는 것이다. 개혁론자들은 “선거로 뽑히지 않은 재판관들의 권한이 너무 크다”면서 선거로 뽑힌 의원들이 법관들보다 강한 권한을 갖는 것이 타당하며, “그것이 올바른 민주주의다”라고 주장한다.
역사상 가장 오른쪽으로 기운 정권
일리가 있어 보일지 모르지만, 지금의 이스라엘 정치 현실을 살펴 보면 이는 네타냐후와 우익연합세력의 집권 영구화를 위한 뻔한 수작에 가깝다. 이는 네타냐후의 정치생명과도 직접적인 관련이 있다.
네타냐후는 1996년에 첫 총리가 된 뒤 이번 제6차 정부까지 모두 6차례 총 15년간 총리자리에 있었다. 2019년에 뇌물 수수와 배임 등의 혐의가 불거지면서 흔들리기 시작한 네타냐후의 권력은 결국 2021년에 그의 퇴진으로 이어졌다. 그때 그는 “다시 돌아오겠다”고 공언했고, 지난해 11월 선거에서 승리해 1년 반만에 권좌에 복귀했다.
지난해 선거에서 그의 리쿠드 당은 32석을 얻어 제1당이 됐으나 재집권을 위해서는 극우세력의 힘을 빌려야 했다. 결국 총 120석의 크네세트의 과반인 64석을 우파연합이 확보해 네타냐후가 총리가 됐지만, 지난 선거에서 의석수를 거의 배로 늘린 극우세력의 요구를 들어줄 수밖에 없게 됐다. 이 때문에 이번 네타냐휴 우익연합정권은 “(이스라엘) 역사상 가장 오른쪽으로 기운” 정권이라는 말을 듣고 있다.
유대국가 이스라엘의 정치는 원래 종교적 색채가 강할 수밖에 없다. 게다가 의회 크네세트는 비례대표제로 뽑는 120명의 의원으로 구성되는 일원제 의회여서 언제나 종교보수파, 우파가 단골 여당이 될 가능성이 높다.
미국에서 도널드 트럼프 정권이 등장한 뒤 글로벌 공급망이라는 토대 위에 구축된 기존 신자유주의적 국제질서가 급속히 무너지면서 보호주의와 내셔널리즘이 대두하는 가운데 이스라엘 우익 및 극우세력들의 목소리는 더욱 커졌다. 여기에는 예루살렘을 이스라엘의 수도로 공인하고 점령지역인 요르단강 서안에 대한 유대인 정착촌 건설 확대를 지지한 트럼프 정권의 네타냐후 우파 정권에 대한 지원도 큰 영향을 끼쳤을 것이다. 우파들은 환호했다.
극우세력이 앞장서는 ‘사법 개혁’
이 유대인 정착촌 문제는 극우세력이 대법관의 권한 축소 내지 박탈에 앞장서게 만든 가장 큰 요인 가운데 하나이기도 하다. 극우세력은 요르단강 서안 등 점령지에 유대인 정착촌 건설을 확대하려는 강렬한 열망을 갖고 있다. 그런데 “법원이 팔레스타인을 지켜 주고 있어서 우리 정책이나 활동이 방해받고 있다”고 주장한다. 이는 유럽 리버럴 전통의 영향을 받고 있는 법관들이 극우세력의 반인권적, 반팔레스타인적 정착촌 확대정책에 어느 정도 제동을 걸고 있는데에 대한 반발이다. 팔레스타인 입장에서는 철저한 친이스라엘일 수밖에 없는 법관들조차 이스라엘 우익들 눈에는 반이스라엘로 비치는 것이다.
이스라엘에는 성문헌법이 없고 기본법이 그 역할을 대신하는데 영향력이 크지 않다. 그래서 보수우파 일색이기 쉬운 의회와 정부를 견제하는 역할을 대법원이 맡고 있고, 그것이 이스라엘 민주주의의 근간 가운데 하나다. 그런 대법원은 우익세력에겐 매우 불편한 존재다.
그들은 대법관 권한 축소, 박탈을 겨냥한 네타냐후의 사법 개혁에 적극 동조한다. 동조라기보다는 네타냐후의 사법 개혁 정책을 앞장서서 견인하고 있다고 보는 게 옳겠다. 그 중심인물이 극우 야리브 레빈 법무장관이다. 이번 사법 개혁 설계자가 바로 레빈이다.
대법원 “전과자 입각 불가”, 네타냐후도 유죄판결 가능성
이스라엘 대법원은 지난 1월 탈세 혐의로 유죄판결을 받은 초정통파 극우 유대교 정당 샤스당의 대표 아리예 데리의 부총리 겸 내무장관 임명이 잘못됐다며 네타냐후 총리에게 그를 해임하라고 결정했다. 대법관 11명 중 10명이 이 결정을 지지했다. 결국 데리는 취임 19일만에 장관직을 포기했다. 샤스당은 지난해 11월 선거에서 11석을 얻어 네타냐후의 우파연합이 총의석 120석의 과반인 총 64석을 얻어 집권하는데 중요한 기여를 했다. 그런 데리를 입각시키기 위해 네타냐후는 전과자도 각료가 될 수 있도록 법까지 바꿔 그를 장관에 임명했으나 대법원이 이를 물리친 것이다.
법무장관 레빈이 설계한 사법 개혁이란 바로 이를 뒤집는 것이다. 정부와 의회를 견제하는 대법원의 권한을 박탈하는 것은 네타냐후에게도 그의 정치적 사활이 걸린 문제다. 야리브 데리와 마찬가지로 네타냐후도 뇌물 수수와 배임 등의 혐의로 한 번 실각한데다 지금 재판이 진행 중인데, 이대로 가면 유죄 판결이 나올 가능성이 높다. 유죄 판결이 나오면 대법원은 그가 총리직을 계속 수행하게 내버려 두지 않을 것이다.
네타냐후 사법개혁은 자신의 범죄 표백용
네타냐후가 우익으로 기운 데에는 또 다른 이유가 있다. 그의 집안은 조부 때부터 시오니스트 전통이 강했지만, 아마도 그의 형 요나탄 네타냐후가 1976년 엔테베 공항 인질 구출사건 과정에서 사망한 것이 그의 사고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치지 않았을까. 팔레스타인 해방기구 하부조직과 독일 극좌파가 벌인 에어 프랑스기 납치와 유대인 인질 사건은 피납 비행기가 기착한 우간다 엔테베공항에서 이스라엘 특수군의 구출작전으로 끝을 맺었다. 그 작전 중에 구출요원 요나탄 네타냐후는 사망했고 이스라엘의 영웅이 됐다.
네타냐후가 과거에 그의 내각에 입각했고 총리까지 지낸 야이르 라피드나 역시 전직 총리 나프탈리 베네트에게 “팔레스타인 앞잡이”라 비난하고, 아돌프 히틀러가 유대인을 학살할 때 그를 사주한 인물이 당시 팔레스타인 지도자 아민 후사이니라고 근거없는 주장을 늘어놓아 비난을 사는 것도 형의 그런 죽음과 연관이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는 이런 ‘막말’이 우경화한 사회에서 표를 얻는데 유리하다는 것도 알고 있다.
하지만 네타냐후가 우익이기는 해도 최근의 사법 개혁과 같은 노골적인 장기집권 공작을 벌이진 않았다고 그의 정치적 동료였던 시드온 사르 전직 교육, 법무장관은 얘기한다. “오래 함께 일했으나 (뇌물수수, 배임) 수사가 시작되기 전에는 이런 법안을 추진하려 한 적이 없다”면서, 사르는 “그(네타냐후)가 오직(汚職)으로 기소된 것도 무시할 수 없다”고 말했다. 어쩌면 기소당한 것이 결정적인 이유일 것이다. 예상대로 그가 유죄판결을 받으면 대법원은 당연히 총리직에서 물러나라고 할 것이고, 그럴 경우 기존 법체제 아래에선 그는 물러나지 않을 수 없다. 그의 사법 개혁이 겨냥하는 핵심 목적 가운데 하나가 바로 이를 뒤집는 것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개정 법안은 예컨대 네타냐후가 유죄판결을 받더라도 의회 과반수의 결정으로 대법원의 판결을 무효로 만들 수 있다.
일본, 한국의 그것과 닮은 ‘네타냐후의 정치수법’
코넬대에서 이스라엘역사를 가르쳤던 아버지 덕에 미국에 가서 필라델피아 인근에서 고교 시절까지 보낸 네타냐후는 귀국해서 군 복무를 마친 뒤 다시 미국으로 가 매사추세츠공대(MIT)를 졸업하고 경영대학원을 마친 뒤 하버드와 MIT에서 정치학을 공부했다. ‘좋은’ 집안 출신에 그럴듯한 학벌을 지니고 영어를 유창하게 할 줄 아는 우파 성향의 그는 미국-이스라엘의 특수관계 속에서 승승장구했다. 트럼프의 절대적 지지를 받았던 그를 조 바이든 대통령은 가까이 하지 않다가, 최근 네타냐후가 중국의 초청으로 중국을 방문할 가능성이 커지자 그의 재집권 7개월만에 서둘러 미국으로 초청했다. 그의 ‘사법 개혁’에 미국은 유럽과 마찬가지로 민주주의를 위협한다며 우려를 표명했 뿐 불법적인 유대인 정착촌 확대와 반팔레스타인 정책에 제재를 가한 적이 없다.
오구마 에이지 게이오대 교수(역사사회학)는 네타나후의 정치 수법을, 암반(골수) 지지층을 중심으로 상대적 다수를 확보하고 ‘민주주의’와 ‘정치주도’를 내세우면서 각종 규칙이나 견제장치를 무력화시키는 것이라고 갈파했다.(<아사히신문> 7월 26일) 그러면서 오구마 교수는 그를 비판하는 반대세력은 의견이 갈려 제대로 뭉쳐 대응하지 못한다며, 이는 최근 세계적인 풍경이라고 했다. 말하자면 ‘네타냐후 현상’은 이스라엘 특유의 사정 탓도 있지만 현대 민주주의의 위기라는 세계적 공통현상이기도 하다는 얘기다.
그의 얘기는 지금 자민당 장기집권이 부패와 무능으로 말기적 현상을 보이고 있음에도 갈가리 찢겨져 결집하지 못하는 소수정당으로 전락한 야당들 덕에 안정적인 집권을 계속하고 있는 일본을 두고 한 것이 분명하다. 하지만 일본만 그런가. 정치적 반대파를 ‘친중 종북 좌파’ ‘앞잡이 세력’이라 ‘막말’을 하며 이에 환호하는 소수의 골수 지지층을 결집하고, 구심점 없는 다수를 ‘비국민’으로 분산 소외시키는 정치공학을 가장 노골적으로 자행하고 있는 이웃나라의 사정을 오구마 교수도 모르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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