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힘 "후쿠시마보다 북핵"…박광온 "한국민 폄하"
윤 정부, 국민보다 일본 오염수 방출 시한 더 걱정
공개 회견 회피 그로시, 우호적 매체와만 인터뷰
'도쿄행' 야당 의원단 "최선 다해 해양투기 저지"
일본의 후쿠시마 원전 핵 오염수 방출 문제가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었다.
국제원자력기구(IAEA)가 지난 4일 일본의 방출 계획이 '안전'하다는 종합보고서를 발표했으나 해양 생태계와 인간에 대한 방사능 피폭 가능성 등 국제사회가 제기한 주요 의문을 해소하지 못한 채 일본에 면죄부를 주는 내용으로 일관해 국제사회의 반발이 더 확산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해양투기 저지 대책위원회'가 9일 주최한 면담에서 민주당 의원들은 방한했던 라파엘 그로시 IAEA 사무총장을 사정없이 몰아붙였다.
그로시에게 민주당 의원들은 △ 일본 정부가 처음부터 해양 방출 외에 다른 대안을 검토하지 않았다('최적의 안'을 찾을 의무가 있다는 IAEA 일반안전지침(GSG) 8, 9 위반) △ 핵 오염수 정화 장비인 다핵종처리설비(ALPS)에 대한 성능 검증을 하지 않았다 △ 해양 생태계와 인간에 미칠 환경영향 평가가 없었다 △ 당초 세 차례 공언과는 달리 샘플 분석을 한 번만 했다 △ 1차 분석 샘플은 정상가동 원전에서 나온 냉각수로서 노심이 용해돼 핵연료봉과 직접 접촉한 사고 원전에서 나온 핵 폐기수와는 핵종들의 차이가 크다 등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일본 핵오염수 방출 새 국면…국제사회 반발 확산
또한 일본의 해양 방출 계획이 △ 유엔 해양법조약 제194조 2항(주권 행사 구역을 넘지 못하게 필요한 모든 조치를 취해야)과 3항(지속성이 있는 독성‧유해 물질의 투기 최소화) 위반이다 △ 런던조약(인간 건강이나 해양 생물에 해로운 방사성 폐기물 투기 금지)과 런던의정서(불가항력적 경우 외 방사성 폐기물 해양 투기 불가) 위반이라는 점에 대해서도 따졌다.
특히 기시다 후미오 일본 정부가 IAEA에 "100만 유로 이상"을 지불했고, IAEA의 최종보고서가 일본 요구대로 대폭 수정돼 공표됐다는 '(일본)외무성 간부 A'의 증언을 토대로 시민언론 민들레와 더탐사가 제기한 '검은 거래' 의혹의 진상에 대해서도 질문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한국은 물론 국제사회가 우려하는 이런 의문점에 대해 그로시 총장은 일본의 방출 계획이 "국제 안전 기준에 부합한다"는 말만 반복했을 뿐 제대로 답변하지 못했다. 이소영 민주당 원내대변인은 면담 후 그로시 총장은 "보고서에 기재된 내용 설명을 반복했다"며 "우리 질문에 구체적 답은 거의 없었다고 해도 무방하다"고 전했다.
공개 회견 회피 그로시, 우호적 매체와만 인터뷰
방한 기간에 그로시는 일본 방문 때와는 달리 공개 기자회견을 하지 않았다. 일본과의 '검은 거래' 의혹 등 답변하기 난감한 질문이 쏟아질 것을 고려했을 법하다. 그래서인지 일본의 핵 오염수 해양 방출 계획에 '우호적' 보도 태도를 보여온 일부 제도권 미디어들과만 연쇄 인터뷰를 갖고 IAEA 보고서의 객관성과 공정성을 주장하는 '꼼수'를 구사하기도 했다.
'도발적' 발언으로 분노를 촉발하기도 했다. 이들 인터뷰에서 핵 오염수를 그냥 '물'(water)이라고 부르면서 "나도 마실 수 있고, 수영도 할 수 있다"고 말했는가 하면, "일본 측이 오염수를 안전하게 처리해 방류하면, 후쿠시마 수산물도 오염되지 않을 것"이라고 했고, 심지어 "후쿠시마보다는 북핵 문제를 더 걱정해야 한다"라고 한국민에 '충고'하기도 했다. 일본의 핵 오염수 투기에 반대하는 한국민 85%를 우롱하는 만용이 아닐 수 없다.
IAEA 보고서 발표와 그로시의 방한이 외려 기름을 붓자, 사태의 심각성을 느낀 윤석열 정부와 여당인 국민의힘은 그로시와 기시다 '지키기'에 여념이 없다.
당장 윤 정부는 사태 진화에 나섰다. 박구연 국무조정실 1차장은 10일 후쿠시마 핵 오염수 관련 일일 브리핑에서 '100만 유로 검은 거래 의혹'에 "일본 정부에서 가짜 뉴스임을 확인한 바 있으며 추가적 팩트가 없는 주장"이라며 "가짜 뉴스로 확인됐다"고 주장했다.
그는 '1차 분석 결과만으로 종합보고서를 발표했다'는 지적엔 "일본 측 방류 실시계획의 현실성을 평가할 때 핵심은 2·3차 시료를 채취한 일반 저장탱크 속 오염수 농도가 아니라, 1차 시료를 채취한 K4 탱크에서 정확하게 핵종 농도를 파악해내는 능력"이라고 말했다.
윤 정부, 국민보다 일본 오염수 방출 시한 더 걱정
뒤이어 "모니터링이 다 끝난 다음에 최종보고서를 내면 더더욱 좋겠지만 그렇게 하다 보면 너무 시간적 한도가 없다"며 "IAEA도 보고서를 6월 말 정도에 발표할 것이라고 공론화돼 있었다"고 말해 기시다 정부의 '올여름 방출'을 적극적으로 감싼다는 인상을 주었다.
'횟집 먹방'과 '수조 바닷물 시음 퍼포먼스'로 유명세를 떨친 국민의힘은 지난 4일 IAEA 보고서를 두곤 신줏단지 모시듯 "국제사회의 중추 국가로서 결과를 겸허히 받아들여야 한다"(강민국 수석대변인)고 논평했다. 국민 대다수 여론은 안중에도 없다는 것을 들킨 셈이다.
국민의힘은 민주당 의원들이 그로시의 면전에서 일본의 핵 오염수 해양 방출 계획과 IAEA 종합보고서의 부실함을 조목조목 따진 데 대해 '국제적 망신', '국격 추락'이라고 비난했다.
김기현 대표는 방미 출국에 앞서 이날 오전 인천국제공항에서 기자들과 만나 "국격을 추락시키는 무례한 행동"이라고 했고, 윤재옥 원내대표는 최고위원회의에서 "국제기구 대표를 모욕하는 모습을 보고 있으니 대한민국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부끄럽기 그지없다"고 말했다.
국힘 "후쿠시마보다 북핵"…박광온 "한국민 폄하"
"후쿠시마보다는 북핵 문제를 더 걱정해야 한다"는 그로시를 지원 사격하기도 했다. 강 수석대변인은 이날 논평에서 "IAEA의 아무런 통제 없이 자의적으로 운영되는 북한 핵시설의 위험성에 대한 공론화에 같이 나서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고 연합뉴스는 전했다.
전주혜 원내대변인도 논평에서 "민주당 인사 중 북핵을 문제 삼는 인사는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다"며 "제1당이라면 응당 후쿠시마 오염수보다는 북핵 문제를 더 걱정해야 하는 것이 인지상정"이라고 주장했다.
북핵 문제가 한국민의 '생명'을 위협하는 중대한 사안인 만큼 경각심을 풀어선 안 되지만, 그렇다고 한국민의 건강과 생활에 마찬가지로 치명적 타격을 줄 후쿠시마 핵 오염수 문제에 경각심을 갖지 말라고 주장하는 것은 그야말로 궤변이 아닐 수 없다.
민주당 박광온 원내대표는 이날 최고위 회의에서 "후쿠시마보다는 북핵 문제를 더 걱정해야 한다"는 그로시의 발언에 대해 "과학적 진정성은 없고 정치적 오만만 가득한, 그야말로 정말로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발언"이라며 "우리 국민의 인식 수준을 폄하한 대단히 부적절한 말"이라고 비판했다.
도쿄행 야당 의원단 "최선 다해 해양투기 저지"
한편 민주당과 무소속 의원 11명으로 구성된 '후쿠시마 핵오염수 해양투기 저지 국회의원단'은 이날 사흘간 일정으로 일본 도쿄로 출국했다.
이들은 출국 기자회견에서 "IAEA는 일본 원전 오염수 해양 방류와 관련해 과학적 근거가 없는 '깡통 보고서'를 발표했다"며 "국제 공조를 통해 후쿠시마 핵오염수 해양 투기가 저지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고 돌아오겠다"고 말했다고 연합뉴스는 전했다.
방일 의원단에는 민주당 김승남 박범계 안민석 양이원영 위성곤 유정주 윤재갑 이용빈 주철현 의원, 무소속 양정숙 윤미향 의원이 참여했으며 어민들도 동행한다.
의원단은 방일 첫날인 이날 일본 총리 관저 앞에서 항의 집회를 하고, IAEA 일본지사 항의 방문과 일본 국회 앞 연좌 농성을 벌인다, 11일에는 일본의 오염수 방류 반대 그룹인 '원전제로 재생에너지 100 의원 모임'을 만나 공동선언을 발표하고, 12일에는 기자회견과 도보 행진을 진행할 예정이다.
일본의 후쿠시마 원전 핵 오염수 해양 방출 계획이 '안전'하다는 IAEA의 최종보고서 발표에 반발해 시민사회단체, 정당 중심으로 전국 곳곳에서 오염수 방류 반대 집회가 열렸다.
연합뉴스에 따르면, 대전탈핵공동행동과 친환경무상급식대전운동본부 등은 이날 대전시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오염수 방류에 대해 국민들의 걱정이 큰 지금도 정부는 '괴담' 운운하며 안전하다는 말로 덮으려 하고 있다"고 정부를 비판하며 "일본은 후쿠시마 오염수 투기 시도를 즉각 중단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경기 수원에서는 지역 시민·환경단체 50여 곳과 민주당, 정의당, 진보당 등 정당들이 모여 '후쿠시마 방사성 오염수 해양투기 저지 수원공동행동'이 출범했으며, 인천에서도 인천지역연대와 기후위기인천비상행동이 인천시청 앞에서 해양 투기 결정 철회 촉구 기자회견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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