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정당 내 중도 상징인물의 폭주와 궤변, 왜?

윤석열 식 막장 불합리파 득세에 노선 수정한 듯

유력 보수매체들의 무조건 지지, 큰 변수로 작용

(본 기사는 음성으로 들을 수 있습니다.)

 

이른바 '양평 고속도로 게이트' 혹은 '윤석열-김건희 부부 게이트' 의혹의 핵심인 원희룡 국토부장관의 막무가내식 폭주와 궤변이 '광란'이라고 불러도 지나치지 않을 만큼 극단적으로 치닫고 있다. 그의 이 같은 행태를 놓고 의외의 변신이라는 반응이 적잖다. 학생운동과 노동운동 출신으로서 대학 학력고사 전국 수석의 후광까지 겹쳐 '보수정당' 내 개혁적이고 합리적 시각의 대표처럼 여겨졌던 인물의 폭주는 '원희룡답지 않다'는 평이 나오고 있다.

그러나 원희룡 장관의 발언, 말의 내용도 그렇지만 선택하는 언어, 여론과 야당의 비판에 대한 거친 태도들을 그가 놓여 있는 정치적 상황과 입지, 그간의 행보에 대한 손익평가, 그를 둘러싼 여건들과 함께 종합적으로 살펴보면 그의 폭주와 막무가내는 실은 냉정한 득실 계산에서 나온 판단이라고 볼 수 있다.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과 백원국 국토교통부 제2차관이 6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소통관에서 국민의힘 소속 국토교통위원들의 '서울~양평 고속도로에 대한 가짜뉴스' 관련 실무 당정협의회 결과 브리핑을 들으며 대화하고 있다. 2023.7.6. 연합뉴스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과 백원국 국토교통부 제2차관이 6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소통관에서 국민의힘 소속 국토교통위원들의 '서울~양평 고속도로에 대한 가짜뉴스' 관련 실무 당정협의회 결과 브리핑을 들으며 대화하고 있다. 2023.7.6. 연합뉴스

한국적 보수정당의 성공공식 따르기로 한 듯

그는 한국의 보수 정당에서의 오래된 성공공식, 특히 최근 더욱 뚜렷해진 성공 공식을 따르기로 판단한 듯하다. 광기와 폭주는 그 공식을 택하기로 한 결론에서 나온 계산된 행태다. 그런 점에서 한순간의 변신이 아닌 것이다. 그의 내부에 혼재된 여러 요인과 측면들이 상황과 국면에 따라 잠복하기도 하고 표출되기도 하면서 지금의 상황에서 '원희룡답지 않은' 행태로 나타나고 있을 뿐이다.

그의 그간의 정치적 행로와 궤적에서 무엇보다 특징적인 것은 그의 정치인으로서의 출발이 친진보민주의 이력에도 불구하고 민주당 계열이 아닌 그 반대 되는 정당에 들어가는 선택이었다는 것이다. 그 개인에게는 상대 진영에 들어가 '밀알'이 되겠다는 명분으로, 보수정당에는 상대 진영의 자원을 흡수해 개혁과 변화의 면모를 보여줄 수 있다는 점에서 서로간에 필요가 맞아 떨어지는 결합이었다. 이는 보수정당 내의 일부 진보 색채라는, 한국정치의 오래된 흐름의 한 부분이기도 하다. 독재정권의 맥을 잇는 '보수' 정당에 합류한 원희룡에게는 투항이 아니라 오히려 도전과 투신이라는 이미지가 씌워졌고 이는 그에게 최대의 정치적 자산이며 원천이 됐다. 지난 20여년 간의 원희룡의 정치인 경력에서 이는 대체로 거의 일관된 흐름으로 나타났다.

그렇다면 지금의 원희룡의 변신 아닌 변신은 무엇 때문인가. 그 자신이 달라진 것이 있으나, 그보다는 그로 하여금 달라지게 하는 상황과 여건이 있었다고 해야 할 것이다. 그간 원희룡은 대중이 그를 바라보는 시각, 그에게 기대하며 씌우는 역할, 개혁적 보수라는 이미지에 자신을 맞춰 왔다. 그것이 단지 연기이며 가면에 불과한 것이었다고만 할 수는 없다. 그 자신부터가 그것이 자신에게 고유한 자산이며, 그 자산을 지키는 것이 자신의 정치적 손익에서 유리하다고 봤기 때문이다.

그러나 거듭된 실패와 좌절이 그에게 '교훈'을 주었다. 당내 대통령 경선이나 서울시장 경선 등 굵직한 선거의 대표를 뽑는 경쟁에서 그는 번번이 패배했다. 이는 당내의 이른바 '합리적 보수파'의 패배이기도 했지만, 합리적 보수의 대표로 인정받는 것에서조차 그는 실패했다. 자신을 꺾은 나경원과 오세훈, 무엇보다 윤석열의 승리를 보면서 그는 자신의 '노선'에 대한 깊은 회의에 빠진 듯하다. 무엇보다 윤석열로부터의 학습 효과가 컸다. 윤석열의 당내 승리와 대통령 당선은 강경과 극우와 막장, 불합리 노선의 승리로 비쳤을 것이다. 게다가 이는 국내뿐만 아니라 트럼프, 베를루스코니 등 외국의 극우적 보수정치인의 성공과도 겹쳐 그에게 더 분명한 '학습효과'로 나타났다. 이런 이유와 사정들로 그는 합리적 보수라는 옷을 벗고 윤석열류, 트럼프류로 변모하게 된 것인 듯하다.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이 10일 오전 세종시의 한 공동주택 건설 현장에서 열린 타워크레인 안전점검 간담회에 참석해 발언하고 있다. 2023.7.10. 연합뉴스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이 10일 오전 세종시의 한 공동주택 건설 현장에서 열린 타워크레인 안전점검 간담회에 참석해 발언하고 있다. 2023.7.10. 연합뉴스

보수언론 비판 포기하면서 당내 개혁파 입지 좁아져

그러나 원희룡의 이같은 판단에 무엇보다 크게 작용한 것은 언론이라는 변수라고 해야 할 듯하다. 이른바 '보수' 언론으로 분류되는 한국의 유력언론들은 본래부터 보수 정당의 강력한 원군이었지만 최근 수년간의 이들 언론의 행태는 과거와는 또 다른 면모를 보이고 있다. 그간의 보수언론이 권력과의 유착 관계였다면 이제는 권력과의 일체화 현상을 보이고 있다. '언론의 권력화'를 넘어서 권력의 한 부분이 되고 있는 '보수언론'은 축소와 과장, 왜곡을 넘어서 '다른 사실을 제조'하는 수준이 돼 있다. 이같은 보수 언론의 양태는 그간 일부 보였던 보수 정당에 대한 비판적 견인의 역할을 거의 내던진 국면에 이르고 있다. 이는 보수정당 내에서 가뜩이나 약했던 합리적 보수의 입지를 더욱 좁게 만들고 있다. 원희룡으로선 과거에 자신에게 한편으로 유리했던 면이 지금엔 불리해진 상황이 된 것이다. 보수 정당 내의 중도와 합리 노선의 대표로서의 몫을 키워 더욱 큰 역할을 하려고 했던 오랜 구상에 중대한 상황 변화가 닥친 것이다.

원희룡은 자신의 오랫동안의 강점을 키우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강점을 버리고 새로운 모습으로 변신하기로 판단한 듯하다. 보수정당 내의 중도와 합리의 대변자로서는 지금까지의 장식과 포장재로서의 역할조차 제대로 바라기 힘들게 됐다고 본 듯하다. 나아가 장식과 포장재를 넘어서 '윤석열 이후'의 대권 주자가 되기 위해, 그 방식도 '윤석열의 성공법'으로 이뤄내기 위해 일대 변신을 하기로 작정한 듯하다. 이상과 같은 이유들이 원희룡의 지금의 행태에 대한 하나의 설명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여기서 한 가지, 지금의 그의 과격한 발언들을 놓고 그의 기질 문제를 드는 지적들에 대해 짚어볼 필요가 있다. 과거 사법연수원 시절의 노인폭행을 들어 그의 기질의 오만과 폭력성을 드는 이들이 많다. 젊은 시절의 '실수' 하나가 그의 기질의 모든 것을 보여준다고 할 수는 없다. 여기서 그 폭행의 죄질을 들어 단지 취중 실수 정도라고 가볍게 볼 수는 없다는 점이나, 그 실수에서 나타난 기질이 얼마나 그의 기질의 전체상을 보여주는 것일까에 대해서는 차치하자. 다만 그때 그는 자신의 실수에 대한 사과 반성과 함께 다른 '발견'을 했을 수 있다. 권력과 지위의 힘, 자신이 그 힘에 근접할 수 있는 유리한 위치에 있다는 것에 눈을 뜨게 된 것이다. 그리고 그때의 그 발견은 그의 내면에 잠복돼 있다가 지금의 변신 아닌 변신과 함께 선명히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민주당 진성준, 박주민, 정의당 심상정 등 야당 의원들이 19일 국회에서 원희룡 국토부 장관의 사퇴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2023.6.19. 연합뉴스
민주당 진성준, 박주민, 정의당 심상정 등 야당 의원들이 19일 국회에서 원희룡 국토부 장관의 사퇴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2023.6.19. 연합뉴스

자신의 강점 포기한 변신, 경쟁우위 가질지 의문

원희룡의 변신은 치밀한 득실과 손익계산에 따른 것이지만 그 양상은 정치적 도박으로 나타나고 있다. 그로서는 지금까지 오랫동안 쌓아왔던 수십년 간의 정치적 자산을 버리고, 혹은 그 자산을 바탕으로 매우 다른 모습으로의 변신을 시도하는 것이기 때문에 도박에 가까운 것이다. 그가 자신의 도박에 대해 스스로 성공적이라는 확신을 갖고 있는지는 알기 힘들다. 다만 최소한 그런 확신을 자기 자신에게 불어넣어 주려는 것으로 보인다.

분명한 것은 그에게 후퇴는 없을 것이라는 점이다. '장관직'과 '정치생명'을 걸겠다고 한 호언이나 "이재명 대표, 민주당 간판 걸고 한 판 붙읍시다“ 라는 전투적 언사는 장관직을 걸듯 자신의 정치적 진로에 대해서도 도박을 걸며, 야당 대표이며 유력한 대통령 후보에게 맞수로 자신의 체급을 올린다는 계산이 깔려 있지만 그 말은 오로지 앞만 보고 간다며 스스로를 다그치는 자기주문이기도 하다.

과연 원희룡의 이 '담대한' 도박은 성공할 것인가. 성패를 점치기는 역시 쉽지 않다. 그러나 그가 매우 어려운 길을 택했다는 것은 분명하다. 무엇보다 내부에 경쟁자가 많다. 그 경쟁을 뚫기 위해서는 자신의 변신을 끊임없이 증명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그에게는 경쟁자들에게 결정적으로 우위를 가질 수 없다는 한계가 크다. 지속적으로 더욱 더 '막장화'를 요구받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럴수록 그는 자신이 애초에 갖고 있던 주요한 자산을 잃어버리게 되고, 경쟁자들과 다를 게 없어진다는 딜레마에 빠지게 된다. 이는 원희룡의 변신을 부르기도 했고, 그가 가장 믿고 있는 것이기도 한 보수언론에 원희룡이 어떤 효용이 있을까로 집약되는 문제이기도 하다. 보수언론들에 원희룡의 변신은 분명 하나의 호재다. 원희룡이 그간 축적해온 이미지는 보수언론들로서도 새로운 효과적 발성기관으로서의 용도가 클 수 있다. 그러나 역시 위에서 그 한계를 지적했듯이 즉 합리와 중도 이미지를 버린 원희룡에 지속적인 유용성이 얼마나 있을지는 불투명하다.

원희룡의 앞에 성공이 있든 몰락이 있든 간에 그의 변신은 보수 정당의 퇴행과 함께 겹치면서 바닥으로의 경쟁이라는 악순환을 부르고 있다. 이는 한국 보수 정치와 보수 언론의 상호 하향화, 상호 악순환의 경로다.

한편으로는 보수 정당 내의 개혁파의 행로에도 하나의 작은 결론을 내려주고 있다. 즉 '잡초' 속으로 들어가 잡초를 뽑으려 하지만 어느덧 그 자신이 잡초가 되고, 나아가 독초가 되지 않으면 안 되는 딜레마에 몰리는 것이 이들의 일반적인 경로라는 것이다. 이 점에서 원희룡의 선배 격이랄 수 있는 이재오나 김문수의 행로가 시사하는 바가 적잖다. 원희룡은 이제 그 시험대의 더욱 더 깊은 곳으로 들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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