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익 프로그램 소멸시킬 수신료 분리징수 강행
전방위적 언론 장악 '비상 상황'인데 저항 미미
문재인 정부 때 언론중재법 개정 반대와 대조적
족벌언론 자유 보장될수록 시민 피해 커지는 역설
윤석열 정권 돕는 족벌언론에 다 함께 맞서야
(본 기사는 음성으로 들을 수 있습니다.)
최근에 KBS <시사기획 창>은 난민에 대한 2부작 특별기획 다큐를 방영했다. ‘나의 난민 너의 난민’은 태국, 레바논, 독일을 오가며 오늘날 난민이 처한 고달픈 현실을 잘 보여주고 있다. ‘달의 아이들’은 한국에서 사는 난민 청소년들이 함께 어울려 난민에 대한 영화를 만드는 과정을 통해 공존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발달장애인 가족들의 삶을 통해서 장애인을 차별하고 외면하는 현실이 얼마나 처참한 수준인지 보여 준 KBS <시사직격> ‘시한부 엄마의 호소문’도 의미 있는 다큐였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의 곳곳에서 일주일간 어떤 일들이 벌어졌고 의미가 무엇인지 알고 싶을 때는 주말에 KBS <세계는 지금>을 챙겨 볼 필요가 있다.
다양한 지식과 교양을 쌓고 싶은 사람들에게는 EBS처럼 유익한 채널도 드물다. 특히 2년 전부터 방영하고 있는 EBS <위대한 수업>은 전세계에서 다양한 분야의 지식인과 학자들의 최신 사상과 가장 앞선 논의들을 소개해주는 특별한 프로그램이다. 이런 영상들을 볼 때면 맨 마지막에 항상 “이 프로그램은 여러분의 수신료로 만들었습니다”라는 문구가 나온다.
이 자막 문구가 요즘처럼 특별하게 다가오는 시기도 없다. 지금 윤석열 정부가 ‘공영방송 수신료 분리징수’를 통해서 공영방송을 망치려는 시도의 한고비를 넘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분리징수를 하게 되면 KBS와 EBS의 재정이 약화할 것이고 공익적인 프로그램의 제작은 축소될 것이다. 민영화로 이어지면서 공영방송의 일부나 전부가 사라질 수도 있다.
권력의 방송 장악은 급물살을 탈 것이고, 위에서 나열한 알차고 공익적인 성격의 방송들은 보기 어려워질 것이다. 요즘 KBS 본관 로비에서는 극우 유튜버들과 친윤 시위대들이 난장판을 벌이면서 이런 시도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KBS와 거기서 일하는 노동자들을 매도하는 구호와 플래카드들이 곳곳에 넘쳐나고 있다.
KBS 수신료 분리징수만이 아니라 언론과 방송 장악과 통제를 위한 윤석열 정부의 전방위적 공격이 전개되고 있다. TBS는 거의 백기 투항에 가까운 굴복을 했지만, 서울시는 도무지 목줄을 쥐고 놓아 줄 생각이 없다. YTN은 지분 매각과 민영화를 향한 계획이 착착 진행 중이다. 한상혁 방통위원장은 쫓겨났고, 이동관 대통령실 특보가 그 자리를 차지하는 것은 초읽기에 들어갔다.
이 과정에서 감사원의 먼지털이 감사와 검찰의 수사와 기소가 있었다. 정부 비판적인 보도에 대한 실세 장관과 대통령실의 고소‧고발, 경찰의 압수수색도 툭하면 벌어지고 있다. 권력에 의해 언론의 자유가 심각한 위기에 처하고 있다. ‘언론의 자유’가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말하던 모든 언론사와 기자들과 지식인들이 나서서 온몸으로 저항해야 마땅한 비상 상황이다.
그런데 막상 저항과 반대의 목소리는 별로 들리지 않고 있다. 대부분의 언론사는 큰 관심과 열의가 없어 보이고, 족벌언론과 종편방송들은 오히려 국가 권력의 언론 장악과 통제 시도를 맨 앞에서 응원하고 있다. 이런 상황이 자신들의 힘과 돈벌이 기회를 늘릴 것으로 보는 눈치다. 언론 개혁 단체들과 기자협회 등만이 외롭게 반대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이것은 문재인 정부 말기에 언론중재법 개정안에 대한 거대한 비판과 반대가 분출했던 것과 매우 대조적이다. ‘악의적 가짜뉴스에 징벌적 손해배상을 가능하게 하자’던 언론중재법 개정은 국가 권력의 언론 통제 시도라기보다는 족벌언론들의 악의적 가짜뉴스에 대한 반감에서 비롯한 시민들의 저항과 압박의 성격이 더 강했다.
서울시 간첩조작 사건의 피해자인 유우성 씨는 “언론으로부터 피해를 많이 입었던 사람으로서 징벌적 손배 금액이 5배로는 부족하다. 10배라도 해야 한다. 사실이 아닌데도 기자들이 검찰과 국정원 이야기만 일방적으로 담아서 기사를 냈다. 간첩 조작에 가담한 수준”이라며 개정안을 지지했다.
세월호 참사 때 대중의 시선을 돌리기 위한 검찰과 언론의 마녀사냥에 피해를 입었던 홍가혜 씨도 마찬가지였다. 반면에 족벌언론들은 언론중재법 개정안을 결사적으로 반대했다. 모든 수단과 방법을 통한 전면적이고 전방위적인 반대에 열심이었다. 그러면서 ‘살아있는 권력에 대한 감시와 비판을 어렵게 하고 국민의 알 권리를 가로막을 것’이라는 명분을 내세웠다.
윤석열 정부의 언론 장악을 돕고 있는 족벌언론들의 지금 행태와 비교해 보면 정말 어처구니없고 헛웃음이 터지는 명분이 아닐 수 없었다. 문제는, 당시에 한겨레와 경향 같은 개혁언론들, 언론 개혁 단체와 노조들, 진보적 지식인들까지 대부분 이런 주장에 동조하면서 함께 언론중재법 개정을 반대했다는 점에 있었다.
덕분에 족벌언론들과 국민의힘은 ‘이렇게 진영을 넘어서 모두가 반대하는 것을 본 적이 있냐’며 의기양양하게 그것을 막아설 수 있었다. 결국 언론에 대한 시민들의 간섭과 압박은 결코 참을 수 없는 것으로 거부됐고 언론중재법 개정은 실패했다. 이런 패턴은 윤석열 정부 초기의 검찰 수사권 분리 법안 때도 그대로 반복됐다. 이것은 주로 족벌언론들이 보여주는 ‘언론 자유의 역설’이 아닐 수 없다.
이 역설은 크게 3가지로 구성되는데 첫째, 족벌언론들은 언론의 자유를 최대한 보장하려는 정부는 물어뜯지만, 거꾸로 그것을 억누르는 권력에는 알아서 순종하며 부역한다. 둘째, 족벌언론들에게 언론의 자유는 언론사주의 자유와 광고주들의 돈벌이를 위한 자유를 뜻한다. 셋째, 따라서 족벌언론들의 자유가 보장되면 될수록 시민들의 자유는 줄어들고 피해는 커진다.
따라서 개혁언론들, 언론 개혁 단체들과 노조들도 돌아볼 필요가 있다. 족벌언론들과 손잡고 언론 피해자들을 위한 개혁을 반대하는 것이 과연 옳은 선택이었을까? 그것은 언론 개혁을 염원하던 시민들의 열망과 목소리를 스스로 허무는 길이 아니었는가? 언론중재법 개정이 성공했다면 조선일보가 이번에 양회동 건설노동자의 죽음에 대한 악의적 가짜뉴스를 퍼뜨린 것에 책임을 물을 수 있지 않았을까?
족벌언론들과 연결고리를 끊고 오류를 반복하지 말아야 한다. 물론 언론 개혁을 위한 방안의 부족함과 문제점을 지적하고 더 나은 대안을 제시하는 것은 언제나 필요한 일이다. 예컨대 수신료 문제에서도 오늘날 대다수 시민은 공중파 방송보다는 유튜브와 OTT와 SNS로 뉴스와 정보를 접하는 게 사실이다. 방송 채널도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늘어나 있다.
이런 상황에서도 왜 공영방송을 지키며 시청료를 내야 하는지에 답하며 대안을 찾아가는 것은 중요하다. 공공 인프라와 통신망을 이용해 막대한 수익을 누리는 글로벌 콘텐츠 기업들에게 세금을 부과해 공영방송의 재원을 마련하는 방안들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지금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윤석열 정부의 언론 장악과 그것을 돕는 족벌언론들에 다 함께 맞서며, 언론 개혁을 염원하던 시민들의 목소리를 다시 복원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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