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건희 고속도로 특혜' 의혹 제기는 당연한데

'각오하라' '날뛰고'… 언론에 대한 모욕과 협박

언론인·언론단체·학계 나서 사과 요구하고

언론에 자유·책임 위임한 시민 자존심 지켜내야

박성중 국민의힘 의원이 지난 11일 원내대책회의에서 김건희 씨 양평고속도로 특혜 의혹을 보도한 일부 언론사들을 향해 쏟아낸 말은 귀를 의심케 한다. 국민의 대의기구인 국회의원이, 국민 여론을 전달하는 언론을 이토록 무시하는 발언을 할 수 있을까?

박 의원은 이날 김건희 씨 양평고속도로 특혜 의혹을 보도한 16개 매체의 보도 사례를 표로 만들어 보여주면서 ‘윤석열 정부를 악마화하기 위해 양평 고속도로 음모론과 가짜뉴스만을 생산하는 좌편향 언론매체는 끝까지 책임을 묻겠다, 각오하라’고 했다고 전해진다. 또 ‘좌파 매체’들이 이번 양평고속도로 사건을 마치 기회인 양 ‘날뛰고 있다’고 했다고 한다.

언론자유를 헌법에서 보장하는 민주주의 국가의 정당, 그것도 집권 여당, 그것도 미디어 분야를 다루는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여당 측 간사의 입에서 나온 말이라고는 도저히 믿기지 않는다.  

‘좌파매체’ ‘각오하라’ ‘날뛰고 있다’는 등의 말에는 언론에 대한 공격성과 폭력성, 언론을 무시하고 비하하는 태도가 여실히 드러난다. ‘좌파매체’라는 호명은 자신에게 비판적이고 불리한 보도를 하는 매체에 낙인찍기 하듯 ‘좌파’ 딱지를 붙이고 좌파니 우파니 갈라치기 하는 것이다. ‘각오하라’는 말은 ‘앞으로 고통을 줄 테니 마음의 준비를 하라’는 적대감이 묻어있다. ‘날뛰고 있다’는 것은 ‘감정을 억누르지 못하고 흥분해서 거칠게 행동하다’는 뜻으로, 언론을 이성을 상실한 집단으로 비하하는 표현이다. 이 정부와 집권여당의 천박하고 반민주적인 언론관을 보여준다. 

 

26일 오후 국회에서 열린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전체회의에서 박성중 여당 간사가 산회를 선포한 뒤 회의장을 나서고 있다. 2023.6.26. 연합뉴스
26일 오후 국회에서 열린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전체회의에서 박성중 여당 간사가 산회를 선포한 뒤 회의장을 나서고 있다. 2023.6.26. 연합뉴스

그저 앞뒤 안맞는 궤변이거나 상대방을 기분 나쁘게 하는 막말 수준이 아니다. 이 정도면 말의 폭력이고 협박이다. 언론 보도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해서 민주주의 한 축인 언론을 향해 집권여당의 의원이 이렇게 협박과 폭력적 언사를 쏟아내도 되는지 묻고싶다.

현재 거의 모든 언론이 보도하고 있는, 갑작스럽고 비상식적인 양평 고속도로 노선변경에 많은 국민들은 혼란과 의문을 품고 있다. 노선을 변경하면 땅값 상승으로 혜택을 보게 될 사람이 다름아닌 윤석열 대통령, 부인 김건희씨와 친인척들이라는 것은 밝혀진 사실이다. 노선변경이 합리적 이유 없이 갑작스럽게 결정되었다는 증거도 계속 나오고 있어 의혹은 갈수록 커지고 있다.

여당이 만일 이런 언론보도가 사실이 아니라고 생각한다면, 그것이 잘못되었다는 설득력 있는 근거를 제시하고 반박하면 될 일이다. 그것이 민주주의 사회에서 여론이 만들어지는 과정이다. 언론보도가 틀렸음을 입증한다면, 그렇지 않아도 이 정부의 눈치를 잔뜩 보고 있는 여러 언론들이 적극 나서 이를 보도해줄 것이다.

그러나 지금 여당과 일부 ‘친윤’ ‘친김건희’ 언론들은 합리적 의심에서 출발해 시간이 갈수록 눈덩이처럼 커져가는 '김건희 특혜' 의혹을 전부 ‘괴담’이니 ‘가짜뉴스’니 하면서 아예 입을 틀어막으려 하고 있다. 이는 윤석열 정부 초기부터 계속된, 언론에 대한 일관된 윤 정부의 태도였다. ‘바이든-날리면’ 사태, 이태원 참사의 책임에 관한 의문, 천공의 국정개입 의혹 등을 정부여당은 모두 가짜뉴스로 몰았다. 최근에는 일본 핵 오염수 방류에 대한 우려와 비판, 양평 고속도로 노선 변경에 대한 의혹제기도 온통 ‘괴담’ ‘가짜뉴스’라고 한다. 입맛에 맞는 언론, 말 잘 듣는 언론이 하는 말만 빼고 모조리 '가짜뉴스' 타령이다. 언론을 얼마나 우습고 만만하게 보았으면 이럴 수 있나 싶다.

이런 모욕과 폭력을 당하고도 가만히 있는 언론 역시 문제다. 박성중 의원으로부터 ‘좌파매체’ 로 찍힌 한겨레와 경향신문이 사설에서 이를 비판했다. 그러나 사설에서 비판하고 끝낼 문제가 아니다. ‘좌파매체’로 지목된 두 매체만 발끈할 문제도 아니다.

그동안 윤 정부와 일부 친윤 매체들이 ‘가짜뉴스 근절’을 내세워 비판언론과 언론인에 대해 마구잡이 고소·고발과 압수수색을 벌여왔다. 그러나 언론은 이를 강하게 비판하고 항의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공영방송을 장악하기 위해 검찰, 감사원을 동원해 방통위, 방심위, 방문진 등 독립적인 방송 관련 기구들을 흔들어도 이를 막아낼 국민적 여론을 스스로 만들어내지 못하고 있다. 

일선 기자들이 대통령 앞에서 국민이 알고 싶은 것을 대신 질문하지 않고, 영부인 패션쇼에 취해 ‘셀카놀이’로 소중한 질문의 기회를 날리고 있는 것은 아닌가. 현업 언론단체와 언론학계 역시 검찰을 앞세운 이 정권의 위세와 위협에 눌려 스스로 입을 닫거나 목소리를 낮추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의문이 든다.

권력에 취한 정부가 언론을 우습게 여기고 함부로 대하는 것일 수 있다. 언론과 기자에게 막말하고 비하하고, 압수수색과 고소고발을 남발해도 괜찮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박 의원의 발언은 언론의 역할과 의미를 무시하고 언론 전체를 모욕·협박한 것이다. 마음에 들지 않으면 다음은 한겨레·경향이 아니라 어떤 매체든 이런 모욕과 협박의 대상이 될 것이다. 모욕을 당하고 협박을 당해도 가만히 있는 언론을 어떻게 국민이 지지하고 지켜낼 수 있을까?

언론에 대한 여당 의원의 이번 모욕적 발언과 협박에 대해 언론인, 언론단체, 언론학계가 모두 나서 항의하고 사과를 요구해야 한다. 소속 정당에 해당 의원의 적절한 조치도 함께 요구해야 한다. 언론 스스로의 자존심을 지키는 길일 뿐만 아니라, 언론에게 막대한 자유와 막중한 책임을 위임한 시민 - 언론의 주인으로서의 국민의 자존심을 살리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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