징용 배상 '재점화'…한-일 전→'정부-시민 내전'

법원, 공탁 '불수리' 사유는 "명백한 변제 거부 의사"

징용 피해자 '최후의 4인' 지원 위한 시민모금 돌입

"정부서 돈 몇푼 받으려 일본과 30년 싸운 것 아냐"

(본 기사는 음성으로 들을 수 있습니다.)

 

윤석열 대통령과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의 정상회담이 열리는 7일 오후 용산구 전쟁기념관 인근에서 '평화와통일을여는사람들' 관계자가 한미일 군사동맹에 반대하는 팻말을 들고 있다. 2023.5.7. 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과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의 정상회담이 열리는 7일 오후 용산구 전쟁기념관 인근에서 '평화와통일을여는사람들' 관계자가 한미일 군사동맹에 반대하는 팻말을 들고 있다. 2023.5.7. 연합뉴스

윤석열 정부가 강제동원(징용) 피해자들의 의사를 무시한 채 일방적으로 밀어붙인 징용 배상 판결금 공탁 시도가 법원에서 제동이 걸렸다.

이로써 강제징용 배상 문제의 조기 매듭을 위해 법원 공탁 절차를 막무가내로 밀어붙였던 윤 정부의 계획에 차질을 빚게 됐다.

윤 정부는 3월 6일 일본 전범 기업들의 불법 행위에 대한 2018년 10월 한국 대법원의 손해 배상 판결을 부정한 '제3자 변제 안'을 일방적으로 발표하고 넉 달 지난 3일 이를 거부하는 원고(피해자) 4명이 받을 '판결금'을 법원에 공탁하는 절차를 기습적으로 개시했다.

이른바 '윤석열 해법'인 3자 변제 방안은 확정판결을 받은 강제동원 피해자와 유족, 총 15명의 판결금과 지연이자를 피고인 일본 전범 기업 대신 행정안전부 산하 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이하 재단)이 지급한다는 내용이다. 그동안 원고 중 11명은 이 안을 받아들였다.

4일 광주지방법원에 따르면 '제3자 변제' 해법을 수용하지 않은 강제징용 피해자 4명 중 생존 피해자 양금덕 할머니와 이춘식 할아버지에 대한 공탁 신청이 전날 접수됐다. 광주지법 공탁관은 양 할머니에 대한 공탁은 '불수리' 결정했고, 이 할아버지에 대한 공탁은 '반려'했다.

 

지난 2018년 대법원의 배상 확정 판결을 받은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 유족들의 법률대리인인 김세은, 임재성 변호사가 3일 오후 정부서울청사 외교부 건물 앞에서 배상금 수용 거부에 따른 정부의 공탁 절차 개시에 대해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2023.7.3. 연합뉴스
지난 2018년 대법원의 배상 확정 판결을 받은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 유족들의 법률대리인인 김세은, 임재성 변호사가 3일 오후 정부서울청사 외교부 건물 앞에서 배상금 수용 거부에 따른 정부의 공탁 절차 개시에 대해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2023.7.3. 연합뉴스

법원, 공탁 '불수리' 사유는 "명백한 변제 거부 의사"

연합뉴스에 따르면, 양 할머니에 대한 공탁 '불수리' 사유는 공탁 대상자가 "변제를 허용하지 않는다"는 거부 의사를 분명히 밝힌 것이 서류상으로 증명됐기 때문으로 전해진다.

피해자 측이 별도의 '변제 거부'나 '공탁 거부' 의사 서류를 법원에 내지는 않았지만, 재단 측이 공탁이 불가피한 사유를 설명하고자 법원에 제출한 서류 중 피해자의 변제 수용 거부가 명시된 서류가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광주지법 공탁관은 이를 근거로 피해자가 공탁 거부 의사를 분명히 밝힌 것으로 판단, 공탁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춘식 할아버지에 대한 공탁은 '서류 미비'를 이유로 반려됐다. 이 할아버지도 양 할머니와 마찬가지로 명백한 거부 의사를 밝혀온 만큼 재단 측이 서류를 보완해 다시 신청하더라도 양 할머니 사례와 같은 법리가 적용되면 '불수리' 결정이 나올 수도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이에 외교부는 공식 입장을 통해 "강한 유감을 표한다"며 "즉시 이의절차에 착수해 법원의 올바른 판단을 구할 것"이라고 말했다.

외교부는 이어 "공탁 공무원이 형식상 요건을 완전히 갖춘 공탁 신청에 대해 '제3자 변제에 대한 법리'를 제시하며 불수리 결정을 한 것은 공탁 공무원의 권한 범위를 벗어난 것이자 헌법상 보장된 '법관으로부터 재판받을 권리'를 침해하는 것"이라며 "이는 유례 없는 일"이라고 주장했다.

그동안 양금덕 할머니와 이춘식 할아버지 등 생존 피해자 2명과 사망 피해자 2명의 유족 등 원고 4명은 일본 전범 기업의 사죄와 배상 참여 등을 요구하며 한국 기업 돈으로 변제받는 이 안을 거부해왔다. 특히 양 할머니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굶어 죽어도 일본의 사죄 없이는 윤석열 정부가 주는 그런 돈은 안 받겠다"고 밝혀왔다.

외교부는 전날 "정부와 재단의 노력에도 판결금을 수령하지 않거나, 사정상 수령할 수 없는 일부 피해자와 유가족분들에 대해 공탁 절차를 개시했다"고 말했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1일 서울광장 동편에서 열린 '104주년 3.1절 범국민대회'에서 일본의 식민지배에 대한 사죄와 배상을 촉구하는 상징의식을 하기 전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 양금덕 할머니를 위로하고 있다. 2023.3.1. 연합뉴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1일 서울광장 동편에서 열린 '104주년 3.1절 범국민대회'에서 일본의 식민지배에 대한 사죄와 배상을 촉구하는 상징의식을 하기 전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 양금덕 할머니를 위로하고 있다. 2023.3.1. 연합뉴스

"정부서 돈 몇푼 받으려 일본과 30년 싸운 것 아냐"

양금덕 할머니 등 미쓰비시중공업 나고야 근로정신대 피해자들을 지원해온 일제강제동원시민모임(이하 시민모임)은 4일 오전 입장문을 내고 "지난 3월 징용 피해자와 그 유족들은 정부의 변제안을 수용할 의사가 없다고 명백히 밝혔다"며 "당사자 의사표시로 제3자 변제를 허용하지 않을 때는 변제할 수 없다는 민법 제469조에 따라 이 공탁은 무효"라고 말했다.

시민모임은 "피해자들이 정부로부터 돈 몇 푼 받으려고 30여 년간 일본 정부와 싸워온 것이 아니다"라며 "전범 기업으로부터 진심 어린 사죄를 받기 위해 피해자들은 외로운 싸움을 지속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정의기억연대·민족문제연구소 등으로 구성된 한일역사정의평화행동도 이날 오후 서울 종로구 외교부 청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피해자들은 단순히 돈 몇 푼 받자는 게 아니라 일본이 저지른 전쟁범죄에 대한 사죄와 배상을 받고자 하는 것"이라며 "이번 공탁 절차 개시는 역사정의운동 탄압의 연장선"이라며 공탁 철회를 요구하는 항의 서한을 외교부에 전달했다.

 

1일 오전 서울 중구 프란치스코 교육회관에서 열린 윤석열 정부의 대일역사정의 운동과 시민단체 탄압 규탄 기자회견에서 참가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2023.6.1 연합뉴스
1일 오전 서울 중구 프란치스코 교육회관에서 열린 윤석열 정부의 대일역사정의 운동과 시민단체 탄압 규탄 기자회견에서 참가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2023.6.1 연합뉴스

징용피해자 '최후의 4인' 지원 위한 시민모금 돌입

한편 시민모임은 윤 정부의 '회유와 압박'에도 굴하지 않고 일본 전범 기업에 면죄부를 주는 '3자 변제금' 수령을 거부하는 양 할머니, 이 할아버지 등 피해자 4명에 힘을 보태기 위한 3일 시민 모금 운동에 들어갔다.

시민모임은 기자회견문을 통해 "윤 대통령은 일본에 더 이상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검은 돈이든 흰 돈이든, 이 돈 받고 끝내자고 한다"면서 "삼권분립을 기초로 하는 민주주의 국가에서 사법부 판결을 행정부가 송두리째 부정하는 것이 과연 온전한 나라인가"라고 반문했다.

오마이뉴스에 따르면, 강정채 전 전남대 총장도 호소문을 통해 "윤 대통령은 가여운 백성들이 정부의 도움 하나 없이 30년 넘는 험난한 싸움으로 얻어낸 최소의 결과마저 여지없이 깨버렸다"며 "제3자 변제라는 굴욕적인 방식을 들고나와 피해자인 우리 국민의 돈으로 일본 제국주의의 당사자인체하고 연약한 백성을 회유와 압박으로 괴롭히고 있다"고 비판했다.

법원 공탁 시도를 계기로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 배상을 둘러싼 공방이 재점화되면서, 한일전에서 본격적인 윤 정부와 시민 간의 '내전'으로 비화하는 모양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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