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공탁 9건 모두 '불수리'…복병 만난 윤석열
'불수리' 사유 비슷…"피해자의 명백한 반대 의사"
시민단체들 "국민 혈세로 일본 면책 윤 정권 규탄"
'판결금 거부' 피해자 응원 시민모금 3억 원 돌파
(본 기사는 음성으로 들을 수 있습니다.)
윤석열 정부가 강제동원(징용) 피해자들의 의사를 묵살하고 일방적으로 강행한 징용 배상 판결금 공탁 시도가 법원으로부터 줄줄이 '퇴짜'를 맞고 있다.
판결금 법원 공탁을 통해 징용 피해자들의 채권을 소멸시킴으로써 한‧일 간의 최대 걸림돌 중 하나였던 징용 배상 문제를 조기에 매듭지으려던 윤 정부가 의외의 복병을 만난 셈이다.
윤 정부는 3월 6일 일본 전범 기업들의 불법 행위에 대한 2018년 10월 한국 대법원의 손해 배상 판결을 부정한 '제3자 변제 안'을 일방적으로 발표했다. 배상 확정판결을 받은 징용 피해자와 유족, 총 20명의 판결금과 지연이자를 피고인 일본 전범 기업을 대신해 행정안전부 산하 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이하 재단)이 지급한다는 내용이었다.
이 가운데 11명은 '3자 변제안'을 수용했지만, 양금덕 할머니, 이춘식 할아버지 등 생존 피해자 2명과 정창희 할아버지, 박해옥 할머니 등 사망한 피해자 유족 7명은 일본 기업의 배상 참여 등을 요구하며 수용을 거부하고 있다.
그러자 윤 정부는 지난 3일 이들의 판결금과 지연이자를 법원에 공탁하는 절차를 기습적으로 개시한 것이다. 공탁은 일정한 법률적 효과를 얻고자 법원에 금전 등을 맡기는 제도다.
19일 현재까지 진행 상황을 종합하면, 지난 4일 광주지방법원을 시작으로 전주지법, 수원지법, 수원지법 평택지원과 안산지원 등 지방법원들이 정부의 공탁 신청에 대해 줄줄이 '불수리' 결정을 내렸다. 이에 외교부는 법원 공탁관의 불수리 결정이 '형식적 심사권'만을 가진 공탁 공무원의 권한 범위를 벗어났다고 주장하며 불복해 이의절차에 들어갔다.
법원, 공탁 9건 모두 '불수리'…복병 만난 윤석열
광주지법에 따르면 공탁관은 4일 전날 접수된 양금덕 할머니에 대한 공탁 신청을 '불수리' 결정했다. 이춘식 할아버지에 대한 공탁 신청은 서류 미비로 반려했다가 재단이 두 차례 보완을 거쳐 다시 신청했으나 18일 '불수리' 결정을 내렸다. 사유는 공탁 대상자가 "변제를 허용하지 않는다"는 명백한 거부 의사를 밝힌 점이 서류상으로 입증됐기 때문이다.
민법 469조는 '채무 변제와 관련해 당사자가 거부 의사를 표시하면 제 3자가 변제할 수 없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해관계가 없는 제3자는 채무자 의사에 반해 변제하지 못한다는 내용도 이 조항에 담겨 있다.
양 할머니 관련 공탁 '불수리'에 대한 재단의 이의신청은 광주지법 재판부가 이를 수용할지를 심리 중이다. 이 할아버지의 경우도 19일 재단이 이의신청에 들어갔다.
전주지법과 수원지법, 수원지법 평택지원과 안산지원에서도 비슷한 수순을 밟고 있다.
전주지법 공탁관은 6일 재단이 고 박해옥 할머니의 자녀 2명에 대해 신청한 공탁을 불수리하면서 '제3자 변제'에 대한 공탁 대상자(유족)의 명백한 반대 의사를 이유로 들었다. 재단은 이에 불복해 이의신청서를 제출했다.
전주지법 공탁관은 17일 재산의 이의신청을 수용하지 않았고 5일 이내에 해당 이의신청서에 의견을 달아 법원 민사부로 기록을 넘기며 민사부는 이의신청이 타당한지 다시 판단한다.
수원지법도 마찬가지다. 5일 고 정창희 할아버지의 배우자와 고 박해옥 할머니의 자녀 1명에 대한 재단의 공탁 신청을 불수리 결정했다. 수원지법 평택지원과 안산지원도 6일과 7일 각각 고 정창희 할아버지의 유족 2명과 1명에 대한 공탁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불수리' 사유 대동소이…"피해자 명백한 반대 의사"
불수리 사유는 대동소이하다. 공탁 대상자(피해자나 유족)가 내용증명 등 서류상으로 제3자 변제에 대하여 명백한 반대 의사를 표시하고 있고, 재단이 제출한 공탁서에 채무자의 동의를 얻었음을 소명하는 자료가 첨부되어 있지 않다는 내용이다.
외교부는 이에 불복해 이의절차를 밟아 나가고 있다. 상당 기간 법정 싸움이 예상된다. 향후 진행 수순은 공탁이 불수리되면 이의신청을 하고, 그것이 법원에서 기각되면 항고와 재항고를 거쳐 대법원의 최종 심리를 거치게 된다.
법률적 쟁점은 재단이 피해자들의 명백한 반대 의사를 무시하면서까지 제3자 변제(공탁)를 통해 얻게 될 '정당한 이익'이 있느냐다. 현재로선 재단이 얻게 될 '정당한 이익'이 없다는 견해가 우세하다.
대법원이 최종적으로 공탁 '불수리 결정'에 손을 들어준다면 피해자와 유족들은 배상금에 대한 법원의 강제집행 절차를 속행해 압류 상태인 일본 전범 기업의 국내 자산 현금화를 통해 강제로 변제받을 수 있다.
그 경우 대법원 확정판결을 부정하고 일본 전범 기업에 면죄부를 주려던 윤석열 대통령은 큰 정치적 타격을 입고 한‧일 관계도 제동이 걸릴 수 있다.
시민단체들 "국민 혈세로 일본 면책 윤 정권 규탄"
한편 윤 정부의 '회유와 압박'에도 일본 전범 기업에 면죄부를 주는 '3자 변제금' 수령을 거부하는 양금덕 할머니, 이춘식 할아버지 등 피해자 4명과 유족들을 응원하고자 지난달 29일 시작한 '시민모금' 운동은 19일 만에 3억 원을 돌파하는 등 순조롭게 진행 중이다.
정의기억연대·민족문제연구소 등으로 구성된 한일역사정의평화행동은 18일 보도자료를 통해 "제3자 변제를 거부하는 피해자들의 투쟁을 지켜내기 위한 시민사회단체의 연대행동이 구체화되면서 정부의 대응 움직임도 빨라지고 있다"며 "모금 목표액은 10억 원으로 8월 15일 전후로 1차로 피해자들에게 지급될 예정"이라고 말했다.
앞서 한일역사정의평화행동은 17일 '제헌절 부치는 입장문'을 내고 "정부가 이의신청에 나선 것은 피해자들의 정당한 권리를 짓밟기 위해 사생결단 끝장 보기에 나서겠다는 선언"이라며 "일본 기업 면책을 위해 국민 혈세로 한국 사법부와 싸움에 나선 윤석열 정권을 규탄한다"고 주장했다.
한일역사정의평화행동은 이어 "정부는 대법관 출신 민영일 변호사, 이명박 정부 청와대 법무비서관을 지낸 강훈 변호사 등 8명의 호화 변호인단까지 꾸린 것으로 확인됐다"며 "우리 국민의 혈세로 호화 변호인단을 꾸려 일본 피고 기업의 배상 책임을 면해주기 위해 우리 사법부와 싸우겠다는 것으로 경천동지할 일"이라고 개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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