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해자들을 침묵하게 만드는 권력의 작동 방식
'정순신 사태'보다 심각한데도 검찰‧언론은 덮어
'사냥'은커녕 '보호'…또 드러난 극단적 이중잣대
'니 부모 얼굴이 보고싶다'…영화보다 잔인한 현실
윤석열 정부가 내년 총선 전에 언론과 방송 장악을 완성하기 위해서 한상혁 방송통신위원장을 범죄자로 낙인찍어서 쫓아내고, 그 자리에 대신 앉히려는 이동관 대통령실 대외협력특보는 이명박 정권 시절 언론 탄압과 장악의 설계자로 악명높았다.
이동관 특보가 온갖 치졸한 수단과 방법으로 언론 통제와 길들이기를 시도한 이력은 많은 증거로 남아 있다. 국정원까지 등장하는 언론 장악과 통제 시도의 증거만으로도 그는 절대로 자격이 없다는 사실이 명백하다. 그런데 현 정부에 그것은 오히려 적임자라는 뜻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현재 더 신경을 쓰고 있는 것은 이동관 특보 아들의 ‘학폭’ 문제이다.
그 양태가 ‘정순신 사태’와 비교해도 훨씬 잔인하고 폭력적이었다는 특징이 있다. 또 다른 특징은 '학교 폭력' '부모 찬스' '입시 불공정' 등 소위 국민 정서를 건드리는 핵심 요소들로 가득하지만 주요 언론의 취재와 보도가 보여주는 양상과 정도가 소극적이라는 데 있다. 특히 족벌언론들만 보면 이동관 특보 아들의 ‘학폭’이 논란이 되고 있다는 사실도 잘 알기 어려울 정도이다.
그러다가 최근 이동관 특보가 ‘사실무근이고 가짜뉴스’라고 해명 자료를 내고 학폭 피해자의 한 명으로 알려진 사람이 이를 뒷받침하는 인터뷰를 하자 더 대대적으로 받아쓰고 있다. 이것은 족벌언론들이 조국 교수와 자녀들의 이마에 ‘입시 불공정과 부모 찬스’라는 주홍글씨를 박아놓고 아직까지도 심심하면 불러내어 펜으로 난도질하며 돌팔매질을 촉구하는 것과 너무나 대조적이다.
그런데, 주류언론들의 침묵과 함께 또 다른 특징은 피해자들의 ‘침묵’이다. 이토록 잔인한 폭력의 피해자들은 가해자가 사회적으로 출세하고 주목받기 시작하면 참기 어려운 억울함에 폭로에 나서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스포츠 선수나 연예인의 경우에 수십 년 전의 과거가 다시 불려내지고는 했다.
반성과 사과를 해도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고 대중적 호기심 속에서 수많은 언론이 그것을 파헤치면서 새로운 증언자들을 찾아 나서는 경쟁도 벌어졌다. 그런데 이동관 특보 아들의 경우는 정반대로 소수 언론의 관심과 당시 교사 등의 증언에도 막상 피해 당사자들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고 있다.
이를 의아하게 지켜보는 사람들은 이동관 아들의 학폭을 덮어주었다는 의심을 사고 있는 하나고가 연루된 또 다른 의혹들에 대한 고발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그 사건을 다룬 것이 3년 전 MBC <스트레이트> ‘의문의 하나고 입시 뒤죽박죽 채점표’와 2년 전 MBC <PD수첩> '7년의 침묵 - 검찰, 언론, 그리고 하나고'이다.
이것을 보면 특권층 자녀들이 많이 가서 ‘귀족학교’라고 불리며 학생 3명 중 1명은 서울대로 보낸다는 대표적 자립형사립고인 하나고에서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알 수 있다. MB정권 핵심 실세 이동관 아들의 학폭 의혹만 덮었던 것이 아니라, <동아일보> 사장 딸의 점수 조작 입시부정 의혹과 대규모 입시부정 의혹도 덮였다는 이야기이다.
이런 의혹들을 덮는 과정에서 책임자로 등장하는 것은 하나금융 대표에서 하나고 이사장으로 간 MB 절친 김승유, 검찰총장 출신에 하나고 이사장이 된 김각영이다. 이동관 특보의 아들 학폭에 대한 수사를 무혐의로 마무리한 서부지검과 (윤석열 대통령의 측근으로 알려진) 김도균 검사는 <동아일보> 사장 딸의 입시비리 의혹을 무혐의로 마무리하는 데도 등장한다.
또한, 이동관 특보의 아들 학폭을 취재하고 보도하는 데 관심과 열의를 보이지 않는 족벌언론과 주류언론들은 <동아일보> 사장 딸의 입시비리(와 아빠찬스 취업 특혜) 의혹에도 대부분 눈을 감고 입을 닫았다. 그래서 당시 <PD수첩>이 인터뷰를 시도했을 때 <동아일보> 사장 딸의 냉소적 답변은 매우 인상적으로 들린다.
‘만약 입시 부정이 사실이면 내가 완전히 언론의 사냥을 당하고 있어야 하는데 지금 특정 언론만 문제 삼고 있고, 그것만 봐도 사실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고 답했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언론이 무관심하고 침묵하는 게 바로 자신의 무죄를 입증한다는 논리였다.
이렇게 대부분의 언론이 외면하고 검찰이 덮어버리는데도 침묵하지 않고 <동아일보> 사장 딸의 입시 비리와 취업 특혜 의혹을 내부 고발하고 문제 제기한 하나고의 일부 교사들과 <동아일보> 인턴기자가 있었다. 그들은 학교에서 고립되거나 해직됐고 <동아일보>의 민형사상 고소고발과 소송에 시달렸다.
정순신 전 검사가 학폭 피해자를 괴롭힌 방법과 유사한데, 이것은 성폭력 사건들에서도 가해자들이 피해자와 조력자들을 괴롭히고 입을 막으려고 할 때 자주 사용하는 방법이다. 허위사실 유포와 명예훼손으로 소송을 걸고 통장을 압류하면서 몇 년간 괴롭히면 피해자와 조력자들은 고립되고 지치고 입이 막혀 마침내 더 이상의 문제 제기를 포기하게 된다.
그나마 이런 피해자와 목격자들의 목소리를 대변해 온 MBC <스트레이트>와 <PD수첩> 같은 탐사보도 프로그램들은 윤석열 정부에 의해서 ‘가짜뉴스’ 진원지로 낙인찍혀 이제 이동관 특보가 방통위원장에 임명되면 제일 먼저 손 볼 대상으로 예상된다. 이런 상황을 지켜보던 피해자들은 ‘증언해도 달라지지 않고 나만 힘들어질 것’을 깨닫게 된다.
결국 우리 사회에서 진정한 권력을 보여주는 핵심은 누가 비리와 부정을 저지르냐가 아니다. 그런 잘못을 저지르고도 피해자들과 목격자들의 입을 막고 언론과 검찰의 도움을 받아서 사건을 덮을 수 있느냐가 더욱 중요하다. 그런 힘이 없는 만만한 이들은 아무리 오래전 작은 잘못을 저질렀거나 심지어 잘못이 없어도 언론과 검찰의 끝없는 사냥을 당하게 된다.
조국 교수나 윤미향 의원의 경우를 보면 잘 알 수 있다. 두 사람과 그 자녀들은 족벌언론과 정치검찰, 재벌 등과 별로 친하지 않고 오히려 미운털이 단단히 박힌 탓에 지난 수년간 족벌언론들의 조리돌림과 정치검찰의 압수수색과 수사 기소에 끝없이 시달렸다.
이것이 만들어내는 엄청난 압력은 친구라고 여겼던 사람들도 등을 돌려서 돌을 던지며 ‘고발’에 나서도록 이끌었다. 조국 교수가 민정수석이 되기 전부터 딸이 받았던 장학금을, 검찰은 뇌물이 안되니 ‘김영란법’으로 걸고, 서울대는 그것을 핑계로 파면을 결정한 최근의 기막힌 상황도 많은 것을 말해준다.
반면, 정말 막강한 권력을 가진 이들은 피해자와 목격자들이 감히 나서서 입을 열지 못하거나 지쳐서 포기하도록 만들 수 있고 언론과 검찰의 사냥이 아니라 도움과 보호를 받을 수 있다. 검찰은 하나고에 대한 몇 차례의 고발과 재수사에도 불구하고 거듭 무혐의와 불기소 처분을 내렸고 그 흔한 압수수색과 소환조사도 거의 하지 않았다.
즉, 보수언론과 심지어 개혁언론까지 한목소리로 줄곧 어떤 이들을 ‘부도덕한 범죄집단’이라고 낙인찍고 돌을 던지고 있다면, 그들은 만만한 표적이거나 억울한 희생양일 수가 있다. 반면 진짜 힘 있는 권력자들의 비리와 범죄는 묻힐 가능성이 크다.
이동관 특보는 몇 년 전 극우 유튜브 <신의 한수>에 출연해서 보수 언론, 전경련과 경총 등 재계, 검경과 공무원 조직 등을 “보수를 떠받치는 몇 개의 축”이라고 설명했다. 맞는 말이다. 족벌언론-재벌-검찰·경찰의 힘을 이용할 수 있는 기득권 카르텔에 속해 있으면 많은 것이 쉽고 편하게 풀릴 수가 있다.
언론은 내 말을 믿어주고 받아쓸 것이고, 재벌은 재정적으로 뒷받침해 줄 것이며, 경찰과 검찰은 내가 미워하는 이들을 계속 압수수색하고 체포동의안을 제출할 것이다. 괜히 힘들게 촛불을 들고 나서며 윤석열 정부를 욕하는 글을 올리다가 언론과 똑똑한 지식인들에게 ‘한국 정치를 망치는 악성 팬덤’이라고 매도당할 일도 없다.
나는 지난해 학교폭력을 소재로 한 영화 <니 부모 얼굴이 보고싶다>를 보고서 실망해 ‘가해학생과 그 부모들을 너무 전형적인 그저 돈 많고 양심 없는 사람들로 그렸고 과장된 이야기는 개연성이 떨어진다. 인간과 사회는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고 평가절하하는 글을 SNS에 올린 적이 있다.
그 영화에서 가해 학생들의 부모인 사학재단 이사장, 병원장, 경찰청장 등은 피해자와 목격자를 침묵시키며 진실을 덮는다. 이제 너무 전형적인 인물들이 등장해서 개연성이 떨어지는 일을 현실로 만들어버리는 사태를 계속 접하면서 돌아보니, 과연 그 영화에 대한 내 평가가 옳았는지 의심스러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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