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거 조사 없이 면직 사유 사실 관계 인정
'긴급 필요' 인정하면서도 신청 기각 결정
점수 조작·허위 보도자료 등 '사실'로 판단
한 전 위원장 "불복·이의 절차 찾아볼 것"
민주 "언론탄압· 방송장악 막아낼 것"
한상혁 전 방송통신위원장이 윤석열 대통령의 면직 처분에 불복해 법원에 제기한 집행정지 신청이 기각됐다.
서울행정법원 행정1부(강동혁 부장판사)는 23일 한 전 위원장이 윤석열 대통령을 상대로 낸 면직 처분 집행정지 신청을 기각했다. 그러나 본안 소송에 앞서 '회복하기 어려운 손해'를 방지할 필요가 있는지, 본안에서 다툴 여지가 있는지'를 주안점으로 두는 일반적인 집행정지 신청 사건과 달리, "일부 면직 사유가 소명됐다"는 판단을 전제로 한 결정이라는 점에서 대단히 이례적이다.
법원은 집행정지 소송의 가장 중요한 요건인 '긴급한 필요성'에 있어서 "이 사건 면직처분으로 인해 잔여 임기를 채우지 못하고 직무수행의 기회가 박탈되는 신청인에게 회복하기 어려운 손해를 예방하기 위하여 긴급한 필요가 있다고 인정되기는 한다"면서도, 한 전 위원장이 "TV조선 재승인 심사 평가점수가 사후 수정되는데 지시·관여하였고, 언론보도에 대응하여 허위 보도설명자료를 작성·배포하도록 했다"며 면직 사유를 '사실'로 인정했다.
점수 조작·허위 보도자료 등 '사실'로 판단
법원은 이에 따라 "TV조선 재승인 심사의 공정성이 현저하게 침해됐다고 볼 수 있고, 방통위원장으로서 소속 직원에 대한 지휘·감독의무를 방기하였다고 평가할 수 있다"며 기각 사유를 밝혔다.
이 과정에서 한 전 위원장은 애초 재승인 심사기준을 충족한 점수를 보고받았고, 이후 과락이 발생했다는 보고를 다시 받았을 때 점수가 사후 수정됐다는 점을 인지했으리라고 보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재판부는 지적했다.
그런데도 한 전 위원장은 사실관계와 경위 조사를 하려는 아무런 노력을 기울이지 않았고, 과락 결과를 토대로 TV조선 청문 절차와 조건부 재승인 안건을 상정하도록 지시했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조작 의혹에 대한 감사원의 감사 개시됐을 때 '방통위는 심사위원들의 점수평가에 관여하지 않았다'는 취지로 허위사실이 기재된 보도설명자료를 작성·배포하게 했다는 공소사실도 소명됐다는 전제로 이번 판단을 내렸다.
그러나 이는 본안 소송에서 증거를 바탕으로 사실 여부를 다퉈야 할 사항으로, 집행정지 소송 재판부가 본안 소송까지 진행한다는 점에서 사실상 증거 조사 없이 본안 판단을 미리 해버린 것과 같은 결정이다.
한 전 위원장 "불복·이의 절차 찾아볼 것"
KBS 보도에 따르면 한상혁 전 위원장은 행정법원의 집행정지 기각 직후 "본안소송에서 다뤄야 할 것을 집행정지에서 다룬 것 같다"면서 "증거조사를 해야 하는 걸 하지도 않고 사실 관계를 인정하는 느낌이 든다"고 밝혔다. 이어 "정해진 임기(올해 7월) 내에 정리될 것 같지 않아 보인다"면서도 "불복 절차를 살펴보고 결정에 대한 이의 절차를 찾아보겠다"고 강조했다.
법무법인 파랑 조상호 변호사는 "처분의 집행정지 재판 단계에서는 그 처분에 관한 자료를 오로지 행정청이 독점하고, 달리 신청인에겐 증거개시권이 인정되지 않는 상태에서 본안 승소가능성을 사실상 부정하는 이유로 집행정지 신청을 기각한다는 것이 쉽게 납득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또한 "통상 본안 부분은 패소가능성이 명백하지 않을 것 수준을 요구하는 것인데, 영장 법원도 다툼이 예상된다고 보아 구속영장 청구를 기각했는데, 증거 조사 없이 패소가 명백하다고 보고 신청을 기각한 것은 전례가 없어 보인다"고 말했다.
민주 "언론탄압 사실 부정 아냐 방송장악 막아낼 것"
여야는 23일 법원의 한 전 위원장 집행정지 신청 기각에 대해 엇갈린 반응을 내놨다.
국민의힘 강민국 수석대변인은 논평에서 "지극히 당연한 결과"라며 "한 전 위원장의 죄는 매우 중하다. 정권의 입맛에 맞지 않는 한 방송사를 재승인이라는 절대적 권한을 남용해 찍어내기식으로 압박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한 전 위원장은 비록 늦었지만, 자신의 죄를 인정하고 승복하는 모습을 보이는 게 국민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라고 강조했다.
반면, 민주당 언론자유특별위원회는 성명을 내고 "방통위를 정상화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마저 사라져버렸다"면서 "그러나 윤석열 정권이 노골적으로 벌여온 언론탄압 사실이 부정되는 건 아니다"고 밝혔다.
또 "김효재 방통위원장 직무대행이 정권 뜻대로 공영방송 TV 수신료 분리 납부를 졸속 추진하고, TBS의 돈줄을 마르게 해 듣기 싫은 방송을 폐지하도록 한다"며 "언론을 정권의 나팔수쯤으로 만들려는 저의는 사라지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특위는 "윤석열 정권의 언론장악에 반대하는 야당, 시민사회와 뜻을 모아 언론장악 시도를 막아내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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