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르도안 독재 심판론' 안 통한 이유들
민심 못 읽은 노선과 정책으로 정권교체 호기 놓칠 듯
5월 14일, 튀르키예 전국의 거리는 한산했다. 365일 내내 북적이던 카페는 문을 닫았다. 시장, 식당, 주점 등 유흥업소를 찾는 인파도 보이지 않았다. 선거 때마다 일어나는 폭력사태를 방지하기 위해 대중의 모임, 알코올 소비, 무기소지를 제한하는 규정 때문이다. 선거 당일은 폭풍의 눈처럼 고요했고, 그만큼 팽팽한 긴장감이 감돌았다. 유일하게 분주했던 곳은 투표장이었다. 튀르키예 공화국 수립 100년을 맞아 새로 뽑게 될 대통령과 국회의원들에 따라 이 나라의 미래가 달라질 것이고, 중동, 중국, 러시아, 미국, 유럽 등 국제 정세에 미칠 파장이 커 전 세계에서도 초미의 관심이 쏠렸다. 선거는 예측만큼 역대급이었다. 유권자 6419만 651명 가운데 5583만 6055명이 참여해 투표율 86.89%를 기록했다. 단 한 건의 불미스러운 사건 사고 없이 선거가 마무리되었다.
오후 다섯 시를 조금 넘긴 후 양쪽 진영 모두가 숨죽이며 개표 상황을 지켜보았다. 개표 10% 시점에서 에르도안 대통령은 60%에 가까운 득표율로 순조로운 출발을 보인 반면, 야권 후보의 득표율은 30%에 그쳤다. 시간이 흐르는 동안 두 후보 사이의 차이가 좁혀지기는 했으나 결과는 야권의 예측을 크게 빗겨 나갔다. 에르도안 대통령이 49.5%를, 야권 단일 후보인 케말 클르츠다로을루는 44.9%에 그쳤던 것이다. 야당이 압승을 하거나 여당이 선전하더라도 깻잎 한장 차이의 승부로 점쳐졌지만, 두 후보 사이의 차이는 깻잎 한장이 아닌 250만 표 이상이었다. 야당에 더욱 충격적인 소식은 국회의원 선거 결과였다.
에르도안 대통령이 이끄는 여권 연대 ‘인민동맹(People‘s Alliance)’은 절반에 가까운 49.47%를 얻었고, 전체 국회 의석수 600석 중 과반이 넘는 322석을 차지했다. 반면 야권 대선 후보 클르츠다로을루를 중심으로 6개 야당이 뭉친 ‘국가동맹(Nation Alliance)’은 35.01%의 득표율로 213석을 얻는 데 그쳤다. 이 밖에도 소수 정당인 녹색 좌익당과 노동자당의 연대 ‘빵과 자유’ 연합이 65석을 얻었다. 정부 여당인 정의개발당은 이전 선거에 비해 의석수를 상당수 상실했지만 35.61%의 지지를 받았다. 반면 좌우 막론하고 6개 당이 뭉쳐 반에르도안 전선을 꾸린 국민연합 전체의 표는 정의개발당 단독 득표에도 미치지 못하는 35.01%에 불과했다.
영국 가디언지는 15일 기사에서 에르도안 대통령의 비자유적인 민주주의는 인권 문제로 고통받는 인사들에게 쓰라린 실망을 안겨주었고, 이번 선거는 불길한 전조라고 보도했다. 서구 언론들이 지난 이십여 년 동안 튀르키예 정치를 바라보는 시각은 줄곧 독재와 자유, 권위와 민주의 구도를 벗어나지 않았고, 튀르키예 야권의 목소리도 다르지 않았다.
서구 혹은 서구 친화적인 튀르키예 야권은 튀르키예인들의 민심을 제대로 읽는 것일까? 질문을 다르게 던져본다. 만약 그런 시선이 옳은 것이라면 왜 튀르키예 국민 대다수는 청렴하고 평화로우며 정의롭다는 사회민주진영 인사들을 외면해 왔을까? 대신 왜 경제를 말아먹은 주범이고, 언론과 민주세력을 탄압하는 나쁜 독재자이며 부정부패의 화신으로 각인된 에르도안 대통령에게 한 번 더 기회를 준 것일까? 튀르키예의 정치를 양극화와 흑백논리로 규정하는 안경만으로는 이 나라의 다채로운 속내를 꿰뚫어볼 수 없는 것은 아닐까? 이 기사에서는 튀르키예인들의 어떤 정서가 선거 결과를 좌우했는지 이해해보고자 한다.
지진 지대 이재민들의 표심
3월 말 총선과 대선 경쟁이 본격화되면서 여론은 누구를 차기 대통령으로 뽑아야 할지, 튀르키예가 직면한 총체적 난국을 어떻게 풀어가야 할지에 관한 토론으로 뜨거웠다. 정치 뉴스가 언론, 방송, 소셜 미디어를 도배해 겉으로는 석 달 전 대참사가 잊혀진 듯했지만, 튀르키예 국민들의 마음과 눈길은 여전히 아픈 곳을 향하고 있었다. 피해 복구 지역의 규모가 클 뿐만 아니라 직간접적인 이재민들의 숫자가 1500만여 명에 달하는 만큼 이 지역의 표심이 어디로 기울지 초미의 관심이 쏠렸다.
이미 2019년 지방선거 이후부터 국민의 60%가량은 에르도안 정부에 피로감을 호소했다. 극심한 인플레이션과 외환 위기, 민생경제의 쇠퇴, 민주 시민 사회에 대한 압력 등 이 정부가 무너질 이유는 차고도 넘쳤다. 야권이 자신감을 보이는 가운데 2월 6일에는 대참사가 발생했다. 여당의 미흡한 초동대응이나 건설 공화국의 어두운 면, 부정부패의 실상이 속속들이 보도되었다. 야권은 연일 강도 높은 비난으로 에르도안 정부에 융단폭격을 가했다. 지진 지대는 여당의 텃밭이었지만 5만 명 넘게 희생된 대지진으로 콘크리트 지지층마저 갈라지기 시작했고, 야당 앞에는 드디어 정권교체의 밥상이 차려진 듯했다. 6개 야당이 손잡은 ‘국민연합’의 후보 케말 클르츠다로을루는 지진 지대를 찾아 부패하고 권위주의적인 에르도안 대통령의 실정으로 사태가 악화된 만큼 민주 세력을 지지해달라고 호소했다. 후보는 이재민들에게 대통령으로 당선되면 1년 이내에 무상으로 주택을 제공하겠다고 공약했다.
카흐라만마라쉬, 가지안텝, 산르우르파, 오스마니에, 아드야만, 말라티야, 엘라지, 아다나, 하타이 등 지진으로 초토화된 지역 주민들의 민심은 어디로 향했을까? 의외의 결과였다. 정부 여당이 압승을 거뒀다. 지진의 진앙지였던 카흐라만마라쉬의 경우 에르도안 대통령의 지지는 70.87%를, 야권 후보는 23.35%를 얻었고, 다른 도시들에서도 여권은 야권의 두 배 넘는 지지를 이끌어냈다. 도시가 완전히 무너진 하타이에서조차 48.83%가 에르도안 대통령을, 36.41%가 케말 클르츠다로을루 후보를 지지했다.
정권심판의 회초리를 누구보다 먼저 들 것 같았던 지진 지대 이재민들은 왜 이런 선택을 했을까? 에르도안 대통령은 CNN Turkey 인터뷰에서 "이재민들이 정부 여당을 더 신뢰한 것 같습니다"라고 말했다. 이미 3월 중순 야당에 불길한 조짐은 드러나기 시작했다. 누가 피해 복구를 잘할 것 같냐고 묻는 여론조사에서 이재민들의 60~70%는 정부 여당이라고 답변했다. 이 지역 주민들의 눈에 정부는 정치적 성향과 무관하게 피해 복구에 집중하고, 자신들이 초래한 위기에 책임지는 자세를 보여주었고, 위기관리에 능하다는 인상을 남겼다. 게다가 에르도안 대통령이 이재민들의 상처를 보듬어주고, 자신들의 잘못에 대해 용서를 구하는 등 정서적 공감을 유발하는 반면, 야권 인사들은 지진 지대를 정치유세장쯤으로 활용한다는 의심을 불러일으켰다. 야권연대는 ‘약속드립니다’라는 슬로건을 내걸었지만, 지난 지방선거에서 당선되고도 공약을 지키지 않은 야권 정치인들은 구설수에 올랐다. 이번에도 야당이 실현 불가능한 공수표를 날리며 표를 얻는 데에만 급급하다고 본 이재민들은 정부 여당보다 오히려 야당에 싸늘한 시선을 보냈다.
선거가 끝난 지 채 몇시간도 지나지 않아 이재민들의 표심을 보여주는 사건이 일어났다.
선거 다음 날인 5월 15일 야당 국회의원이 새롭게 당선된 테키르다아 지역에서는 8월까지 머물기로 약속받고 지진 지대에서 피신한 이재민들에게 당장 나가라는 퇴거 명령을 내렸다. 이재민 고아와 영유아 보조금을 삭감하거나 음식물 지원을 중단하는 지역도 속출했다. 일부 극성 야권 지지자들 사이에서는 이재민들에 대한 혐오와 비난의 메시지가 돌았다. 이재민들이 여권을 밀어준 데 대한 폭력이었다. 아드야만의 한 소년은 "지진이 일어났을 때 죽었으면 지금 이런 수모를 당하지는 않았을 텐데"라는 말을 해서 튀르키예 인들의 가슴에 큰 반향을 일으켰다. 피해자들의 상처에 소금을 뿌리고, 증오의 씨앗을 심는 행태는 아직 치르지도 않은 다음 선거의 결과를 보여주는 것이 아니냐고 친여 성향의 정치평론가들은 분석한다.
튀르키예의 운명은 우리 손에 달려 있다
올해 유권자 6400여만 명 가운데 1200여만 명이 쿠르드 민족이다. 쿠르드 민족은 흔히 튀르키예의 소수 민족으로 간주되지만 정권 연장이나 교체에 결정적인 변수로 작용할 만큼 영향력이 크다. 여야 진영이 쿠르드 민족의 협조를 호소하는 과정에서 관전포인트가 된 것은 인민민주당의 행보였다. 쿠르드 민족정당인 인민민주당은 급진적 민주주의, 의회제, 페미니즘, 성적 소수자, 청년, 평등주의를 기조로 하는 세속주의 정당이다. 2012년 창당 이래 꾸준히 성장세를 보이며, 2015년에는 13.12%의 지지를 얻어 국가에서 세 번째로 큰 전국 정당으로 발돋움했다. 그러나 테러 단체인 쿠르드 노동자당과 연관이 있다는 이유로 2016년 당대표를 비롯해 만여 명에 가까운 인민민주당 관계자들이 투옥되었다. 또한 당은 공식적인 정당 활동을 하지 못해 이번 선거에서는 ‘녹색 좌익당’의 이름으로 국회의원 후보를 내놨다.
서구에서는 쿠르드 민족 정당에 단호하게 대처하는 에르도안 정부를 향하여 소수 민족의 권리를 짓밟는다고 비판한다. 튀르키예 국민들도 같은 생각을 할까? 국민의 80%는 쿠르드 민족과 공생에는 문제가 없지만 쿠르드 무장 단체 PKK의 활동을 용납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국제 사회에서 테러리스트 단체로 지목된 쿠르드 노동자당이 1978년 무장 투쟁을 시작한 이래 4만여 명 이상이 목숨을 잃었다. 2015년 한 해에만 테러와의 전쟁에서 숨진 사람들이 6561명이었으며 이 중 611명이 민간인이었다. 노동자당은 특히 이스탄불, 앙카라와 같은 대도시에서도 자살폭탄 테러를 자행해 무고한 시민, 관광객들이 목숨을 잃는 사례가 드물지 않았다. 튀르키예 사회에서 안보는 선거 때마다 등장하는 정치 이슈가 아니라 목숨을 좌우하는 현실이다. 여전히 테러가 삶을 위협하지만, 극단적 성향의 쿠르드 국회의원들은 정부군과의 교전에서 사망한 테러리스트의 장례식에 조문을 가고, 당 공식 사이트에 테러리스트의 사진을 게재하며 그들을 영웅으로 칭하면서 튀르키예 국민 감정을 자극한다. 서구의 언론들은 이런 사실에 관해 눈을 감는 대신 쿠르드 민족을 비호하는 데 급급하다. 만약 인권을 중시하는 서구의 한 나라에서 비슷한 상황이 벌어진다고 상상해보자. 미국 정부군이 알카에다 테러범을 사살했는데, 야당 국회의원이 그 테러범의 장례식에 참석할 뿐 아니라, 그들의 폭력을 미화한다면 국민은 그 국회의원과 소속 정당을 어떻게 바라보아야 할까? 그리고 정부가 국민의 안전을 지키지도 못하면서 두 손 놓고 있다면, 어떤 국민이 그 정부를 신뢰할 수 있을까?
쿠르드 노동자당이 테러를 저지르는 목적은 하나다. 튀르키예 영토를 분리하여 쿠르디스탄 민족 독립 국가를 세우는 것이다. 100여 년 전 오토만 투르크 제국이 무너질 무렵 서구 열강의 개입으로 오토만 제국의 영토에서 팔레스타인, 시리아, 레바논 등이 떨어져 나갔다. 이때부터 쿠르드 민족은 외세와 손을 잡고 튀르키예에서 분리독립하려는 투쟁을 시작했다. 아타튀르크는 튀르키예 독립 전쟁에서 프랑스, 영국 등 서구 열강을 저지했고, 쿠르디스탄 분리 독립을 막아 현재의 국경을 확정했다. 그 당시 튀르키예의 자주를 위해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던 동부전선은 올해 지진이 일어났던 카흐라만마라쉬, 가지안텝, 산르우르파 등이었다. 지진으로 삶의 터전을 잃었던 주민들이 한 번 더 잃을 수 없었던 것은 100년 전 피로써 지켜냈던 이 땅이었다.
작년부터 반에르도안 전선을 꾸린 6개 야당에게 쿠르드 민족의 협조는 절실했지만, 연대 내부에서도 국민들 사이에 반감을 일으키는 쿠르드 정당 인민민주당과의 협상이 약이 될지, 독이 될지에 관해 쉽게 합의를 보지 못했다. 결론적으로는 쿠르드 민족들이 자체 대선 후보를 내지 않는 대신 단일화 후보 케말 클르츠다로을루를 지지하는 구도가 형성되었다. 여권 내에서는 야권이 무장테러리스트들을 싸고 도는 정당과 더러운 흥정을 한다는 비판이 쏟아져 나왔다. 야권연대 내부에서조차 ‘우리가 테러리스트의 그림자 아래서 살 수는 없다면서 쿠르드 정당과의 협치를 부정하는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민족주의 정당 출신 국회의원 ‘야부즈 아으랄리올루’는 “집권당은 10년 만에 귀가 먹었고, 눈이 멀었다. 그러나 야당은 권력을 잡기도 전에 귀머거리와 장님이 되었다”고 성토하며 탈당했다.
클르츠다로을루 후보가 쿠르드 정당 인민민주당 당사를 방문해 이 세력간의 협치가 분명해지자 테러리스트들은 “튀르키예 파시스트 정권이 권력을 쥔 이상 미래는 분명하다. 이 정부는 내전을 준비하고 있고, 우리는 그에 대해 강한 무장 투쟁을 준비해야 할 것이다” “이제 우리 동지들은 자유의 몸이 될 것이다” “쿠르드 민족이 새 나라를 건설할 것이다”라는 등의 메시지를 연이어 내놨다. 트로이 전쟁을 일으킨 파리스의 사과처럼 쿠르드 테러리스트들과 야권의 연대는 튀르키예 정치판을 뒤흔들었다. 이미 시리아, 이라크 등 튀르키예의 이웃 나라들은 수십년째 내전의 고통을 치르고 있다. 쿠르디스탄 분리독립은 튀르키예 인들에게 마지노 선이었다. “‘튀르키예 대통령이 누가 될지는 우리 손에 달려 있다”는 쿠르드 정당 관계자의 발언은 국민들의 민족 감정에 불을 붙이기에 충분했다.
‘튀르키예의 주인은 우리다, 이 나라의 운명은 쿠르드인들이 아니라 우리 손에 달려 있다’는 민족주의 정서가 빠르게 퍼져나갔고, 표심은 국회의원 선거에서 야권의 패배로 드러났다.
권위주의 지도자를 무너뜨릴 대항마인가?
케말 클르츠다로을루 튀르키예 제1야당 공화인민당의 대표이며, 에르도안 정권 타도를 목적으로 2022년 6개 야당이 연대한 ‘국가동맹’의 단일 후보로 출마했다. 국가동맹은 강력한 지도자의 권위에 의존하는 대통령제 대신 대화와 타협에 바탕을 둔 의회제로의 복귀를 공약으로 내걸었다. 정치, 경제, 사회 각 분야에서 민주주의를 되살려 각 체제가 자율적으로 돌아가는 건강한 국가를 만들겠다고 약속했다. 외모 때문에 '튀르키예의 간디'라는 별명을 가진 클르츠다로을루는 권위주의적 지도자 에르도안 대통령과 선명한 대비를 보였고, 독재와 민주, 공포와 온화함, 불통과 소통 등의 대립 구도가 선거 내내 두드러졌다. 국가동맹은 세속주의, 이슬람, 공화주의, 민족주의 정당들과 더불어 에르도안 정부에서 복무했던 전직 장관, 총리에 쿠르드 민족 정당까지 다양한 세력들을 확보해 민주주의의 부활을 외쳤다. 야권 연대는 선거의 제왕인 에르도안 대통령을 무너뜨릴 어벤져스 팀이었을까?
성적표는 초라했다. 여섯개 당이 합쳐 받은 지지가 35.01%로, 정의개발당 단독 득표 35.61%에도 미치지 않았다. 특히 대선후보 클르츠다로을루가 당대표를 맡은 공화인민당의 득표율은 25.33%에 그쳤다. 야당의 참패가 새삼스러운 것은 아니다. 공화인민당은 1946년 튀르키예에서 다당제가 도입된 이후 1961~1965, 1973~1977을 제외하고는 단 한 번도 정권을 잡지 못했다. 클르츠다로을루가 2010년 대표직을 맡은 후에도 사정은 달라지지 않았다.
2010년부터 현재까지 치러진 대선, 총선, 지방선거, 국민투표에서 공화인민당은 11전 11패, 무승 행진을 기록했다. 튀르키예의 간디에게는 '패배의 아이콘'이라는 별명이 하나 더 붙었다. 클르츠다로을루 후보는 정치적 근육이 허약할 뿐 아니라 민주적이지도 않다는 저항도 거세다. 21세기 술탄 에르도안 대통령의 철권 정치를 비판하지만 정작 자신은 선거 패배의 책임을 한번도 지지 않고 13년째 당대표 직에 머무르고 있다. 독재와 민주의 구도로 치러진 과거 선거에서 야권은 늘 패자였다. 이번 선거의 결과는 클르츠다로을루 후보와 사회민주주의를 표방하는 공화인민당이 민주 진영을 대표해 권위주의를 무너뜨릴 수 있는 대항마인가 하는 질문에 대한 대답이기도 했다.
튀르키예 유권자들의 70%는 선거공약, 후보의 자질보다는 자신의 정치적 성향에 따라 투표하는 경향이 있다. 공화인민당의 주요 지지층은 해안 도시의 세속 엘리트 계층에 편중되어 있다. 중도층 확장력도 약하고, '아나톨리아 대중' 정서에 조응하지 못하는 점도 이 당의 한계로 지적된다. 에르도안 정부에서 총리를 지냈고 정의개발당의 당대표를 맡기도 했던 아흐멧 다부토을루는 이번 선거에서는 야권 인사로 명찰을 바꿔 달았다. 그는 올해 아흔이 된 고모가 “아무리 네가 내 조카라 해도 공화인민당을 찍어주지는 못하겠다”고 말했다고 선거 전 방송 인터뷰에서 밝혔다.
에르도안이 2002년 창당한 정의개발당은 자국 내에서 소수 세속 엘리트 계층에 소외받은 대중 무슬림 정서를 대변하며 입지를 굳건하게 다졌다. 2013년 공공기관에서도 무슬림 여성들이 히잡을 쓸 수 있다는 판결이 나오자 세속주의 세력은 대통령이 국가를 이슬람화한다고 저항했지만 아나톨리아 대중은, 이제는 대학을 가기 위해 종교를 숨기거나 외국으로 유학 갈 필요가 없다고 환영했다. 2018년 대통령 선거에서 에르도안 대통령은 52.59%를 얻어 가볍게 다른 네 명의 후보를 제치고 튀르키예 정치계의 절대 강자로 사자후를 토했다. 다만 에르도안 정권이 아무리 대중에 호소력을 가졌다 해도 20여 년간의 장기집권으로 그 지지기반이 꾸준히 약해지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다른 한편 튀르키예 공화국과 함께 탄생한 공화인민당은 무슬림 대중에 손을 내미는 대신 서구의 시선으로 자국 내 대다수 국민들을 판단하고 바라본다는 게 대중의 인식이다. 튀르키예 공화국과 함께 탄생해 백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공화인민당이 70년 넘는 동안 튀르키예 정치의 가장자리에서 득표율 최고가 25%인 박스권에 갇혀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국내 정치뿐 아니라 국제 관계에서도 클르츠다로을루 후보는 민심과 동떨어져 있다는 비판을 받는다. 그는 친서방 외교 정책을 공공연히 표방했고, 아제르바이잔을 '튀르키예 장기경제발전계획(Turk Yolu)'에서 제외했다. 후보의 정책은, 자원외교의 중요성은 거론할 필요도 없이 아제르바이잔을 피를 나눈 형제국으로 여기는 튀르키예 대중들의 감정을 자극했다. 그는 또 선거 이틀 전, "러시아가 튀르키예 대선에 개입하고 가짜뉴스를 퍼트렸다"는 트위터를 게재하기도 했다.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전쟁이 벌어졌을 때 전 세계는 튀르키예의 드론 바이락타르가 우크라이나 상공을 배회하며 러시아 탱크를 무참히 부수는 광경을 목격했다. 그와 동시에 튀르키예는 러시아에 대한 서방의 경제제재에 참여하지 않고 유럽과의 직접 교류가 끊긴 러시아의 자본을 끌어들여 러시아 경제의 숨통을 틔워주었다. 이로써 에르도안 대통령은 전세계 외교무대에서 '실리 외교'의 끝판왕으로 등극했다. 클르츠다로을루 후보의 반러시아 노선을 두고 야권 자체 내에서도 "벌집을 쑤시지 말아야 한다" "후보는 외교 문제에 대해서는 입을 다무는 게 지지율을 건사하는 데 도움이 된다"는 반응이 쏟아져 나왔다.
1차 투표에서 대통령은 결정되지 않았지만, 최대 수혜를 본 후보가 있었다. 3위 시난 오간 후보였다. 그는 강성 민족주의자로 '아타(아버지) 동맹'의 후보로 출마하여 5.2%를 얻었다. 정치무대의 주변부를 맴돌던 오간 후보는 이번 선거를 통해서 몸값을 최대로 올렸다. 튀르키예뿐 아니라 연일 BBC, 뉴욕타임즈, CNN 등 굴지의 서방 언론과 인터뷰를 하면서 세계적으로 인지도를 높였다. 그가 어느 쪽과 손을 잡느냐에 따라 차기 대통령이 결정되는 킹 메이커 역할을 하게 된 것이다. 최종 승자는 누가 될까. 튀르키예의 안보와 자주는 2차 결선투표에서도 화두가 될 전망이다. 뚜껑은 열어봐야 알겠지만, 누가 당선되든 외세에 휘둘리지 않고 자주 독립을 지키고자 하는 튀르키예의 운명, 그리고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 중동질서의 재편, 미국과 중국의 헤게모니 싸움에 크나큰 반향을 일으킬 것은 분명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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