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혜승 통신원 속보 ④] 부실 건축 조장, '인재' 겹쳐

정부에 대한 불신, 재난 현장의 무질서와 혼란 가중

당국의 늑장 대응으로 생존자 구출 '골든타임' 놓쳐

"지진세로 걷은 6조원은 어디로 갔는가" 비난 확산

지진 발생 170시간이 지난 후에도 한 남자가 살아 나왔다. 카흐라만마라쉬와 가지안텝, 하타이 등 피해가 가장 큰 도시에서는 여전히 구조 작업이 이어지고 있다. 반면, 말라티아, 산르 우르파 등에서는 13일 월요일부터 수색을 중단하고 본격적인 복구에 들어갔다. 구조대원들은 떠났다. 인종과 국적을 불문하고, 모두가 하나 되어 따뜻한 인간애를 목격할 수 있었던 참사 현장은 다시 흉물스런 콘크리트의 잔해 속에 묻힌 차가운 공동묘지로, 비난과 불신이 서로의 가슴을 찌르는 전쟁터로 변해가고 있다. 

 

10일 오후(현지시간) 튀르키예 하타이 안타키아 시내 건물들이 지진으로 인해 무너져 있다. 2023.2.11 연합뉴스
10일 오후(현지시간) 튀르키예 하타이 안타키아 시내 건물들이 지진으로 인해 무너져 있다. 2023.2.11 연합뉴스

감동이 지난 후 다시 밀려온 참사 현장의 암담함

‘천국에서 살고 싶으신가요.’ 하타이에 위치한 아파트의 광고였다. 2013년 완공되고 250가구를 수용한 12층 아파트는 완전히 무너져 내렸다. 이 아파트의 명칭은 공교롭게도 부활을 의미하는 ‘르네상스’였다. 건축업자는 8일, 외국으로 도피하기 위해 이스탄불 공항을 빠져 나가던 중 체포되었다. 그는 건물에 아무런 문제가 없었으며, 자신으로서는 붕괴의 원인을 알지 못한다고 항변했다. 외국행은 정기적인 출장일 뿐이며 도피가 아니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생존자를 구출하기 위해 수십 시간씩 손으로 파서 구조 통로를 만들던 대원들은 장갑에 구멍이 나고 피부가 상했다. 훈련견들도 묻힌 사람들을 찾아내느라 앞발이 헐어 붕대를 감고도 작업을 계속했다. 밤샘 보도를 하던 기자들은 목이 쉬었고, 가족을 잃은 생존자들, 국민들은 눈이 부었다. 120여 시간 동안 갇혀 있었던 한 일가족은 잔해 속에서 동영상을 찍었다. “제가 이웃 아흐멧(가명)에게 2500리라(약 16만원)의 빚을 졌어요. 혹시 제가 죽는다면, 그 돈을 좀 갚아 주세요.” 라는 내용이었다. 다행히 이 가족은 구조되었다.  작은 빚에도 양심의 가책을 느끼는 사람들이 있는 한편 불법건축업자들이 변호사를 대동하고 자신들은 결백하다고 주장했을 때 튀르키예 사람들의 슬픔은 분노로 타올랐다. 13일 현재까지 붕괴한 건물들의 건축업자 113명이 잡혔고, 혐의가 있는 20명은 수배 중이다. 

1999년 튀르키예의 마르마라 해에서 일어난 지진으로 1만 7000명 이상이 목숨을 잃었다. 정부의 부실한 대응을 비판하며, 새로운 미래를 약속했던 에르도안은 선거에서 큰 승리를 거두었다. 정부가 그때부터 지진세를 거둬들여 그 금액이 6조 원에 달한다는 사실이 언론에 알려졌다. 국민들은 24년이 흐른 지금 무엇이 달라졌느냐고 묻는다. 

부실 건축에 대한 관리 소홀은 이번 지진의 피해가 커진 큰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다. 튀르키예는 1960년대부터 ‘건축사면’ 제도를 실행해왔다. 안전기준을 통과하지 못한 건축물에 대해 일정 금액을 납부하면 합법적으로 허가를 내주는 제도이다. 지난 2018년에도 에르도안 대통령은 이 제도를 적극적으로 홍보했다. 코로나 이후 튀르키예 경제가 급격히 악화되자 정부는 재원을 마련하기 위해 지진 발생 며칠 전, 관련 법안을 국회에서 논의할 예정이었다. 가디언지는 튀르키예 ‘엔지니어와 건축가의 도시계획 회의소’ 이스탄불 지부장인 펠린 프나르 기리틀리오올루( Pelin Pınar Giritlioğlu)를 인용하여,  이 제도의 혜택으로 이번 지진 지대에서 7만 5000여 채 이상이 불법 딱지를 떼었다고 보도했다.  2020년에 이즈미르에서는 7도의 지진으로 119명이 사망했다. 이즈미르에서 사면을 받은 불법 건축물은 67만 2000채에 달했다고 BBC는 보도했다. 

‘건축사면’이 무너뜨린 건물, 늑장대응 비상대책위

‘재난 및 비상대책위원회(AFAD)’의 활동도 큰 비판에 직면했다. 늑장 대응으로 생존자를 살려낼 수 있는 골든타임을 놓쳤다는 것이다. 도로가 끊기고 여진이 수백 회 계속되는 등 신속한 조치를 취하기 어려웠다는 사실이 연이어 보도되었다. 소셜 미디어에서는 지진은 피할 수 없었지만, 희생은 줄일 수 있었다는 반응이 이어졌다. 참사 현장이 워낙 방대해 경찰, 안전요원, 비상대책위원회, 구조대원들이 제때 출동하지 못한 곳에서는 업자들이 이미 중장비를 동원해 건물의 잔해를 없애버리는 사례도 일어났다. 아다나의 한 변호사는 가족들이 희생당한 아파트 건물의 잔해가 사라져 버린 광경을 유튜브를 통해 알렸다. 이 잔해들은 불법 건축 여부를 보여주는 증거인데, 관리 소홀로 인해 수십 명을 살해한 범인-건축업자가 증거를 인멸해버렸다는 것이다. 

‘재난 및 비상대책위원회’ 지휘부에 재난 대응과는 무관한 이슬람 지도자 이맘이 포함되었다는 사실도 반여당, 반이슬람 성향의 여론에 불을 질렀다. 이와 같은 분위기는 중심을 잡고 사태를 수습해야 하는 위원회의 활동에 장애물이 되고 있다. 지진 발생 첫날부터 상당수의 사람들이 ‘재난 및 비상대책위원회’가 아닌 민간단체에 후원해야 한다고 캠페인을 벌였다. 심지어는 비정부단체라도 국가와 관련이 있다면 피해야 한다는 의견들도 있었다. 

자원봉사자들과 민간단체들은 생존자 구조와 피해자들 원조에 대단히 큰 역할을 하고 있다. 그러나 정부에 대한 불신 때문에 재난 현장의 무질서와 혼란이 가중되는 상황이다. 가뜩이나 5월 대선을 앞두고 사회 전반의 갈등이 심각했던 상태에서 정치 공방은 사태 수습의 발목을 잡고 있다. 

“우리 모두의 책임” 주장에 분노하는 민심

저술가 베키르 아으르드르(Bekir Agirdir)는 유튜브 채널을 통해 반목과 불신을 거두고, 차분하고 냉정하게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한 이번 사태는 정부와 정치인들뿐 아니라 우리 모두가 책임져야 하는 부분이 있다고 말했다. 실제 필자의 지인 가운데에도 불법 딱지를 떼기 위해 돈을 내고 건축 사면을 받은 경우가 있었다. 상당수 네티즌들은 그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지만, 일부는 “우리 시민과 친척들이 잔해 아래 묻혀 있는데 가만히 앉아 눈물만 흘리란 말입니까? 우리는 양이 아닙니다. 행동하지 않으면, 우리는 희생자들을 사지로 몰아넣은 사람들의 공범이 됩니다.”  “스트레스와 분노로 잠을 잘 수가 없습니다. 아직 아무도 손을 대지 못해서 눈이 그대로 쌓인 폐허 아래 묻혀 있는 사람들도 있다는데” “국가의 책임을 왜 국민에게 전가하려 하는가” 등 격한 반응을 보였다. 

통제 불능 상황에서 약탈과 도둑질 사례도 빈번하게 일어났다. 음모론도 만만치 않다. 이번 지진은 ‘고주파 오로라 활동 연구 프로그램’ (High-frequency Active Auroral Research Program, HAARP) 때문에 발생한 인재라는 것이다. 이 프로그램은 고층 대기와 태양계, 지구 물리학, 전파 과학 등의 연구 프로젝트인데, 알래스카에 위치한 연구소에서 원격 조정으로 지진을 일으켰다는 게 음모론자들의 주장이다.  이번 지진은 카흐라만마라쉬에서 미국이 설치한 수소폭탄의 폭발로 일어났다는 설도 등장했다.  

또한 지진지역이 아랍인들이나 쿠르드인들의 손으로 넘어갈지도 모른다는 두려움도 만만치 않게 존재한다. 실제 지진 지대는 쿠르드인, 튀르크인, 아랍인들 사이에 갈등의 불씨가 있는 지역이다. 디아르바크르는 쿠르드인들의 중심지인데, 지진 발생 후 구조 활동이 늦어지자 튀르키예 정부가 의도적으로 이 지역을 도외시한다는 불만들이 터져나왔다. 

가지안텝과 산르우르파 등의 대도시는 시리아 내전이 터진 2013년부터 시리아 난민 350여만 명을 수용하고 있다.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수치다. 한 시리아 난민은 이번 지진이 시리아 내전보다 더 혹독하다고 말한다. “지진이 일어나고 근처 대피소로 들어갔어요. 그런데 안에는 모두 터키인들뿐이었습니다.” 그는 터키인들에게 앙금은 없지만, 딱히 친밀하지도 않아서 시리아 난민들이 모여 있는 대피소를 찾아갔다고 말했다. 

인종갈등, 식수부족, 질병대책 등 첩첩산중 복구작업 

다른 한편 터키인들 가운데서는 코로나, 인플레이션 등으로 가뜩이나 어려운데, 이번 지진으로 피해가 커지자 시리아 난민들에 화살을 돌리는 경우도 있다. 튀르키예의 정당 중 ‘이이 파티’ (Iyi Party) 의 대표인 악셰네르는 외국인들이 튀르키예의 영토와 부동산을 구입하면 국적을 받는 제도를 폐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터키인들은 재난 지역을 떠나는 반면 아랍인들은 이 제도를 이용해서 튀르키예 땅을 합법적으로 아랍 영토에 편입시킬지도 모른다는 우려에서다. 

 

10일 오후(현지시간) 튀르키예 하타이 안타키아 시내에서 삶의 터전을 잃은 시민들이 길거리에 나앉아 있다. 2023.2.11 연합뉴스
10일 오후(현지시간) 튀르키예 하타이 안타키아 시내에서 삶의 터전을 잃은 시민들이 길거리에 나앉아 있다. 2023.2.11 연합뉴스

사태 수습에 필요한 것들은 많다. 불법 건축업자들의 처벌과 사후 재발 방지를 위해 부서진 건축물들의 샘플을 채취해야 한다고 법조인들은 강조한다. 아직까지 수도관은 복구되지 않았고, 이동식 화장실은 현저히 부족해서 위생 문제가 심각하다. 실제 튀르키예보다 걷잡을 수 없는 상태인 시리아 북부에서는 콜레라가 발생했다는 보고가 나오고 있다.  따뜻한 음식, 의약품도 모자라다. 심지어는 이 지역에 유기견 보호소를 시급히 설치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평화시에는 터키인들이 유기견들을 잘 보살피는 편이지만, 전대미문의 재앙 앞에서 유기견에까지 손을 뻗칠 여유가 없다. 배가 고픈 유기견들이 시신을 훼손하는 비극까지 일어났다. 

2번의 지진이 땅을 가르고 건물을 무너뜨렸다. 사람들 사이의 갈등과 불신은 3번째 지진이 되어 사회적 통합성을 균열시키고, 사태 수습을 위한 길을 끊는다. 지진 발생 130여 시간 만에 15세 소년이 구조되었다. 소년은 잔해 밖으로 나와서 이렇게 말했다. 

“여기가 더 춥네요.” 

 

시민언론 <민들레> 이혜승 튀르키예 통신원은

튀르키예 에게해에 접한 도시 아이발륵에 거주하며 아티스트로 활동하고 있다. 2011년 출판한 <두번째 터키>의 저자이다. Instagram/hesungl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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