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상회담 뒤 지지율 떨어진 윤 정부 구하기
인도태평양전략 한미일 군사안보협의체 작업
12년만에 재개된 ‘셔틀외교’ 탄력 붙이기
적기지 공격 “아베도 못한 것 내가 해냈다”
(본 기사는 음성으로 들을 수 있습니다.)
기시다 후미오 일본총리가 7일 서울에 왔다. 기시다 총리의 방한 일정은 원래 이달 19~21일 히로시마에서 열리는 주요 7개국(G7) 정상회담 뒤, 일본 국회 개원 이후 여름으로 상정돼 있었으나 “이번에는 전격적으로 결정했다”고 한일 두 나라 정부 관계자들이 이구동성으로 말했다고 <아사히신문>이 이날 전했다.
이렇게 전격적으로 일정을 조정한 데에는 지난 달 중순의 도쿄 한일 정상회담에 이어, 이번 달에 열리는 G7 정상회담에 초청받은 윤석열 대통령이 다시 한 달여 만에 연속으로 일본을 찾아가는 모양새를 피하기 위해, 한국 여론 등을 배려하는 차원에서 기시다 총리가 서울에 오기로 했다고 이 신문은 썼다.
윤석열 정부 구하기?
<아사히>에 따르면, 1박 2일 일정의 방한 기간에 열릴 이번 한일 정상회담에서 주로 어떤 문제를 다룰 것인지와 관련해 기시다 총리 주변 관리는 “한미일 제휴와 인도태평양 과제”를 “이번 방한의 2대 테마”라고 말했다. 이는 “또 하나의 큰 배경”이라고 이 신문이 꼽은 “미국과의 관계”와도 연결돼 있다.
이는 이번 서울 정상회담이 지난해 11월 캄보디아 프놈펜에서 열린 한미일 3국 정상회담에서 합의하고 발표한 미국 주도 ‘인도태평양전략’의 실행방안을 구체화해 가는 작업의 일환임을 드러내 준다. 프놈펜 회담 약 3개월 뒤인 3월에 도쿄에서 한일 정상회담이 열려 중국을 겨냥한 인도태평양 전략 중심축인 한미일 3국 안보협의체 구축에 가장 큰 걸림돌이었던 한일 간 ‘과거사’문제(일제 강제동원 피해자 배상문제)를 ‘제3자 대위변제’ 방식으로 ‘처리’했고, 이를 토대로 그 한 달 뒤인 4월 26일 워싱턴 한미 정상회담에서 ‘워싱턴 선언’을 통해 3국 안보협의체의 골격을 완성했다.
기시다 총리가 당초 예정보다 일찍 방한한 것은 히로시마 G7 정상회의 일정과의 마찰을 고려한 면도 있지만, 한일 정상회담 이후 지지율이 더 내려간 뒤 반등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는 윤석열 정부 지원 쪽에 더 무게를 둔 것이 아니냐는 지적들이 많다. 일본 내에서도 한국 내의 반대를 무릅쓴 윤 대통령의 ‘결단’ ‘용기’를 높이 평가하면서, 일본정부가 그에 상응한 조치를 취하지 않아 윤 정부를 더욱 어렵게 만들고 있다며 질책하는 등 기시다 총리에게 비판적인 여론이 적지 않았다. 한국 내 여론이 악화될 경우 모처럼 일본에 유리하게 전개된 최근의 한일관계 변화가 한국의 다음 대선에서의 정치적 변동 등으로 자칫 원점으로 되돌아 갈지도 모른다는 지적들이 일본에서는 끊이지 않았다.
기시다 정부는 3월 16일의 한일 정상회담 때 합의한 양국 간 정상들의 ‘셔틀 외교’ 재개를 가능한 한 서둘러 최근 변화를 기정사실화하고 탄력을 붙일 필요가 있었다. <아사히>가 또 하나의 큰 배경이라고 지적했듯이 미국 바이든 정부의 압력도 작용했을 것이다.
기시다 총리실의 한 간부는 “3월에 셔틀외교를 재개하기로 하면서 탄력이 붙었다. 자주 만나서 흉금을 터놓고 얘기할 수 있는 관계를 쌓아가고 싶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기시다 총리가 일본의 과거사 문제 관련 ‘사죄’ 표명을 ‘선물’로 가지고 올 것이라는 관측도 있었으나, 그보다는 수출규제 철폐와 화이트리스트 복구 등을 통한 경제관계 강화와 대북 안보협력 강화 등이 가져다 줄 가시적인 효과에 더 큰 기대를 걸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기시다 총리는 한국으로 출발하기 전 기자회견에서 3월에 열린 정상회담에서 합의한 셔틀외교 재개를 확인하고 본인도 서둘러 한국을 방문하게 됐다면서 "먼저 윤 대통령과 신뢰관계를 토대로 솔직한 의견교환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또 앞으로 재무, 방위(국방)를 비롯한 여러 레벨의 대화를 해 나가면서 이런 흐름을 한층 더 발전시키겠다고도 했다.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 배상문제와 관련한 질문에도 그는 "솔직한 의견교환을 하겠다"면서 "이에 대해서는 3월 회담에서도 그렇게 했다. 여러 과제들이 한일 간에는 있다. 여러 과제들에 대해 솔직하게 의사교환을 하고 싶다"고만 말했다.
“아베도 못한 것 내가 해냈다”
기시다 총리는 최근 자신이 “아베 신조 전 총리도 할 수 없었던 일을 해냈다”며 지난해 12월에 강행한 국가안보전략(NSS)과 방위전략, 방위력정비계획 등 이른바 안보관련 3문서 개정을 자랑했다. 또 후쿠시마 원전사고 이후 한때 가동을 중단하고 노후 원전을 폐기하기로 했던 탈원전 정책을 되돌리는 탈탈원전 정책으로의 역행도 자랑스레 언급했다.(<아사히> 5월 4일)
2차 세계대전 이후 일본 안보전략의 일대 전환이라는 평가를 받는 안보관련 3문서 개정의 핵심 내용 가운데 하나가 ‘적기지 공격능력’ 보유를 명기한 것이다. 이는 일본 ‘평화헌법’이 견지해 온 ‘전수방위’ 원칙을 사실상 파기하고 ‘전쟁을 할 수 있는 나라’ 일본의 본격적인 재무장을 선언한 것으로, 미국이 중국을 겨냥해 추진하고 있는 인도태평양전략을 뒷받침하는 군사력의 실체인 한미일 안보군사협력체 구성에 필수불가결한 요소다. 윤석열 정부는 미국의 구상을 적극 지지하면서 일본과 함께 대중국 신냉전 전략의 최전선에 적극적으로 나서겠다는 포부를 밝혀 왔다. 미국과 일본이 윤 정부를 지원하고 감싸는 데에는 그럴 만한 충분한 이유가 있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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