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상회담 ‘신협력’ 외치는 한국과 정반대 방향

방위비 26% 충격 인상, 세계 3위 시간 문제

체코 사례, 안보동맹 믿었지만 강대국 외면

제7광구에 대한 안보위협 인식하는지 의문

(본 기사는 음성으로 들을 수 있습니다.)

제7광구 문제가 안보 현안으로 대두되는 가운데, 한국과 일본의 외교안보 전략은 서로 반대 방향으로 달리고 있다.

지난 3월16일 한일 정상회담에서 한국이 ‘신협력’을 내세웠지만, 일본은 역사교과서 왜곡, 독도 문제 등 한일 현안에 대해 더욱 강경해지고 있다. 그래서 ‘잃어버린 10’년이 상징하듯이 그동안 저성장에 시달려 온 일본은 ‘노다지’ 제7광구를 절대 놓치려고 하지 않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이제 일본의 본심을 제대로 파악할 필요가 있다.

일본 대외 전략의 기본 방침은 대외전략의 최상위 문서에 나타나 있다. 일본은 지난해 말 각의에서 안보의 방향을 규정한 ‘국가안보전략’, ‘국가방위전략’, ‘방위력정비계획’ 등 세 문서를 개정했다. 기시다 후미오 일 총리는 이에 대한 기자회견을 열고 “전후 안보정책을 크게 전환하는 것”이라고 발표했다.

지난 3월26일 방위대 졸업식에 참석해 행사를 주관하고 있는 일 기시다 총리. 출처 : 수상관저 홈페이지
지난 3월26일 방위대 졸업식에 참석해 행사를 주관하고 있는 일 기시다 총리. 출처 : 수상관저 홈페이지

이쯤되면 누구라도 일본이 안보전략의 대전환을 확정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기시다 총리는 한일 정상회담을 마치고 불과 10일 뒤인 지난 3월 26일 방위대학교 졸업식에 참석해 훈시를 통해 “외교에는 뒷받침되는 방어력이 필요하다”며 “향후 5년간 방위력을 긴급히 강화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결론적으로 말해서, 일본은 그동안 주변국이 우려하는 재무장 수준을 넘어 재군비로 치닫고 있다. 일본이 말하는 ‘전쟁할 수 있는 국가’, ‘적기지 공격 능력’이 대표적인 예이다.

일본의 방위 예산은 이를 구체적으로 확인하고 있다. 일본 의회는 지난 3월 28일 2023년도(2023년 4월~2024년 3월) 방위비 예산으로 지난해보다 26% 대폭 증가한 사상 최대 규모인 6조8219억 엔(약 68조1천억 원)을 확정했다. 일본의 방위비 증가율은 1975년 21%를 기록한 적이 있지만, 대부분 1% 내외에 그쳐, 이번 방위비 증가율은 충격적이다.

일본이 방위예산에서 중점 보강할 계획이라고 밝힌 장거리(스탠드오프) 미사일들의 이미지. 위로부터 고속활공탄, 고속활공탄(개량형), 극초음속미사일, 신형 대함유도탄, JASSM, 토마호크 미사일, F-35A와 JSM. 출처 : 방위성
일본이 방위예산에서 중점 보강할 계획이라고 밝힌 장거리(스탠드오프) 미사일들의 이미지. 위로부터 고속활공탄, 고속활공탄(개량형), 극초음속미사일, 신형 대함유도탄, JASSM, 토마호크 미사일, F-35A와 JSM. 출처 : 방위성

방위비의 대폭적인 증가는 일회성이 아니다. 일본의 방위 예산은 이에 멈추지 않고 5년 후에는 11조 엔에 달할 전망이다. 그동안 국내총생산(GDP)의 GDP의 1% 이내에 묶여 있던 제약은 폐기되고 2% 수준으로 뛰어오르게 된다. 일본의 방위비가 미국, 중국에 이어 세계 3위로 되는 것은 시간문제이다. 일본의 방위력 정비계획은 5년간의 방위예산으로 43조 엔을 설정하고 있다.

도입되는 무기의 내용을 보면 더욱 노골적이다. 장사정 미사일, 우주 사이버, 탄약 미사일과 부품 등에 5년간 24조 엔을 쏟아부을 예정이다. 장사정 미사일은 토마호크, JASSM, JSM, 12식 개량형 미사일, 고속활공탄, 극초음속 고속활공탄 등이다. 이들 미사일은 제7광구 인근에 배치되었거나 우선적으로 배치된다. 이들 미사일은 제7광구는 물론 동중국해, 한반도를 사정권에 넣고 있다. <참조, [제7광구 ⑥] 일 첨단 무기, 7광구 넘어 한국 사정권, [제7광구 ⑤] 일, 개발중인 첨단 미사일도 우선 배치>

일본은 장사정 미사일에 의한 적기지 공격 능력을 내용은 그대로 둔 채 반격 능력이라고 순화해 부르고 있다. 일본 자신이 주변국의 반발을 우려하고 있는데도, 우리는 이를 심각하게 여기지 않고 있다. 재군비에 대해서도 우리나라 안보에 대한 영향을 먼저 따지는 분위기를 찾아보기 힘들다.

1939년 3월 15일 새벽 1시를 지난 시각에 에밀 하하 체코슬로바키아 대통령(왼쪽 두번째)이 아돌프 히틀러 독일 수상(왼쪽 세번째)과 히틀러의 측근 헤르만 괴링(왼쪽 네번째) 등을 만나 독일군의 체코슬로바키아 진군 등에 대해 논의하고 있다. 하하 대통령의 절박한 모습과 히틀러와 측근들의 여유로운 태도가 대조를 이루고 있다. 출처 : 위키미디어
1939년 3월 15일 새벽 1시를 지난 시각에 에밀 하하 체코슬로바키아 대통령(왼쪽 두번째)이 아돌프 히틀러 독일 수상(왼쪽 세번째)과 히틀러의 측근 헤르만 괴링(왼쪽 네번째) 등을 만나 독일군의 체코슬로바키아 진군 등에 대해 논의하고 있다. 하하 대통령의 절박한 모습과 히틀러와 측근들의 여유로운 태도가 대조를 이루고 있다. 출처 : 위키미디어

현 정부는 동맹을 강조하고, 동맹국의 선의를 기대하고 있다. 그렇지만 제2차 세계대전 직전 체코슬로바키아의 비극은 국가안보에서 동맹에 의존하다가 파멸의 운명을 맞이한 사례이다. 당시 체코슬로바키아는 안보상의 위기를 대비해 프랑스와 우호동맹조약, 소련과 동맹조약을 맺어 나름대로 탄탄한 국제 관계를 갖고 있었다. 또한 프랑스와 영국은 동맹관계이어서, 체코슬로바키아가 만약 침공을 당하면 영국도 자동적으로 개입하는 체제였다. 그러나 뮌헨회담에서 체코슬로바키아 동맹국들은 대공황에서 겨우 빠져나온 시기에 대규모 전쟁은 곤란하다며 체코 수데텐란트를 아돌프 히틀러의 요구대로 넘겨주고 말았다. 나중에 베를린을 방문한 66세의 에밀 하하 체코슬로바키아 대통령은 히틀러 앞에서 애원하며 혼절하는 등 굴욕의 시간을 보냈지만 자신의 군대에게 항복을 명령할 수밖에 없었다.

제7광구 문제는 이제 2년이라는 촉박한 시간만 남겨져 있다. 이번 한일 정상회담에서 당연히 의제에 올랐어야 한다는 여론이 있었지만, 철저히 외면됐다. 또 제7광구 문제를 거중조정할 능력이 있는 미국과의 정상회담에서도 거론됐다는 소식을 찾아볼 수 없다.

외교안보의 첫 단계는 위협에 대한 인식과 판단이다. 이것을 기초로 외교안보 전략의 방향을 설정하고 적절한 방책을 구사한다. 위협에 대한 인식이 없으면, 적절한 방책을 기대할 수 없다. 현 정부가 제7광구와 관련해 현재의 위협과 다가올 위협을 제대로 인식하고 판단하는지를 염려하는 것이 기우이기를 바란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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