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박한' 한반도 문제 손 놓고 "세계시민 자유 지키겠다"

한반도 위기관리‧평화유지 문제 두고 고심한 흔적 없어

윤 "노태우 꿈 실현"…반중 노선 '북방외교 성취' 훼손

윤 "전체주의 세력, 민주주의 운동가인양 위장" 주장

(본 기사는 음성으로 들을 수 있습니다.)

미국을 국빈 방문 중인 윤석열 대통령이 27일(현지시간) 워싱턴DC 국회의사당에서 열린 미 상·하원 합동회의에서 연설하고 있다. 2023.4.28  연합뉴스
미국을 국빈 방문 중인 윤석열 대통령이 27일(현지시간) 워싱턴DC 국회의사당에서 열린 미 상·하원 합동회의에서 연설하고 있다. 2023.4.28  연합뉴스

"대한민국은 미국과 함께 세계시민의 자유를 지키고 확장하는 '자유의 나침반' 역할을 해나갈 것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27일(현지시간) 워싱턴D.C.의 미국 의회 상‧하원 합동회의 연설에서 올해로 70돌을 맞이한 한미동맹의 미래 청사진으로 '자유와 평화를 지키는 글로벌 동맹'을 제시하면서 한 말이다. 자유를 내걸고 미국의 글로벌 이슈 개입에 적극적 가담을 선언한 것이다.

'자유의 동맹, 행동하는 동맹'이란 제목의 연설에서 윤 대통령은 '자유'를 한미동맹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관통하는 화두로 삼았다. 43분간 영어로 행한 연설에서 윤 대통령은 자유란 단어를 모두 46번 사용해 분당 한 차례 이상 언급한 것으로 나타났다고 연합뉴스는 전했다. 자유란 단어를 35번 거론했던 작년 5월 10일 대통령 취임사 기록을 넘어섰다.

문제는 그의 연설에 자유에 대한 언급은 도를 넘어선 데 반해, '평화공존'에 관한 언급은 없다는 점이다. "자유민주주의 국가들의 연대"의 중요성만 강조했지, 다른 세력과의 '평화공존'에 관한 얘기는 없었다. 평화공존이 전제되지 않은 자유란 불가피하게 충돌로 이어진다는 사실은 지나온 역사가 증명해 주고 있다.

 

북한은 지난 18∼19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딸 '주애'와 함께 참관한 가운데 전술핵운용부대들의 '핵반격 가상 종합전술훈련'을 진행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20일 보도했다. 2023. 3. 20. 연합뉴스
북한은 지난 18∼19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딸 '주애'와 함께 참관한 가운데 전술핵운용부대들의 '핵반격 가상 종합전술훈련'을 진행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20일 보도했다. 2023. 3. 20. 연합뉴스

한반도 위기관리‧평화유지 문제 두고 고심한 흔적 없어

6‧25전쟁이란 민족상잔을 겪은 분단국의 대통령이라면 남과 북의 공멸을 막고 남북 8천만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기 위한 한반도 위기관리와 평화 유지‧정착에 관한 철학과 비전을 보여줬어야 했다. 핵‧미사일 위협을 자행하는 북한을 평화공존의 장으로 끌어낼 청사진 말이다.

올해가 한미동맹 70돌이기도 하지만 정전협정 체결 70돌인 점을 감안한다면 더욱 그랬어야 마땅했다.

그러나 연설에서 그런 고심의 흔적은 찾아볼 수 없었다. 남과 북의 ‘평화공존’에 관한 인식이 아예 없는 게 아니냐는 의구심을 자아내기에 충분했다.

북한이 비핵화를 먼저 하면, 획기적 경제지원을 골자로 한 본인의 '담대한 구상'을 다시 한번 언급하고 비핵화를 위한 대화의 문은 열어두겠다고 했지만, 의례적인 얘기에 그쳤다.

그 대신,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 대응 차원에서 조 바이든 대통령과 합의한 미국의 확장억제 강화 조치와 함께 한미 공조와 한‧미‧일 3자 군사협력에 박차를 가할 것임을 분명히 했다. 일본의 재무장과 군사대국화를 용인하면서 말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19일 서울 강북구 수유동 국립 4·19민주묘지에서 열린 제63주년 4·19혁명 기념식에서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와 악수한 뒤 이 대표 앞을 지나고 있다. 2023.4.19. 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이 19일 서울 강북구 수유동 국립 4·19민주묘지에서 열린 제63주년 4·19혁명 기념식에서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와 악수한 뒤 이 대표 앞을 지나고 있다. 2023.4.19. 연합뉴스

윤 "전체주의 세력, 민주주의 운동가인양 위장" 주장

연설에서 윤 대통령은 특히 지난달 최초로 공개 발간한 북한 인권보고서에 담긴 "이루 말할 수 없이 참혹한" 북한의 인권유린 사례를 거론한 뒤 "국제사회는 이러한 북한의 인권유린 참상을 널리 알려야 한다"라며 미 의회 의원들에게 동참을 호소하기도 했다.

윤 대통령은 "1950년 한반도는 자유주의와 공산 전체주의가 충돌하는 최전선이었다"고 규정하고 70년이 흘러 "자유민주주의를 선택한 대한민국과 공산 전체주의를 선택한 북한은 지금 분명히 비교되고 있다"고 말해 남과 북의 문제를 '자유민주주의와 공산 전체주의' 간의 대결로만 보는 단선적인 사고를 드러냈다.

북핵 문제를 비롯한 남과 북의 대결, 한반도 분단의 문제를 주도적 위치의 한국이 ‘해결의 관점’에서 어떻게 접근할지에 숙고한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그는 지난 4‧19 기념사에서와 같이 '허위 선동'과 '거짓 정보'로 대표되는 "반지성주의" "전체주의 세력"이 세계 도처에서 자유와 민주주의를 위협한다고 지적하고 "자신들이 민주주의 운동가, 인권 운동가인 양 정체를 숨기고 위장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한국의 야권을 겨냥한 말로 들린다.

 

26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 전쟁의 최대 격전지인 동부 도네츠크주의 바흐무트에서 러시아 군대와 교전으로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다. 2023.04.27. 연합뉴스
26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 전쟁의 최대 격전지인 동부 도네츠크주의 바흐무트에서 러시아 군대와 교전으로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다. 2023.04.27. 연합뉴스

'절박한' 한반도 문제 놔두고 "세계시민 자유 지키겠다"

또한 윤 대통령은 "한미동맹은 이제 세계의 자유와 평화를 지키는 글로벌 동맹으로 발전했다"면서 "이제 인류의 자유를 위해 한국이 국제사회와 힘을 모아 해야 할 일을 반드시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걱정스러운 대목이다.

북핵 문제를 비롯한 한반도 위기관리와 평화 유지‧정착 해법과 관련해 의지도 능력도 보여주지 못하는 윤 정부가 미국의 요구를 받아 중국과 러시아 등 민감한 글로벌 현안에 '개입'하겠다는 뜻을 밝힘으로써 평지풍파를 자초할 우려도 적지 않기 때문이다.

당장 절박한 일종의 ‘집안싸움’도 해결하지 못하면서 ‘남의 집안일’에 끼어드는 격이 아닐 수 없다.

연설에서 윤 대통령은 대만 문제를 건드리진 않았다. 대신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정당한 이유 없이 감행된 무력 공격"이라고 강하게 규탄했다.

이어 "자유세계와 연대해 우크라이나 국민의 자유를 수호하고 이들의 재건을 돕는 노력을 적극적으로 펴나갈 것"이라고 약속했다. 여기서는 우크라이나에 대한 군사 지원 부분은 구체적으로 거론하지는 않았다.

다만 한미 양국이 "한반도를 넘어 전 세계의 자유와 민주주의 수호를 위해 힘을 모아왔다"고 전제한 뒤 "한국은 2차 대전 후 아프간, 이라크 등지에 '자유의 전사'를 파견해 미국과 함께 싸웠다"고 도 했다. 여기서 베트남 파병을 구체적 사례로 언급하지 않은 것이 눈에 띈다.

그는 한미동맹을 "자유, 인권, 민주주의라는 보편적 가치로 맺어진 가치동맹"이라고 규정하고 △ 정의의 동맹 △ 평화의 동맹 △ 번영의 동맹이라고 의미를 부여하기도 했다.

 

한국 이상옥 외무장관과 중국 첸치천 외교부장이 1992년 8월 24일 베이징 댜오위타이 국빈관에서 '한·중 외교관계 수립에 관한 공동성명서'를 교환한 뒤 밝은 표정으로 악수. 2017.8.18 [연합뉴스 자료사진
한국 이상옥 외무장관과 중국 첸치천 외교부장이 1992년 8월 24일 베이징 댜오위타이 국빈관에서 '한·중 외교관계 수립에 관한 공동성명서'를 교환한 뒤 밝은 표정으로 악수. 2017.8.18 [연합뉴스 자료사진

윤 "노태우 꿈 실현"…반중 노선 '북방외교 성취' 훼손

또한 민주주의를 부정하고 독재체제를 유지했던 박정희 전 대통령을 칭송하면서도 "피와 땀으로 지켜온 소중한 민주주의"라는 상반된 주장을 하거나, 반중국, 반러시아 전선에 앞장섬으로써 정작 본인이 노 전 대통령의 북방외교 성취를 훼손하면서도 '태평양 지역 평화‧번영에 기여하는 한국'이라는 노태우 전 대통령의 꿈이 실현됐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배터리, 반도체, 자동차 등의 분야에서 "미국에 진출한 한국 기업들은 미국 내 양질의 일자리 창출과 경제 활성화에 기여하고 있다"면서도 이들 한국 기업이 도리어 미국의 인플레 감축법(IRA)과 반도체 과학법 상 지급하는 보조금 대상에서 제외하는 부당한 대우를 받고 있음은 언급하지 않았다.

이와 함께 윤 대통령은 "전후 세계 자유무역질서를 구축한 미국의 글로벌 리더십은 세계 곳곳에서 평화와 번영을 일구었다"고 말했으나, '미국 우선주의'에 바탕을 둔 미국이 글로벌 공급망 단절 등을 통해 자유무역 질서를 흔들고 있는 점에 대해서는 눈을 감았다.

한편, 케빈 매카시 미 하원의장(공화당)은 윤 대통령의 연설에 앞서 트위터를 통해 환영 동영상을 공유하고 "오늘 연설은 한미 동맹을 한층 강화하는 역사적 한 걸음"이라고 평가했다.

남은 것은 미국은 앞으로 대한민국과 한국민에게 어떤 존재인가 하는 물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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