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성민 한국교원대 명예교수
조성민 한국교원대 명예교수

‘영어 실력 이 정도였다니… 43분 尹 연설에 찬사 쏟아졌다’(한국경제신문)

윤석열의 미 상하원 합동 연설 뒤 인터넷 공간에서는 대통령의 유려한 영어실력이 화제가 됐다고 법석을 떨고 있다.

윤석열이 영어 실력을 자랑하러 세금 들여가며 미국까지 건너갔나? 연설의 내용에 무엇을 담았는지가 중요한 게 아닌가.

영어연설을 준비하느라 얼마나 많은 시간을 들여 연습했을까? 국민에게 보여주기식 쇼를 벌일 것이 아니라, 연설을 준비한 시간에 국민의 자유와 복지를 어떻게 증진할 것인지 고민하는 것이 더 낫지 않았겠는가.

윤석열의 연설을 듣는 사람들은 그가 마치 자유의 전도사, 자유민주주의 옹호자로 착각될 정도로 ‘자유’와 ‘자유민주주의’를 지나치게 강조한다. 지난 유엔 연설에서도 그렇고 이번 연설에서도 그러했다. 이번 연설은 4.19 때 연설 내용을 대부분 재탕했으며, 자유를 46차례나 언급했다고 한다.

중요한 가치는 누구나 강조한다. 자유, 민주주의, 공정, 상식 등은 중요한 가치이다. 이를 부정할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이런 가치들이 중요하기 때문에 정치하는 사람들은 전면에 내세우면서 마치 자신이 이를 중요시하고 실천하는 양 국민을 현혹한다.

윤석열이 대선 후보 시절과 당선 뒤 한 때는 공정과 상식을 무던히도 강조하더니, 이제는 이런 말들이 쏙 들어가버렸다. 스스로 불공정하고 비상식적인 행위를 자주 하다 보니 자신도 이런 말을 쓰는 것이 쑥스러웠던 모양이다.

윤석열이 요즈음 빈번하게 사용하는 말은 자유와 자유민주주의라는 말이다. 그가 겉으로는 이런 말들을 사용하지만 실제로 그가 자유를 중요시하고 자유민주주의를 실천한다고 생각하면 큰 착각이다. 그가 이런 개념들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지조차 의심스럽다.

진정으로 이런 개념을 이해하고 있다면, 스스로 실천하면 될 일이다. 그것을 알고 있는 사람이라면 요란하게 떠들지 않고 실제로 행할 것이다.

더탐사 기자들과 감독들을 압수 수색하면서 신체의 자유와 프라이버시를 거리낌 없이 침해하면서도 정당한 법 집행이라고 둘러댄다. 이들 언론인들은 보호받아야 할 자유가 없다고 저들은 본다. 이태원 참사 희생자 명단 공개는 정부가 금지하면 공개할 자유가 없다고 보는 것이다. 자유민주주의 사회에서 희생자 명단을 공개할 자유가 없다면서 금지한다는 것은 폭거이며 만행이다. 국민의 알 권리 충족을 위해 공개하는 것이 마땅하다. 저들이 임의적으로 선을 그어 놓고 그 안에서만 취재하고 보도해야 한다면 이를 자유민주주의 사회에서의 언론 자유라고 말할 수 있는가?

윤석열이 말하는 자유는 국민이 똑같이 누리는 동등한 자유가 아니라, 윤과 그 주변의 집단만이 누리는 자유, 즉 특권이다. 그가 자유를 강조하는 것은 그와 주변 집단만이 누리는 특권을 무한히 누리겠다는 것을 강조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미국 루스벨트 대통령은 1941년 연두교서에서 4가지 자유를 밝혔다. 언론 및 표현의 자유, 종교의 자유, 결핍으로부터의 자유, 그리고 공포로부터의 자유가 그것이다. 윤석열은 언론과 표현의 자유를 부당하게 억압하고 있다. 자신에게 불리한 뉴스는 가짜뉴스라면서 언론인을 억압한다. 더탐사 등의 기자들을 가짜뉴스 전파자라면서 구속영장을 신청했지만 번번이 기각된 것만 봐도 이번 연설에서 말한 것처럼 “가짜뉴스가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것이 아니라, 언론자유에 대한 그의 부당한 억압이 민주주의를 위협하고 있다. 불시에 압수 수색을 자행함으로써 국민들은 공포로부터의 자유를 누리지 못하고 있다. 부유층에 대한 세금 감면으로 영세 자영업자나 서민들은 상대적으로 결핍으로부터의 자유(복지권)를 누리지 못하고 있다. 윤석열을 지지하는 특권층만이 이런 자유를 마음껏 누리고 있다.

윤석열은 수시로 자유민주주의를 강조하지만, 그가 말하는 자유민주주의는 능력이 있거나 재력이 있는 사람들에게 유리한 자유지상적 민주주의(libertarian democracy)이다. 자유민주주의는 원래 평등보다 개인의 자유에 기반한 민주주의, 즉 고전적 자유주의에 바탕을 둔 민주주의였지만, 요즘 주로 이야기되는 자유민주주의는 자유뿐 아니라 평등이 고려되는 민주주의를 의미한다. 원래 마르크스 이론을 연구하고 가르쳤던 존 롤스는 현대 정의론의 대표적인 이론가인데, 그는 자유민주주의라는 말을 그의 저서 곳곳에서 언급하면서 자유와 평등의 조화로운 분배 구조를 제시하였다.

지금 윤석열이 추구하고 있는 정책(다주택자 종부세 완화 등)처럼, 있는 사람들의 자유와 복지를 증진하는 대가로 없는 사람들의 자유와 복지를 희생시키는 것은 사회 정의에도 어긋날 뿐 아니라 자유민주주의 이념에도 배치된다. 롤스가 강조한 자유민주주의적 정의관에 의하면 최소 수혜자, 즉 없는 사람들에게 최대의 이익이 되도록 분배가 이루어져야 한다. 윤석열은 과연 자유와 자유민주주의를 말할 자격이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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