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말참견 용납 못해", 한국 "심각한 외교 결례"
친강 "불장난" 극언…즉각 사과하고 발언 철회해야
중국엔 대사 초치…"독도 우리 것" 일본엔 항의 시늉
평지풍파 일으키고 '분란' 책임은 상대에 전가하나
중국 외교부 "서울과 베이징서 엄정한 교섭 제기"
(본 기사는 음성으로 들을 수 있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의 '대만 개입' 발언이 일파만파로 번지고 있다.
윤 대통령은 지난 19일 보도된 로이터 통신 인터뷰에서 중국-대만 갈등에 "힘으로 현상을 변경하려는 시도 때문에 일어나며, 우리는 국제사회와 더불어 그런 변화에 절대 반대한다"라고 주장했다. 이어 윤 대통령은 "대만 문제는 단지 중국과 대만 간의 이슈가 아니라 북한 문제와 마찬가지로 글로벌 이슈"라고까지 했다.
중국은 대만 문제에 관한 한 극도로 비타협적이다. '하나의 중국'(One China Policy) 정책에 근거해 '영토주권 수호' 차원에서 접근하고 있기 때문이다.
비유하자면 중국에 대만 문제는 일종의 '역린'(逆鱗)이라고 볼 수 있다. 그것을 건드리면 중국은 이성을 잃는다.
대통령까지 대만 문제 개입…'글로벌 이슈' 맞나
윤 대통령의 발언에는 몇 가지 문제가 있다. 첫째는 대만 문제와 딱히 관련이 없는 제3자인 한국이 남의 일에 쓸데없이 끼어들고 있다는 점이다.
게다가 거듭된 중국의 경고를 무시한 채 개입 수위를 계속 높이고 있다. 심지어 개입의 정당성을 주장하고자 '논리'도 만들었다.
대만 문제는 중국과의 '양자 이슈'가 아니라 '글로벌 이슈', 즉 국제적 이슈라는 주장이다. 그런 만큼 국제사회의 일원인 한국이 이 문제에 관여하는 것은 잘못이 없다는 논리다. 한국인 중에 이런 논리를 수긍하는 사람이 얼마나 될지 의구심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윤 정부는 작년 12월 공개한 <인도‧태평양전략 보고서>와 올해 2월 박진 외교부 장관의 CNN 인터뷰를 통해 "대만해협의 평화와 안정은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에 '극히 중요하며'(essential) 지역 전체의 안정과 번영에 필수적 요소"라고 주장한 바 있다. 대만의 안보와 한국의 안보를 동일시하고 나선 것이다.
둘째는 중국-대만 갈등의 '원인'이 중국에 있다고 규정한 대목이다. "힘으로 현상을 변경하려는 시도"는 무력을 통한 중국의 대만 병합을 지칭할 때 미국이 쓰는 표현이다.
끝으로 윤 대통령은 "우리는 국제사회와 더불어 그런 변화에 절대 반대한다"라고 말해 대만 유사시 행동에 나서겠다는 뜻을 내비쳤다. 유사시 한국군의 개입 오해를 부를만한 발언이 아닐 수 없다.
중국 "말참견 용납 못해", 한국 "심각한 외교 결례"
중국은 비외교적 표현을 써가며 거칠게 반발했다. 윤 대통령의 인터뷰 다음 날인 20일 왕원빈 외교부 대변인은 정례 브리핑에서 "대만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중국인 자신의 일"이라며 "타인의 말참견을 용납하지 않는다"라고 말했다고 연합뉴스는 전했다.
'말참견을 용납하지 않는다' 표현은 박진 장관의 CNN 인터뷰 발언을 비판할 때 마오닝 외교부 대변인이 썼던 사자성어 '부용치훼'(不容置喙)다.
'청나라 작가 포송령의 소설에 나오는 이 표현은 강한 어조로 상대를 비판할 때 주로 사용한다. 외교관계에선 거의 쓰이지 않는다.
거친 표현을 중국 외교부 대변인이 상대국 정상인 윤 대통령을 향해 사용한 것이다. 외교적 결례가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시진핑 국가주석이 지난 12일 전례 없이 LG디스플레이 광저우 생산기지를 직접 찾아 '한중 우의'를 강조했다. 손을 내밀었으나 윤 대통령이 로이터 인터뷰를 통해 그 손을 뿌리친 것처럼 시 주석이 받아들였음 직하다.
윤 정부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외교부는 즉각 "입에 담을 수 없는 발언"이라고 규정한 뒤 "중국의 국격을 의심케 하는 심각한 외교적 결례임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고 비판했다고 연합뉴스는 전했다.
또한 장호진 외교부 1차관은 저녁 시간대인데도 싱하이밍 주한중국대사를 불러 강하게 항의했다. 이 자리에서 장 1차관은 왕 대변인의 발언은 외교적 결례라고 거듭 지적하고, 이번 건으로 한중관계 발전에 불필요한 지장을 주지 않도록 "중국 측이 노력해야 한다"라고 요구했다.
왕 대변인은 21일 정례 브리핑에서 “중국은 이미 베이징과 서울에서 한국 측에 엄정한 교섭을 제기했다"며 "중한수교의 정신을 지키고 대만 문제에서 언행에 신중히 처리할 것을 요청했다"라고 밝혔다고 연합뉴스는 전했다. 중국은 특정 사안에 외교 경로로 항의한 경우 '엄정한 교섭을 제기했다'는 표현을 사용한다.
평지풍파 일으키고 '분란' 책임은 상대에 전가하나
한국의 국가원수를 향해 거친 표현을 써가며 비판한 것은 명백한 중국의 외교적 결례로서 비판하고 재발 방지를 요구는 게 마땅하지만, 윤 정부의 대응 자세에도 문제가 있다.
사태는 굳이 대만 문제를 건드려 중국을 자극한 윤 대통령의 발언에서 비롯됐다. 중국이 '사활적 이익'으로 여기는 대만 문제를 건드린 부분에 대해선 일절 '함구'하면서 '거친 표현'만을 집어내 비난하는 것은 정도가 아니다. 자칫 '방귀 뀌고 성내는' 격으로 비칠 수 있다.
'조건부'로 우크라이나에 대한 군사 지원 용의를 밝힌 윤 대통령의 발언에 러시아가 "전쟁 개입" "적대행위로 간주" 등의 표현을 써가며 강경 대응하는 등 파문이 확산되자, 용산 대통령실은 "우리가 앞으로 어떻게 할지는 향후 러시아의 행동에 달려있다"라고 답했다. 평지풍파를 만든 장본인이 사태 해결의 책임을 상대방에 떠넘기는 듯한 그야말로 '희한한' 논리다.
친강 "불장난" 극언…즉각 사과하고 발언 철회해야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이번에는 친강 국무위원 겸 외교부장이 정색하고 나섰다.
중국 외교부 홈페이지에 따르면 친 부장은 21일 한 포럼 연설에서 "대만 문제는 중국의 핵심 이익 중 핵심"이라며 "대만 문제에서 불장난하는 자는 반드시 불에 타 죽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가 연설에서 실명을 거론하지는 않았지만, 윤 대통령의 발언을 겨냥한 것임은 물론이다,
연합뉴스에 따르면, '불장난…' 언급은 시 주석이 낸시 펠로시 당시 미 하원의장의 대만 방문이 화두로 부상한 지난해 7월, 그리고 2021년 11월 각각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온라인으로 소통하면서 대만 문제와 관련해 거론했던 표현이다.
한마디로 해선 안 될 '극언'이 아닐 수 없다. 대국을 자처하는 중국의 외교부장이 쓸 말은 아니다. 중국은 이런 위협적 발언에 대해 사과하고 발언을 즉각 철회해야 한다.
친 부장은 △ 규칙 기반 국제질서에 대한 중국의 도전 △ 무력‧협박을 통한 중국의 일방적 현상 변경 시도 △ 대만해협의 평화·안정 파괴 등의 서방 주장을 "괴담"으로 치부하고 "최소한의 국제 상식과 역사 정의에 어긋나며 논리는 황당하고 결과는 위험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번 과정에서 중국과 일본을 대하는 윤 정부의 접근 자세에 상당한 차이가 확인됐다.
상대국 정상에 대한 극언에 가까운 중국 외교부 대변인의 비난은 사안의 중대성에 비춰 외교부가 강력히 항의하고 외교부 1차관이 주한중국대사를 불러 항의한 것은 마땅한 조치다.
중국엔 대사 초치, "독도 우리 것" 일본엔 항의 시늉
그러나 우리의 영토주권 문제인 독도 영유권과 관련해 일본에 항의할 때는 사뭇 달랐다.
작년 12월 일본의 국가안전보장전략 개정판에 최초로 독도 영유권을 명시했을 때도 그렇고, 지난 11일 일본의 '2023 외교청서'에 6년째 독도를 "일본의 고유 영토"라고 기술했을 때도 정부의 공식 입장 발표 주체는 외교부 대변인 수준인데다 성명이 아닌 논평 형식을 고수했다.
또한 초치한 대상도 주한일본대사관 총괄공사였고 주체는 외교부 아시아태평양국장이었다. 이번에 중국 관련 사안에선 외교부 1차관이 주한중국대사를 부른 것과는 레벨이 꽤 차이 난다.
중국 측이 극언을 퍼붓긴 했지만 빌미를 제공한 것은 윤 대통령이란 점과 독도 문제는 우리의 영토주권 문제라는 점을 같이 저울에 올려놓는다면 윤 정부의 접근법은 균형에 문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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