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원은 징계 않고 홍준표 당 상임고문직 박탈해
입막음 의도…김기현 무리수에 '윤심' 작용 관측도
'극우 목사'와 '프로 막말러'엔 미적지근…당 내분
홍준표 "되지도 않을 사람이 당대표, 뒤통수나 쳐"
전광훈, 그간 김기현과 끈끈한 관계 과시 '최후 승자'
(본 기사는 음성으로 들을 수 있습니다.)
전광훈 사랑제일교회 목사와의 유착 관계 때문에 여론의 눈총을 받던 국민의힘에서 엉뚱하게도 홍준표 대구시장이 유탄을 맞았다. 김기현 대표가 '전광훈 우파 천하통일' '영웅 칭호' 등의 발언으로 큰 물의를 일으켰던 김재원 수석최고위원은 놔두고 돌연 홍 시장을 당 상임고문직에서 사실상 쫓아낸 것이다.
상임고문을 '면직'한 사례는 정당사에서 전례를 찾기 어려울 정도로 이례적인 조치인 데다가, 당 지지율 추락의 한 원인으로 지목됐던 김 최고위원은 정작 징계를 안 해 '전광훈 파문'이 가라앉기는커녕 갈수록 배가 산으로 가는 형국이다. 집권당 내홍이 커지는 가운데 결국 전광훈 목사만 웃게 됐다.
김기현 대표는 13일 국회에서 열린 비공개 최고위원회의에서 "최근 우리 당 지도부를 두고 당 안팎에서 벌이는 일부 인사들의 과도한 설전이 도를 넘고 있다"며 "우리 당 당원도 아니고, 심지어 다른 당을 창당해 그 당의 실질적 대표라고 알려진 특정 목회자가 억지를 부리는 것에 불과한 발언에 대해 일일이 언급할 이유가 없다고 본다"고 말했다.
이어 "(특정 목회자의) 막말에 동조하는 듯한 모습은 우리 당 전체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기에, 그동안 수차례 자중을 촉구했음에도, 오히려 당 내외에서 이를 증폭시키는 듯한 행태에 깊은 유감을 표하지 않을 수 없다"며 "특정 목회자가 국민의힘에 영향을 행사하고 있고, 당 지도부가 그 눈치를 보고 있다는 것이 말이나 될법한 일인가. 있지도 않고 있을 수도 없는 일"이라고 주장했다.
김 대표가 실명을 거론하진 않았지만 여기서 '특정 목회자'는 전광훈 목사, '과도한 설전을 벌이는 일부 인사'는 홍준표 대구시장을 가리킨 것이다. 홍 시장은 지금까지 페이스북 등을 통해 전 목사와 거친 설전을 벌여왔음은 물론, 김 대표를 향해서도 "당 대표가 카리스마가 없고 미지근한 자세로 좋은 게 좋다는 식으로 당 운영을 하게 되면 당은 힘든 시간을 보내게 된다" "당 지도부가 소신과 철학 없이 무기력하게 줏대 없는 행동을 계속한다면 총선을 앞두고 더 큰 위기를 맞이할 수 있다" 등의 발언으로 신랄한 비판을 가해왔다.
그러자 김 대표도 더 이상 못 참겠다는 듯 "지방자치행정을 맡은 사람은 그에 대해 더 전념하셨으면 좋겠다"고 쓴소리를 날렸고, 홍 시장은 다시 발끈해 "이사야 같은 선지자라고 스스로 추켜세웠으니 그 밑에서 잘해 보세요. 참 어이없는 당 대표 발언"이라고 반격했다. 김 대표는 과거 울산시장 시절 전 목사에 대해 "이사야 같은 선지자"라고 극찬한 바 있다.
이후에도 홍 시장은 "그 사람(전 목사)은 우리 당원도 아니라고 소극적인 부인만 하면서 눈치나 보고 있다. 입에 욕을 달고 다니는 목회자와 페이크 뉴스만 일삼는 극우 유튜버만 데리고 선거 치를 수 있다고 보는가? 도대체 무슨 약점을 잡힌 건가?"라고 김 대표를 직설적으로 몰아붙였다.
이에 김 대표도 울화가 쌓이다 이날 급기야 홍 시장의 당 상임고문직을 박탈한 것이다. 비공개 최고위에서는 현직 지방자치단체장이 당 상임고문을 겸직한 전례가 없다며 '정상화' 차원에서 홍 시장을 '해촉'했다고 한다. 홍 시장은 지난해 10월 정진석 비상대책위원장 시절 전직 대표 자격으로 상임고문에 위촉됐었다.
김 대표는 홍 시장의 당 직책을 없애 중앙정치에 관여하지 못하도록 하겠다는 심산인 것으로 보이지만 뜻대로 될 것 같지는 않다. 그 정도 조치에 홍 시장이 독설을 멈추고 김 대표에게 협조할 가능성은 희박하기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김 대표가 갑자기 무리수를 둔 배경에 '윤심'이 작용한 게 아니냐는 관측도 나온다.
홍 시장은 지난 9일 MBC '100분 토론' 1000회 특집에 출연해 "정치력 없고 초보인 대통령을 뽑아놓고 노련한 3김 정치와 같은 대화와 타협을 해 달라는 건 난센스"라며 윤석열 대통령의 정치력을 비하하는 듯한 발언을 했고, 맞수로 함께 출연한 유시민 전 노무현재단 이사장도 "동의한다"고 거드는 모습을 연출했다. 이를 두고 대통령실과 '윤핵관'들이 크게 불쾌해했다는 후문이다.
홍 시장은 즉각 반발했다. 그는 13일 페이스북에서 "엉뚱한 데 화풀이를 한다. 그렇다고 내가 잘못되어가는 당을 방치하고 가만히 보고만 있겠느냐"며 "문제 당사자 징계는 안 하고 나를 징계한다? 이참에 욕설 목사를 상임고문으로 위촉하라"고 김 대표를 비난했다. 이어 "강단 있게 당대표 하라고 했더니만 내가 제일 만만했는지 나한테만 강단 있게 한다"면서 "입당 30여 년 만에 상임고문 면직은 처음 들어본다. 제정신으로 당 운영을 하고 있는 건지, 내 참 어이없는 당이 되어 가고 있다"고 맹공을 퍼부었다.
홍 시장은 연거푸 글을 올려 "그런다고 입막음 되는 게 아니다. 나는 이 팀이 아니라 어차피 내년에 살아남는 사람들과 함께 나머지 정치를 해야 할 사람"이라며 "앞으로 총선 승리를 위해 정국 전반에 대해 더 왕성하게 의견 개진을 하겠다"고 엄포를 놨다. 그래도 분이 안 풀리는지 이날 올린 세 번째 글에서는 "되지도 않을 사람을 밀어 당 대표 만들어 놓았더니 느닷없이 뒤통수나 친다. 나는 늘 앞통수를 치지만 그렇게 뒤통수 치는 건 비열한 짓"이라며 "곰곰 생각할수록 괘씸해서 한 자 더 적었다. 지켜보겠다"고 경고했다.
'전광훈 2차 파동'이라고 할 수 있는 홍 시장 해촉 사태를 놓고 국민의힘 내부는 다시 시끄러워졌다. 유상범 수석대변인은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들과 만나 "현직 시장에 있으면서 상임고문 자격까지 가지고 여러 논란의 말씀을 하시는 것보다는 대구시장으로서 시정에 집중하라는 좋은 취지"라고 뼈있는 말을 전했다. 친윤계로 분류되는 김승수 의원(대구 북구을)은 페이스북에서 "당대표를 폄훼하고 흔드는 것이 과연 우리 당을 위한 것인지, 오히려 해당 행위는 아닌지 묻고 싶다"고 홍 시장을 직격했다.
반면 이준석 전 대표는 페이스북에서 "상임고문 면직이라는 것은 처음 들어본다"며 "정당에서 당내 구성원이 조금이라도 다른 의견이 있으면 윤리위로 몽둥이 찜질하는 것을 넘어서 이제 상임고문 면직까지 나온다"고 어이없어했다. 김웅 의원도 "막말은 괜찮지만 쓴소리는 못 참나. 차라리 막말을 하라는 건가"라고 적었다. 천하람 전남 순천갑 당협위원장은 "이준석, 나경원, 유승민, 안철수, 이제는 홍준표 지지자까지 밀어내면 우리당 지지율이 어떻게 남아나느냐"며 "김기현 대표의 연포탕은 연대포기탕인가. 쓴소리하는 사람은 다 쳐내고 아부하는 사람들과만 연대하겠다는 것인가"라고 쏘아붙였다.
전광훈 목사는 그간 김기현 대표와의 끈끈한 관계를 과시해왔다. 국민의힘 3‧8 전당대회 직후엔 "이번에도 우리가 김기현 장로님을 사실 밀었잖아"라고 조직적 지원 사실을 대놓고 공개했고, "김기현 대표님은, 지나간 뒷이야기를 하자면, 저한테 전화가 와서 '목사님, 하여튼 목사님 말씀 잘 듣겠습니다'라면서 몇 번 전화가 왔다"고 자랑하기도 했다.
김 대표 역시 전 목사와 절연해야 한다는 당 안팎의 숱한 지적에도 불구하고 "그 사람이 우리 당과 무슨 관계가 있다는 건가"라며 "국민의힘이 전 목사와 선을 그어야 할 만큼의 그 어떠한 관계도 아님을 수차례 말씀드렸다"고 강변해왔다. 김 대표는 김재원 최고위원 징계 문제에 대해서도 "앞으로 언행이 더 반복 안 되도록 유심히 지켜볼 것"이라는 정도의 미온적인 반응을 보이더니, 홍 시장 해촉을 단행한 이날도 기자들이 '김 최고위원 징계를 윤리위에서 검토하느냐'는 취지의 질문에 "당 대표가 관여할 수 없게 돼 있다. 윤리위가 독립적으로 알아서 판단할 것"이라고만 답했다.
이처럼 김 대표가 '극우 목사'와 '프로 막말러'에 대해 미적지근한 태도를 고수함으로써 당 내분의 불씨는 앞으로도 사그라들기 어려울 전망이다. 꼭 비주류가 아니더라도 국민의힘 내에서는 "김재원 대신 홍준표를 치는 건 본말이 전도된 게 아니냐"는 불만이 적지 않은 분위기다. "최후의 승자는 전광훈"이라는 말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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