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정상회담 뒤 "역대내각 입장 계승한다" 해놓고

외교청서에선 '두루뭉술 발언'조차 문서화 안해

'반성과 사죄 계승' 의미라고 선전했던 윤 정부 망신

일본 '독도 영유권' 또 주장…의례적인 윤 정부 항의

 

윤석열 대통령과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16일 도쿄 일본 총리관저 인근의 렌가테이에서 맥주잔을 맞들고 있다. 2023.3.16 일본 총리실 페이스북 계정
윤석열 대통령과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16일 도쿄 일본 총리관저 인근의 렌가테이에서 맥주잔을 맞들고 있다. 2023.3.16 일본 총리실 페이스북 계정

윤석열 정부가 일본에게 제대로 뒤통수를 맞았다.

기시다 후미오 일본 정부가 11일 공개한 외교청서에서 강제징용(동원) 피해자 문제에 대한 이른바 '윤석열 해법'에 관해 기술하면서 '역대 내각의 역사 인식 계승' 부분을 배제한 것이다. 외교청서는 최근 국제정세와 일본의 외교활동을 기록한 책자로 매년 4월에 발간된다.

이 대목을 두고 윤 정부는 "매국적"이란 비난을 무릅쓰고 강제징용 문제를 일본의 마음에 쏙 들게 처리해주면서 일본의 호응 조치라고 선전했다. 일본은 전혀 언급도 없는데도 과거 식민 지배에 대한 '반성과 사죄'를 계승한다는 뜻이라고 '아전인수' 식의 해석까지 내놓았다.

정작 일본은 정부의 공식 외교문서에 이 부분을 배제해 윤 정부를 '배반'했다.

윤 정부는 당시 협상 과정에서 성의 있는 호응 조치로 식민 지배와 강제징용 문제에 대한 일본의 사죄와 반성 표명을 간절히 '요청'했으나 하야시 요시마사 외무상에 이어 기시다 총리가 '역대 내각의 역사 인식 계승'을 언급하는 선에서 두루뭉술하게 넘어갔다.

 

하야시 요시마사 일본 외무상은 11일 오전에 열린 각의(閣議·국무회의)에서 '2023 외교청서'를 보고했다. 외교청서는 한국의 강제징용 해법에 호응한 일본 측의 발표를 설명하면서 '역대 내각의 역사 인식 계승' 표명을 누락했다. 외교청서에는 하야시 외무상이 지난달 6일 한국의 징용 해법 발표에 따라 "한국 정부가 발표한 조치는 2018년 대법원 (징용 배상) 판결에 의해 매우 엄중한 상태에 있던 한일관계를 건전한 관계로 되돌리기 위한 것으로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이번 발표를 계기로 조치의 실행과 함께 한일의 정치, 경제, 문화 등 분야에서 교류가 강력히 확대돼 나갈 것을 기대한다"(64쪽, 붉은 밑줄)고 말했다고 기술했다. 2023.4.11  연합뉴스
하야시 요시마사 일본 외무상은 11일 오전에 열린 각의(閣議·국무회의)에서 '2023 외교청서'를 보고했다. 외교청서는 한국의 강제징용 해법에 호응한 일본 측의 발표를 설명하면서 '역대 내각의 역사 인식 계승' 표명을 누락했다. 외교청서에는 하야시 외무상이 지난달 6일 한국의 징용 해법 발표에 따라 "한국 정부가 발표한 조치는 2018년 대법원 (징용 배상) 판결에 의해 매우 엄중한 상태에 있던 한일관계를 건전한 관계로 되돌리기 위한 것으로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이번 발표를 계기로 조치의 실행과 함께 한일의 정치, 경제, 문화 등 분야에서 교류가 강력히 확대돼 나갈 것을 기대한다"(64쪽, 붉은 밑줄)고 말했다고 기술했다. 2023.4.11  연합뉴스

일본 외교문서에 '역대 내각 역사인식 계승' 배제

기시다 총리는 지난달 16일 도쿄에서 윤 대통령과의 한일 정상회담을 마친 뒤 진행한 공동 기자회견에서 모두발언을 통해 한국의 강제징용 해법을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일본 정부는 1998년 10월에 발표한 한일 공동선언을 포함해 역사 인식에 관한 역대 내각의 입장을 전체적으로 계승하고 있다는 점을 확인했다"라고 밝혔다. 앞서 하야시 외무상도 3월 6일 윤 정부의 강제징용 피해 제3자 변제안에 대한 일본 정부 입장을 발표할 때 같은 표현을 썼다.

여기서 '1998년 10월에 발표한 한일 공동선언'은 당시 김대중 대통령과 오부치 게이조 일본 총리가 발표한 것으로 일본의 과거 식민 지배에 대해 '통절한 반성과 진심 어린 사죄'가 담겨 있다. 그러나 당시 기시다도 하야시도 선언에 담긴 '통절한 반성과 진심 어린 사죄' 부분을 직접 언급하지는 않았다. 게다가 윤 정부와는 달리 '김대중-오부치 선언'이라고 지칭하지 않고 '한일 공동선언'이라고만 해 반성과 사죄 부분을 탈색하고자 했다는 의구심을 자아냈다.

문제는 일본 역대 내각의 역사 인식에는 조선에 대한 식민 지배가 '합법'이라는 것과 함께 2015년 12월 "더 이상 사죄하지 않는다"라고 했던 아베 신조 총리의 인식도 포함됐다는 점이다. 아베는 그해 12월 28일 한일 위안부 합의 때 박근혜 대통령과의 전화 통화에서 위안부 강제연행을 사과했지만, 이튿날 바로 거둬들이는 이중성을 보였다.

 

별 뜻 없는 두루뭉술한 발언인데도 문서화 거부

"역대 내각의 역사 인식을 전체적으로 계승한다"라는 발언도 자세히 따지고 보면 이렇듯 진정한 반성과 사죄와는 거리가 먼데, 이번에 정부 공식 외교문서인 외교청서를 펴내면서 일본은 보잘 것 없는 그런 내용마저도 '문서화'하는 것을 거부해 혀를 내두르게 하고 있다.

하야시 외무상은 이날 오전에 열린 각의(閣議·국무회의)에서 '2023 외교청서'를 보고했다. 연합뉴스 보도에 따르면, 올해 외교청서는 "3월 6일 한국 정부는 옛 '조선반도 출신 노동자'(징용 노동자의 일본식 표현) 문제에 관한 자신의 입장을 발표했다"라고 기술했다.

이어 하야시 외무상은 "한국 정부가 발표한 조치는 2018년 대법원 판결에 의해 매우 엄중한 상태에 있던 한일관계를 건전한 관계로 되돌리기 위한 것으로 평가하고, 이번 발표를 계기로 조치의 실행과 함께, 한일의 정치, 경제, 문화 등 분야에서 교류가 강력히 확대돼 나갈 것을 기대한다고 말했다"라고만 적었다. '역대 내각의 역사 인식 계승' 부분은 의도적으로 제외한 것이다.

 

대한민국 고유 영토 독도. [사진공동취재단=연합뉴스 자료사진]
대한민국 고유 영토 독도. [사진공동취재단=연합뉴스 자료사진]

일본 독도영유권 또 주장…의례적인 윤 정부 항의

일본 정부는 외교청서에서 독도에 대한 부당한 영유권 주장도 이어갔다.

외교청서는 "다케시마(竹島·일본이 주장하는 독도의 명칭)는 역사적 사실에 비춰봐도 국제법상으로도 명백한 일본 고유의 영토"라며 "한국은 경비대를 상주시키는 등 국제법상 아무런 근거 없이 다케시마 불법 점거를 계속하고 있다"고 주장했다고 연합뉴스는 전했다.

금년도 외교청서의 독도 영유권 주장 표현은 작년 판과 똑같다. 한국이 독도를 '불법 점거'하고 있다는 표현은 2018년 외교청서에서 처음 등장한 이후 6년째 지속됐다.

이에 대해 윤 정부는 대변인 논평을 통해 "일본 정부가 외교청서를 통해 "역사적·지리적·국제법적으로 명백한 우리 고유의 영토인 독도에 대한 부당한 영유권 주장을 담은 데 대해 강력히 항의한다"라며 즉각 철회를 촉구했다. 또한 주한일본대사관 총괄공사를 불러 항의했다.

사안의 심각성에 비춰보면 윤 정부의 대응은 여전히 미온적이고 의례적이다. 작년 12월 일본의 국가안전보장전략 개정판에 최초로 독도 영유권을 명시했을 때와 마찬가지로 정부의 공식 입장 발표 주체는 외교부 대변인 수준인데다 성명이 아닌 논평 형식을 고수하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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