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시다, 회담서 위안부 합의 '착실한 이행' 요구 확인

일본 소녀상 철거·이전, 성노예 표현 금지 요구할 듯

"기시다, 독도 문제도 거론"…한국 대통령실은 부인

독도 인근 한·미·일 훈련 일상화…'독도 상륙' 기우?

 

조 바이든 미국대통령과 기시다 후미오 일본총리가 13일 워싱턴의 백악관에서 열린 정상회담 도중에 악수를 하고 있다. 2023.1. 13. 로이터 연합뉴스
조 바이든 미국대통령과 기시다 후미오 일본총리가 13일 워싱턴의 백악관에서 열린 정상회담 도중에 악수를 하고 있다. 2023.1. 13. 로이터 연합뉴스

일본 정부가 무장해제 상태인 윤석열 정부를 무자비하게 몰아붙이고 있다.

일제강점기 강제동원(징용) 피해자 배상 문제와 관련해 윤 정부로부터 '항복'을 받아낸 기시다 후미오 정부가 여세를 몰아 일본군 위안부와 독도 문제까지 해결하라고 사정없이 몰아치는 형국이다. 특히 한일 위안부 합의의 착실한 이행을 요구함으로써 평화의 소녀상 철거 및 이전 논란이 불붙을 우려가 크다.

위안부 문제는 일본 언론에서 먼저 나왔다. 교도통신은 16일 도쿄 한일 정상회담에서 기시다 총리가 '한일 위안부 합의의 착실한 이행'을 요청했다고 일본 정부 관계자를 인용해 보도했다. 사안의 민감성을 의식한 듯 대통령실 고위관계자는 회담은 '한일 관계의 미래'에 집중됐다면서 즉답을 피했다.

그러나 기시다 총리는 이 보도를 사실상 확인했다. 회담 후 공동기자회견에서였다. 관련 질문에 그는 "지적한 점도 포함한 과제나 현안에 대해 속내를 감추지 않고 얘기해 나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본격적으로 문제를 제기하겠다는 얘기다. 그동안 일본은 한국이 위안부 합의를 파기했다고 비난해왔다. 기시다는 2021년 10월 총리직에 오른 이후 위안부 합의의 이행을 줄곧 촉구해왔다고 연합뉴스는 전했다.

한일 위안부 합의는 2015년 12월 박근혜 정부 때 타결됐으나 피해 당사자의 의견을 배제한 '밀실 합의'인데다가 "최종적이고 불가역적으로 해결됐다"라고 선언한 게 알려지면서 한국 내에서 엄청난 반발을 샀다. 그 후 문재인 정부는 진상조사를 통해 '잘못된 합의'였다고 결론을 냈다. 그러나 일본에 재협상을 요구하지 않고, 일본 정부 출연금 10억 엔(약 100억 원)으로 만든 화해‧치유재단을 해산하는 데 그쳤다.

 

어린이들과 '평화와 소녀상'. [정의기억연대 홈페이지] 시민언론 민들레
어린이들과 '평화의 소녀상'. [정의기억연대 홈페이지] 시민언론 민들레

2015년 이면 합의?…소녀상과 '성노예' 표현 논란

윤 정부는 출범 직후부터 한일 위안부 합의의 복원을 주장해온 만큼 회담에서 기시다가 이 문제를 제기했다고 해서 놀랄 일은 아니다. 그러나 '악마는 디테일(세부사항)에 있다'라는 속담이 말하듯 위안부 합의의 착실한 이행이란 기시다의 언급 중 '착실한'이란 용어가 정확히 무엇을 뜻하는지가 초점이다.

이 말을 윤 정부는 "최종적이고 불가역적으로 해결됐다"라는 데 방점을 찍고 일본이 위안부 문제를 더는 거론하지 않기를 원하는 것으로 여길 수 있다. 그러나 자세히 뜯어보면, 일본은 그 이상을 원하는 게 분명하다. 문 정부가 진상조사를 통해 밝혀낸 것이 당시 위안부 합의와 관련한 한·일 외교장관(윤병세-기시다)의 공동발표 내용 외에 비공개 '이면 합의'였다. '평화의 소녀상'과 관련된 부분이었다.

'한일 위안부 합의 검토 TF'(위원장 오태규)에 따르면, 일본 측은 협상 과정에서 △ 소녀상이나 비 등의 해외 설치를 한국 정부가 지원하지 않고 △ 주한일본대사관 앞 소녀상 이전 △ 위안부의 '성노예' 표현사용 금지 등을 요구했다고 한다. 이에 한국 측은 "적절히 해결하도록 노력한다" "공식 명칭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문제'뿐"이라고 답변해 사실상 동의한 것으로 일본 측은 이해하고 있다는 것이다.

 

11일 오후 서울시청 광장 동편에서 열린 ‘’에서 참가자들이 관련 구호를 외치고 있다. 2023.3.11. 연합뉴스
11일 오후 서울시청 광장 동편에서 열린 ‘’에서 참가자들이 관련 구호를 외치고 있다. 2023.3.11. 연합뉴스

힐러리 "위안부는 잘못된 표현…성노예 표현 써라"

이런 저간의 사정을 고려하면 기시다의 '한일 위안부 합의의 착실한 이행' 요구는 해산된 화해‧치유재단의 복원은 논외로 쳐도, 이참에 윤 정부에 소녀상 문제를 해결하라고 압박을 뜻한다.

그동안 일본은 주한일본대사관 앞 소녀상 이전과 아울러 세계 곳곳에 세워진 소녀상을 철거하고 추가로 건립하는 국제사회의 시민운동을 저지하는데 거의 사활을 걸어왔다. 지난 9일에는 일본 당국의 압력으로 독일 카셀 주립대 당국이 평화의 소녀상을 기습 철거했고 현재 되찾기 서명운동이 진행 중이다.

일본군 위안부의 명칭과 관련해 2012년에 당시 미국 국무장관이었던 힐러리 클린턴은 '강제적인 일본군 성노예(enforced sex slaves)'라는 표현을 쓰도록 했을 정도로 '성노예'는 국제사회에선 이미 보편적인 용어로 자리를 잡았다. 위안부 문제는 한‧일 간의 식민지 과거사 문제로서 현재진행형인 사안일 뿐 아니라, '전시 성폭력 범죄'라는 국제사회의 보편적 인권 문제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일제 식민지 지배는 합법적이라면서 일제 전쟁 범죄를 온통 부정하는 일본 정부의 적반하장식 요구에 과연 윤 정부가 제대로 대처할 수 있을지 회의적이다. 피해 당사자들의 반발을 묵살하고 일본 정부와 전범 기업의 불법적 강제동원 행위에 면죄부를 줌으로써 '친일 본색'을 드러냈기 때문이다.

 

2023 02 22. 연합뉴스
2023 02 22. 연합뉴스

일본 언론 "기시다 독도 거론"…본격적 도발 예고?

기시다 총리가 독도 문제도 거론했다는 게 NHK와 교도통신 등 일본 언론의 보도다. 한국 대통령실은 독도 문제는 전혀 거론되지 않았다고 부인했다.

그러나 일본 정부 고위당국자는 일본 기자 대상 브리핑에서 “한일 관계 전반에 대해 논의하면서 총리는 한일 간의 제반 현안에 대해서도 제대로 대응해 나가자는 취지를 밝혔으며, 그 현안 중에는 다케시마 문제도 포함된다”고 확인했다.

독도 문제와 관련해 윤 정부가 뭔가 숨기는 게 아니냐는 의심이 드는 게 사실이다. 최근 몇 달 동안 강제동원 문제를 다루면서 전혀 국민에게 신뢰를 주지 못했기 때문이다. 기시다가 회담에서 일본의 독도 영유권을 주장했다면 그 자리에서 강하게 항의하고 다시는 도발하지 못하게 못 박았어야 했다.

관련 내용이 없었다는 정부의 해명을 액면대로 받아들인다면 일본 정부가 언론플레이를 한 셈이다. 설사 그렇다고 해도, 윤 정부는 일본 언론 보도에 강하게 항의해야 한다. 그러나 아직 그런 내용은 전해지지 않고 있다.

 

대한민국 고유 영토 독도. [사진공동취재단=연합뉴스 자료사진]
대한민국 고유 영토 독도. [사진공동취재단=연합뉴스 자료사진]

독도 인근 한·미·일 훈련 일상화…'독도 상륙'은 기우?

일본은 작년 12월 16일 외교·안보 기본지침서인 국가안전보장전략을 개정하면서 독도를 "우리나라(일본) 고유영토"라고 처음으로 명시했다. 독도 영유권과 관련해 일본은 "국제법에 따라 평화적으로 분쟁을 해결한다는 방침"이라고 했던 2013년 판에서 몇 걸음 더 나아가 "우리나라의 일관된 입장에 기초해 의연하게 대응하면서"와 "끈질기게 외교 노력을 한다"라는 부분을 추가했다.

한국의 고유영토인 독도를 어떻게든 자국에 편입시키겠다는 의지를 확인한 셈이다. 최근 일본 정부는 35년 만에 자국 내 섬을 재집계하면서 독도를 포함해 발표했다. 일본의 독도 도발이 본격화하고 있음을 보여준 상징적 사건이다.

일본 언론의 독도 관련 보도를 심상치 않게 여기는 까닭은 따로 있다. 일본 해상자위대의 독도 인근 진출을 반복적으로 용인하는 윤 정부의 행보가 위험천만하기 때문이다. 가장 최근에는 일본의 주장하는 '다케시마의 날'인 지난달 22일 그것도 '일본해'로 표기된 해도에 맞춰 독도 인근에서 한·미·일 3국 해상전력이 미사일 방어훈련을 실시했다. 같은 해역에서 작년 10월에 이어 두 번째 훈련이었다. 작년 9월엔 3국 대잠수함전 훈련도 있었다. 그리고 이달 말에는 3차 미사일 방어훈련이 예정돼 있다.

일각에서는 독도 인근에서 한·미·일 3국의 해상 훈련이 '일상화'되다 보면, 미‧일의 요청을 받아 북한의 핵‧미사일 신속 대응 명분으로 독도에 공동 관측기지 설치를 윤 정부가 용인함으로써 일본 자위대가 독도에 상륙하는 길을 터주는 게 아니냐는 기우(杞憂) 아닌 기우마저 나오고 있을 정도다.

 

더불어민주당 박홍근 원내대표가 15일 오전 서울 용산 대통령실 앞 전쟁기념관 입구에서 열린 윤석열 정부 대일 굴욕외교 저지를 위한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2023.3.15. 연합뉴스
더불어민주당 박홍근 원내대표가 15일 오전 서울 용산 대통령실 앞 전쟁기념관 입구에서 열린 윤석열 정부 대일 굴욕외교 저지를 위한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2023.3.15. 연합뉴스

윤석열, 일본 전범 기업에 면죄부…구상권도 ‘봉쇄’

강제동원 피해자 배상과 관련해선, 다 알다시피 아무것도 얻은 것 없이 모두 내주는 것으로 끝났다. 포스코 등 한국 기업이 출연한 기금으로 한국 정부 산하 재단이 2018년 대법원 확정판결의 판결금(배상금)을 피해자들에게 대신 변제하기로 했다. 더우기 구상권도 포기하겠다고 윤 대통령은 거듭 확인했다. 피해자인 한국의 대통령이 가해 일본 전범 기업의 불법적 강제동원 행위에 완벽한 면죄부를 준 것이다.

기시다는 일본의 강제동원 행위에 전혀 사과나 유감 표명도 없었고, 그저 1998년 10월 한일 공동선언(김대중-오부치 선언)을 포함한 "역대 내각의 입장을 전체적으로 계승"하겠다고만 말했다. 일제의 조선 침략 및 식민지 과거사에 대한 사죄를 거부했던 아베 신조 내각의 입장도 계승하겠다는 뜻이어서 그 진정성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김대중-오부치 선언'의 핵심이 '과거를 직시'하고 미래로 나아간다는 데 방점이 찍혀 있다는 점에서 선언의 형식만 빌렸을 뿐 그 선언의 정신은 훼손한 것과 마찬가지다. 양국 경제단체들이 각각 10억 원씩 출연해 만든 유학생 지원 등을 위한 '한‧일 미래 파트너십 기금'은 윤 정부의 백기 투항을 분칠하려는 얄팍한 수라는 비판이 지배적이다.

 

윤석열 대통령과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16일 오후 일본 도쿄 긴자의 오므라이스 노포에서 친교의 시간을 함께하며 생맥주로 건배하고 있다. 2023.3.16. 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과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16일 오후 일본 도쿄 긴자의 오므라이스 노포에서 친교의 시간을 함께하며 생맥주로 건배하고 있다. 2023.3.16. 연합뉴스

오므라이스‧생맥주 대접에 일본 원한 것 다 내줘

한국 대법원 배상 판결에 대한 보복 조치로 일본 정부가 취했던 화이트리스트(수출관리 우대국)에서의 한국 배제 조치도 윤 정부가 '강제동원 해법'을 내놓았으면 즉각 원상복구라는 상응 조치를 해야 하지만 기시다는 추후 협상 과제로 남겨 놓았다.

다만 한국에 대한 반도체 핵심 소재 3개 품목의 수출규제를 해제하고 그 대신 윤 정부는 일본의 3개 품목 수출규제 조치에 대한 세계무역기구(WTO) 제소를 취하했다. 하나에서 열까지 기시다에게 일방적으로 끌려다녔다고 봐도 지나치지 않다.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지소미아)의 완전 정상화 약속이나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차원의 한일 경제안보대화 구성 합의 등도 윤 대통령이 '국익'을 내세웠지만, 미국과 일본이 바라마지 않던 사안들이다.

한‧일 안보협력 강화를 통해 일본의 재무장과 군사대국화를 용인하고 궁극적으로 대중국 포위망 구축을 뒷받침하는 한·미·일 군사동맹으로 가는 길을 열어놓은 셈이다.

윤 대통령은 어린 시절 향수가 배어 있는 도쿄를 찾아 스키야키에 이어 오므라이스와 생맥주 대접을 받고 일본이 원하는 것을 다 내준 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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