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카쿠라 텐신 "일본의 조선 지배 정당"
"단군은 일본 시조 동생의 아들이다"
일본에서도 '제국주의 찬미자' 비판
윤석열 대통령이 17일 오후 일본 게이오대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강연에서 하필 메이지 시대의 국수주의 사상가 오카쿠라 텐신의 말을 인용했다. 강연은 일본에서의 마지막 방일 일정이었다. 윤 대통령은 강연 중에 김대중-오부치 공동선언에 대해 언급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김대중 대통령께서는 25년 전인 1998년 이곳 도쿄에서 50년도 안 되는 불행한 역사 때문에 1500년에 걸친 교류와 협력의 역사를 무의미하게 만들어서는 안 된다고 역설했다. (…) 메이지 시대의 사상가 오카쿠라 텐신은 ‘용기는 생명의 열쇠’라고 했다. 25년 전 한일 양국의 정치인이 용기를 내어 새 시대의 문을 연 이유가, 후손들에게 불편한 역사를 남겨 줘서는 안 된다는 믿음 때문이었다.”
오카쿠라 텐신이 어떤 인물인지, 귀동냥으로라도 잠깐 들은 한국인이라면 깜짝 놀랐을 것이다. 오카쿠라 텐신(岡倉天心, 1863~1913)은 메이지 시대에 사상가, 미술평론가 등으로 활약한 인물이다. 결론부터 말하면, 그는 일본 제국주의의 논리를 만들어낸 사람 가운데 하나였다. 그런 사람의 말을 대한민국의 대통령이 일본 대학생들 앞에서 인용했다니 놀랍기 짝이 없다.
텐신이 어떤 사람인지 알아보려면, 그가 1904년 미국에서 펴낸 〈일본의 각성〉이라는 책을 보면 된다. 그는 이 책에서 조선과 일본의 관계를 이렇게 쓰고 있다.
조선의 시조 단군은 일본의 시조 아마테라스의 아우 스사노오의 아들일 뿐만 아니라 조선은 일본의 제14대 천왕 주아이의 황후 신공이 정벌군을 파견하여 삼한 땅을 정복했던 3세기 이후 8세기에 이르는 500년 동안 일본의 지배하에 있던 고유의 속주였으니 일본이 러일전쟁에서 승리를 거두고 앞으로 조선을 식민지로 재지배한다 하여도 결코 침략이 아니라 역사적인 원상회복일 뿐이다.
책에는 이런 구절도 있다. “조선의 고분에서 나오는 출토품들이 일본 고분의 출토품과 쌍둥이처럼 닮아 있다는 것만 보아도 일본이 태고적부터 이미 조선을 지배하고 있었다는 것은 명확한 사실이 아닌가.”
일본 제국주의자들은 ‘아시아는 하나’라는 이념적 슬로건 아래 대동아공영권 구축을 위해 태평양전쟁을 일으켰다. ‘아시아는 하나’라는 이 말도 텐신이 1903년에 발간한 <동양의 이상>에서 맨처음 사용한 것이다.
텐신이 일본 제국주의의 사상적 토대를 제공한 인물 가운데 하나라는 주장은 국내 연구자들의 논문에서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서울대 종교문제연구소에서 펴낸 최유경의 논문 <오카쿠라 텐신의 아시아통합론과 불교> 한 부분을 보자.
<일본의 각성>은 러일전쟁 중에 집필된 것으로 텐신의 4개의 서적 중에서 가장 정치색을 강하게 드러낸 서적으로 청일전쟁과 러일전쟁을 비호하며 일본의 조선 지배를 정당화하는 의식이 명확하게 보이고 있다. 유럽의 강국, 러시아를 상대로 싸우는 신흥 아시아국가 일본에 대해 관심이 고조되고 있는 상황에서 미국에 거주하고 있던 텐신은 이 전쟁의 정당성을 서방국가에서 전하고자 했던 의도를 확실히 드러내고 있다.
이런 이유 때문에 일본에서도 텐신을 ‘제국주의의 찬미자’ ‘아시아 통합론의 주창자’였다고 비판하는 사람들이 많다. 오늘날에도 일본의 극우 정치인들은 그를 심심찮게 소환하곤 한다.
그런가 하면 미술평론가로서 텐신은 일제강점기에 ‘조선화’ 대신 ‘동양화’라는 개념을 도입한 인물이기도 하다. 유감스럽게도 ‘동양화’라는 말은 요즘도 많이 쓰이고 있다. 이 역시 텐신의 ‘하나의 동양’에서 비롯된 용어다.
일본을 방문중인 대한민국의 대통령이 이런 사람의 말을 인용하면서 일본 대학생들 앞에서 강연을 한 것이다. 더구나 김대중-오부치 공동선언에 대해 강연하며 인용한 것이라니 유구무언이다.
윤 대통령의 강연이 끝나자 일본 대학생들은 뜨거운 박수를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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