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7대 기준보다 강화한다더니 항목 대폭 삭제

김인철, 정호영, 김승희에 정순신까지 인사 참사 반복

원칙, 철학, 기준 없는 인사…검사 독식, 견제 불가능

책임감 갖지만 책임 안 진다는 한동훈 무책임 말장난

경질 요구 봇물…"대통령 사과하고 책임자 문책하라"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1월 26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법무부·공정거래위원회·법제처 등에 대한 업무보고에 한동훈 법무부 장관, 이원석 검찰총장 등과 함께 입장하고 있다. 2023.1.26. 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1월 26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법무부·공정거래위원회·법제처 등에 대한 업무보고에 한동훈 법무부 장관, 이원석 검찰총장 등과 함께 입장하고 있다. 2023.1.26. 연합뉴스

정순신 전 경찰청 국가수사본부장 후보자의 아들 학교폭력(학폭) 문제를 계기로 윤석열 정부의 인사 검증 체계에 대한 비판이 나오는 가운데, 검증 기초 작업에 해당하는 공직 예비후보 사전질문서부터 전임 정부와 비교해 후퇴한 것으로 3일 드러났다.

대통령실은 질문서 항목을 보강하고 검증을 강화하겠다는 입장이지만, 인사라인을 검사 출신들이 독식하고 있는 상황에서 단순 질문 보강으로 제2, 제3의 '정순신 사태'를 막을 수 있을지 의문이 든다. 정치권에서는 인사 라인을 장악하고 있는 한동훈 법무부 장관 등 검사 출신에 대한 경질 요구가 나오고 있다.

인사검증 기본 '후보자 사전 질문서'부터 부실

공직 예비후보 사전질문서는 고위 공직후보자가 직접 작성하는 자기검증 문서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서식을 보강·수정하고 있으며, 기본 인적사항 외에 △국적 및 주민등록 △병역의무 이행 △범죄경력 및 징계 △재산관계 △납세의무 이행 △학력·경력 △연구윤리 △직무윤리 △사생활 및 기타 사항 등을 기재하게 돼 있다.

문재인 정부에서는 12개 분야, 190개항 질문을 망라한 67쪽 분량의 공직 예비후보 사전질문서를 만들었다. 문 정부는 특히 7대 비리(병역기피, 세금탈루, 불법적 재산증식, 위장전입, 연구 부정행위, 음주 운전, 성 관련 범죄 등) 인사검증을 발표한 만큼 이를 질문서에도 적극 반영했다.

문 정부의 사전 질문서는 이름, 생년월일, 주소 등을 기재하는 기본 인적사항보다 7대 비리를 먼저 검증하겠다는 의지를 담아 사전 질문서 1쪽부터 7대 비리 문항이 등장한다. 이 때문에 "사전 질문서를 받자마자 고사한 사람이 있었다"는 말이 당시 청와대 관계자들 사이에서 나오기도 했다. 

윤 정부도 지난해 9월 19일 '공직 예비후보자 사전질문서'를 처음 공개했다. 문 정부의 사전 질문서를 바탕으로 재편한 만큼 질문 내용 자체는 대체로 대동소이했다. 하지만 '7대 비리' 분야를 삭제하고 11개 분야 169개 항목으로 질문을 줄였다. 분량도 59쪽으로 줄어들었다.

윤 정부는 대통령직인수위원회 당시 고위공직자 후보 사전 검증과 관련해 문 정부와 비교하며 "7대 기준을 훨씬 상회할 것(원일희 인수위 수석부대변인)"이라고 했었다. 하지만 호언장담했던 내용을 돌이켜보면 상당히 초라한 결과물이다.

 

문재인 정부와 윤석열 정부 공직 예비후보 사전질문서 비교. 2023.3.3. 그래픽 시민언론 민들레 고일석 에디터.
문재인 정부와 윤석열 정부 공직 예비후보 사전질문서 비교. 2023.3.3. 그래픽 시민언론 민들레 고일석 에디터.

윤 정부의 인사 원칙을 가늠할 특징 있는 질문도 없었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을 정권 창출 도구로 삼은 윤 정부는 이를 의식하듯 질문서에 입시 부정 및 청탁 행위 관련 질문을 1문항 추가했지만, 정순신 사태가 단순 학폭에서 서울대 입시 비리 문제로 번지는 상황에서 도대체 무슨 검증을 한 것이냐는 비판까지 쏟아지고 있다.

언론 보도를 종합하면, 대통령실은 정순신 사태를 계기로 사전 질문서에 대한 보강을 추진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자녀의 학교폭력 관련 질문을 추가하거나 사실 그대로 답변할 의무를 강조하는 문구 등을 삽입하는 방안 등도 검토 중이라고 하지만 문항 보강으로 해결될 문제는 아니다.

<시민언론 민들레> 취재를 종합하면 정순신 후보자는 '본인·배우자·직계존비속이 원고나 피고로 관계된 민사·행정소송이 있느냐'는 질문에 아들 학폭 관련 행정소송 사건을 숨기고 '아니오'라고 답했다. 자기검증 문서인 만큼 인사 원칙을 가지고 교차 검증을 하지 않으면 사고는 또 터질 수밖에 없다.

 

문재인 정부(왼쪽)와 윤석열 정부(오른쪽) 공직 예비후보 사전질문서 1쪽 비교. 문 정부 질문서(왼쪽)는 기본 인적사항 앞에 7대 비리 관련 19문항을 먼저 묻고 있다. 윤 정부는 7대 비리를 삭제하고 질문 문항도 대거 삭제했다. 2023.3.3. 자료 정리 김성진 기자
문재인 정부(왼쪽)와 윤석열 정부(오른쪽) 공직 예비후보 사전질문서 1쪽 비교. 문 정부 질문서(왼쪽)는 기본 인적사항 앞에 7대 비리 관련 19문항을 먼저 묻고 있다. 윤 정부는 7대 비리를 삭제하고 질문 문항도 대거 삭제했다. 2023.3.3. 자료 정리 김성진 기자

철학 없는 인사 시스템, 처음부터 예고된 인사 참사

윤 정부의 고위 공직 후보자에 대한 기본적인 검증 부족과 원칙 없는 인사는 그동안 낙마 사례에서도 여러 차례 확인된다.

윤 정부에서 처음 낙마했던 김인철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 후보자는 지명 직후 풀 브라이트 장학금 '아빠 찬스' 문제, 한국외대 총장시절 법인카드 '쪼개기 결제', 성폭력 교수 옹호 논란 등 기본적인 검증 과정에서 걸러질 수 있는 문제들이 대거 불거졌다.

두 번째 낙마했던 정호영 보건복지부 장관 후보자의 경우 자녀 경북대 의대 편입학 등 '아빠 찬스' 의혹이 무더기로 제기됐다. 입시비리 항목을 넣고도 못거른 사례다. 김승희 보건복지부 장관 후보자는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를 받고 있었지만 전혀 발견하지 못했다. 그는 지난해 12월 1심 법원에서 벌금 300만 원을 선고받았다.

국회 인사청문회 없이 임명된 박순애 전 교육부 장관은 논문 중복 게재 때문에 한국행정학회(2011년)와 한국정치학회(2012년)에서 투고 금지 처분을 받았었다. 박 전 장관은 결국 지난해 8월 만 5세 입학 정책 논란에 휩싸여 사퇴했지만 청문회에서 이미 낙마했을 수도 있다.

물론 인사 검증 시스템이 완벽할 수는 없다. 이는 어느 정권에서나 마찬가지 문제였다. 하지만 윤 정부에서는 뚜렷한 인사 철학도, 기준도, 원칙도 없다는 것이 근본 문제다. 인사에 대한 최소한의 기준마저 없으니 사전 검증 단계에서도 거르지 못하는 것이다.

 

정호영 보건복지부 장관 후보자가 지난해 5월 2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 국민연금공단 서울북부지역본부에 마련된 국회 인사청문회 준비 사무실로 출근하고 있다. 2022.5.2. 연합뉴스
정호영 보건복지부 장관 후보자가 지난해 5월 2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 국민연금공단 서울북부지역본부에 마련된 국회 인사청문회 준비 사무실로 출근하고 있다. 2022.5.2. 연합뉴스

비근한 예로 문 정부도 여러 차례 인사 폭풍을 맞았지만, 7대 비리 관련 고위공직 후보자 인사검증 기준을 마련해 야당과 논의하고 최소한 국민들이 판단할 수 있는 기준을 마련했다.

문 정부는 임기 초부터 7대 비리 기준을 통해 인사청문 제도가 장관급까지 확대된 2005년 7월 이후 부동산 투기 또는 자녀의 선호학교 배정 등을 위한 목적으로 2회 이상 위장전입을 한 경우 원천적으로 인사에서 배제하기로 했다.

연구 부정행위의 경우 <연구윤리 확보를 위한 지침>이 제정된 2007년 2월 이후 논문에 대해 부정행위가 발견될 시 인사에서 배제했고, 세금 탈루 문제도 조세범 처벌법 위반으로 처벌받거나 고액·상습 체납자로 명단이 공개된 경우에 한정했다.

이 같은 기준과 별개로 당시 보수 야당은 후보자 생애 전반을 문제 삼았지만 국무총리, 대법관, 헌법재판관 등 국회 임명 동의가 필요한 고위 공직자 인사 검증은 사실상 100% 7대 기준을 부합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최소한의 선은 넘었던 셈이다.

<시민언론 민들레>가 문 정부의 국회 임명동의 대상자 인사청문회를 전수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임명동의 대상 고위 공직 후보자 26명 중 7대 기준을 부합하지 않은 경우는 1명이었다.

이마저도 이흥구 대법관 1명으로, 7대 기준인 2005년 7월 이후 위장전입 기준에 불과 몇 개월 차이였다. 이 대법관은 2005년 8월 처가로 주소를 옮기고 같은 해 12월 같은 아파트의 같은 동 다른 호수로 전입해 문제가 됐다.

야당으로부터 연구 부정행위 문제가 제기된 1명의 경우 <연구윤리 확보를 위한 지침> 제정 전이었으며, 세금 탈루와 과태료 체납 등이 제기된 6명도 처벌받거나 명단이 공개되지 않아 7대 기준을 위배하지 않았다. 다운계약서와 관련된 3명도 부동산 실거래 신고제가 도입된 2006년 1월 이전이어서 법률상 문제는 없었다.

 

국가수사본부장에 임명됐다 사의를 표명한 정순신 변호사. YTN 화면 캡처.
국가수사본부장에 임명됐다 사의를 표명한 정순신 변호사. YTN 화면 캡처.

검사 독식한 윤 정부 인사라인…'교차검증' 불가능

특히 윤 정부의 인사 시스템의 큰 문제는 확고한 원칙이 없는 가운데 검사 출신들이 인사 라인을 독식하고 '유유상종'식 인사 추천 및 검증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윤 정부 이전까지 청와대 인사는 인사수석실의 추천과 민정수석실 산하 공직비서관실, 인사혁신처의 검증이라는 두 축으로 이뤄졌다. 윤 정부는 이 가운데 검증 기능을 법무부 인사정보관리단과 대통령실 공직비서관실이 이중으로 검증하게 했다.

시스템만 놓고 보면 구조적으로 이전보다 교차검증이 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익히 알려졌듯이 윤 정부의 인사라인은 인사 추천부터 검증까지 모두 검사 출신들이 자리를 꿰차고 있어 교차검증을 기대하기는 어려운 구조다.

인사 첫 관문인 인사수석실에는 검사 출신 이원모 인사비서관, 복두규 인사기획관이 있다. 대통령실 검증 라인인 공직기강비서관에는 검사 출신 이시원 공직기강비서관이 있으며, 한동훈 장관의 지휘를 받는 법무부 인사정보관리단에도 이동균, 김현우, 김주현 등 검사들이 대거 자리잡고 있다.

인사 검증은 견제와 균형이 없이는 돌아가기 힘든 구조다. 그러나 '검사 동일체' 원칙을 시보 시절부터 몸에 익혀온 이들이 대거 포진된 현재의 인사 시스템에서는 2차, 3차를 넘어 'n차' 검증을 해도 정순신 사태를 막기에는 역부족으로 보인다.

대통령실이 사전 질문서를 아무리 보강하고 후보를 추천해도, 정순신 후보자처럼 기본적인 검증에 실패해 낙마한 사례들이 나올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이도운 대통령실 대변인이 지난달 9일 오후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브리핑을 하고 있다. 2023.2.9
이도운 대통령실 대변인이 지난달 9일 오후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브리핑을 하고 있다. 2023.2.9

하지만 윤 정부에서 이를 문제로 보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강한 의구심이 든다.

한 장관은 지난달 28일 국회에서 기자들과 만나 인사 검증 실패에 따른 법무부 장관 책임론이 제기되는 것에 대해 "일차적 객관적 검증이 인사정보관리단에 있고, 다른 기관에서도 관리하지만 그 상관인 내가 책임감을 갖는 것은 맞다"면서도, '책임을 지겠냐'는 기자들의 질문에는 "아니다"라고 일축했다.

그는 인사정보관리단의 최고 책임자이면서 "구조적으로 파악하기 어려운 일은 맞았던 것 같다. 지금 같은 시스템이면 이런 일이 반복될 것 같다"고 '유체이탈' 화법을 쓰기도 했다. 정순신 아들 학폭에 대해서도 '동기 사이에 몰랐다고 보기 어렵다'는 지적에 "개인적 사이는 아니어서 모른 걸 어떡하냐"고 했다.

인사 책임자의 사과 없는 태도에 정치권에서는 한 장관 경질 등 인사라인 전면 재편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계속해서 나오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임오경 대변인은 지난 2일 "한동훈 장관은 정순신 전 검사와 SNS(사회관계망 서비스) 친구인 것으로 드러났다"면서 "새빨간 거짓말"이라고 질타했다. 임 대변인은 "한 장관은 인사검증이 '권력이 아닌 책무'라는 본인의 말을 지켜야 한다"며 "지금이 바로 인사검증 책임자로서의 책임을 다해야할 때"라고 했다.

이재명 대표는 3일 당 최고위원회의에서 "대통령은 관련 책임자 전원을 엄하게 문책하고 인사 참사 제조기로 전락해 버린 검증 라인도 전면 교체하기 바란다"며 "인사 참사의 책임을 통감하고 대통령이 직접 국민과 피해자들에게 사과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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