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권 차원 부담, 오래 버티기 어렵다 판단한 듯

국수본부장 임기 하루 앞…'지원 철회' 방식으로

"흠결 갖고 중책 도저히 수행할 수 없다는 결론"

야권 물론 여당서도 "인사 실패" 즉각 사퇴 요구

국가수사본부장에 임명됐다 사의를 표명한 정순신 변호사. YTN 화면 캡처
국가수사본부장에 임명됐다 사의를 표명한 정순신 변호사. YTN 화면 캡처

신임 국가수사본부장에 임명된 정순신 변호사가 아들의 학교폭력 문제와 반성 없는 '끝장 소송' 사실이 알려지며 거센 파문이 일자 임기 시작을 하루 앞두고 사의를 표명했다. 고위직 검사였던 정 변호사가 '법 기술'을 발휘해 아들의 전학 처분 및 학교생활기록부 '학폭' 사실 기재를 최대한 지연시킨 게 아니냐는 의혹이 눈덩이처럼 커지면서 여론이 들끓자 더 이상 버티기 어렵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정 변호사는 25일 오후 입장문을 내고 "먼저 저희 아들 문제로 송구하고 피해자와 그 부모님께 저희 가족 모두가 다시 한번 용서를 구한다"고 밝혔다.

이어 "수사의 최종 목표는 유죄 판결이다. 초동 수사단계에서부터 공판 경험이 있는 수사 인력이 긴요하다"면서 "이에 수사와 공판을 두루 거친 경험을 바탕으로 국가 수사 발전에 기여하고자 국가수사본부장에 지원했다"고 전국 수사 경찰을 지휘하는 자리에 지원하게 된 이유를 설명했다.

정 변호사는 "그런데 저희 아들 문제로 국민들이 걱정하시는 상황이 생겼고 이러한 흠결을 가지고서는 국가수사본부장이라는 중책을 도저히 수행할 수 없다는 결론에 이르렀다"며 "국가수사본부장 지원을 철회한다. 저희 가족 모두는 두고두고 반성하면서 살겠다"고 전했다.

정 변호사는 전날 윤석열 대통령에 의해 정식 임명됐으나 아직 임기를 시작하지 않아 국수본부장 공모 지원을 철회하는 방식으로 사의를 표명했다. 정 변호사의 국수본부장 임기는 26일부터였다.

정 변호사는 아들이 고등학교 재학 시절 상습적 학교폭력의 가해자로 전학 처분까지 맞았고, 피해자와 가족에게 이렇다 할 사과와 피해 회복 조치를 하는 대신 대법원까지 가는 소송전을 벌인 사실이 알려지면서 여론이 급속도로 악화됐다. 피해자는 일상생활이 불가능할 정도의 극심한 우울증으로 정신과 병원 치료를 받고 지금까지도 후유증으로 학업을 이어가지 못하는 반면, 정 변호사의 아들은 강제 전학을 최대한 지연시킨 끝에 서울대에 진학했다.

이에 정치권에서도 야권은 물론 여당 내에서조차 국수본부장직 사퇴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잇따랐다. 특히 민주당이 관련 회의를 긴급 소집하고 진상조사단 출범을 서두르는 등 여론의 불길에 기름을 부을 움직임을 보이자 윤석열 대통령과 여권 핵심부에서도 사태를 길게 끌면 정권 지지율 등에 불리하다는 판단을 내린 것으로 보인다.

 

24일 경찰청에서 열린 남구준 국가수사본부장 이임식에서 남 본부장과 윤희근 경찰청장이 기념영상을 보고 있다. 이날 윤 대통령은 검사 출신 정순신 변호사를 차기 본부장으로 임명했다. 2023.2.24. 연합뉴스
24일 경찰청에서 열린 남구준 국가수사본부장 이임식에서 남 본부장과 윤희근 경찰청장이 기념영상을 보고 있다. 이날 윤 대통령은 검사 출신 정순신 변호사를 차기 본부장으로 임명했다. 2023.2.24. 연합뉴스

박홍근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는 25일 국회에서 기자들을 만나 "잔인한 학교폭력 소재를 다룬 드라마 '더 글로리'가 현실에 나온 것 같아 충격"이라며 "한국 사회의 권력이 자녀에게 고스란히 영향을 미치고, 그 잘못마저도 덮어주는 씁쓸한 자화상을 보여준 대표적 사건"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국회 교육위원회, 행정안전위원회, 법제사법위원회 간사들과 주말을 거쳐 상의할 예정"이라며 "필요하다면 관련 태스크포스(TF)를 꾸려서 학교폭력 관련 진상을 규명하겠다"고 강경 대응 방침을 밝혔다.

박 원내대표는 "오늘내일, 다음 주까지 가면 걷잡을 수 없는 상황까지 갈 것으로 보인다"면서 "이는 보수와 진보의 문제가 아니다. 젊은 사람들을 중심으로 각종 커뮤니티에서 엄청난 분노와 항의가 쏟아지고 있다. 왜 국민들이 '더 글로리' 드라마에 열광했겠나"라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검찰 고위직, 더구나 법무부 장관과 검찰총장과 연수원 동기라는 (사람의) 자녀가 한 사람의 인생을 망가뜨렸음에도 아버지의 권력으로 상황이 무마된 것 아닌가"라고 지적했다.

아울러 "(정 본부장은) 검찰 출신으로, 경찰 관련 주요 국가기관이 검찰 중심으로 재편되는 것이 아닌지 우려가 컸던 차"라며 "이번 국수본부장 임명 과정에서 소위 윤석열 사단 라인에 있었고, 법무부 장관과 검찰총장의 동기라는 점이 작용하지 않았는지 명명백백히 밝히겠다"고 했다.

박 원내대표는 페이스북에도 글을 올려 "윤석열 대통령은 정 본부장 임명을 당장 철회하고 사퇴시켜야 한다"며 "부실 검증으로 피해자들에게 상처를 준 이번 인사에 대해 사과하고 책임자를 문책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안귀령 민주당 상근부대변인은 정 변호사 사의 뒤 국회 소통관 브리핑에서 "몇 번째 인사 참사인지 셀 수도 없다"며 "윤석열 대통령은 거듭되는 인사 참사에 대해 사과하고 인사 검증 라인을 문책하기 바란다"고 했다.

그는 "정순신 전 검사가 사의를 표명한 것은 당연하다"면서 "정순신 전 검사는 그저 학교 폭력을 저지른 학생의 아버지가 아니라 소송을 통해 피해 학생을 극한 상황으로 밀어 넣은 가해자"라고 말했다. 

여당에서는 국민의힘 3·8 전당대회 당 대표 선거에 출마한 천하람 후보가 적극 나섰다. 천 후보는 페이스북에서 "학교폭력 자체도 부적절하지만, 학교폭력대책자치위원회(학폭위) 처분에 불복해 수차례 소송을 내고 모두 패소한 것은 더 큰 문제"라며 "아들이 마땅히 받아야 할 벌을 면하게 하기 위해 검사 출신 법조인이라는 지위를 이용한 것"이라고 짚었다.

천 후보는 "이런 사람에게 대한민국 수사 경찰을 지휘·감독하는 공직자의 자격이 있다고 말할 수 있겠나"라며 "정 수사본부장에게 진정 피해 회복을 위해 최선을 다할 의도가 있다면, 직을 내려놓고 피해 학생과 국민들께 진솔하게 사과드리는 것이 먼저일 것"이라고 했다. 또 "이런 문제가 인사 검증 과정에서 밝혀졌다면 절대 임명해서는 안 되는 인물이었다"며 "대통령의 신임이 두터운 검사 출신이라고 해서 검증의 칼끝이 무뎌졌던 것은 아닌지 살펴봐야 한다"고 요구했다.

경찰 출신인 같은 당 권은희 의원도 페이스북에 "아들의 심한 가해 사실을 알고서도, 오히려 뒷심이 돼 줬다. 법과 원칙을 집행하는 국수본부장 자격이 없다"며 "피해 학생과 가족들의 피해 치유를 위해, 경찰이 전담하는 학교폭력 수사의 엄정함을 유지하기 위해 즉시 사퇴해야 한다"고 적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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