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부 신뢰 회복과 민주주의 구하는 청문회 돼야
30일로 예정된 국회 법사위의 조희대 대법원장 청문회를 둘러싸고 여야 간 격렬한 공방이 벌어지고 있다. 야당인 국민의힘은 이 청문회가 헌법의 삼권분립 정신에 배치되고 사법부 독립을 훼손한다며 강력히 반대하고 있다.
하지만 윤석열 내란의 상처가 아직 국민들의 가슴에 생생히 남아 있는 상황에서, 국민의힘에게 요구되는 것은 정파적 이해를 초월하여 민주적 헌정질서를 수호하는 공당의 사명이다. 민주주의가 위기에 처했을 때 여야가 따로일 수 없다.
군사작전을 방불케 할 정도로 전격적으로 진행된 이재명 민주당 대표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에 대한 조희대 대법원장의 전원합의체 원심파기 판결, 지귀연 판사의 윤석열 구속취소 석방 등 일련의 판결들은 국민들에게 깊은 우려와 공포감까지 안겨주었다. 지금도 윤석열 내란 사건을 둘러싼 사법부의 모호한 태도는 비상계엄의 악몽이 다시금 되살아나는 것은 아닌가 하는 불안감을 증폭시키고 있는 것이다.
국회가 이러한 국민적 불안을 해소하고 사법부에 대한 의혹을 규명하는 작업이 정쟁으로 변질되는 일이 있어서는 결코 안 된다. 이는 헌정질서를 수호하기 위한 국회의 최소한의 방어선이며, 국민의 대표기관으로서 마땅히 수행해야 할 중대한 책무이다.
진실 규명에 여야 하나 되었던 워터게이트 청문회
미국 닉슨 대통령이 민주주의를 짓밟았던 그 위기의 순간을 짚어보자. 당시 미국은 의회의 초당적인 진실 규명 노력 덕분에 민주주의를 구해낼 수 있었다. 불법을 저지른 닉슨 대통령이 끝까지 버티지 못하고 임기 중 사임하게 만든 결정적 역할을 다름 아닌 의회의 워터게이트 청문회가 해낸 것이다. 워싱턴포스트 기자였던 밥 우드워드와 칼 번스타인의 탐사보도가 최초의 기폭제였음을 부인할 수 없다. 그러나 상원에서 여야 만장일치로 설치한 특별위원회의 청문회가 전국에 TV로 생중계되면서 사건의 실체가 국민에게 낱낱이 드러났고, 이것이 곧 닉슨 사임 여론 형성의 결정타가 되었다.
놀랍게도 워터게이트 청문회는 여야 정쟁의 도구가 되지 않았다. 민주당이 닉슨 행정부의 책임을 추궁한 것은 당연했지만, 공화당 의원들도 진실 규명에 있어서는 성역을 두지 않았다. 청문회는 민주당 소속 샘 어빈 위원장이 주도했으나, 공화당의 하워드 베이커 의원이 가장 적극적인 진상 규명자로 나섰다. 베이커 의원이 증인에게 던진 "대통령은 무엇을, 언제 알았는가"라는 질문은 초당적 의회 활동의 역사적 상징으로 남았다.
워터게이트 청문회가 우리에게 남긴 교훈은 명확하다. 민주주의 체제를 지키기 위해서는 여야를 불문하고 의회가 초당적으로 협력해야 한다는 것이다. 의혹의 성격이 민주공화국의 존립과 관련된 중대 사안일수록 정당의 이해관계를 초월해 국민과 민주주의 앞에 책임져야 한다.
삼권분립 무너뜨린 건 사법부이지 청문회가 아니다
조희대 대법원장 청문회는 사법부 수장이 대통령 선거에 개입했다는 의혹과 윤석열 내란 재판에 대한 사법부의 비협조 의혹을 밝히기 위한 자리다. 국민의힘은 청문회 개최가 삼권분립을 침해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삼권분립의 본질은 무엇인가? 사법부 독립은 외부의 정치적 압력에서 판결을 지켜내는 것이지, 사법부의 비리나 정치 개입에 대한 방패막이가 아니다. 만약 대법원장이 대선 판결에 실제로 개입했다면, 사법부야말로 삼권분립을 스스로 무너뜨린 게 아닌가. 이럼에도 불구하고 국민의힘이 진상 규명을 막아서며 '사법부 독립'을 내세우는 것은 논리적 모순이며, 이는 궤변이라는 비판을 피할 수 없다.
국민의힘이 진정으로 삼권분립과 사법부 독립을 생각한다면, 청문회 개최를 막아설 것이 아니라 오히려 적극적으로 참여해 의혹을 깨끗이 해소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청문회를 통해 조희대 대법원장이 결백함을 증명하고 사법부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회복시키는 것,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사법부 수호 아닌가.
국민의힘은 워터게이트 사건에서 교훈을 얻어야 한다. 당시 공화당은 정파적 이해를 넘어서서 청문회 부위원장을 맡아서 닉슨의 비리를 파헤치는 초당적 자세를 보여주었다. 국민의힘은 이러한 역사적 사례를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마땅하다.
사법부 존립 기반 위협하는 숱한 의혹들
조희대 대법원장도 떳떳하다면 청문회 출석을 주저할 이유가 없다. 오히려 청문회에서 정당성을 입증하는 것이야말로 사법부 신뢰 회복의 길이다. 침묵과 불출석은 의혹을 더욱 증폭시킬 뿐이다. 민주주의의 최후 보루라는 사법부의 수장이 내란 옹호 의혹을 받거나, 특정 정당의 대통령 후보를 당선시키기 위해 대법원 판결을 조작했다는 의혹이 해소되지 않는 한 사법부는 존립 기반을 잃는다.
윤석열 내란 사건 재판을 맡은 지귀연 판사는 구속 기간을 날짜가 아닌 '시간 단위'로 계산하는, 전례가 없고 현행 형사소송법에도 없는 방식을 적용했다. 결국 윤석열은 이처럼 상식 밖의 방식으로 석방되었다. 내란 수괴 석방의 배후에 조희대 대법원장이 있는 것 아니냐는 의혹이 확산되면서, 사법부가 내란 세력과 결탁했다는 국민적 분노가 들끓고 있다.
더욱이 대법원은 지귀연 판사의 '룸살롱 접대 의혹'에 대해 감사에 착수한 지 5개월이 다 되어가도록 결과를 발표하지 않음으로써 조희대 대법원장에 대한 국민적 의혹을 더욱더 키우고 있지 않은가.
윤석열 정권의 도구로 전락한 검찰에게 진상 규명을 기대할 수 없다. 따라서 국회 청문회가 사법부의 대선 개입 의혹을 규명할 수 있는 유일한 통로이다. 청문회는 국회법에 명시된 합법적 절차이며, 행정부와 사법부의 권력 남용을 견제하는 헌법적 방어벽이다. 미국에서는 하루 100여 개의 청문회가 열릴 정도로 의회 조사가 활발하다. 이처럼 의회 청문회는 민주주의 작동의 핵심 기제이다.
조희대 대법원장은 숨거나 피하지 말고 나서거나 물러나야
이번 법사위 청문회에는 조희대 대법원장, 법원행정처장, 한덕수 전 국무총리, 그리고 대법관들의 출석이 필요하다. 이들이 의혹의 진실을 국민 앞에 직접 밝혀야 한다. 대법원장이 신성불가침의 존재라도 되는가? 대통령, 국회의장과 마찬가지로 대법원장에게는 국민적 의혹에 해명해야 할 책임이 있다. 이승만 정권 시절에도 김병로 대법원장은 국회 출석 요구에 응해 성실히 답변했다. 또한 국회법은 본회의와 법사위에 대법원장 출석을 요구할 권한을 보장하고 있다.
과연 청문회 출석이 대법원장의 권위를 떨어뜨리는가? 대법원장의 진정한 권위는 권력에 야합하지 않고 정치적 중립을 수호하여 사법부의 독립을 구현할 때, 저절로 빛을 발하게 될 것이다.
조희대 대법원장은 청문회에 나와 의혹에 대해 당당하게 해명할 용기와 자신이 없다면, 스스로 그 자리에서 물러나야 한다. 이것이 사법부 수장으로서 국민에게 보여야 할 최소한의 도리이자 책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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