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의 목적이 아닌 방편이며 형식일 뿐

언론들, '성역'으로 여기는 시각 드러내

삼권분립 스스로 허문 건 누구인가부터 물어야

조희대 대법원장 사퇴 압박과 특별재판부 설치 등을 놓고 삼권분립을 흔드는 것이라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삼권분립 뒤흔드는 여권” “독재적 발상”(조선일보) 등 주요 일간지마다 거센 비판을 가하고 있다. 

이 같은 언론의 보도에서 우선 보이는 것은 삼권분립을 일종의 ‘성역’으로 여기는 시각이다. 삼권분립을 민주주의의 목적쯤으로 여기는 인식이다. 그러나 삼권분립은 민주주의의 중요한 제도적 원칙이지만 민주주의의 목적이라기보다는 수단이며 방편이다. 민주주의를 이루기 위한 권력 구조상의 한 형식일 뿐이다. 3권 분립이든 2권 분립이든 혹은 4권 분립이든, 그 형식은 다양할 수 있다. 그럼에도 만약 목적 내지는 절대로 훼손할 수 없는 절대적인 제도라고 한다면 삼권 분립을 훼손한 것은 과연 누구인가. 이런 질문들이 먼저 필요하다. ‘민주’주의라는 그 의미에 맞게 국민주권의 원리를 제대로 구현하는 방편으로서의 삼권 분립을 흔든 것은 누구인가, 라는 질문이 먼저 있어야 하는 것이다.

 

각급 법원장들이 12일 서울 서초구 대법원에서 열린 전국법원장회의 임시회의에서 국기에 경례하고 있다. 2025.9.12. 연합뉴스
각급 법원장들이 12일 서울 서초구 대법원에서 열린 전국법원장회의 임시회의에서 국기에 경례하고 있다. 2025.9.12. 연합뉴스

내란 기도와 대선 개입 의혹 과정에서 사법부가 보여준 태도는 헌정질서의 보루라기보다는 오히려 왜곡하는 것이었다고 해야 마땅하다. 이재명 대통령 사건의 상고심은 초고속 처리하려 했던 과정이나 해괴한 법리로 윤석열 전 대통령의 구속을 취소한 것 등은 사법부의 정치적 중립성을 해친 것이 사법부 자신이라는 것을 보여줬다. 행정부 수장을 뽑는 대통령 선거에 영향을 미치려는 의도는 좁게는 행정부에 대한 개입 시도였으며, 넓게는 삼권분립의 목적인 민주주의의 근간으로서의 선거를 무력화하거나 왜곡시키려는 의도였다.

또한 ‘분립’은 ‘독립’을 전제로 한다. 그러나 사법부는 독립을 내세울 자격을 스스로 무너뜨렸다. 일단 그 점을 분명히 해야 한다. 독립을 흔드는 것은 외부의 힘에 의해서만 이뤄지지 않는다. 오히려 더욱 강력한 붕괴는 내부로부터 온다. 흔들리는 독립성을 되찾으려는 내부의 노력도 뚜렷하게 보이지 않는다. 내부의 ‘교정’ 노력의 하나가 됐어야 할 지난 12일 전국법원장회의는 대법관 증원·내란특별재판부 설치·법관평가제도 개편 등 민주당의 사법개혁 방안에 대해 부정적 입장을 냈을 뿐 지귀연 판사의 윤석열 구속취소나 조희대 대법원의 대선 개입 등 내란 공범에 가까운 자신들의 행태에 대해서는 일말의 반성도 내놓지 않았다. 법원장들이 회의 뒤 낸 보도자료에서는 "최고법원 구성과 법관인사제도는 사법권 독립의 핵심 요소로서, 국민의 기본권을 보호하고 법치주의를 실현하기 위해 사법 독립은 반드시 보장돼야 한다“고 했지만, 정작 그 독립을 스스로 허문 상황에 대해서는 아무런 말이 없다.

그에 앞서 법관 전체의 대표격인 법관대표회의도 두 차례 회의를 열었으나 국민들이 기대하고 요구했던 반성의 목소리는 나오지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 대법원장이 아무런 책임을 지지 않고 자리를 지키고 있는 것은 사법부 내에 자기반성도 자기교정의 의지도 없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럼에도 주요 일간지들은 16일 여권이 삼권분립을 뒤흔들고 있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조선일보는 <입법·행정 권력의 ‘사법부 협공’>을 1면 머릿기사로 싣고 법조인들의 말을 빌어 ‘독재 정권도 대법원장 사퇴를 공개 요구한 적은 없다’면서 ‘삼권분립과 국가 시스템을 무너뜨리는 위험한 발언’이라고 했다. 한국일보는 1면 기사에서 “대법원장 공개 사퇴 압박은 유례없는 일인 만큼 삼권분립을 형해화한다는 논란을 피하기는 어려워 보인다”고 지적했다. 중앙일보는 4면 <말 아낀 대법… 일선 판사들 “갑자기 왜 조희대 거취 겨냥하나”> 보도에서 사법부 내에서 여권의 압박이 부적절하다는 반응이 이어지고 있다고 쓰고 있다.

반면 <사법부, ‘사법 불신’ 왜 여기까지 왔는지 먼저 성찰해야>라는 사설을 통해 지적한 한겨레처럼 문제의 원인이 사법부에 대한 불신에 있다고 제대로 짚는 언론은 거의 없었다. 한겨레는 “내란으로 헌정이 파괴될 위험에 처했는데도 헌법 수호 책임의 한 기둥인 사법부가 침묵으로 일관했을 뿐 아니라, 내란 우두머리로 구속기소된 윤석열 전 대통령을 실정법을 뒤엎는 법 해석으로 석방하는 사태까지 벌어졌다”며 “국민들은 과연 사법부가 헌법 수호 의지가 있는지, 내란 세력을 비호하려는 건 아닌지 깊은 의구심을 품지 않을 수 없게 됐다”고 주장했다. “사법부가 시급한 개혁 대상으로 떠오르고 사법부 수장에 대한 불신임 목소리가 고조된 상황은 조 대법원장이 자초한 것이며, 사법부 독립은 헌법과 법질서 수호를 위해 존재하는 원칙이지, 사법부가 국민과 괴리된 채 독단적 권한을 누리라는 보호막이 아니다”라고 한, 한겨레의 사실에 근거한 주장은 다른 어느 매체에서도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

한겨레를 제외한 대다수 언론은 오히려 여권에 책임을 물어 문제의 원인 진단에서부터 빗나가고 있다. 그나마 사법부에 잘못이 있는 건 맞지만 여권이 대법원장을 공개 압박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는 식의 양비론으로 사법부에 대한 비판을 곁들이고 있을 뿐이다.

한국일보는 <대통령·여당의 사법부 인식과 조희대 사퇴 압박, 위험하다> 사설에서 “사법부 스스로 정치적 중립성 위반 논란을 자초한 측면이 적지 않다. 사법부가 재량권을 남용한다면 이 또한 삼권분립 원칙 훼손이고 바로잡아야 마땅하다”며 “하지만 민주주의는 법과 제도의 지배이며, 선출 권력이라 해서 모든 권한 행사가 정당화될 수 없으며 헌정질서에 따라 행사돼야 한다”고 했다.

이 같은 식의 안이한 양비론은 조중동 등 이른바 ‘보수’ 계열의 매체뿐만 아니라 경향신문에서도 마찬가지다. 이 신문은 사설 <여당·대통령실 ‘대법원장 사퇴’ 압박 부적절하다>를 통해 “내란 국면에서 사법부가 보인 일련의 행태는 사법 정의·정도와 거리가 멀다”면서 “그러나 그것만으로 사법부 수장의 사퇴를 요구하는 건 헌정질서 근간인 삼권분립과 사법독립을 너무 가볍게 보는 처사라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고 했다.

조선일보는 아예 양비론조차 없다. 오로지 민주당 비판에 집중할 뿐이다. 조선일보는 <대법원장 겁박은 민주화 운동권의 독재 행태 아닌가> 사설을 내고 “권위주의 정권조차 이런 방식으로 대법원장을 위협하며 사퇴를 요구하지 않았다. 독재에 저항했다는 사람들의 독재적 발상이 놀랍기만 하다”고 했다.

사법부의 위상에 대한 오해는 이재명 대통령의 말, “선출된 권력’이 우선적 위치를 가지는 것이 헌법 정신에 합치하는 것이다”에 대한 몰이해에서도 드러난다. 한국일보는 삼권분립 중 선출된 권력인 행정부가 사법부보다 서열이 높다는 이재명 대통령 발언에 대해 “헌법학계의 대체적 견해는 입법 사법 행정의 삼권은 대등성을 전제로 한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나 3권은 동등성과 함께 비례성, 헌법 조문 체계에서 3권의 순서가 국민에 의한 선출, 즉 국민주권 작용의 정도에 따라 순위가 매겨진 원리에 대한 이해 부족이 보인다.

‘사법부 흔들기’ 식의 언론 보도는 민주당 내 ‘조희대 트라우마’가 있다는 분석을 내놓은 한국일보의 시각에서 특히 극명하게 나타난다. 사법부에 의한 삼권분립 주장이 헌정의 수호가 아닌 내란의 방패가 돼버린 상황에서 국민적 분노와 요구가 치솟는 것을 기껏 특정한 판결에 대한 여당의 불만에서 비롯된 것으로 격하시키고 있다. 한국일보가 지적한 트라우마를 겪는 것은 민주당이 아닌 정작 한국일보 자신, 언론자신이 아닌지 자문해봐야 마땅할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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