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를 살린 판결과 목을 조른 판결

민주주의의 보루이면서 위협하는 양면성

'사법부 독립'은 스스로 지켜내야 하는 것

“그 판결이 MBC를 살린 거다. 그 판사가 고맙다.”

2024년 7월 31일, 방통위원장 이진숙은 대통령 윤석열로부터 임명장을 받자마자 당일치기로 KBS 이사진과 MBC 관리감독기구인 방송문화진흥회(방문진) 이사진을 새로 선임하였다. 이사 지원자가 수십 명이고 관련 서류만 하더라도 분량이 수백 장이 넘고 이진숙 위원장이 성능 좋은 AI 로봇이 아닌데 반나절 만에 그 많은 서류를 다 보고 이사진을 선임한다는 건 사실상 불가능하다. 누군가 이미 짜놓은 명단을 넘겨준 게 아니라면.

번갯불에 콩 구워 먹듯이 졸속으로 KBS와 MBC의 지배구조를 ‘친윤’으로 바꾼 건, 공영방송 장악을 위한 친위 쿠데타와 다름없었다. 그게 성공했다면 MBC에도 KBS처럼 ‘친윤’ 낙하산 사장이 투하되었을 것이며 지금과 같은 MBC 뉴스는 없었을 것이고 MBC는 이명박·박근혜 시절로 돌아가 다시 ‘엠빙신’이라는 멸칭으로 불렸을 것이다.

이진숙의 친위 쿠데타는 성공하지 못했다. 방통위는 합의제 기구다. 권태선 이사장과 김기중, 박선아 이사 등 임기가 끝나지 않은 방문진 이사들은 ‘2인 체제’ 방통위의 방문진 이사 선임은 위법하다며 효력을 중지시켜 달라는 가처분 신청을 행정법원에 냈고, 다행히도 판사는 그 신청을 받아들였다. 그 판사가 권력의 눈치를 보느라 가처분 신청을 기각했다면 오늘과 같은 MBC는 없었을 것이고, 조금 과장하자면, 윤석열은 지금도 대통령으로 버티고 있을 것이다.

만약 지금 대통령이 윤석열이라면, 검찰을 발 아래에 둔 ‘중전’ 김건희가 국정을 주무르고 있을 것이다. 백악관에서 ‘아메리칸 파이’를 열창했던 윤석열은 나라 곳간의 바닥까지 긁어 ‘대미 투자 보따리’를 마련하여 일본보다 먼저 관세협정에 사인하려고 안달을 했을 것이고, 국익과 국가의 체면도 쓰레기통 바닥을 구르고 있을 것이다.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그것이 내가 ‘판사가 MBC를 살렸다’고 하는 이유다. 그 판사가 고맙다. MBC만 살린 게 아니라 민주주의를 살리고 나라를 살린 것 같아서.

 

전 대통령 윤석열 씨의 미국 방문 중 비속어 사용 파문을 보도한 MBC의 뉴스 화면. MBC 유튜브 갈무리
전 대통령 윤석열 씨의 미국 방문 중 비속어 사용 파문을 보도한 MBC의 뉴스 화면. MBC 유튜브 갈무리
이진숙 방송통신위원장이 31일 오전 정부과천청사 방통위 청사로 출근하고 있다. 2024.7.31. 연합뉴스
이진숙 방송통신위원장이 31일 오전 정부과천청사 방통위 청사로 출근하고 있다. 2024.7.31. 연합뉴스

반대로 MBC의 목을 조른 판결도 있었다. 2022년 9월 22일, 유엔총회 참석차 미국을 방문했던 대통령 윤석열은 바이든 대통령의 모금행사에 불쑥 찾아가 1억 달러 기부를 약속하는 ‘48초짜리 얼굴도장’을 찍고 나오면서 혼자 중얼거리듯 ‘국회에서 이 새끼들이 승인 안 해주면 바이든은 쪽팔려서 어떡하나’ 하는 실언을 하였고 그것이 현장에 있던 보도 카메라에 그대로 담겼다. 기사 작성을 위해 영상을 확인하다 우연히 그 실언을 들은 MBC 기자는 사실 확인 과정을 거쳐 더하지도 빼지도 않고 대통령의 발언을 있는 그대로 보도하였다.

실언이었고, 대통령이 솔직하게 인정하고 진솔하게 사과하면 해프닝으로 끝날 일이었다. 당시 대통령실의 홍보라인에선 대국민 사과까지 준비했었다고 한다. 그런데 자존심에 관한 한 천상천하 유아독존인 대통령 윤석열은 사과 건의에 불같이 화를 냈고, 홍보라인 참모들은 몇 시간을 머리를 맞대고 수습책을 짜내야 했다. 그래서 나온 게 ‘다시 들어보면 바이든이 아니라 날리면’이라는 김은혜 홍보수석의 ‘지록위마’ 발표였다. 사슴을 말이라 하던 진나라 시대의 지록위마는 그렇게 윤석열 치하의 한국에서 ‘바이든-날리면’으로 재탄생하였다.

윤석열의 격노는 그걸로 끝나지 않았다. 촌음의 시차가 있긴 했지만 KBS와 SBS뿐 아니라 보도전문 채널인 YTN과 TV조선 등 종편까지 모든 방송이 똑같이 ‘바이든은 쪽팔려서’라고 보도했는데, 윤석열 대통령실은 MBC만 콕 짚어 전용기 탑승을 배제하고 소송 제기의 자격이 없는 외교부를 시켜 정정보도 소송을 제기하였다. 그 모두가 노골적이고 공개적으로 MBC의 목을 죄는 언론 탄압이었고, 국가 권력을 동원한 윤석열의 사적 보복이었다.

소송 자체가 성립될 수 없는 위법적 소송이었음에도 1심 재판부(부장판사 성지호)는 MBC가 아닌 윤석열의 손을 들어주었다. 오판이 명백한 그 판결에 대해 여기에서 왈가왈부하는 것은 시간 낭비이므로 하지 않겠다. 대신 이런 얘기를 해보련다. 그 판결문을 세계의 법학자들이 모이는 법학 세미나에 토론의 소재로 올리면 어떤 반응이 나올까? 세계 10위권의 경제 대국이고 K-콘텐츠는 세계 일류인데, 한국의 사법부는 권력의 눈치를 살피고 판결은 삼류라고 손가락질을 하지 않을까?

궁금하다. 그 판사는 헌법에 쓰여 있는 대로 독립적으로 재판을 진행하고 ‘법과 양심’에 따라 판결을 내렸을까? 법원 외부로부터든 법원 내부의 위로부터든 감놔라 배놔라 하는 간섭이 있었던 건 아닐까? 혹시라도 판사에게 압박이나 유혹이 있었던 건 아닐까?

같은 재료를 갖고 같은 레시피로 요리를 해도 누가 요리하느냐에 따라 맛은 천차만별이다. 같은 사람이 해도 그렇다. 그러나 ‘프로’ 요리사들이라면 그렇지 않다. 같은 재료에 같은 레시피로 요리를 하면 미세한 차이는 있을지라도 맛의 편차는 크지 않다. 그걸 통계에서는 오차 범위라고 한다. 오차 범위가 좁을수록 통계의 신뢰도가 높아진다. 오차범위가 극에서 극을 오가며 널뛰기를 하면 통계로서의 의미가 없다.

판결이 그러해야 한다. 판사에 따라, 재판의 당사자가 누구냐에 따라 판결이 들쭉날쭉 요란하게 널뛰기를 하면, 판결을 신뢰할 수 있겠는가. 판결을 존중해야 하지만, 그런 판결까지 존중해야 하는가. 판결은 보편적 상식으로 수용 가능한 오차 범위 안에 있어야 한다. 판결은 오펜하이머 같은 천재 과학자만이 만들 수 있는 원자폭탄도 아니고 달나라에 우주선을 보내는 고차원 방정식으로 꽉 찬 설계도면이 아니다.

판결은 보편적 상식으로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어떤 판결이 나올지 예측 가능하고, 판결이 예측 가능한 범위 안에 있으니 판결을 신뢰하는 것이고, 판결을 신뢰한다는 것은 곧 판결에 승복하는 것이니 항소하는 비율이 낮아져 판사의 업무 부담이 줄고, 판사의 업무량이 줄어드니 재판에 더 충실할 수 있어 신뢰할 수 있는 판결이 나오는 선순환의 구조가 형성되는 거다.

그런데 우리 사법부는 어떠한가. 배고파서 라면을 훔쳤는데 살인이라도 저지른 것처럼 중형이 선고되고, ‘부정한 대가’가 분명한 곽상도 아들의 50억 원에는 무죄를 선고하면서 800원을 횡령한 버스기사에겐 해고가 정당하다는 판결을 내리면, 상식적으로 이해가 되는가. 그런 판결도 존중해야 하는가. 그런 법원을 신뢰할 수 있는가. 그런 판결을 내린 판사가 대법관이 되었다면, 사법부의 권위가 서겠는가.

한국의 재벌 총수들에겐 ‘3·5 법칙’이란 게 있다고 한다. 탈세나 횡령 등 중죄를 저질러도 ‘징역 3년, 집행유예 5년’이 선고되어 실형을 면하는 걸 비꼬는 말이란다. 그런 나라에서 위조라는 것이 반박이 불가할 정도로 입증되지도 않았고 대학의 입시 업무를 방해한 것도 아닌데, 판사는 ‘동양대 표창장’ 재판에서 정경심 교수에게 집행유예 없는 징역 4년의 실형을 선고했다.

일본군 위안부의 존재를 부정하는 일본 우익의 표현을 빌리자면, 윤미향은 ‘반일의 우두머리’다. 검찰은 윤미향을 탈탈 털어 ‘기부금 횡령’ 등 8개의 혐의로 재판에 넘겼지만 1심 재판부는 벌금형으로 사실상 무죄 판결을 내렸다. 그랬더니 법무장관 한동훈은 ‘윤석열 검찰이 끝까지 제대로 수사해야 한다, 공권력을 동원해서 정의로운 결과를 내야 한다’고 발끈했고, 새로운 혐의가 드러난 게 없는데도 2심 재판부는 징역형의 중형을 선고했다. 그게 우연일까?

요즘 여론의 관심사로 떠오른 내란전담 재판부 신설이나 대법관 증원도 그렇다. 지금 내란 수괴 윤석열을 포함하여 김용현 전 국방장관 등 내란 피고인들의 재판을 지귀연 재판부가 맡고 있다. 그런데 지귀연 판사는 누구인가. 전례 없는 해괴한 계산법으로 구속기일을 넘겼다며 윤석열을 풀어주지 않았는가. 그 일로 지귀연 판사는 신뢰를 잃었고 어떤 판결이 나오더라도 논란이 벌어질 건 불 보듯 뻔하다. 중형이 선고되면 윤석열 쪽에선 구속 취소 결정을 만회하려고 무리한 판결을 내렸다 할 것이고, 내란죄 아닌 가벼운 형량을 선고하면 역시나 그럴 줄 알았다며 민심이 폭발할 것이다.

조희대 대법원장이 주도한 이른바 ‘희대의 파기 환송’도 그렇다. 이재명 선거법 소송의 2심 재판부는 무죄 판결을 내렸고 반박의 여지가 없다는 평가를 받았는데, 대법원은 사건 배당 9일 만에 유죄 취지로 파기 환송을 하는 초고속 결정을 내렸다. 대선을 불과 한 달 앞두고 내려진 졸속 결정이었고, 그 모든 과정을 사법부의 수장인 조희대 대법원장이 주도하였다. 대통령 당선이 유력한 이재명 민주당 대표의 대선 출마를 막으려는 사법부의 선거 개입이라는 비난이 봇물처럼 터져 나왔고, 파기 환송을 맡은 서울고법의 재판부는 선거에 영향을 주지 않겠다며 재판을 무기한 중단하는 결정을 내렸다.

궁금하다. 이 경우에 사법부 독립에 반하는 결정을 내린 건 어느 쪽인가? 초고속 파기 환송을 주도한 조희대 대법원장과 9명의 대법관들인가? 아니면 분노한 민심에 반응하여 파기 환송 재판을 중단한 고법의 재판부인가?

조희대 대법원장은 사법부의 수장임에도 자기 손으로 판결에 대한 신뢰와 사법부의 권위에 먹칠을 하였다. 이른바 ‘희대의 파기 환송’에 대해 의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있지만, 그는 지금까지 가타부타 말이 없다. 과묵해서가 아니라 변명의 여지가 없어서 그럴 것이다. 사법부 독립을 호신용 주술처럼 암송한다고 해서 그가 주도한 ‘파기 환송’의 의문이 해소되는 게 아니다.

 

조희대 대법원장. 연합뉴스
조희대 대법원장. 연합뉴스

사법부 독립에 관한 한 조희대 대법원장은 왈가왈부할 자격이 없다. 덤불에 머리를 박고 잠잠해지기만을 기다리는 ‘장두노미’ 대법원장이 무슨 할 말이 있겠는가. 사법부 독립에 근본적인 의문을 자초한 ‘희대의 파기 환송’에 대해선 묵묵부답 입꾹닫으로 일관하면서 ‘이재명 출마는 사법부가 막겠다’고 호언장담을 했다는 세간의 의혹에 대해선 사실무근이라고 재빠르게 대응하는 행태도 당당해 보이지 않는다. 불리하면 입을 닫고 유리하면 신속하게 대응하는 대법원장의 용렬한 행태는 사법부의 권위를 깃털처럼 가볍게 만들 뿐이다.

세상의 일에 우연은 없다. 모든 일에는 인과관계가 있어 원인이 있으니 결과가 있는 것이고, 아니 땐 굴뚝에선 연기가 나지 않는다. 내란전담 재판부 설치도 대법관 증원도 뜬금없이 돌출된 게 아니다. 전무후무한 법 해석으로 윤석열을 풀어주었던 지귀연 판사의 구속 취소 결정이 없었고 이재명의 대선 출마를 봉쇄할 의도가 명백한 ‘희대의 파기 환송’이 없었다면, 내란전담 재판부를 설치도 대법관 증원도 시급한 과제로 부각하지 않았을 것이다.

작금의 사태는 사법부가 자초한 것이다. 정치의 사법화니 사법의 정치화니 하지만,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 하는 것처럼 공허한 논쟁으로 들리는 건 판사들이 사법부 독립을 판결로 보여주었다면 그런 논쟁도 없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사법부를 불신의 늪에 빠뜨린 건 스스로 독립을 지키지 못한 사법부다.

이진숙 방통위의 위법적인 초고속 방문진 이사 선임을 법원이 막아주지 않았다면, MBC는 윤석열 치하에서 공영방송으로 살아남지 못했을 것이다. 그럴 때의 법원은 민주주의를 지키는 최후의 보루였다. 윤석열의 추락과 함께 사법부의 신뢰와 권위도 추락했지만, 묵묵히 본분을 다하는 판사들이 훨씬 많을 것이다. 그 판사들이 정의로운 목소리를 내주면 좋겠다. 조희대 대법원장은 사법부를 대표하는 수장으로서 말을 할 자격을 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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