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D·AI에 촛점 맞춘 '성장 마중물' 마련 의지
올해 본예산 670조, 내년엔 730조 수준 전망
적극재정에 따른 국채 이자 부담 늘어날 우려
2년 연속 성장률 2% 미만 저성장 쇼크 걱정
이재명 정부가 경제성장을 위해 적극재정을 추진할 것으로 보인다. 정부는 '내년도 예산안'을 대폭 증액 편성하는 것으로 전해졌는데, 이는 정부가 '성장 마중물' 역할을 수행하겠다는 의지의 표명이라고 할 수 있다. 성장 엔진이 식기 전에 적극재정을 통해 활로를 개척하겠다는 정부의 판단이 그릇되다 할 수는 없다. 다만 늘어날 국채이자 부담과 저성장 고착화 우려는 간과할 수 없는 대목이다.
R&D와 AI에 촛점 맞춘 적극재정 드라이브
24일 관계부처에 따르면 기획재정부는 조만간 발표될 내년도 예산안의 막바지 편성 작업을 하고 있다. 9월초 국회에 제출하는 일정에 맞춰, 8월 마지막주인 이번주 예산안을 발표할 예정이다. 이재명 정부가 편성하는 첫 본예산이다.
한국 경제가 단기적으로는 물론 중장기적으로도 성장동력이 꺼지는 구조적 위기에 직면했다는 진단 하에 성장과 직결된 분야에 집중적으로 재원을 투입한다는 분위기가 대세다. 이에 따라 적극재정 기조 아래 총지출은 큰 폭 증액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추구하는 목표가 무언지도 명확히 하지 않은 채, 앞뒤 가리지않고 긴축재정을 고수했던 윤석열 정부의 기조는 폐기가 확실시 된다.
수치상으로만 보면 이재명 정부의 적극재정 행보는 문재인 정부의 경로를 따라갈 가능성이 높다. 문 정부는 첫해 편성한 '2018년도 본예산'의 지출 증가율 7.1%를 시작으로, 2019년도(9.5%)·2020년(9.1%)·2021년(8.9%)·2022년(8.9%) 모두 8~9%대 증가 폭을 이어갔다. 2020년 코로나19 팬데믹 이전부터 가파른 적극재정에 시동을 걸었던 셈이다.
최소 7%, 최고 9%대 중반에 달하는 문재인 정부의 적극재정 경로를 따라간다면, 이재명 정부의 첫 예산안도 지출 증가율이 대략 8~9%대가 될 것으로 보인다. 다만 문재인 정부 당시 복지분야를 중심으로 대폭으로 지출을 늘렸다면, 이재명 정부는 구조적인 저성장을 타개할 성장 분야에 재원을 집중한다는 점이 본질적인 차이다.
내년도 예산 최소 730조 원대 안팎에 이를 가능성 높아
8~9%대 지출 증가율이 현실화되면, 내년도 정부 총지출은 올해 본예산(673조 3000억 원)보다 60조 원가량 늘어난 730조 원대 안팎에 이르게 된다. 두 차례 추경 편성으로 702조 원까지 불어난 총지출을 기준점으로 삼더라도 4% 가량의 증가율이다. 정부가 지난주 '새정부 경제성장전략'에서 제시한 내년도 경상성장률 전망치(3.9%)만큼의 증가율이 적용되는 셈이다.
재정당국이 역대 최대 규모의 지출 구조조정을 단행한 것도 이런 대규모 재정소요와 무관치 않다. 최근 기재부는 용산 대통령실에서 열린 간담회에서 "총액 기준 27조 원가량 지출 구조조정을 했다"면서 "역대 최고 수준의 절감액"이라고 보고했다.
정부가 구조적 저성장 국면에서 탈출하기 위해 적극재정을 통해 성장에 올인하는 걸 보여주는 대표 분야는 연구·개발(R&D)과 인공지능(AI) 분야다. R&D 예산과 관련해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 22일 "35조 3000억 원 정도의 예산이 편성됐다"며 "(기존 대비) 20%에 육박하는 증가율을 보이는 것"이라고 밝혔다. AI 부문에서는 '경제성장전략 선도프로젝트'를 중심으로 예산이 투입될 것으로 보인다. 특히 '피지컬AI 세계 1등'을 목표로 휴머노이드, 완전 자율주행차·자율운항선박·자율비행드론, AI가전, AI팩토리, 온디바이스 AI반도체 등 기업 부문의 AI 프로젝트를 총력 지원하는 예산사업이 비중있게 반영될 전망이다.
다른 분야에서도 일제히 재정지출은 늘어나게 된다. 극단적인 양극화의 부작용을 낳고 있는 수도권 집중을 해소하기 위해 지역균형발전 예산사업에도 상당액 배정될 것으로 알려졌다. 이재명표 사업으로 꼽히는 지역화폐 예산도 확대된다. 저출산·고령화로 이미 의무지출 급증 구간에 진입한 사회복지 예산도 크게 늘어난다.
국방예산도 대폭 늘어날 분위기다. 미국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 요구대로 ‘국내총생산(GDP) 5% 수준’을 맞추려면 국방예산을 약 132조원으로 지금보다 배 이상으로 증액해야 한다는 계산이 나온다. 미국 요구에 맞추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지만 한미동맹 차원에서도 상당액 증액될 것이란 관측에 무게가 실린다.
국채 발행 불가피해 국채이자 부담 늘 듯
문제는 세출에 비해 세입이 많이 못미칠 것이라는 사실이다.
관계부처에 따르면 내년도 정부 총지출은 8∼9%가량 늘어난 720조~730조 원대에 이를 전망이다. 지출 증가율이 적어도 7%대 이상이 될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반면 국세수입은 400조 원 부근에 머물 것으로 보인다. 정부는 당초 '2024∼2028년 국가재정운용계획'에서 내년도 국세수입을 400조 4000억 원으로 전망했다. 전년 대비 '4.7%' 증가율이다.
정부는 올해 2차 추경을 통해 국세수입 예산안을 372조 1000억원으로 조정했는데, 여기에 중기계획상 4.7% 증가율을 적용하면 내년 국세수입은 390조 원 안팎이라는 계산이 나온다. 애초 전망치(400조 4000억 원)보다 10조 원 이상 적은 수준이다. 세외수입, 기금 예산까지 고려해야 하기에 단순비교하기는 어렵지만 내년 총지출에는 크게 못 미치는 규모다. 올해 상반기(1∼6월) 국세수입이 190조 원으로 작년 동기보다 21조 5000억 원 늘어난 것은 긍정적 신호지만 이는 지난해 '세수 펑크'에 따른 기저효과 영향이 크다는 점에서 실질적인 회복세로 보기엔 어렵다.
결국 정부는 국채 발행을 통해 늘어나는 재정 적자를 메워야 할 형편이다. 단기간 대규모 자금을 안정적으로 조달할 수 있는 수단이 국채 외에는 사실상 없기 때문이다. 문제는 국채 발행에 따른 이자 부담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는 점이다. 국고채 이자 비용은 2020년 16조 8000억 원에서 지난해 26조 8000억 원으로 증가했고, 올해는 30조 원을 넘어설 것으로 전망된다.
여기에 코로나19 시기 대규모 발행됐던 국채들의 만기 도래가 본격화되면서 상환 부담도 커지고 있다. 글로벌 고금리 기조가 장기화할 경우 국채 금리 상승 압력까지 더해질 수 있다. 올해 두 차례 추경 등으로 인해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채무 비율이 이미 49.1%로 전망되는 상황에서 재정건전성 관련 우려가 깊어질 수밖에 없다.
2년 연속 2% 미만 성장이라는 사상 초유의 사태도 심각
올해와 내년 실질 국내총생산이 2년 연속 2%대 미만에 머물 것이라는 전망도 근심스럽다.
24일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정부는 올해와 내년 실질 국내총생산(GDP)이 각각 0.9%, 1.8%에 머물 것으로 전망했다. 올해 성장률 전망치는 건설업 불황 등 영향으로 올해 1월 정부가 내놓은 수치(1.8%)의 절반 수준으로 쪼그라들었다. 2020년 코로나19 팬데믹 충격으로 마이너스 성장한 뒤로 5년 만에 가장 심한 불황이다. 내년 성장률 전망치도 1%대에 그쳤다.
과거 충격을 겪은 이듬해에는 기저효과 영향으로 성장률이 큰 폭 반등한 패턴과는 다른 모습이다. 실제로 성장률은 2020년 0.7% 뒷걸음쳤다가 다음 해 4.6% 뛰어올랐다.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인 2009년엔 0.8%로 쪼그라들었다가 곧이어 7.0% 급등했고 외환위기 때인 1998년에는 4.9% 하락했다가 1년 만에 11.6% 치솟았다.
정부 전망대로라면 실질 GDP 성장률은 내년까지 2년 연속 2%를 밑돌게 된다. GDP 통계가 집계되기 시작한 1953년 이래로 사상 초유의 일이다. 이처럼 전례 없는 저성장 전망은 정부뿐만 아니라 한국은행·한국개발연구원(KDI)도 마찬가지다. 한은과 KDI는 각각 지난 5월과 8월 올해와 내년 성장률을 0.8%, 1.6%로 예상했다. 국제통화기금(IMF)도 지난 달 한국의 올해·내년 성장률을 각각 0.8%, 1.8%로 전망하면서 역시 ‘저성장’ 기조를 확인했다.
'경제선순환'구조 정착에 성공할 수 있을까?
정부는 재정을 집중 투입해 저성장에서 벗어날 돌파구를 마련하고 경제 몸집을 키워 재정여건을 개선하는 '경제 선순환' 구조를 정착시키겠다는 원대한 구상을 갖고 있다.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13일 국가재정 운용방향과 관련해 "지금 씨를 한 됫박 뿌려서 가을에 한 가마를 수확할 수 있다면 당연히 빌려다 씨를 뿌려야 하는 것 아닌가"라며 '재정 씨앗론'을 펼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재정을 투입해 경제 성장능력을 키우고 세수를 확충하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겠다는 계획이 틀어지면 자칫 국가재정만 악화될 가능성도 배제할 순 없다. 이 대통령이라고 이런 위험성을 모를 리 없다. 하지만 지금은 한국 경제의 성장능력을 확대시킬 골든타임이고 이 시기를 놓치면 만사휴의라는 사실을 직시하고 적극재정을 통해 '경제 선순환'구조 구축에 나선 것으로 보인다.
이재명 정부의 도전이 성공할 수 있을까? 분명한 건 이재명 정부의 도전이 실패한다면 우리나라의 미래는 잿빛일 수 밖에 없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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