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보안법은 내란독재 세력의 기득권 유지법 

왜 국가보안법이 계속 유지되고 있는가?

냉전이 끝나고 30년이 훌쩍 지났음에도 국가보안법이 없어지지 않고 존속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결론부터 미리 말하면 기득권 보호에 국가보안법만큼 효율적인 법이 없기 때문이다. 산업화와 민주화를 다 이루어 선진국에 들어선 대한민국에 국가 안보를 지키기 위해 따로 법이 있어야 할 이유는 어디에도 없다. 국가 안보는 단지 법률로 지켜질 수 있는 게 아니라는 걸 법학자나 정치인은 물론 국민 모두가 안다.

냉전 정국을 이용해 기득권이 된 대한민국의 지배 계급은 자신들이 무너지면 국가가 무너진다는 허구를 스스로에게는 물론 국민에게 세뇌해 왔다. 걸핏하면 간첩 빨갱이 때문이라고 온갖 매체를 통해 선전해댄다. 우리가 일상에서 자주 쓰는 표현 가운데 “OO 모르면 간첩”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다. 세뇌당한 하층민일수록 국가보안법이 없어지면 국가가 위태롭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강하다. 현실은 저만치 앞에 있는데 사람들의 뇌는 70년 전에 머물러 있다. 특이한 현상이다. 다른 모든 것은 첨단을 달려도 ‘국가관’만은 정지 상태에 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한지 학문적으로 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 사회 발전은 보통 다양한 부문들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서로 영향을 주고받기 마련이지만, 국가관만큼은 요지부동이다. 이 사회에 무언가 나사 하나가 빠져 있거나 아니면 무언가에 단단히 사로잡혀 있다고 봐야 한다.

 

4일 오전 서울 중구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에서 열린 '국가보안법폐지 국민행동 출범식'에서 참석자들이 관련 내용이 적힌 손 피켓을 들고 있다. 2021.3.4 연합뉴스
4일 오전 서울 중구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에서 열린 '국가보안법폐지 국민행동 출범식'에서 참석자들이 관련 내용이 적힌 손 피켓을 들고 있다. 2021.3.4 연합뉴스

국가보안법을 유지하고 있는 나라들의 면면을 살펴보라. 대부분 독재 국가이다. 그들 나라에서 독재는 기득권 유지를 위한 수단에 지나지 않는다. 한국의 경우 국가보안법은 일제의 치안유지법을 계승한 것이다. 일제강점기에 치안유지법은 거의 모두 사회주의자들을 감시하고 처벌하기 위한 것이었다. 쿠데타를 통해 집권한 박정희는 아예 반공을 국시로 삼고 국가보안법을 마음대로 휘둘렀다. 반공을 국시로 잡아놓은 이상 국가보안법을 남용해도 빨갱이를 잡기 위해서였다고 둘러대면 누구도 시비를 걸 수 없었다. 기득권으로서는 이보다 더 만족스러운 안전판이 없다.

전 세계가 하나의 망으로 연결된 시대에 국가보안법은 시대착오가 아니냐고 물으면 북한이 있는 한 어쩔 수 없다고 대답한다. 언뜻 보면 그럴싸해 보이지만 기득권은 북한이 없어져도 국가보안법을 절대로 철폐하지 않을 것이다. 기득권을 언제까지고 보호해야 하기 때문이다. 북한이 없어지면 그들은 반드시 국가 보안을 위협하는 새로운 적을 발견할 것이다. 이미 한반도 주변에는 그 후보들이 줄지어 대기하고 있다. 이렇게 달콤하고 이렇게 효율적인 법을 왜 철폐하겠는가!

우리는 오랫동안 국가보안법 폐지를 인권 차원에서 접근해 왔다. 이 접근법은 여전히 유효하지만, 법의 폐지를 위해서는 턱없이 부족하다. 인권 신장을 위해 만들어진 '국가인권위원회'조차 기득권의 이익을 위해 태도를 바꾸는 판에 시민사회의 요구가 귀에 들어올 리가 없다. 국가보안법의 피해자였던 야당이 벌써 몇 번을 집권했어도 국가보안법은 끄떡없다. 이 나라에서 정치인이 된다는 것은 기득권의 일원이 되었음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기득권 서클에 들어가지 못한 정치인은 하나같이 정치판에서 도태되고 말았다. 이제 남은 것은 ‘전민 항쟁’인데 안타깝게도 시대가 그런 식의 항쟁을 허락하지 않는다. 얼마 전에 우리는 집권당의 셀프 쿠데타를 전민 항쟁에 가까운 촛불시위로 막아냈지만, 거의 비슷한 숫자의 기득권 옹호자들이 길거리로 쏟아져나와 쿠데타가 정당다고 외치는 모습을 보았다. 헌법 옹호보다 기득권 옹호가 더 중요하다는 것이 대한민국의 현실이다.

기득권이 스스로를 국가로 생각하니까 국가보안법을 ‘기득권 보안법’으로 고쳐 읽어도 무방하다. 그 말은 즉 일제강점기의 지배구조가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는 의미이다. 일제가 때려잡으려던 ‘빨갱이’가 전쟁을 일으키는 바람에 해방 후 잠시 사라졌던 치안유지법이 다시 살아났고, 그 덕에 기득권은 한층 더 단단해졌다. 이 과정에서 미국과 일본이 핵심적 역할을 했음은 말할 것도 없다. 따라서 기득권 문제는 단지 일국의 문제가 아니다. 기득권 세력은 국제적 카르텔을 형성하고 있으며 대부분의 국가 간 무역은 기득권 카르텔 사이의 교류에 지나지 않는다. 따라서 국가보안법은 정치 경제 외교 등 국가 존속을 위해 필요한 가장 중요한 장치들이 변하지 않는 한 쉽게 떨쳐낼 수 없는 법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관세협정을 통해 한국과 일본에 무려 9000억 달러나 되는 돈을 미국에 투자하라고 협박하는 것은 “우리가 너희 기득권을 보호하느라 국부가 거덜 나게 생겼으니 이제 미국의 기득권 보호를 위해 돈을 좀 내라”는 것이다.

일반 국민이 볼 때는 트럼프의 행동이 날강도나 다름없지만, 한국과 일본 기득권의 눈에는 나름 합리적으로 보일 것이다. 미국의 기득권 강화는 자신들의 안전과 연결되니까. 결론적으로 말해 작은 나라 한국이 슈퍼파워 미국에 3500억 달러나 투자하는 것은 곧 두 나라의 기득권을 위한 것이고, 그것은 ‘국가 안보’로 포장된다.

기득권의 이해관계가 이렇게 국내외적으로 복잡하게 얽혀 있기 때문에 ‘일부’ 시민 사회 세력이 국가보안법을 철폐하라고 아무리 소리를 쳐도 요지부동이다. 세상이 원래 이러니 입 꾹 다물고 살라는 얘기가 아니다. 국가보안법이 존속되는 구조를 알고 어떻게 폐지해야 할지 지혜를 모으자는 것이다. 이런 구조를 모른 채 “국가보안법을 철폐하라고 그렇게 외쳤건만 변화의 기미조차 없구나” 하며 스스로 포기하지 말기를 바라는 마음에서이다. ‘변화’는 외쳐서 이루어지는 게 아니다. 사과를 따려면 사과밭에 들어가야 한다. 물론 사과밭 주인이 쳐놓은 울타리를 넘어야 할 것이다.

이와 함께 “내일 지구가 멸망하더라도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겠다”는 스피노자의 말도 음미해 볼 일이다. 어쩌면 기득권의 몰락과 함께 인류문명이 몰락할지도 모른다. 기득권이 추구한 물질지상주의가 기후위기를 비롯해 총체적 지구생태위기를 가져왔기 때문이다.

국가보안법의 철폐가 새로운 문명의 시작이라는 관점도 큰 위로가 될 것이다.

☞ 청원 참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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