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한 평화와 안보 위해 이번엔 반드시 없애야

2024년 12월 3일 윤석열 일당이 친위 쿠데타를 일으켰다. 전국민적인 저항에 부닥쳐 몇 시간 만에 좌절됐지만 쿠데타가 성공했더라면 수많은 사람들이 ‘국가보안법’에 의해 반국가 세력으로 몰려 ‘처단’될 뻔했다.

국가보안법은 일제강점기 수많은 독립투사들을 옭아넣었던 ‘치안유지법’이 이름을 바꾼 것으로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 등 독재정권을 유지하는 수단으로 악용돼 왔다. ‘윤석열의 난’에서 보듯이 이 악법은 여전히 날선 이빨로 국민의 안위와 생명을 위협하고 있는 것이다.

이재명 정부 들어 3대 특검법으로 내란세력에 대한 심판을 서두르고 있지만 이들 세력이 무기 삼았던 국가보안법을 없애지 않는다면 언제 또 정의가 유린될지 알 수 없다.

이에 시민사회에서 이참에 미래세대에 제대로 된 나라를 물려주자며 국보법 폐지 운동을 펼치고 있다. 지난 7월 1일 100여 개 사회단체들과 이 법의 피해자들 1203인은 ‘민주시민교육을 위한 국가보안법 폐지 선언’을 발표하고 국회 입법청원에 돌입했다.

국가보안법이 무엇이 문제이고, 왜 폐지되어야 하는지 다시 한번 환기하기 위해 10회(예정)에 걸쳐 릴레이 기고를 싣는다. (편집자 주)

 

국가보안법은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기본 가치를 훼손해 왔다. 아이러니하게도 국가보안법은 소위 ‘자유민주주의적 기본질서’를 지킨다는 명분으로 동원되었다. 그 기본질서에는 사상과 양심의 자유는 포함되지 않을 뿐 아니라 오히려 중대한 범죄행위가 돼버린다. 북한 관련한 만화책 한 권도 함부로 집에 두어서는 안 되고 막걸리 마시다 취기에 농담 한마디 잘못해도 감옥행을 각오해야 한다. 학술논문을 쓸 때에도 노래를 만들고 그림을 그릴 때에도 자신도 모르게 ‘자기검열’을 해야 한다.

국가보안법(National Security Law)의 영문 표기를 다시 옮기면 ‘국가안보법’이라고도 할 수 있다. 보안과 안보는 모두 같은 영어 단어의 번역어이고 뭔가를 안전하게 지키고 유지한다는 뜻이다. 국가보안법은 수 많은 개인들의 정신세계와 행동의 자유를 잔인하고도 몰상식한 방식으로 침해해 왔다. 그러면 그것이 과연 국가안보에는 어떤 역할을 할까? 국가안보를 해치는 개인이나 단체의 이적행위를 막아냈다는 주장도 있지만 많은 경우 ‘조작’으로 드러났고 피해자들이 수십 년 지난 후 청구한 재심에서 무죄 판결이 이어지는 것을 보면 그 허구성이 더욱 명백해지고 있다. 차제에 국가안보적 관점에서 국가보안법의 해악을 정리해 보자.

 

26일 오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앞에서 겨레하나 관계자들이 국가보안법 위헌 결정 촉구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2022.10.26 연합뉴스
26일 오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앞에서 겨레하나 관계자들이 국가보안법 위헌 결정 촉구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2022.10.26 연합뉴스

현재와 미래의 평화와 안보를 해치는 국가보안법

첫째, 국가보안법은 남북한 간 냉전적 대결구도를 영속화하면서 군사적 긴장과 충돌로 평화와 안보를 해치고 있다. 대한민국의 안보는 남북관계를 떠나서 생각할 수 없다. 북한을 이적단체로 규정한 이상 적과의 긴장은 당연하고 군사적 충돌에서의 강력한 대응은 영웅적인 전쟁행위로 찬양의 대상이 된다. 국가보안법이 헌법의 평화통일 조항보다 더 우위에서 남북한 상호 인정과 평화공존을 위한 조치, 교류협력 등을 제한하고 있다. 평화가 없으니 국가안보도 없다.

둘째, 국가보안법은 남한의 군사전략에서 미래지향적 상상력을 말살한다. 우리가 지향하는 미래는 명백히 남북한의 평화공존 교류협력 공동번영이며 사실상 또는 법적 통일의 길로 나아가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군사문제가 핵심적 역할을 한다. 걸림돌이 될 수 있고 디딤돌이 될 수도 있다. 남북 화해 분위기에도 군은 가장 보수적으로 행동하는 것을 전적으로 틀렸다고 할 수 없지만 그것도 ‘정도’의 문제다. 2018년초 문재인 정부에서 ‘한반도의 봄’이 오는가 했지만 2019년 2월 하노이 북미정상회담이 결렬된 후 한미연합훈련이 확대강화됨으로써 남북관계가 파탄으로 이어진 것은 그저 최근의 한 사례일 뿐이다.

미래지향적 군사기획은 필연적으로 남북 군사관계를 자주적으로 발전시키는 것을 포함해야 한다. 여기에 역시 필연적으로 미국의 군사적 통제로부터 벗어나면서 선도적으로 군비통제 조치를 취하고 군사행동을 자제할 것이 요구된다. 이는 국가보안법 세상을 살아온 정책과 전략 담당자들에게는 자기검열과 타인의 비판을 이겨낼 엄청난 용기를 요한다. 불행히도 지금까지 그런 인물(들)이 보이지 않고 있다. 현재의 군사기획의 경직성은 미래의 평화와 안보의 저해요인으로 작용한다.

군의 정신전력과 안보의 사회적 기반을 흔드는 국가보안법

셋째, 국가보안법은 민주공화국에 걸맞는 군의 정신전력 발전을 저해한다. 한국군은 민주공화국의 가치를 지키기 위해 ‘생명을 바치기’보다는 북한에 대한 적개심이라는 수준 낮은 적개심으로 무장하도록 강요당한다. 간부나 병사나 다름이 없다. 사관학교의 교육에서는 항일무장투쟁의 역사를 제대로 가르치지 않는다. 위대한 전사들 중에는 좌익이나 공산계열이 다수이고 그들을 제대로 공부하는 것은 국가보안법의 고무찬양죄를 범할 ‘위험성’이 있기 때문이다. 2023년 8월 육사에서 벌어진 홍범도장군 흉상 철거 시도도 그런 맥락에서 볼 수 있다. (나는 육사출신으로서 ‘자아비판’의 자격이 있다고 생각한다.)

병사들의 정신전력은 더욱 비관적이다. 그들이 모자라고 나빠서가 아니다. 어린시절 학교교육에서 국가보안법의 제약을 받으며 북한에 대한 공부의 기회를 전혀 갖지 못한 청년들이 군대에 오면 대북 적대감이나 무관심은 더욱 심화된다. 기계적인 ‘정신교육’으로 오히려 정신이 피폐해질 위험성마저 있다. 그들 다수가 ‘국방부 시계만 보다가’ 전역하여 사회로 돌아가서 국가보안법 폐지 운동에 동참하기를 기대할 수 있을까. 정신전력은 무기보다 더 중요하다. 그러나 저절로 갖추어지는 것이 아니라 가르치고 배우고 스스로 깨달아야 강해진다.

전투에서 적개심이 얼마나 강력한지 모르는 사람은 없겠지만 수준 높은 정신무장은 그보다 더 큰 가치, 자신을 기꺼이 희생해서 지킬 만한 소중한 것들에서 나오지 않을까. 사실 한국의 국방개혁은 수십 년간 거의 모든 정부에서 추진했지만 진정한 정신전력의 강화는 손도 대지 못했다. 국가보안법의 그림자를 완전히 걷어내지 않으면 우리의 안보를 책임지는 한국군의 정신전력은 ‘정신이 없는 전력’으로 남아 있을 것이다.

넷째, 국가보안법은 평화와 안보를 위한 정치사회적 기반을 약화시킨다. 국가보안법 개폐 문제는 가장 첨예한 정치적 논란 대상이다. 한국의 보수같지 않은 보수세력에 맞서 진보같지 않은 진보정부들은 항상 이 문제를 작심하고 보려 하지 않았다. 노무현 정부에서 7조(고무찬양죄) 폐지는 합의하여 거의 입법 조치 단계까지 갔으나 결국 좌절되었고, 지금의 여당 국회의원 다수도 법의 개폐에 동조하면서도 적극적으로 나서기를 주저하고 있다. 진실과 정의보다 표와 당선에서의 유불리가 정치인의 본능이라지만 그 본능을 형성하는 것은 한국사회의 전근대성과 대중의 이념적 공포다. 이보다 더 국민의 ‘성숙’을 저해하고 국가안보의 기반을 약화시키는 것이 있을까.

결론적으로 국가보안법에는 국가도 안보도 없다. 개인과 특정 단체에 대한 반헌법적 억압과 탄압을 넘어 그 모든 것의 근본인 국가안보와 평화에 대한 위협이 되어 왔다. 진정한 평화와 안보가 시급한 문제인 지금 국가보안법의 폐기는 더욱 시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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