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족 동의'가 본질이라면, 훨씬 심각한 문제들 있었다

'유족 동의' 없이 국가애도기간 결정하고 분향소 강행

'유족 동의' 없이 서로 연락도 모이지도 못하게 만들어

잘못 주어진 구도 속에서 던져진 틀린 질문과 답변들

민들레, 정부여당 의도를 처음 거스르고 불복종한 '죄'

17일 오후 국회에서 열린 '용산 이태원 참사 진상규명과 재발방지를 위한 국정조사특별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이종철 10·29 이태원 참사 유가족협의회 대표가 보고서 의결에 앞서 퇴장한 여당 위원들에게 항의하다 바닥에 주저앉아 있다. 2023.1.17. 연합뉴스
17일 오후 국회에서 열린 '용산 이태원 참사 진상규명과 재발방지를 위한 국정조사특별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이종철 10·29 이태원 참사 유가족협의회 대표가 보고서 의결에 앞서 퇴장한 여당 위원들에게 항의하다 바닥에 주저앉아 있다. 2023.1.17. 연합뉴스

윤석열 정부의 경찰은 며칠 전 <시민언론 민들레>와 그 구성원들에 대한 대대적이고 전방위적인 압수수색을 벌였다. 언론사에 대한 압수수색은 원래 어느 정권이든 쉽게 시도하지 않고 부담스러워 하던 일인데 윤석열 ‘신검부 정권’ 들어서는, 정부 비판적인 소수 언론과 언론인에 대한 압수수색과 탄압이 아예 일상이 돼 버렸다.

압수수색의 명분은 ‘<민들레>가 이태원 참사 희생자들의 명단을 유족의 동의 없이 공개했다’는 것이었다. 이 명분이 효과가 있었는지, 대부분의 주류언론은 압수수색에 무관심하거나 단순 사실 보도에 그쳤고, 이것을 비판하고 반대하는 목소리들은 찾기가 쉽지 않았다. 이런 분위기는 윤석열 정부의 비판 언론 입막음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이태원 참사 희생자 명단 공개 논란이 왜 벌어졌고 어떤 결과를 낳았는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출발점은 여러모로 기만적이고 해괴했던 ‘국가애도기간’이 끝나면서, 윤석열 정부가 이태원 참사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과 기억을 지우려고 한 것에 있었다.

당시, 유가족들의 목소리나 희생자에 대한 기억과 사진들은 주로 외신에서만 접할 수 있었고, 주류언론들은 월드컵에 대한 취재와 보도 경쟁으로 몰려가기 시작했다. 하지만 추모와 기억을 위해 희생자의 이름과 얼굴을 공개하고 유가족들이 모일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이 여기저기서 제기되고 있었다.

그러자 국민의힘과 <조선일보> 등은 이를 “패륜 행위”이며 ‘절대 용납될 수 없는 천인공노할 일’로 규정해 집중 공격했다. 국민의힘 장제원 의원은 “사람은 못될지언정 괴물은 되지 말자”고 했다. 이름 공개 주장을 하던 사람들은 압박에 밀려 궁지에 몰리면서 입장을 철회하거나 입을 닫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가 11월 14일 <민들레>와 <더 탐사>에서 희생자들의 명단을 발표하자, 엄청난 전사회적 비판들이 쏟아졌다. 정부와 여당, 보수언론만이 아니라 개혁적 언론과 진보적 지식인, 시민사회단체와 언론노조 등까지 비슷한 목소리를 냈다. 두 언론사는 철저히 고립됐다.

물론, 두 매체의 명단 공개는 유가족들의 동의를 충분히 구하지 못했다는 점에서, 비록 정부의 철저한 정보 은폐 속에 그것이 불가피했다고 해도 논란의 여지가 있었다. 하지만 “유족 동의”가 문제의 진정한 본질이라면, 훨씬 더 심각한 문제들이 있었다.

정부는 희생자들의 시신을 ‘유족 동의도 없이’ 전국 40여 개 병원에 뿔뿔이 흩어지게 했다. ‘유족 동의 없이’ 국가애도기간을 결정하고 선포했다. ‘유족 동의 없이’ 영정과 위패도 없는 분향소를 만들었다. ‘유족 동의 없이’ 유가족들이 서로 연락하지도 모이지도 못하게 만들었다.

정부가 처음부터 유족의 동의를 구하면서 모든 과정을 진행했다면, ‘명단 공개 논란’은 애초에 생기지도 않을 문제였다. 결국 ‘그렇게라도 명단을 공개하는 게 옳았냐, 그르냐’는 논란은 잘못 주어진 구도 속에서 던져진 틀린 질문과 답변이었다. 이것은 온갖 방해와 압박을 뚫고서 마침내 유가족들이 모여 목소리를 내면서부터 분명해졌다.

지난해 11월 22일 유가족들의 첫 번째 기자회견에서 한 유가족은 “공부 많이 한 전문가들이 다 같이 나와서 동의 없는 명단 공개는 2차 가해라고 했다. 그 전에 우리의 동의 없이 만들어진 위패 없고 영정 없는 분향소가 우리에겐 2차 가해였다”고 울분을 토했다.

비슷한 목소리는 계속됐다. “명단 공개가 패륜이라고요? 명단 비공개는 은폐입니다.”(고 박가영 님 어머니), “<민들레>가 이름을 그렇게 공개해 주지 않았다면 우리 애들의 이름은 세상에 못 나올 수도 있었겠다고 생각합니다.”(고 송채림 님의 아버지)

정부의 온갖 방해와 봉쇄를 뚫고서, 이처럼 유가족들이 놀라운 용기로 스스로 모여 목소리를 내면서부터, 이제 명단 공개는 더 이상 논란거리가 될 수 없었다. 유가족들은 영정과 위패가 있는 제대로 된 분향소를 만들었고, 이제 언론들은 대부분 희생자의 이름과 얼굴을 공개하며 취재와 보도를 이어가고 있다.

 

이태원 참사 희생자 시민 분향소. YTN 뉴스 화면 캡처
이태원 참사 희생자 시민 분향소. YTN 뉴스 화면 캡처

결과적으로 정부와 보수언론들은 단지 숫자가 아니라 이름과 얼굴을 통해서 희생자가 구체화 될수록, 더 많은 감정이입과 연대가 생겨날 수 있다는 점을 걱정했던 것이다. 그래서 한사코 그것을 막으려고 했다. <민들레>의 ‘죄’는 처음으로 그것을 거스르며 불복종한 행위에 있다. 그 ‘죄’로 <민들레>는 표적이 됐고 지금까지 공격받고 있다.

지금 이 상황을 ‘나 몰라라’ 하고 있는 사람들은 스스로 질문을 던져봐야 한다. 지금 윤석열 정부는 과연 동의 없이 명단이 공개된 이태원 참사 희생자들을 대변하기 위해서 이러는 것일까? 아니면 이태원 참사 희생자들과 그 유가족들을 욕보이고 괴롭히고 있는 것일까?

지금 압수수색과 소환조사를 받아야 할 것은 과연 <민들레>인가? 아니면 이태원 참사의 주범들인 이상민 행안부 장관과 오세훈 서울시장과 윤희근 경찰청장인가? 윤석열 정부를 지키려고 이태원 참사 유가족들을 지독하게 2차 가해하고 괴롭히고 있는 ‘신자유연대’와 같은 자들인가? 답은 너무나 명백하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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