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째서 패륜인가요? 아이들은 아무 잘못도 없는데"

"애들 이름, '민들레' 아니면 세상에 못 나왔을 수도"

"처음엔 화났지만 지금은 고마워…유족 찾을 때 도움"

"일본 기자가 '한국 기자들 이상하다'고…창피하더라"

"이름 공개가 잘못? 자기들끼리 상상해서 하는 얘기"

지난 2017년 12월 21일 제천 스포츠센터 화재 당시 언론사들이 보도한 사망자 명단에는 희생자들 이름과 나이, 성별이 장례식장별로 기재돼 있다.
지난 2017년 12월 21일 제천 스포츠센터 화재 당시 언론사들이 보도한 사망자 명단에는 희생자들 이름과 나이, 성별이 장례식장별로 기재돼 있다.

시민언론 민들레가 지난달 14일 10·29 이태원 참사 희생자들의 이름을 공개하기 전부터 집권여당인 국민의힘은 '패륜' 프레임을 가동시키며 언론과 여론을 단단히 봉쇄하고 위축시켰다. 명단이 공개된 뒤 정부‧여당의 '패륜' '2차 가해' 공격은 본격적으로 난폭해졌고 사회적 참사의 희생자들 이름을 비공개하는 게 과거부터 우리 사회의 합의된 원칙이기라도 했던 것처럼 각종 언론 단체들마저 가세했다.

그러나 자연재해나 범죄 피해가 아닌, 공적 안전 시스템의 심각한 문제로 발생한 대형 사회 재난의 희생자들 이름을 공개하는 건 전 세계 언론의 보편적 보도 원칙이자 지향이고 한국도 예외가 아니었다. 국가의 부재로 인해 졸지에 참변을 당한 이들의 사회적 죽음이 헛되지 않도록 공동체가 숫자가 아닌 개별적 인격체를 대상으로 애도하고 유족들을 위로하며 비슷한 참사가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다짐하기 위한 차원이다.

 

중국 당국의 참사 희생자 명단 비공개를 비판했던 조선일보 3월 28일자 보도. 조선일보 홈페이지 화면 캡처
중국 당국의 참사 희생자 명단 비공개를 비판했던 조선일보 3월 28일자 보도. 조선일보 홈페이지 화면 캡처

유족의 동의 없는 명단 공개가 불법이라는 주장들이 있지만 사회 재난 희생자들의 이름을 밝히는 데 사전 동의가 필요하다는 법령이나 보도준칙은 존재하지 않는다. 유족들이 동의하고 앞에 나서더라도 관련 기사의 댓글창이나 페이스북을 비롯한 SNS에는 반사회적이고 극우적인 부류의 패륜 글들이 난무한다. 국민의힘 소속 창원시의원이 거침없이 배설했던 혐오 발언들처럼 말이다.

문제는 유가족의 동의 여부가 아니라 희생자들의 죽음을 개인 탓으로 돌리며 오히려 유족들을 모욕하는 사회 일각의 왜곡된 인식과 이를 조장하는 정부‧여당의 의도적이고 조직적인 여론몰이, 그 스피커 노릇을 하는 언론매체에 있는 것이다. 윤석열 정부가 정작 유족들 동의를 구하지 않고 위패도 영정도 없는 초유의 합동분향소를 설치했을 때 이를 정면으로 비판하는 언론은 거의 없었다.

혐오 댓글 등은 그 가해자들을 민형사상으로 철저히 응징해 뿌리를 뽑아야 할 죄악이지 마치 희생자들이 떳떳하지 못한 죄인인 것처럼 그 이름마저 숨기고 유가족을 고립시키는 게 해답이 될 수는 없다. 그런 잘못된 분위기를 언론이 확대 재생산할수록 유가족의 슬픔과 울분은 치유하기 어렵고 더욱 심화하게 된다.

명단 공개가 패륜이고 2차 가해라는 주장에 실제 유족들은 어떤 생각일까. 지금까지 여러 인터뷰와 기자회견을 통해 이 문제에 대한 입장을 밝힌 유가족 가운데 명단 공개를 반대한 경우는 찾을 수 없다. 공감하거나 지지한다는 목소리만 있을 뿐이다. 처음엔 화가 났지만 지금은 고맙게 생각한다는 분도 있었다.

그러나 기성 언론들은 이 같은 명단 공개에 관한 유족들 입장을 보도하지 않는다. 지금까지 설정하고 밀어붙였던 논조가 있기 때문이다. 자신들이 내세웠던 주장을 합리화하기 위해 실제 유족들이 밝힌 의견은 묵살하는 형국이다. 이에 시민언론 민들레는 유족들이 공개 발언했던 사례들을 모아봤다.

 

14일 오후 5시쯤 서울 용산구 녹사평역 인근 이태원광장에 마련된 이태원 참사 희생자 시민분향소에서 유족들이 먼저 조문하고 있다. 오마이TV 화면 캡처
14일 오후 서울 용산구 녹사평역 인근 이태원광장에 마련된 이태원 참사 희생자 시민분향소에서 유족들이 먼저 조문하고 있다. 오마이TV 화면 캡처

"그날 정의구현사제단의 김영식 대표 신부님께서 아이들 이름을 불러 줬는데 저희 딸의 이름도 크고 또렷하게 불러 주셨고 그 순간에 굉장히 많은 위로와 위안이 됐습니다. 처음부터 이렇게 아이들 이름이 불려지고 또 영정 사진이 있고 분향을 그렇게 제대로 할 수 있었다 그러면 그런 마음이 안 들었을 텐데, 그 누구도 그 이전까지는 불러 주지 않았잖아요. (…) 저희가 유가족협의회라는 걸 구성하고서는 여러분께, 또는 저희 스스로도 이야기를 되풀이하는 게 우리 아이들이 잊혀지는 게 싫습니다. 사회에서도 우리 아이들이 그냥 158이라는 숫자에 갇혀서 그중에 하나가 아니라, 이십몇 년 동안 불리던 이름이 있고 사진이 있고 흔적이 있습니다. 그게 그냥 개인 정보 보호라는 이유로 이름도 불러 주지 못한 상태로, 이름이 누군지도 모르는 상태로 잊혀지는 게 싫습니다."

- 고 최유진 씨 아버지 최정주 씨. 12월 15일 TBS 김어준의 뉴스공장 인터뷰에서.

 

"10월 29일 이후 50일이 다 돼서 이제야 우리 아이들이 여러분을 만나게 됐습니다. 다시 한번 말씀드리지만, 저희 아이들 이름과 영정이 국민들에게 공개되는 게 패륜이 아닙니다. 처음부터 정부에서 우리 유가족들을 모아서 같이 슬픔을 국민과 함께 나눌 수 있도록 해줬으면…. 이제 드디어 저희 아이들이 여러분들을 만나 뵙습니다. 국민 여러분이 저희 아이들 이름 하나하나를 부르시면서 잘 가라, 수고했다, 우리가 지켜주지 못해서 미안하다…, 우리 아이들을 위해서 꼭 오셔가지고 추모 부탁드립니다."

- 유가족협의회 대표인 고 이지한 씨 아버지 이종철 씨. 12월 14일 영정과 위패를 갖춘 '시민분향소' 설치 뒤 발언.

 

10.29 이태원참사 유가족협의회의 국정조사 촉구 기자회견이 13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소통관에서 열린 가운데 고 박가영 씨 어머니 최선미 씨가 발언하고 있다. 2022.12.13
10.29 이태원참사 유가족협의회의 국정조사 촉구 기자회견이 13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소통관에서 열린 가운데 고 박가영 씨 어머니 최선미 씨가 발언하고 있다. 2022.12.13

"명단 공개가 패륜이라고요? 명단 비공개는 은폐입니다. 유가족이 희생자 명단을 공개하고 기자회견을 하는 것은 국민들에게 잊지 말아 달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대통령이 기억하고 여야가 기억하고 정부가 기억해서 다시는 이런 참사가 일어나지 않아 남아있는 아이들을 지키지 못하는 일이 없게 해달라는 우리들의 울부짖음입니다. (…) 우리 유가족뿐만 아니라 이 나라에서 자식을 둔 부모들은 위로가 필요합니다. 사람은 외로워서 죽는 게 아니라 위로받지 못해서 죽는다고 합니다."

- 고 박가영 씨 어머니 최선미 씨. 12월 13일 국회 소통관에서 가진 기자회견에서.

 

"언니의 세계는 여전히 참사의 그날 밤에 머물러 있다. 그는 '다시 그날로 돌아갈 수 없다면, 차라리 시간이 멈춰 버렸으면 좋겠다'라고 말했다. 지난 한 달, 그를 가장 두렵게 만들었던 것은 망각이었다. 집안에 희미하게 남아있는 동생의 체취마저 사라지고 나면 정말로 더 이상 동생이 세상에 없다는 사실을 실감하게 될까 봐, 그는 두렵다고 말했다. 생전에 동생과 함께한 친구들이 동생을 잊는 것도, 사람들이 더 이상 이태원 참사를 기억하지 않게 되는 것도 무섭다. (…) 김이서 씨의 언니는 최근 논란이 된 언론사 '민들레'의 희생자 명단 공개에 대해서도 입을 열었다. 처음엔 화가 났지만, 지금은 고맙게 생각한다고 했다. 이름조차 알 수 없었던 희생자들의 유가족을 찾을 때 도움이 됐다. 정부가 외면하는 동안 유가족들은 직접 발로 뛰었다."

- 고 김이서(가명·25) 씨 언니. 12월 7일 뉴스타파 인터뷰에서.

 

"명단 공개하는 게 패륜입니까? 예? 당신들이 패륜 집단입니다. (…) 장제원, 정진석, 김기현, 권성동! 윤석열 대통령한테 그렇게 잘 보이고 싶으십니까? 인간으로서 우리들한테 하지 말았어야 할 일들을 당신들은 했습니다. 짐승도 그렇게는 안 했을 거예요."

- 고 이지한 씨 아버지 이종철 씨. 12월 1일 국회 국정조사특위 간담회에서.

 

지난 12월 1일 오후 국회에서 열린 이태원 참사 진상규명과 재발방지를 위한 국정조사 특별위원회 유가족 간담회에 국민의힘 소속 위원들이 모두 불참해 자리가 텅 비어있다. 2022.12.1 연합뉴스
지난 12월 1일 오후 국회에서 열린 이태원 참사 진상규명과 재발방지를 위한 국정조사 특별위원회 유가족 간담회에 국민의힘 소속 위원들이 모두 불참해 자리가 텅 비어있다. 2022.12.1 연합뉴스

"그 생각하면 아직도 살이 떨리는데 어떤 생명도 함부로 하면 안 되는데요. 영정도 없고, 사진도 없고. 식물에다가 애도를 하나요? 그 유가족들이 입이 없고 할 말이 없어서 가만히 있는 게 아니거든요. 그 명단 공개가 어째서 패륜인가요? 자기 아이가 아무 잘못도 없이 날벼락을 맞은 거잖아요. 그거는 당연히 공개가 되어야지 맞는 거거든요. 공개 왜 안 해요? 어디 누가 사고를 당하면 어디 사는 누가 어떤 일로 사고를 당했습니다, 뉴스 많이 하잖아요."

- 고 최민석 씨 어머니 김희정 씨. 12월 1일 TBS 김어준의 뉴스공장 인터뷰에서.

 

"명단 공개는 당연히 해야 되는 거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그전에 보면 10.29가 아니고 그전에 세월호나 씨랜드, 서해대교 이런 대형 참사들 있을 때 보면 기자들이 가장 먼저 취재해서 올리던 게 피해자 신상이 아니었습니까? 이름, 나이, 성별. 항상 먼저 그거 내보내려고 취재하고 그러고 다니지 않았나요? 그런데 우리 아이들이 무슨 잘못이 있어서, 무슨 죄를 지어서 이름도 하나도 밝히지 못합니까? 저는 우리 아이가 이름이 밝혀지고 사람들한테 오래오래 좋은 사람으로 기억되기를 바라요. 그래서 명단 공개를 저는 단톡방에다 제가 먼저 우리 아이 사진을 올리고 '내 딸 송채림입니다' 하고 먼저 올렸어요. '왜 공개 못 합니까?' 하고. 그랬더니 동조해주시는 많은 분들이 같이 또 사진 올리시고 해서 같이 공유하고 이렇게 했거든요. 저는 '민들레' 그거 나왔을 때 일부 법적으로 고소를 하니 어쩌니 이렇게까지도 이야기가 있었는데 저는 민들레가 이름을 그렇게 공개해 주지 않았다면 우리 애들의 이름은 세상에 못 나올 수도 있었겠다고 생각됩니다."

"지금 저희가 기자회견을 하고 언론의 관심이 부쩍 많아졌어요. 그런데 전에 정진석 비대위원장이 명단 공개는 패륜이라고 이야기했을 때 그때는 (기자) 아무도 누구도 취재하지 않더라고요. 그때 당시 제가 일본 언론에서 취재 요청이 들어와서 인터뷰를 했는데 취재가 끝나고 나서 그 일본 기자가 하는 말이, 한국 기자들이 이상하다는 거예요. '뭐가 이상하냐, 우리나라 기자가.' 그랬더니 취재를 안 한답니다. 심지어는 가만히 사무실에 앉아서 복붙 한다고. 그 말을 듣고 기자가 아닌 제가, 우리나라 국민인 제가 창피하더라고요. 아무 말도 못 하겠더라고요."

- 고 송채림 씨 아버지 송진영 씨. 11월 28‧29일 TBS 김어준의 뉴스공장 인터뷰에서.

 

"이름 공개요? (정부가) 우리 유가족들에게 물어보면 되잖아요. 158명에게 하루면 끝나는 일 아닐까요? 번호 다 알고 있잖아요. 왜 그런 작은 조치조차 취하지 않으면서 패륜이다, 이름을 공개하는 건 잘못된 거다. 우리한테 물어봤나요? 안 물어봤잖아요. 자기들끼리 상상해서 하는 얘기잖아요."

- 고 이지한 씨 어머니 조미은 씨. 11월 24일 YTN 라디오 이슈&피플 인터뷰에서.

 

"(진행자가 '유족들은 원하지 않는데 왜 명단을 굳이 공개하냐 하고 반대하는 측도 있다'고 묻자) 아닙니다. 우리는, 우리 유가족 모임은 전부 동의해요. 전부 다 찬성입니다. 몇 명은 모르겠지만 우리 단톡방에 있는 분들은 전부 찬성이에요. 다 동의합니다. 합동분향소도 마찬가지겠지만 위패도 하나 없고 아이 얼굴 하나도 없이 그게 무슨 분향소예요. 세월호 때도 아이들 사진을 다 걸었어요. 그런데 이번에 애들은 누가 누구인지 아무도 몰라요. 누가 죽었는지 누가 어떻게 갔는지 아무도 모른다고요. 그냥 형식적인 국화꽃만 갖다 올리는 거잖아요."

- 고 노류영 씨 어머니 정미진씨. 11월 24일 CBS 라디오 박재홍의 한판승부 인터뷰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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