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정보보호법 적용도 무리…경찰이 아전인수
공무상 비밀누설, '국가와 정부의 이득'이 전제
명단 '비공개'가 윤석열, 한덕수, 이상민의 이익?
'민들레' 고발인은 신자유연대 등 전부 극우성향
유족 "처벌할 사람은 안 하고 민들레 처벌하나"
<시민언론 민들레>의 10·29 이태원 참사 희생자 명단 공개와 관련, 형법의 공무상 비밀 누설 조항을 위반했다고 보기 어렵다는 분석이 나온다. 알 권리와 공익 차원에서 보도했다는 점을 고려할 때, 희생자 명단이 국가나 지방자치단체가 실질적인 이득을 얻을 수 있는 기밀로 보기 어렵다는 해석이다.
지난달 26일 서울경찰청 반부패·공공범죄수사대(책임자 노정웅 경정, 2계장)가 서울중앙지법(김정민 판사, 청구검사 김영식)으로부터 발부받아 <민들레>에 제시한 압수수색 영장에는 개인정보 보호법과 공무상 기밀누설 단 2가지만 혐의로 적시돼 있었다.
경찰은 <민들레>가 희생자 명단을 공개해 개인정보 보호법을 위반했다고 보고 있지만, 개인정보 보호법 제2조에 따르면 개인정보는 '살아 있는 개인'에 관한 정보로 사망자는 이에 해당하지 않는다. 경찰은 희생자 정보를 다른 정보와 결합해 유가족을 특정할 수 있기 때문에 희생자 명단이 '개인정보'라고 주장하지만 이 역시 아전인수격 해석이다.
개인정보 보호법은 "개인을 알아보는 데 소요되는 시간, 비용, 기술 등을 합리적으로 고려해야 한다(제2조)"고 명시하고 있어 희생자 이름만을 가지고 개인정보 요건이 무조건 성립됐다고 보기는 어렵다. 경찰이 제시한 영장은 개인을 알아보는데 소요되는 시간, 비용 등도 고려하지 않고 혐의를 붙였다.
경찰은 참사 당시 희생자 신원 파악도 빠르게 못 했을뿐더러, 희생자를 파악을 하고 이를 빠르게 전파하지 않음으로써 가족이나 친구의 생사 여부를 곧바로 파악하지 못하게 했다. 자신들도 빠르게 파악하지 못한 정보들을 희생자 이름만 가지고 유가족을 특정할 수 있다는 주장에 모순이 있다.
오히려 개인정보 보호법 위반을 이유로 경찰이 압수수색을 한 것 자체가 과잉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경찰이 제시한 영장에서 <민들레>에 적용되는 법은 개인정보 보호법 하나다. 개인정보 보호법 위반 하나만으로 언론사를 전방위적으로 압수수색을 한 전례도 찾아보기 어렵다.
아울러 정부가 그동안 서해훼리호 침몰, 성수대교 붕괴, 삼풍백화점 붕괴, 화성 씨랜드 화재, 대구 지하철 화재, 이천 냉동창고 화재, 세월호 침몰, 제천 스포츠센터 화재 등 대형참사에서 희생자 이름과 나이, 성별, 직업 심지어 장례식장까지 공개해왔다는 점 등을 비춰봤을 때, 공무상 비밀 누설 적용도 타당하지 못하다.
형법 제127조는 공무원이나 공무원이었던 사람이 법령에 의한 직무상 비밀을 누설한 때 2년 이하 징역이나 금고 또는 5년 이하 자격정지에 처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대법원 판례(2021도2486)는 이에 대해 "정부나 공무소 또는 국민이 상당한 이익이 있는 사항도 포함하나, 실질적으로 그것을 비밀로서 보호할 가치가 있다고 인정할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고 해석하고 있다.
학계에서는 형법이나 특별법 등에서 공무원이나 공무원이었던 사람이 비밀을 누설하는 행위를 처벌하는 것과 관련해 "이 경우의 비밀은 일반적으로 알려져 있지 않은 사항으로 국가가 이를 비공개할 이익이 있는 것"(<형법각론>, 이재상·장영민·강동범, 2019)으로 보고 있다.
경찰이 <민들레> 사무실을 압수수색한 것은 명단을 제공한 공무원 또는 공무원이었던 사람을 찾기 위한 것으로, 명단 공개가 정부의 이익을 침해했다는 전제가 깔려 있다. 즉 명단을 '비공개'하는 것이 윤석열 대통령과 한덕수 국무총리,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 오세훈 서울시장, 윤희근 경찰청장 등을 위시한 정부, 지방자치단체의 이익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희생자 명단 비공개는 국가와 정부, 국민의 이익이 아니다. 또한 그동안 정부가 대형 참사마다 희생자 명단을 공개한 전례를 비춰봤을 때 비밀로 취급해야 할 이유를 찾기도 어렵다. <민들레> 보도에 대해 당시 유가족 동의를 충분히 구하지 못했다는 비판이 일었지만, 국민의 알 권리를 보장하고 희생자를 기억해야 한다는 공익 목적에서 불가피한 측면이 있었다.
윤석열 정부는 역대 정부의 참사 대응과는 전혀 다르게 희생자 명단을 철저하게 숨기며 영정·위패도 없는 분향소를 설치했고, 특히 행정안전부는 유가족의 다른 유가족 연락처 공유 요구조차 사전에 법령해석을 받고도 묵살했다. <민들레>보도는 이러한 상황에서 추모와 기억을 위해 희생자 명단을 공개해야 한다는 시민사회의 주장이 제기되던 시기에 이뤄졌다.
이장욱 울산대 경찰학과 조교수는 '공무상 비밀 누설에 대한 형사처분 동향과 그 함의에 대한 비판적 고찰' 논문(한국경찰학회보 23권 1호)에서 "국가기밀을 비롯한 공무상 비밀 보호의 당위성은 국민의 알 권리와 맞물려서 논의돼 왔다"며 "국가기밀을 보호함으로써 국가가 얻는 이익과 국민의 알 권리를 보장함으로써 국민이 향유하는 이익은 서로 충돌되는 측면이 강하다"고 밝히고 있다.
이 교수는 같은 논문에서 "그러기에 국가기밀이 국민의 알 권리를 제한하기 위해서는 그것이 누설될 경우 국가의 안전에 위험을 초래할 우려가 있어 우려가 있어 기밀로 보호할 실질가치를 갖춘 것에 한하며(대법원 1997. 7. 16., 선고, 97도985, 전원합의체 판결), 그 범위 역시 명확하게 규정되어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태원 참사 유가족협의회 결성 뒤 유가족들의 희생자 명단 보도 관련 공개 발언도 눈 여겨볼 대목이다. 고 김이서(가명·25) 씨 언니는 지난해 12월 <뉴스타파> 인터뷰에서 <민들레>의 명단 공개에 대해 "처음엔 화가 났지만, 지금은 고맙게 생각한다"며 "이름조차 알 수 없었던 희생자들의 유가족을 찾을 때 도움이 됐다. 정부가 외면하는 동안 유가족들은 직접 발로 뛰었다"고 했다.
고 송채림 씨 아버지 송진영 씨는 지난해 11월 <김어준의 뉴스공장> 인터뷰에서 "명단 공개는 당연히 해야 되는 거라고 생각한다. 10·29 전에 세월호나 씨랜드, 서해대교 등 대형 참사가 있을 때 보면 기자들이 가장 먼저 취재해서 올리던 게 피해자 신상이 아니었냐"며 "우리 아이들이 무슨 잘못이 있어서, 무슨 죄를 지어서 이름도 하나도 밝히지 못하냐"고 했다.
고 박가영 씨 어머니 최선미 씨는 지난해 12월 국회 소통관에서 "명단 공개가 패륜이냐. 명단 비공개는 은폐"라며, 명단 공개에 대해 "여야가 기억하고 정부가 기억해서 다시는 이런 참사가 일어나지 않아 남아있는 아이들을 지키지 못하는 일이 없게 해달라는 우리들의 울부짖음"이라고 했다.
10·29 이태원 참사 시민대책회의에 참여하고 있는 김남근 변호사는 <민들레>와 통화에서 "공무상 비밀 누설은 유가족의 개인적 법익을 보호하는 게 아니라 공공 부분에 있어서 기밀유지, 행정 등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라며 "유가족 개인의 법익과는 다른 차원의 문제"라고 설명했다.
김 변호사는 "개인정보 보호법으로 압수수색 영장까지 발부받을 일은 아닌 거 같다. 공무상 비밀 누설이 압수수색 영장을 발부한 근거가 됐을 것"이라면서 "(기관이) 기밀 취급을 했다고 하더라도 공무상 기밀로 해야될 가치가 있는 정보였느냐가 논란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더군다나 경찰이 붙인 개인정보 보호법 위반과 공무상 비밀 누설 등의 혐의는 모두 극우단체 고발자 측 의견을 그대로 가져온 것이다. <민들레>를 고발한 신자유연대 대표 김상진 씨는 "선택적 시체팔이"라는 말로 유가족을 2차 가해를 했으며, 녹사평역 시민분향소에 신자유연대 텐트를 설치해 정상적인 추모를 방해하고 있다. 이들 단체로 인해 유가족이 기절하는 일도 벌어졌다.
또 <민들레>를 개인정보 보호법 위반 혐의로 고발한 국민의힘 이종배 서울시의원은 대표적인 '전문 고발꾼'으로 알려져 있으며, 윤석열 대통령 부인 김건희 씨의 팬 카페 '건사랑'과 극우단체 '새희망결사단' 등 역시 같은 혐의로 서초경찰서에 고발장을 냈다. 모두 극우성향 단체이거나 개인으로, 이들의 고발을 바탕으로 한 경찰 압수수색에 정치적 의도가 있는 것 아니냐는 의심이 강하게 가는 배경이다.
더불어민주당 김남국 의원은 <민들레> 압수수색 당일 사회관계망 서비스(SNS)에 "권력 감시 기능을 하고 있는 언론에 대한 강제수사는 최대한 자제돼야 한다"며 "그런데 지난 몇 개월 동안 윤석열 정부에서 벌어진 압수수색은 횟수도 많을뿐더러 증거 등이 이미 공개가 되어 있어서 그 필요성이 없는 경우에도 과잉으로 압수수색을 밀어붙였다"고 비판했다.
김 의원은 "(윤석열 정부는) 어디 이름 없는 시민단체에서 고발하고, 수사기관이 그 고발을 이용해서 폭력적으로 진압하는 행태를 반복적으로 보여왔다"며" 거기서 수사의 정당성과 필요성을 보기보다는 그저 무능·무책임한 대통령과 정부에 대한 비판적 언론을 손보겠다는 노골적인 목적만 보일 뿐"이라고 지적했다.
유가족협의회 대표인 이종철 씨는 전날 대통령실 앞에서 1인 시위를 하며 "<민들레>가 죄가 있냐. 우리가 고발했냐. 우리 아이들은 죽여놓고 처벌받을 사람은 소환조차 하지 않고서 왜 그런 데는 시키지도 않은 짓을 하냐"면서 "처벌받을 사람은 가만히 두고서 당사자인 우리도 가만히 있는데 왜 그 사람들을 처벌하냐"고 항의했다.
한국기자협회 편집위원회는 "희생자 명단을 일방적으로 공개한 취재윤리 위반 논란과 별개로 공권력을 동원해 <민들레>를 압수수색한 것은 비판받아 마땅하다"며 "언론의 취재와 보도에 대한 수사기관의 압수수색은 언론자유를 침해할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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