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씨 알릴 때 쓰는 말도 쉬운 토박이말 쓰자
열대야 → 밤더위, 폭염 → 된더위, 불볕더위
"날씨를 살피고 알려 주는 일을 하는 곳인데 왜 '기상청'이죠? '날씨청'이라고 하는 게 맞을 것 같은데요."
아이들과 '행정부'의 뜻과 하는 일을 배우는 가운데 정부 조직도를 보다가 한 아이가 물었습니다.
"선생님, 기상청은 뭐 하는 곳이에요?"
"날씨를 살피고 알려 주는 일을 하는 곳이지." 아이들에게 될 수 있으면 쉬운 말로 풀어주려고 하기 때문에 이렇게 말해 주었습니다.
그랬더니 아이가 한 말이 바로 위에 있는 말입니다. 아이 말대로 '날씨'를 살피고 알려 주는 일을 하는 곳인니 '날씨청'이라고 하는 게 더 알맞은 말인데 우리는 그런 말을 쓰지 않습니다.
"오늘의 날씨를 알려드리겠습니다."
"오늘 날씨가 어떻다고?"
늘 이런 말을 하며 살면서 말이지요.
아이의 눈높이에서 봐도 그렇고 우리가 살면서 쓰는 말을 놓고 봐도 그렇습니다. 마치 우리말이 있는데도 우리 스스로 일부러 우리말을 쓰지 않으려고 하는 것 같다는 느낌이 듭니다.
일터 이름만 그런 것이 아닙니다. 닐씨를 알려주는 날씨 갈말(용어)도 버젓이 쉬운 우리말이 있는데 어려운 한자말을 써서 듣는 사람들로 하여금 제대로 된 날씨 알감(정보)을 알 수 없게 하기도 합니다.
요즘 날씨를 알려 주시는 분들이 많이 쓰는 '폭염'이라는 말만 해도 그렇습니다. 잘 아시다시피 '폭염'은 한자말입니다. '폭염'을 표준국어대사전에서는 '매우 심한 더위'라고 풀이를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폭염' 이라는 한글 옆에 '사나울 폭(暴)' . '불꽃 염(炎)'이라는 한자를 나란히 적어 놓았습니다. 한자의 뜻만 가지고 풀이를 하면 '사나운 불꽃'이 되어 '매우 심한 더위'라는 우리가 알고 있는 뜻과는 조금 멀어져 버립니다. 그리고 그 아래에 '순화어'라고 하면서 '불볕더위'라는 토박이말이 있다는 것도 알려 주고 있습니다. 국립국어원에서 1999년에 펴낸 종이 표준국어대사전 6611쪽에는 다음과 같이 풀이를 해 놓았습니다.
폭염(暴炎) =폭서(暴暑). '된더위', '불볕더위'로 순화.
이는 '폭염'이라는 말보다 '된더위', '불볕더위'라는 토박이말을 쓰는 것이 좋다는 말이라고 봅니다. 그래서 그런지 날씨를 알려 주실 때 '폭염'이라는 말보다 '불볕더위'라는 말을 써서 자주 듣기도 합니다. 그런데 '폭염'이 들어간 '폭염주의보', '폭염경보'라는 말은 그대로 쓰고 있습니다. 이 말도 '불볕더위주의보', '불볕더위경보'라고 하든지 더 쉽게 '불볕더위알림'이라고 하면 좋겠습니다.
요즘 날씨를 알릴 때 '무더위'라는 말을 많이 쓰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같은 날 날씨를 알려 주는 사람 가운데 어떤 사람은 '불볕더위'라고 하고 어떤 사람은 '무더위'라는 말을 쓰는 것을 보면 두 말이 비슷한 말이라고 여기고 쓰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말밑(어원)을 놓고 볼 때 두 말은 가려서 쓰는 것이 더 나은 말입니다.
'무더위'는 '무+더위'의 짜임으로 앞의 '무'는 '물'을 뜻하는 말입니다. 말 그대로 '물더위'인데 표준국어대사전에서는 '무더위'를 '습도와 온도가 매우 높아서 찌는 듯 견디기 어려운 더위'라고 풀이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습도'가 '물'과 이어지고 '찌는 듯'이라는 말도 뜨거운 김, 그러니까 물과 이어진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처럼 '무더위'는 여러 날 비가 내려 '습도'와 '온도'가 다 함께 높은 오란비(장마)철에 쓰기 알맞은 말입니다.
이에 견주어 '불볕더위'는 '불+볕+더위'의 짜임으로 여기 들어간 낱말만 보더라도 '(햇)볕'이 '불'처럼 뜨겁게 내리 쬐는 더위를 가리키는 말이라는 것을 쉽게 어림할 수 있습니다. 표준국어대사전에서 '불볕더위'를 '햇볕이 몹시 뜨겁게 내리쬘 때의 더위'라고 풀이를 해 놓은 것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오란비(장마)철이라고 하지만 여러 날 동안 비는 한 방울도 안 오고 뜨거운 햇볕이 내리 쬐는 요즘 같은 더위는 '불볕더위'라고 하는 것이 알맞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우리토박이말의 뜻을 잘 가리고 뜻에 잘 맞춰서 날씨를 알려주면 좋겠습니다.
말이 나온 김에 날씨를 알려 줄 때 쓰는 말 가운데 어려운 한자말이 아닌 쉬운 토박이말을 살려서 썼으면 하는 것들을 몇 가지 더 말씀드려 보겠습니다.
여름철에 많이 듣는 '호우(豪雨)'라는 말도 토박이말 '큰비'라고 하고 '열대야(熱帶夜)도 '밤더위'라고 하면 누구나 알아들을 수 있을 것입니다. 겨울철에 많이 듣는 '대설(大雪)'이라는 말은 '큰눈'이라고 하고 '폭설(暴雪)'도 '소나기눈'이라고 하면 될 것입니다.
'기상청' 누리집에 들어가면 '날씨누리' '날씨알리미'라는 예쁜 토박이말을 잘 살려 쓰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이 날씨를 알릴 때 쓰는 말도 쉬운 토박이말로 바꾸는 일에 마음을 써서 누구나 쉽게 알아들을 수 있는 날씨 알림터가 되어 주기를 바랍니다. 그렇게 하다 보면 우리 아이의 말처럼 '기상청'이 '날씨청'이 되는 날이 언젠가는 올 거라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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