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는 글: '나라 찾은 날 여든 돌', 우리말도 광복을…

광복절을 앞둔 4일 서울 광화문 교보빌딩에 독립운동가 남상락 자수 태극기가 걸려있다. 2025.8.4. 연합뉴스
광복절을 앞둔 4일 서울 광화문 교보빌딩에 독립운동가 남상락 자수 태극기가 걸려있다. 2025.8.4. 연합뉴스

2025년 8월 15일, '광복(光復) 80주년'이라는 역사적인 날입니다. 그런데 하나 여쭙고 싶습니다. '광복'이 무슨 뜻인지 아시나요?

많은 분들이 '해방된 날', '독립한 날' 정도로 어림할 뿐, 그 본디 뜻을 선뜻 답하기 쉽지 않다고 느끼시는 분들도 많을 것입니다. 광복은 '빛을(光) 되찾다(復)'는 뜻을 지닌 한자말입니다. 일본 제국주의에 나라를 빼앗겨 어둠과도 같았던 일제 강점기를 끝내고 나라의 주권이라는 빛을 되찾았다는 뜻이 높으면서도 아주 시와 같은 낱말입니다.

하지만 바로 여기에 우리가 외면해온 문제가 숨어있습니다. 나라를 되찾은 가장 기쁜 날을 기리는 날 이름조차, 많은 사람들이 그 뜻을 한 번에 알기 어려운 한자말로 만들었다는 사실입니다. 나라의 주인인 국민이 그 기림날(기념일)의 뜻을 한눈에(직관적으로) 알 수 없다면, 과연 그것이 오롯하게 '우리 것'이라 할 수 있을까요?

우리가 이 날을 '나라 찾은 날 여든 돌'이라 부른다면 어떻겠습니까? '광복 80주년'이라는 말과 견주어 보십시오. 어느 쪽이 더 쉽고 가슴에 와닿습니까? 어린아이부터 어르신까지, 누가 들어도 '아, 일제에 빼앗겼던 나라를 되찾은 지 여든 해가 되었구나'하고 바로 알 수 있는 말, 바로 이것이 살아있는 우리말의 힘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처럼 기림날(기념일)의 이름 하나 제대로 우리말로 세우지 못한 현실은, 우리가 맞이한 '광복'이라는 것이 '반쪽짜리'였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줍니다. 정치적 주권이라는 빛은 되찾았을지언정, 우리 겨레의 얼과 정신이 담긴 '언어의 주권'은 여전히 한자어와 일본어의 잔재, 그리고 무분별한 외래어의 그늘에 갇혀 있습니다.

이것은 비단 기림날(기념일) 이름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세계는 우리를 '대한민국'이 아닌 천 년 전 왕조의 이름인 '코리아'로 부릅니다. 국민을 위해 일해야 할 정부는 '양해각서(諒解覺書)', '거버넌스(governance)'처럼 어려운 한자말과 다른나라말로 국민들을 주눅들게 합니다. '미추홀', '한밭'처럼 아름다운 우리말 땅이름은 '인천(仁川)', '대전(大田)'이라는 한자 이름 뒤에 갇혀 그 뿌리를 잃었습니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요? 나라를 되찾자마자 타올랐던 '우리말 도로 찾기'의 불씨는 익숙함과 편리함이라는 벽 앞에 쉬이 꺼져버렸습니다. 우리말을 지키고 다듬어야 할 국립국어원은 국민의 공감을 얻지 못하는 '다듬은 말'을 내놓고 있으며, 이를 뒷받침해야 할 국어기본법은 강제성 없는 '종이범'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무엇보다 우리 아이들이 학교에서 우리말의 뿌리인 '토박이말'의 아름다움과 가치를 체계적으로 배우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에  '나라 찾은 날 여든 돌'을 맞아, 우리 사회가 '언어 주권'이라는 이야깃거리를 똑바로 마주하고 참된 '언어 광복'을 이루기 위한 길을 찾아보고자 모두 7회에 걸쳐 글을 나누어 싣습니다. 이 이야기가 우리 다음 사람들에게 오롯한 우리말을 물려주기 위한 뜻깊은 이야기의 첫걸음이 되기를 바랍니다.

<앞으로 이어질 글>

2회. '대한민국'이라 쓰고 '코리아'라 불리는 나라: 잃어버린 이름의 정치학
3회. 정부는 누구의 말로 소통하는가: 국민 위에 군림하는 권력의 언어
4회. '미추홀'은 왜 '인천'이 되었나: 땅에 새겨진 식민의 그림자들
5회. 실패한 혁명, '우리말 도로 찾기': 좌절의 역사와 그 교훈
6회. 길 잃은 국립국어원, 잠자는 국어기본법: 언어 정책의 현주소
7회. '토박이말'이 살아있는 교실을 꿈꾸며: 백 년의 언어 교육을 위한 제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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