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수업체들의 안보…죽음의 길 거부해야"
러 위협 거론…트럼프 "서구 문명 승리"
2030년 13.4조, 2035년엔 19조 달러
민생 등 사회·환경·원조 예산을 '전용'
"제트기·탱크에 투자…군수산업 보상"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가 2035년까지 국방비를 국내총생산(GDP)의 총 5%로 증액한다.
나토 32개 회원국은 25일(현지시간)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진행된 정상회의에서 전력 증강 목표 달성을 위해 연간 GDP의 최소 3.5%를 핵심 국방 수요에 투입하고 최대 1.5%를 인프라 보호, 네트워크 방어, 방위산업 기반 강화 등에 투입하기로 합의하고 공동성명을 발표했다.
나토 "2035년 국방비 GDP 5%로"
트럼프 "미국·유럽·서구문명 승리"
직접 군사비 3.5%와 간접 비용 1.5%를 합친 것으로 미국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요구한 '5%'에 맞췄다. 2014년 합의된 현행 목표치 2%의 2.5배로 증액하기로 한 것이다. 2024년 나토는 국방비로 1조 5000억 달러(2040조 원)를 지출했다. 전 세계 국방비의 절반이 넘는다.
AFP 통신에 따르면, 마르크 뤼터 나토 사무총장은 정상회의 전날 진행한 기자회견에서 러시아와 테러리즘을 비롯해 "어떤 위협"이든 저지하고 방어해야 한다면서 "이는 우리의 미래를 담보하는 데 야심 차고, 역사적이며, 근본적인 양자 도약이다"라고 자평했다. 트럼프도 "그 누구도 가능할 걸로 예상 못했던 역사적 수치다...미국, 유럽, 서구 문명의 승리"라고 말했다.
이런 천문학적인 나토의 국방비에 대해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 본부를 둔 진보 성향의 비영리 싱크탱크인 '초국가 연구소'(tni)는 당장 절박한 민생을 포함한 사회 예산, 기후 위기 대처에 필요한 환경 예산 등의 급격한 삭감으로 이어질 것을 경고했다. '어떻게 따져봐도 나토의 3.5% 지출 목표는 지속 불가능'이란 19일 자 보고서에서다.
2030년 13.4조, 2035년 19조 달러
민생·기후 등 사회·환경 예산 '전용'
tni 보고서에 따르면, 나토의 국방비 지출 목표는 2030년까지는 GDP의 3.5%, 2035년까지는 5%다. 2030년까지만 봐도 총 13조 4000억 달러(1경 8000조 원)의 군사비 지출로 이어진다. 이는 현행 2% 지출보다 연평균 6200억 달러씩 6년간 총 2조 6000억 달러 급증한 수치다. 연간 1조 달러의 개도국 기후 위기 재정을 약 3년간 충당하거나, 2030년까지 전 세계 전력망을 넷제로(Net Zero)에 적합하게 만드는 데 드는 비용을 모두 감당할 수 있는 규모다. 2035년에는 이 규모가 19조 달러로 증가하게 된다.
'13조 4000억 달러'를 두고 tni의 닉 벅스턴 연구원은 26일 자 알자지라 기고에서 "상상 불가능한 액수지만, 1달러 지폐로 쌓으면 달까지 거의 네 더미를 만들 수 있다. 또한 지구촌 모두에게 1,674달러씩 일회성 현금 보너스로 지급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벅스턴은 "실제로 이 돈은 뭣보다 사회와 환경 지출에서 전용될 것이다. 유럽인의 30%가 생활고를 겪는다는 보고가 있고, 기후 과학자들은 국제 목표인 섭씨 1.5도 미만으로 기온 상승을 억제하는데 2년밖에 남지 않았다고 경고하고 있는데도 말이다"라고 개탄했다.
유럽 주요국, 원조 예산 대폭 삭감
미국은 원조·기후·의료 예산 타깃
벅스턴은 5% 목표에서 일부 면제를 받고자 싸운 스페인의 페드로 산체스 총리가 가장 솔직했다고 평가했다. 산체스 총리는 "만약 우리가 5%를 수용한다면, 스페인은 2035년까지 국방에 3000억 유로를 추가로 지출해야 했다. 어디서 나오겠는가? 보건과 교육 예산 삭감에서 나올 것이다"라고 말했다.
벅스턴이 보기에, 사회와 환경 지출은 이미 도마 위에 올라 있다. 지난 2월, 영국은 국방비 증가를 충당하고자 원조 예산을 GDP의 0.3%로 줄이겠다고 발표했다. 1년 전 해외 원조 확대를 공약하며 선거에서 승리했는데도 말이다. 뒤이어 벨기에와 네덜란드, 프랑스도 원조를 25~37% 삭감하겠다고 발표했다. 트럼프 하의 미국은 해외 원조와 기후 프로그램을 크게 훼손하고 의료 재정을 삭감하면서 펜타곤(국방부)엔 사상 최고액인 1조 달러 지출을 제시했다.
유럽의 주요 자금 조달 수단인 '회복과 회복 탄력성 기금'(RRF)이 내년에 만료되면서 자체 사회·환경 목표 달성에 빨간불이 켜졌다. 유럽노동조합총연맹(ETUC)은 유럽의 나토 회원국 대다수가 예산 삭감과 증세 또는 회계 규칙 변경 없이는 나토의 3.5% 목표를 달성할 수 없다고 이미 결론을 내리고 있다고 벅스턴은 전했다.
"나토, 연료 소모가 더 심한
제트기·탱크·미사일에 투자"
나토는 2002년에 처음으로 국방비 지출 목표를 GDP 2%로 약속했지만, 2021년까지는 6개 회원국만이 이를 달성했다. 3년 후엔 23개 회원국이 목표를 달성했고, 올해 말까지 32개 회원국 모두가 지킬 것으로 예상된다.
또 다른 큰 문제는 나토의 천문학적 국방비는 단지 돈의 전용뿐 아니라 기후 위기 악화를 초래할 공산이 크다. 벅스턴은 "세계 최대 탄소 오염원 중 하나인 나토는 연료 소모가 더 심한 제트기와 탱크, 미사일에 투자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tni 보고서에 따르면, 군사 분야의 탄소 배출량은 데이터 부족 탓에 추적이 극히 어렵지만, 2030년까지 총 23억 3000만 톤의 배출을 유발할 걸로 예측됐다. 이는 브라질과 일본의 연간 탄소 배출량을 합친 것과 거의 같은 양이며, 현 수준보다 6억 9200만 톤 더 많다.
급격한 국방비 증액 정당화 위해
나토, 러시아와 테러 위협 제시
나토의 급격한 국방비 지출 확대를 정당화하고자 "러시아"와 "테러"의 위협을 든 것도 비판했다. 벅스턴은 "5% 목표를 뒷받침할 합리적 근거도, 나토에 대한 위협이 왜 그렇게 급격히 늘어났는지, 상세한 설명이 없다"며 "그리고 나토의 행동이 부분적으로 러시아에 우크라이나 침공 무대를 마련해줬다는 자기 성찰도 없다"고 지적했다.
그에 따르면, 러시아의 국방비도 늘었지만, 여전히 나토의 10분의 1 수준이다. 또한 2024년 명목 GDP 2조 달러에 불과한 러시아 경제를 고려할 때 군사적으로 나토의 32개 동맹국을 따라잡을 수 없다. 미국을 뺀 나토 회원국들은 26조 달러, 미국 하나만도 29조 달러이다.
벅스턴은 "나토가 가장 걱정하는 안보는 군수업체의 안보인 듯하다"며 "트럼프의 압력이 있기 훨씬 전부터 군수업체들은 유럽항공우주방위산업협회(ASD) 같은 로비 단체를 통해 유럽의 국방비 지출 증가를 추진해 왔다. 그들은 군사 안보를 유럽연합(EU)의 최우선 목표로 만드는 데 성공했고, 연구와 산업 지원을 위해 점점 더 많은 공공 자금을 확보해왔다"고 지적했다.
"나토 안보는 군수업체의 안보?"
"죽음의 길 거부는 국민에 달려"
나토 정상회의를 앞두고 군수산업을 "역동적인 성장 산업"이자 향후 투자 추세를 주도할 "거대한 힘"으로 격찬한 블랙록의 투자 보고서를 인용한 벅스턴은 "이제 그들은 급신장하는 매출과 이익으로 보상을 거두고 있다"고 개탄했다. 그러면서 "나토의 안보 개념은 사회적 수요에서 돈을 전용하고, 기후 위기를 악화시키며, 글로벌 분쟁에서 이익을 얻는 군수업체에 보상하고, 외교보다는 전쟁을 선택한다"고 비판했다.
벅스턴은 "헤이그에서 보여준 호전적 입장은 나토를 전 세계 안보, 심지어 이 행성의 생명체에 대한 최대 위협 중 하나로 만든다"며 "이 죽음의 길을 거부하고 협력과 정의, 평화에 기반한 안보를 되찾는 일은 바로 나토 회원국 국민에 달려 있다"고 역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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