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 고 김충현 님의 희생을 추모합니다

노동자의 죽음 언제까지 지켜만 보려나

그들은 기계가 아니다, 부속품이 아니다

"전기가 아니라 목숨을 아껴 써야 한다"

9일 서울 용산구 전쟁기념관 앞에서 열린 태안화력 고 김충현 사망사고 발전비정규직연대 입장 및 투쟁계획 발표 기자회견에서 참가자들이 손팻말을 들고 있다. 2025.6.9. 연합뉴스
9일 서울 용산구 전쟁기념관 앞에서 열린 태안화력 고 김충현 사망사고 발전비정규직연대 입장 및 투쟁계획 발표 기자회견에서 참가자들이 손팻말을 들고 있다. 2025.6.9. 연합뉴스

모든 노동자를 위하여.

나는 오늘, 한 사람의 이름을 붙잡고 오랫동안 생각에 잠겼다. 김충현. 태안화력발전소의 하도급 노동자로, 고압세척기를 들고 보일러 속을 기어들어 가던 청년. 그리고 그 자리에서 다시는 나오지 못한 사람이다. 많은 이들은 그를 고 김용균의 뒤를 이은 또 하나의 비극으로 기억하지만, 나는 그렇게만 여기고 싶지 않다.

김충현이라는 존재는 이 사회가 반복하고 있는 구조적 죽음의 실체를 증명한 이름이며, 여전히 우리에게 책임을 묻고 있는 이름이다. 2018년 겨울, 같은 발전소에서 김용균이라는 스물넷의 청년이 목숨을 잃었다. 위험의 외주화라는 말이 이 땅을 흔들었고, 정부는 개선을 약속했다. 그러나 7년 뒤, 또다시 같은 장소, 같은 방식, 같은 이유로 다른 청년이 죽었다. 이쯤 되면 사고가 아니라, 시스템의 문제인 게 틀림없다.

죽음을 반복하는 공장의 컨베이어 벨트처럼, 노동자의 삶이 허무하고 무기력하게 소비되고 있다. 김충현은 단순히 ‘산재 피해자’가 아니다. 그는 형편이 어려운 집안의 맏아들이었고, 군 복무 중에도 아르바이트로 생활비를 보태던 성실한 청년이었다. 동료들은 그를 “책을 틈틈이 읽던, 미래를 꿈꾸던 사람”이라고 기억했다. 그가 감당한 일은, 정규직이 꺼리는 가장 위험한 작업이었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외주화의 진실이다.

이름만 바뀐 수많은 계약서 아래, 노동자는 권리를 잃고, 안전은 책임의 바깥으로 밀려난다. ‘전기 아껴 쓰라’는 정부의 메시지가 한창이던 지난달, 발전소의 하청노동자들은 이렇게 되받았다. “우린 목숨을 아껴 써야 합니다.” 이 한 마디가 오늘날 한국 사회의 노동 현실을 가장 적확하게 찌른다. 기업은 비용을 줄이기 위해 사람을 줄였고, 효율을 위해 감시를 줄였고, 책임을 피하려고 이름을 갈아치웠다.

그렇게 만들어진 죽음은 단가에 포함되지 않았고, 책임자는 계약 바깥에 숨어버렸다. 고 김충현 님의 죽음 이후, 발전소 하청노동자들은 다시 거리에 나섰다. 5개 발전 공기업의 1·2차 하청노동자들이 연대한 '발전 비정규직 연대'는 "죽음의 발전소를 멈추자"며 공동 파업을 선언했다. 고용의 불안정성과 안전 문제는 결코 분리된 사안이 아니라는 외침이다. 계약 기간이 6개월, 1년 단위로 쪼개지는 현실에서, 누가 감히 관리·감독을 요구할 수 있을까. ‘잘리기 싫으면 입 다물라’는 메시지는 공기처럼 퍼져있고, 현장의 침묵은 곧 위험을 증폭시킨다. 이들 노동자들은 김충현을 “또 다른 우리 자신”이라고 외친다.

그는 이 사회가 보호하지 못한 청춘이며, 우리가 외면한 내일이었다. 그리고 그가 속했던 자리는, 수많은 ‘누군가의 자식’, ‘누군가의 가족’이 여전히 일하는 자리다. 우리는 더는 ‘불의의 사고’라는 말 뒤에 숨어서는 안 된다. 이미 같은 죽음을 두 번이나 경험한 사회는, 이제 그 책임을 져야 할 때다. 여기서 묻는다. 이 죽음을 반복하지 않기 위해, 입법부와 행정부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입법부는 사회적 약자를 위한 안전 입법을 마련해야 할 책임이 있다. 국회는 반복되는 노동자의 죽음을 제도적으로 끊어내기 위하여 위험의 외주화를 금지하는 실질적인 법률 제정을 즉시 실행해야 한다. 2018년 이후 도입된 ‘김용균법’은 이름만 바뀌었을 뿐이고, 여전히 많은 산업현장에서 하청노동자의 고용구조와 안전은 변화하지 않았다. 따라서 산업안전보건법의 개정은 물론, ‘공공부문 직접고용 의무화법’, ‘위험작업 외주 금지법’과 같은 실효성 있는 특별법이 반드시 마련되어야 한다. 또한 국회는 산업안전 범죄에 대한 형사처벌을 강화해야 한다. 지금까지의 솜방망이 처벌은 경영자에게 전혀 영향을 미치지 못했고, 현장에는 아무런 경각심도 주지 못했다. ‘중대 재해 처벌법’의 무력화를 막고, 실질적 형사책임이 부과되는 강력한 입법 보완이 절실하다.

행정부는 노동 현장의 감독과 집행의 주체로서 책임을 다해야 한다. 정부는 노동자 안전을 ‘공문서’가 아닌 ‘현장’에서 실현해야 할 실행 주체다. 그 시작은 고용노동부의 산업안전 감독 시스템을 실질적으로 개편하는 데 있다. 점검 인력의 확충, 예산 증액, 불시 점검 강화가 이뤄져야 한다. 또한 공공기관 발주의 용역·하도급 구조에서 반드시 ‘직접고용’ 원칙을 제도화해야 한다. 정부는 비용 절감보다 생명 보장을 우선할 책임이 있다.

마지막으로, 대한민국 정부는 이런 사태가 발생할 때마다 추모행사에만 급급해하는 태도를 바꿔야 한다. 희생된 노동자들의 이름 앞에 헌화하기보다, 젊은 노동자들이 죽지 않도록 안전 시스템을 제도적으로 실현해야 한다. 그것만이 정부가 존재하는 이유이고, 민주주의가 작동하는 증거가 될 것이다. 우리는 묻는다. 대한민국 정부는 젊은 노동자들의 죽음을 언제까지 지켜만 보고 있을 것인가?

노래 '모든 노동자를 위하여' ---> https://youtu.be/Yx7K7ekenp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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