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 공세의 승패 가를 독일 레오파르트 2 전차
서방 50개국, 레오파르트 2 지원 여부 논쟁
한국 K2 전차 폴란드 수출도 무관하지 않아
제프리 삭스, 중립국이 평화중재 나서라 촉구
전쟁의 주요 변수 독일 전차 레오파르트 2
20일 독일 서부 람슈타인 미국 공군기지에서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 가맹국을 중심으로 한 우크라이나 전쟁 관련 50개 국 국방장관회의가 열렸다. 미국이 주도한 이 회의 참가자들은 우크라이나에 대한 군수물자, 특히 독일제 주력 전차 ‘레오파르트 2’ 지원 문제를 집중 논의했다. 이날 회의에서 레오파르트 2 전차 지원의 열쇠를 쥐고 있는 독일이 최종 결정을 내리지 못했으나, 3월 말~4월로 예상되는 러시아군의 대공세를 앞두고 레오파르트 2 전차 지원 문제는 확전이냐 종전이냐를 가를 수 있는 주요 변수로 떠오르고 있다.
중립국들이 중재에 나서야
한편 예상 외로 수세에 몰린 러시아군이 돈바스 지역에서 봄 공세를 앞두고 장기 참호전을 준비하고 있는 가운데, 전선은 제1차 세계대전의 장기 참호전과 같은 소모전 양상을 보이고 있다. 이에 따라 어느 쪽도 이길 수 없는 전쟁이라는 전망 속에 무기제조업체와 석유 대기업 등 전쟁 특수를 누리는 소수 수혜자들 외에 세계 전체에 큰 고통을 주고 있는 전쟁을 서둘러 끝내야 한다는 목소리들이 높아가고 있다. 이와 관련해 미국의 진보적 경제학자 제프리 삭스는 브릭스(BRICS) 국가들을 비롯해서 우크라이나와 러시아가 모두 기피하지 않는 주요 중립국들이 적극적으로 중재에 나서 유엔과 함께 전쟁을 끝내게 하자고 제안했다.
왜 레오파르트 2 전차인가?
이번 회의에서 독일제 레오파르트 2 전차가 논의의 초점이 된 것은 이 전차의 투입 여부가 전세를 뒤바꿀 수 있을 정도의 위력을 지녔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예상되는 봄 공세에서 전차는 참호를 돌파해 전세를 뒤집을 수 있는 결정적인 무기가 될 수 있을 것으로 내다본다. 레오파르트 2는 그 자체가 가장 뛰어난 성능을 지닌 전차들 가운데 하나일 뿐 아니라 독일을 비롯해 10여 국의 나토 회원국들이 보유하고 있어서, 관련국들이 합의만 하면 한꺼번에 대량으로 전선에 투입될 수 있다. 이 점이 중요하다. 이미 영국이 주력 전차 ‘챌린저 2’ 14대를 우크라이나에 지원하겠다고 밝혔으나, 전세를 바꾸는 데에는 적어도 100대 이상의 성능 좋은 전차들이 한꺼번에 투입돼야 한다고 <가디언>과 <아사히신문> 등이 전문가들의 말을 인용해 보도했다.
1979년부터 생산 배치되기 시작한 레오파르트 2 전차는 지금까지 3500여 대가 생산돼, 운용 중인 300여 대를 비롯해 500여 대를 보유하고 있는 독일을 비롯해서 10여 개의 나토 회원국들에 총 2300여 대가 배치돼 있다. 따라서 보유국들이 합의만 하면 일시에 수백 대를 전선에 투입할 수 있는 유일한 전차다. M1 에이브럼스와 러클레르 등 우수한 전차를 가지고 있는 미국과 프랑스 등은 여러 이유로 자국의 주력 전차들을 제공하기를 꺼리고 있을 뿐만 아니라 물량 자체가 부족하다.
젤렌스키 300대 요청, 100대로도 전세 뒤집어
우크라이나 젤렌스키 정부는 레오파르트 2를 300대만 지원해 주면 러시아군을 우크라이나 영토에서 몰아낼 수 있다며 신속한 지원을 요청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러시아군의 T72나 T90형 전차보다 우수한 레오파르트 2 전차 100대 정도만 있어도 전장의 세력 균형을 바꿀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젤렌스키 정부는 봄 공세 때 러시아군을 제압해야 돈바스 지역 바깥으로 러시아군을 밀어낼 수 있고 조기에 종전협상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레오파르트 2 지원 여부가 조속히 결정돼야 한다고 얘기한다. 전차 자체의 운용에는 한 달 정도의 훈련기간이 필요하며, 전차와 전차, 전차와 보병간 부대 단위의 전투 매뉴얼을 훈련을 통해 익히는 데에 1~2개월 정도가 더 걸려, 봄 공세를 위해서는 지금부터 훈련에 돌입해야 한다는 것이다.
레오파르트 2 지원과 한국제 K2 수출
나토 회원국들이 보유한 레오파르트 2를 우크라이나에 지원하기 위해서는 수출국인 독일의 허가를 얻어야 한다. 한국제 K2 전차를 수입한 폴란드는 독일 허가 없이도 영국과 같은 14대의 자국 보유 구형 레오파르트 2 전차를 지원할 수 있다는 뜻을 밝혔으나, 실제로 지원될 수 있을지 불투명할 뿐만 아니라 최소 총 100대 이상이 한꺼번에 투입되지 않는 한 전세를 바꿀 수 없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폴란드의 레오파르트 2 지원 문제는 K2 전차와 K9 자주포, FA 경공격기 등 한국제 무기의 폴란드 수출과도 얽혀 있어, 나토 및 러시아와 한국의 관계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끼칠 가능성이 있다.
망설이는 독일
올라프 숄츠 독일정부는 원래 미국이 M1 에이브럼스 전차를 지원한다면 독일도 레오파르트 2 지원를 지원하겠다고 했으나, 미국은 M1 에이브럼스의 물량과 연료 효율이 좋지 않다는 등의 이유로 난색을 표했다. 지금 올라프 정부는 제2차 세계대전 전범국이었다는 역사적 사실과 이미지 때문에 미국의 M1 에이브럼스 지원 여부와 관계없이 적극적인 무기 지원을 꺼리고 있다. 러시아와의 관계 악화를 각오해야 하고, 확전을 경계하는 국제 여론과 독일 내 반전 세력의 저항도 만만치 않아 레오파르트 2를 지원할 경우 국내 정치가 소용돌이에 휩싸일 가능성도 있다.
22일에 열릴 독일-프랑스 정상회담에서도 레오파르트 2 지원 문제가 거론될 것으로 보인다.
봄 공세를 예고하는 참호전 준비
우크라이나군과 러시아군은 땅이 어는 겨울철이 끝나는 3월 말이나 4월 초에 대대적인 공세를 취할 준비를 하고 있다. 나폴레옹과 히틀러의 발목을 잡았던 우크라이나 평원의 진흙창은 겨울이 끝나고 언 땅이 녹아 다시 마를 때까지 전차들을 움직일 수 없게 만든다. 그 기간이 3월 말~4월 초에 끝난다. 최근 러시아는 헤르손과 자포리자, 돈바스의 도네츠크, 루한스크 등 자국 영토로 선포한 우크라이나 동남부 지역 전선에 사람 키 정도 깊이의 참호들을 파고 장기전에 대비하면서 봄 공세를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우크라이나가 이 전선을 돌파하려면 참호전을 무력화할 수 있는 전차가 필요하다. 영국과 미국, 프랑스 등은 장갑차와 보병경전차 등을 지원하겠다고 이미 밝혔으나, 깊은 참호를 돌파하기 위해서는 화력과 방호력이 월등한 무게 50~60톤의 중무장 전차가 있어야 한다. 레오파르트 2는 가장 우수한 전차일 뿐만 아니라 러시아군 참호를 돌파할 수 있는 수백 대의 물량을 동시에 투입할 수 있는 유일한 전차다.
서방은 왜 점점 더 개입에 적극적인가
우크라이나 전쟁 초기에 나토 회원국들은 우크라이나에 대한 직접적인 지원을 꺼렸다. 그때는 러시아군이 조기에 우크라이나군을 제압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했기 때문에 러시아와 직접 맞부딪치는 것을 피했다. 그러나 러시아군이 예상외로 약세를 보이며 오히려 우크라이나군에 밀리면서 이런 태도에 변화가 일어났다. 여전히 러시아와 직접 맞부닥치는 직접 개입은 하지 않는다는 ‘레드 라인’을 지키고는 있으나, 서방 국가들이 전에는 꺼렸던 수준의 지원까지 하고 나서면서 이 레드 라인 자체가 차츰 뒤로 후퇴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서방국들의 직접 개입을 막고 있는 최대의 걸림돌은 러시아의 핵공격 위협이다.
서방의 우크라이나 지원은 이 러시아의 핵공격 가능성과 세계의 다른 나라들, 예컨대 브릭스 등 미국 편에 서지도 않고 러시아 편에 서지도 않으면서 러시아 및 미국과 정상적인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나라들을 비롯한 절대다수 나라들의 전쟁에 대한 여론, 그와 밀접하게 얽혀 있는 이익과 손실 계산에 따라 그 상한선이 정해질 것이다. 지금 세계는 제프리 삭스가 지적하고 있듯이 무기제조업체들과 석유·가스 대기업 등 전쟁 특수로 횡재를 하는 소수의 수혜자들 외에 모두가 고통 속에 큰 손해를 보고 있다.
제프리 삭스 “중립국들이 나서라”
제프리 삭스는 지난 18일 <이코노미스트>에 기고한 ‘왜 중립국들이 중재에 나서야 하나’(Why neutral countries should mediate between Russia and Ukraine)에서 우크라이나 전쟁을 하루빨리 종식시키기 위해서는 두 나라가 기피하지 않는 중립적인 국가들이 중재에 나서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아르헨티나와 브라질, 중국, 인도, 인도네시아, 남아프리카공화국 등 이른바 브릭스(BRICS) 중심의 국가들을 그런 나라로 예시했다. 반면에 나토 등 서방의 동진을 주도하면서 러시아뿐만 아니라 다른 많은 나라들로부터 비판을 받고 있는 미국 강경파들의 나토 확장 움직임에 가담하는 모양새를 보인 한국과 일본, 호주, 뉴질랜드 등에 대해서는 비판적인 자세를 보였다.
어느 쪽도 이길 수 없다
유엔 사무총장과 ‘지속가능한 해결 네트워크’, 미하일 고르바초프 전 러시아 대통령 등의 자문역을 맡아 온 제프리 삭스는 기고문에서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모두 군사적으로 결정적인 승리를 거둘 수 없을 것이라며, 그대로 두면 두 나라 모두 더 치명적인 상황으로 내달릴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우크라이나와 서방 동맹국들이 러시아를 크림반도와 돈바스 지역에서 몰아낼 가능성은 거의 없으며, 마찬가지로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에게 항복을 받아낼 가능성도 거의 없다고 내다봤다. 그런 가운데 세계는 60년 전 쿠바 미사일 위기 이래 처음으로 인류 절멸의 핵전쟁 위협에 직면해 있다고 했다.
당사국뿐만 아니라 세계 모두가 전쟁으로 고통을 받고 있다. 유럽은 불황에 빠졌고 개도국들은 늘어나는 기아와 빈곤에 시달리고 있다. 미국 무기제조업체들과 석유 대기업들은 횡재하고 있지만 미국 경제조차 전반적으로 상황이 나빠지고 있다. 세계가 불확실성과 공급망 붕괴, 핵무기 경쟁 위기에 휩싸인 가운데 우크라이나와 러시아는 서로 자국이 군사적으로 우월하다는 믿음 속에 전쟁을 계속하고 있다. 하지만 이는 한쪽 또는 쌍방 모두의 오산이며 둘 다 파멸로 몰아갈 것이라고 제프리 삭스는 경고한다.
크림반도와 돈바스에 대한 타협 필요
우크라이나와 러시아가 휴전조차 거부하며 전쟁을 계속하는 이유는 믿을 수 있고 실행 가능한 평화협정을 체결할 가능성이 없어 보이기 때문이다. 두 나라 지도자들은 휴전할 경우 그 기간을 서로 상대를 칠 무력 재정비 기회로 활용할 것이기 때문에 나중에 더 강해진 상대와 싸우느니 차라리 지금 싸우는 게 낫다고 생각한다. 상호불신이다. 따라서 믿을 수 있고 받아들일 수 있으며, 모두의 핵심적인 안보이익에 부합하는 평화안이 마련돼야 한다. 그 안은 우크라이나에게 주권과 안보를 제공해야 하고, 러시아에게는 나토가 동진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해야 한다. 나토가 자신들은 방어기구라 주장하지만, 러시아는 나토를 분명히 위협으로 여기고 그 확장에 저항할 것이다.
제프리 삭스는 크림반도와 돈바스 지역을 동결하거나 비무장화하는 등의 타협안이 필요하며, 러시아에 대한 제재의 단계적 철회와 전후 재건에 대한 양쪽의 합의도 필요하다고 본다.
그런 합의안을 만드는 데에는 누가 참여하느냐가 중요하다. 그는 양쪽 진영 당사자들만이 아니라 조속한 종전을 거듭 주장해 온 아르헨티나와 브라질, 중국, 인도, 인도네시아, 남아프리카공화국 등 주요 중립국들이 협상 중재자로 나서야 한다고 말한다.
한쪽 편을 들고 나선 한국
그들 나라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정복하는 것도, 나토가 동쪽으로 확장하는 것도 바라지 않는다면서, 지난해 6월 ‘북대서양’ 국가들 정상회의에 아시아태평양 국가들인 한국, 일본, 호주, 뉴질랜드 정상들이 참석했을 때 이들 나라는 충격을 받았다고 했다. 한쪽 편을 들고 나섰기 때문이다.
제프리 삭스는 이들 주요 중립국이 평화안 마련에 결정적인 역할을 할 수 있다면서, 러시아의 경제와 전쟁수행 능력이 이들 나라와의 지속적인 외교, 무역관계에 의존하고 있다는 점을 지적한다. 예컨대 인도는 서방의 러시아 제재에 따르지 않았으며, 어느 한쪽 편을 들지 않으면서 러시아와의 긴밀한 관계를 유지했다.
브릭스와 인도네시아 등이 평화 보장자
그는 글로벌 경제에서 차지하는 이들 중립국의 중요성에 주목하면서, 구매력평가지수를 토대로 한 2022년 GDP 평가에서 아르헨티나와 브라질, 중국, 인도, 인도네시아, 남아공의 총GDP(51조 7000억 달러, 세계 총생산의 약 32%)가 G7의 그것을 능가했다고 지적했다. 이들 신흥국은 글로벌 경제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을 뿐 아니라 G20 의장국을 차례로 맡고, 주요 지역기구들에서도 지도적 지위를 차지하고 있다. 따라서 이들이 러시아나 · 우크라이나와 생산적인 관계를 맺고 평화 보장자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본다. 터키와 오스트리아, 헝가리도 그런 역할을 할 수 있다고 그는 본다. 따라서 이들 나라가 유엔 안보리와 함께 파멸적인 무모한 전쟁을 중단시키고 새로운 평화시대를 열 수 있다고 제프리 삭스는 주장한다.
관련기사
개의 댓글
댓글 정렬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