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정부의 실용주의, 그 기회와 경고
성장만 추구했던 미국 실용주의의 부메랑
자본주의 폐해도 키운 덩샤오핑 개혁개방
노론 기용한 정조의 실용주의, 미완의 비극
가치의 일관성 유지…지속적인 구조혁신을
대한민국은 이제 간신히 내란을 수습하고, 마침내 새로운 정부를 출범시켰습니다. 2024년 12월 3일 발생한 내란 사태는 헌정질서를 뿌리째 흔든 초유의 사건이었습니다. 그러나 시민들의 헌신적 저항과 투표가 있었기에 우리는 가까스로 민주공화국의 명운을 지켜낼 수 있었습니다. 다만 내란을 진압했다고 해서 더 나은 나라가 저절로 보장되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이제부터가 진짜 시작이며, 앞으로 어떤 길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대한민국의 미래는 극명히 갈릴 것입니다.
경제 양극화와 청년 실업, 지방 소멸, 기후 위기와 디지털 대전환이라는 거대한 도전 앞에서 정치는 늘 '실용'을 말합니다. 이념보다 민생을, 이상보다 현실을 우선하자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습니다. 실용주의는 분명 위기의 시대를 돌파하기 위한 강력한 수단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반드시 자문해야 합니다. 무엇을 위해, 누구를 위해 실용을 택하는가? 시민 주권과 헌법적 가치가 실용의 최종 목적이어야 합니다. 실용주의는 언제나 그 사회의 시민의식과 헌법 수준만큼만 작동하기 때문입니다. 만약 그것이 시민주권의 관점에서 설계되지 않는다면, 실용은 언제나 더 큰 불평등과 독점, 그리고 민주공화국의 파괴로 귀결돼 왔습니다.
정권 교체 뒤 ‘반동의 복원’ 막으려면
2025년 이재명 정부는 거듭된 위기 국면에서 ‘민생 실용주의’를 국정 운영의 전면에 내세우고 있습니다. 과도한 이념적 대립보다는 민생과 경제, 과학기술과 문화산업을 중심으로 국가를 이끌겠다는 의지가 분명합니다. 공급망 재편과 전략산업 육성, 인공지능·배터리·방산 등 신산업을 대대적 국가 프로젝트로 추진하는 모습에서 이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내수 회복을 위한 소비 쿠폰, 청년·서민 주거 금융 완화, 사회적 약자 지원 확대 또한 실용주의의 색채가 뚜렷하게 드러납니다.
언론에 비친 이재명식 실용주의를 요약하면 네 가지로 압축됩니다. 첫째, 진영 논리를 뛰어넘는 인사 기조입니다. 윤석열 정부 관료와 야권 출신 인사까지 가리지 않고 경제·민생 중심으로 과감히 기용하고 있습니다(한겨레, 2025.6.12). 둘째, 서민 경제를 방어하겠다는 분명한 기준입니다. 대출 이자 경감, 자영업·중소기업 신속 금융 지원(서울경제, 2025.6.17), 농어민 직불금과 채무 보증 확대(매일경제, 2025.6.20)가 그 예입니다. 셋째, 지역 균형 발전입니다. 해양수산부의 부산 이전 결정(동아일보, 2025.6.4)에서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넷째, 시장 신뢰 회복입니다. 규제 개혁과 사회기간시설(SOC) 신속 집행을 통해 코스피 지수가 사상 처음 3,000선을 돌파(한국경제, 2025.6.23)한 것도 그 일환입니다.
이러한 정책들은 한국 사회의 긴박한 현실을 고려할 때 시의적절하고 절실한 선택으로 평가할 만합니다. 그러나 동시에 중요한 경고등도 함께 켜지고 있습니다. 실용이 반복해서 강조될수록 재벌 중심 경제구조를 방치하거나 불평등 해소를 뒤로 미루는 구실로 악용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사법·언론 개혁처럼 민주공화국의 구조를 바로 세우는 과제가 뒷전으로 밀릴 우려도 큽니다. 실용주의가 단기 성과에 매몰된다면 정권이 교체되는 순간 그간의 개혁은 모두 무로 돌아가고, 반동적 복원이 뒤따를 수 있습니다. 결국 실용은 민주공화국 완성을 위한 하나의 도구일 뿐입니다. 그것이 목적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이재명 정부를 지지하든 비판하든, 모든 시민이 반드시 되새겨야 할 기준입니다.
내적 불균형 완화에 그친 ‘뉴딜’
미국의 실용주의(Pragmatism)는 19세기 말 찰스 퍼스(Charles Sanders Peirce, 1839~1914), 윌리엄 제임스(William James, 1842–1910), 존 듀이(John Dewey, 1859~1952)에 의해 철학적으로 정립되었습니다. 그러나 그 사상적 토대는 미국이 처한 역사·사회경제적 조건과 깊이 연결되어 있었습니다. 유럽이 오랜 봉건제와 종교전쟁, 산업혁명을 거치며 자본주의와 사회주의를 놓고 치열하게 사유하고 투쟁했다면, 신대륙에서 출발한 미국은 사정이 달랐습니다. 광대한 토지와 자원, 귀족제도나 강력한 교회 권위가 없는 환경에서 개척 정신과 성취 지향이 결합하여 성장과 성과를 중시하는 현실주의가 주류를 이루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미국식 실용주의는 구조적 질문과 성찰을 뒤로한 채 오로지 앞만 보고 달린 결과, 세계 최초의 노동절(May Day)이 1886년 시카고에서 경찰 발포로 노동자들이 희생된 사건을 추모하며 탄생하게 했습니다. 결국 1929년 대공황은 균형 없는 성장이 얼마나 치명적 파국을 불러오는지를 극적으로 보여주었다고 생각합니다. 대공황은 유럽과 달리 자본주의에 대한 사회적 성찰이나 통제 장치 없이 무한 성장을 질주해 온 미국식 자본주의가 필연적으로 맞닥뜨린 위기였습니다. 급격히 팽창한 금융과 주식시장은 현실 경제와 괴리되었고, 보호장치가 부실한 상황에서 대규모 실업과 소비 붕괴로 이어졌습니다.
이때 프랭클린 D. 루즈벨트(Franklin D. Roosevelt, 1882~1945)는 철저히 실험과 검증을 통해 현실적 결과를 추구한 실용주의자였습니다. 그는 1932년 조지아주 오글소프대학교 졸업식 연설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국가는 대담하고 끈질긴 실험을 필요로 합니다. 어떤 방법이 실패하면 솔직히 인정하고 다른 방법을 시도하십시오. 그러나 무엇보다도, 무엇이든 해보아야 합니다.”
루즈벨트의 뉴딜(New Deal)은 이러한 실용주의적 태도에서 탄생했습니다. 뉴딜은 대규모 공공사업, 농산물 가격 지지, 사회보장제도, 금융 개혁, 노동조합 권리 보장 등을 통해 수백만 개의 일자리를 만들고 은행과 주식시장의 신뢰를 점진적으로 회복시켰습니다. 1935년 사회보장법은 미국이 본격적으로 복지국가의 기초를 닦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분명한 것은, 뉴딜이 생산수단 국유화를 목표로 한 사회주의가 아니었다는 사실입니다. 자본주의 시장경제의 틀은 유지하되, 국가가 개입해 위기를 완화하고 체제가 무너지는 것을 방지한 것이었습니다. 사실 뉴딜 자체가 미국의 경제공황을 온전히 해결시키지는 못했습니다. 미국 자본주의의 내적 불균형을 구조적으로 완화시키는 데 한정되었습니다. 미국 경제는 제2차 세계대전의 군수산업 덕분에야 완전고용과 생산 회복을 이루었습니다. 이는 실용주의가 일정 국면에서 매우 유연하고 효과적일 수 있지만, 본질적 모순을 치유하지 못하면 언제든 다시 파국을 맞을 수 있음을 보여주는 역사적 사례입니다.
‘흑묘백묘론’의 빛과 그림자
중국도 흥미로운 사례를 제공합니다. 마오쩌둥(毛澤東, 1893~1976)이 주도한 문화대혁명(1966~1976년)은 이상적 사회주의 건설을 내세우며 홍위병들이 대규모 숙청을 자행하여 중국 역사의 시계를 뒤로 돌린 반문명적 시기로 평가됩니다. “사상·문화·습관·관습의 4구습(四舊)”을 타파하라는 구호 아래 고대 기록, 서적, 사원과 사당, 전통 문화유산들이 대거 파괴되었습니다. 수많은 학자와 예술가, 종교인이 ‘부르주아 사상’에 물들었다는 이유로 공개 비난과 강제노동, 투옥, 처형, 자살로 내몰렸습니다. 1978년 중국공산당 고위회의에서 공식 확인된 자료에 따르면 문화대혁명 기간 ‘비정상 사망자’만 약 172만 명이었으며, 무장 충돌과 상해자까지 포함하면 그 수는 훨씬 커집니다. 학계에서는 전체 사망자가 수백만에서 최대 2000만 명에 이를 것으로 추정하기도 합니다.
1976년 9월, 마오쩌둥이 83세를 일기로 사망하고, 마오쩌둥의 부인이었던 장칭(江青, 1914~1991)을 비롯한 4인방(四人帮)이 실각하고 덩샤오핑(邓小平, 1904~1997)이 권력을 잡으면서 상황은 급반전했습니다. 덩샤오핑은 “검은 고양이든 흰 고양이든 쥐만 잘 잡으면 된다”는 흑묘백묘론으로 상징되는 실용주의 노선을 선택했습니다. 농촌에 생산책임제를 도입하고 경제특구를 설치해 해외 자본을 유치하며, 사회주의 시장경제라는 독특한 체제를 만들어냈습니다. 이후 중국은 40년간 연평균 약 910% 성장하며 세계 2위 경제대국(G2)으로 도약했습니다.
그러나 중국식 사회주의가 실용주의 정책을 통해 이룩한 장대한 성과는 빛만큼 어둠의 깊이 또한 크고 혹독했습니다. 극심한 빈부격차, 구조적 부패구조, 노동권 후퇴, 환경 파괴 등 자본주의의 폐해를 오히려 세계에서 가장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국가로 변모한 것입니다. 이는 실용주의가 제대로 된 규범과 민주적 통제 없이 목적화될 때 얼마나 큰 사회적 비용을 치르게 되는지를 잘 보여줍니다.
정조 사후 무너진 ‘완충지대’
조선 후기 정조(1752~1800)는 실용주의를 통해 국가를 개혁하려 한 대표적 군주였습니다. 규장각을 설치해 실학자와 중인·서얼을 기용하고 상공업과 화폐 유통을 장려했으며, 수원 화성을 축조해 정치·군사·경제의 거점으로 삼았습니다. 이를 통해 인조반정 이후 조선을 장악한 서인의 후예 노론 벽파를 견제하고 국가의 활력을 꾀하고자 했습니다. 1776년 즉위 직후 정조는 김귀주, 홍인한 등 노론 벽파의 내란 음모 사건을 수습하고, 1778년 장용영을 설치해 군권을 장악했습니다. 탕평책을 실시해 노론 벽파를 견제할 남인과 소론 중신을 대거 등용했고, 규장각을 통해 참신한 인재를 발굴하며 국정의 싱크탱크로 삼았습니다.
정조는 특히 심환지(沈煥之, 1730~1802)와 같은 노론 벽파의 핵심 인물을 가까이하며 정치적 안정을 꾀했습니다. 심환지는 탕평을 표방했지만, 사도세자 문제에서 벽파 노선을 유지한 인물이었고, 정조는 이를 알면서도 현실적으로 활용을 선택했습니다. 채제공(蔡濟恭, 1720~1799)도 온건한 노론으로 정조 치하에서 좌·우의정을 거치며 규장각 운영과 개혁을 총괄했습니다. 정조의 실용주의는 노론 벽파와의 유화적 연합을 통해 완충지대를 마련하려 한 전략이었습니다.
그러나 정조가 갑작스레 서거하자 노론 벽파는 즉각 정치적 근거지로 돌아갔습니다. 심환지와 대비 정순왕후는 노론을 규합해 섭정을 확립했고, 심환지는 영의정에 올라 정조의 개혁 정책을 죄다 무위로 돌렸습니다. 대규모 천주교 탄압이 재개되며 조선은 다시 노론 일당 지배 체제로 복귀했습니다.
정조의 개혁은 지배 세력에 대한 구조적 변혁 없이 추진된 실용주의적 유화책이 얼마나 허망하게 반동으로 회귀하는지를 보여주는 뼈아픈 역사적 교훈입니다. 이후 조선은 구조적 개혁의 기회를 다시는 잡지 못하고 결국 망국의 길로 접어들게 되었습니다.
대한민국이 가야 할 길, ‘3+5 전략적 고려’
이재명 정부는 ‘민생 실용주의’를 내세우며 적극적인 재정 확대, 반도체·첨단기술 투자, 기후·에너지 전환, 지역균형발전 전략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위기 상황에서 매우 시의적절하고 절실한 과제임이 틀림없습니다. 그러나 실용이 반복해 강조될수록 다음과 같은 경고등도 함께 켜집니다.
실용주의가 기존 재벌 중심 경제구조를 방치하거나 불평등 해소를 미루는 핑계로 악용될 수 있습니다. 사법·언론 개혁과 같은 민주공화국의 구조적 과제가 뒤로 밀릴 위험도 큽니다. 마지막으로 실용주의가 단기 성과에만 매몰되면 정권 교체 시 그간의 개혁이 모두 무로 돌아가고, 반동적 복원이 뒤따를 수 있습니다. 이재명 정부의 실용주의가 성공하기 위해 다음의 3대 지향과 5대 필수조건, 즉 ‘3+5 전략적 고려’를 강조하고자 합니다.
-3대 지향
1. 공공성·평등·민주공화 가치의 일관성 유지 : 실용은 어디까지나 수단이며, 궁극적 목적은 정의롭고 자유로운 공화국이어야 합니다.
2. 지속가능한 구조 혁신 : 법제, 권력, 사회구조를 함께 바꿔 개혁을 되돌리기 어렵게 만들어야 합니다.
3. 시대정신과 국제질서에 부합 : 세계 경제·기술·안보 환경을 반드시 고려해야 합니다. 이를 무시하면 외적 충격에 무기력해질 수 있습니다.
-5대 필수조건
1. 견고한 법제도 설계 : 개혁의 내용을 헌법과 법률에 담아야 합니다. 그래야 정권이 바뀌어도 쉽게 뒤집히지 않습니다.
2. 다원적 사회세력 연합 : 특정 계층이나 정당의 이해관계를 넘어, 국민적 연대와 다원적 참여를 통해 개혁을 추진해야 합니다.
3. 투명·공정한 사법과 행정 : 부패와 특권을 통제하지 못하면 언제든 개혁은 무너집니다. 검찰, 법원, 감사기구의 개혁은 필수적입니다.
4. 경제적 지속가능성 확보 : 재정 건전성과 생산성을 고려하지 않는 개혁은 오래가지 못합니다. 경제·기술·산업 경쟁력을 반드시 병행해야 합니다.
5. 시민의식과 참여, 언론 개혁 : 깨어 있는 시민과 건강한 공론장이 있어야 개혁이 뿌리내릴 수 있습니다. 아무리 훌륭한 정책도 시민의 지지와 감시가 없으면 사상누각입니다.
미국, 중국, 조선의 역사는 실용주의가 위기의 시대에 국가를 구하는 강력한 수단이 될 수 있음을 분명히 보여주었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실용주의가 수단이 아닌 목표로 변질될 때, 더 큰 불행과 반동, 민주주의의 후퇴를 낳는다는 점도 명확히 증명해 왔습니다. 오늘 대한민국이 선택해야 할 길은 분명합니다. 실용은 어디까지나 수단이며, 그 궁극적 목적은 공공성과 시민적 자유, 민주공화국의 완성입니다. 역사가 주는 이 엄중한 교훈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될 때입니다.
관련기사
개의 댓글
댓글 정렬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